"발이 시원하다."
"피로가 다 풀리는 느낌이다."
"오늘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여기서 좀 더 오래 쉬었다 가자."
불성사를 지나 작은 지능선을 따라 하산을 거의 마무리 할 무렵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던 일행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암반에 드러누워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필자의 귓전을 때렸다.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퍼부을것처럼 동서남북 할 것 없이 이곳저곳에 구름이 뭉쳐서 떠다니고 있는 하늘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구름에 비 내릴지, 어느 조개에 진주 있을지 모른다고 했던가.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서 인간이 제 아무리 으스대며 잘난 채 해도 언제 어떤 운명에 처할 지 알 수 없는 짐승들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그뿐만아니라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전(全)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제한적이다.
더구나 삼라만상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밝혀진 것은 우주의 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지난달 중순 회사 주위의 과수원에 배꽃들이 막 피어나고 있기에 조만간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그날 저녁 내린 약간의 봄비에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 화려한 꽃들이 모두 지고 없었다.
그것은 참으로 예상밖이었는데 그렇게 빨리, 그렇게 쉽게 운동장만한 과수원을 화려하게 수 놓았던 꽃들이 하루저녁에 사라지다니 허망하기까지 했다.
순백색 꽃들의 짧은 향연과 전멸은 순식간에 청춘은 까마득해지고 중년을 넘어 백발 날리는 노년에 이르는 인생같다는 생각마저 들게했다.
그렇다. 우리는 안갯속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하루하루 살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운명처럼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거짓과 조작, 날조와 탈법, 몰염치와 교언영색으로 선량하고 무고한 민초들의 권리를 짓밝고 수탈을 일삼는 거악(巨惡)의 무리들 머리위에 물폭탄이라도 떨어뜨리는 구름이 있으면 좋으련만 악(惡)에 대한 응징이 제대로 안되니 거악이 군림하고 발호하는 요지경 같은 야바위 세상이 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좌우에 우뚝 솟은 육봉과 장군봉 능선을 번갈아 보며 등산이 아니라 사지(四肢)를 써야 하는 등반이라고 웃고 떠들면서 미소 능선을 넘어 관악산 주능선에 이르니 비 예보때문에 서둘러서 그런지 11시가 조금 지난 이른 때였지만 우리 일행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비내리기 전에 가져 온 상추 쌈을 먹어야 한다는데 만장일치였기 때문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웅장한 팔봉능선을 걸으며 호연지기를 키우고 경건한 마음으로 왕관바위 앞에 서 겠다는 당초의 계획을 변경해야 했기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암반이 많은 팔봉을 우중산행 하기에는 몇 구간 까다로울 수 있다는 자체 판단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며 육봉 국기봉에 들렀다 불성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팔봉을 오르지는 못했지만 측면에서 줄곧 팔봉을 감상할 수 있었으며 적절한 난이도로 지루하지 않고 산행하는 흥미를 솔솔하게 느낄 수 있는 코스였다.
관악수목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와중에 굵어진 빗방을 탓에 우의를 입어야 했지만 산행을 마무리 할 때까지 염려했던 곤란한 상황은 없었다.
뒤풀이 때 창밖에 폭우가 내리니 산행 코스를 변경하여 빨리 하산하기를 잘했다고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어느 구름에서 비 내리는지 여전히 알지 못한 채 뒤풀이 식당을 나와 흐뭇한 마음으로 귀갓길에 올랐다.
관악역까지 빗속을 걸어서 가겠다는 일행과 버스를 타고 빨리 안양역으로 가겠다는 일행들로 나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