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관한 시모음 4)
삼월 중순께 /이향아
3월 중순께 호남 고속도로
전주 근처 기웃거리며 지나가고 있을 때
옆구리 터진 길로 접어들면 군산으로 갈 수도 있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고 있을 때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보았을 거다.
벙싯벙싯 참지 못하는 복숭아 나무
연두색 머리칼 풀어젖힌 몽롱한 버들
언제 저렇게까지 되었는지 몰라
이래서 사람들이 미치기도 하나 봐
틀림없는 3월 중순 호남 고속도로
바쁠 것 없다, 숨도 쉬며 가자.
가슴 눌러 타이르며 지나가노라면
이런 세상 그냥 두곤 갈 수 없다는,
나는 아무래도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
3월의 빛 /임영준
마음껏 캐내도 좋으리
응축된 숨결과
인고의 진정을
보이는 대로 주워 담아
흩뿌리기만 해도
금비가 되리니
뿌리 깊은 열망과
지순한 그리움을 품고
한 점의 빛도 감읍해야 하리
三月抒情 /김명배
찬밥덩이 얻어먹고
살다가 살다가
핏덩이 하나 쏟아 놓고
도망간
三月 오솔길,
까치가 짖는다.
멀리서 멀리서
오는 봄,
봄을 따라
의붓자식 다 데리고
누가 온다,
누가 온다.
3월의 광시곡 /강효수
준비된 마음은 뜨거운 것
섭리는 결코 방관자가 아님을
슬픈 단조 먹먹히 흐르던
상처 난 계절의 이방인은
달그림자에 숨어 떨고 있다
터질 것만 같은 가슴앓이
참을 수 없는 거역할 수 없는
초연한 흐름의 결연한 의지
거부할 수 없는 탈피의 몸짓이
비 내리는 대지에 몽울진다
우리는 3월의 보헤미안
뜨겁게 흐르는 촛불의 눈물
꽃보다 아리게 몽울진
우리의 3월은 봄보다 미친 것
꽃보다 간절한 열망으로
꽃보다 안타까운 설렘으로
형형히 아롱진 3월은 오롯하다
하얀 심장의 꽃 펑펑 터지는
우리의 4월은 잔인하지 않음에
꽃보다 아름답고 향기롭겠다
삼월 어느 날 /박인걸
복사무(輻射霧)자욱해
도시 전체가 미궁(迷宮)에 빠지고
표정마저 잃은 사람들이
입마개를 걸치고 우왕좌왕한다.
태양도 구름 뒤로 숨고
봄바람도 어느 골짜기에 숨었는지
일말(一抹)의 기대마저 저버리고
며칠째 소식 두절(杜絶)이다.
보슬비라도 내려주었으면
누적(累積)된 피로가 사라질 텐데
온종일 호흡(呼吸)과 싸워야 하니
비 한 방울 없어 속이 탄다.
매화(梅花)가 만발했다는데
개나리 길섶에서 웃던데
도시를 덮어버린 화학(化學)물질은
삼월을 집어삼키고 있다.
3월의 향기 /藝香 도지현
그리운 이여!
순백의 설원에
선홍빛으로 뚝뚝 떨어진 꽃
그 꽃은 내 가슴에 아직도 피어 있고
아무리 추워도 그 향기는 팔지 않는다는 매화
피었다 진지도 오래지요
그리운 이여!
새순 돋는 가지에
노고지리 웅크리고 앉아
피 토하듯 우지 지던 그 날 아직 잊지 않았는데
개나리 피고, 진달래 붉게 물들여
온 산야, 계곡까지 뒤덮었네요
그리운 이여!
다시 오지 않을 듯한
새봄이 찾아와 가슴에 머물고
따사로운 햇살과 아지랑이 하늘거리는 날
오늘도 물안개 피어오르는 이곳
프리지어 보랏빛 향기가 진동하네요
고향의 삼월 /이원문
삼월도 가운데 날
그 가운데 어느덧
끝날에 접어들고
춥고 더울날 떠나고 들어온다
사월이 돌아오면
봄 문턱 훨씬 넘어
꽃동산 그림 되고
울 뒤 복숭아꽃이 얼마나 예쁠까
냇가에 아이들
그 들녘 보리밭
바구니 든 아이들
나부끼는 보리밭 길 지날 것이고
논밭 갈이 누렁이 소
송아지 부르는 소리
더 높이 뜬 종달새
아이들 내려보며 온종일 지저귀겠지
3월 /임영준
다소곳한 햇살이 눈부시다
긴 잠에서 깨어났더니
담장이 조금 낮아졌구나
귀기울이면 모두 가까이 있는 것을,
대문을 활짝 열고
주단이라도 깔아야 할 것 같은
간지러운 나날이다
삼월과 사월 사이 /조재영
약사가 감기약을 짓는 동안 신문을 훑었다
거장 키에슬롭스키가 죽었다는 전언, 우연속으로
그가 떠난 것이다 13일의 수요일, 나는
꽃을 든 남자를 네거리에 세워 두고 도망왔었다
꽃과 함께 모든 우연도 버렸었다 그날 그가 갔다
약을 받아들고 어두워질 때까지 네거리에
서 있었다 꽃도 우연도 지나가지 않았다
황사바람을 맞으며 헤매다니다 예술영화 전용관
어둠 속에 들어섰다 편도선이 부었고 눈물이 났다
객석엔 몇몇 시든 꽃들이 앉아 졸고 있었다
캘리포니아는 어디에 있는가
캘리포니아는 왜 꽃이 아니고
삼월은 왜 사월보다 먼저 가는가
영화는, 언어는 잔혹했다 거장들의 슬픔은
삼킬 수 없다 약사는 색색의 큼직한 알약들을
조제한 것이다 화면 가득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오른다
우연 속으로 간 그가 자막에 서있다
꽃같이 화려한 3일치 알약이 주머니에 수북하고
필름이 끊겼다 캘리포니아는 어디에 있는가
삼월과 사월 사이 기침은 계속되고
영화는 끝나지지 않는다
3월, 연둣빛 언덕 /고은영
3월 언덕에
꿈의 빗장을 풀고
상큼한 바람이 머문다
어둠의 그늘을 벗어
노래하는 눈 부신 햇살의 춤
시간의 회로를 돌리고
다가선 발걸음마다
물오른 나무마다
꽃, 꽃들이 핀다
견딜 수 없는 음지마다
그래도 살겠다고
생명을 틔우는
이름없는 들풀조차도
살같이 고운 연둣빛
여린 잎마다
안개가 머물다 간 곳에
이슬 머금은 세수를 하고
아지랑이 아른대는
저, 해 말간 미소
삼월에 /홍인숙
무심히 흐르는
세월에 놀라
주저앉은
정원
바로 그곳
파랗게 내려온
봄
눈물나게
화려한
세상
춘삼월 /鞍山백원기
밤하늘에
구름 커튼 걷히고
찬란한 별빛과 환한 달
산에는
골짜기 물먹는 야생이 뛰놀고
들에는
간질이는 태양과
불어오는 봄바람이 황홀해
너도나도 눈을 뜬다
사랑과 평화가 깃든
양지바른 언덕
잔디밭에 누우면
꿈틀거리는 봄의 태동
지축을 흔드네
3월, 그 눈꽃처럼 /이진선
눈부시다
가슴에 화인된 불덩이 부여잡고 밤새 앓는 동안
별들은 몸을 풀었나보다
빛으로 가늠 할 수 없었던 그의 몸은 승화되고
고요한 새벽
꿈꾸듯 세상을 하얗게 덧칠하였다
냉기를 조금씩 먹고 자라던, 바람은
눈꽃을 감싸 안고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무거웠던 삶의 소망들이
나뭇가지마다 하얀 벚꽃으로 매달렸다
겨우내 쌓였던
긴 한숨들이 몽글한 그 속에서
녹아내리겠지
그들의
마지막 하루 몸부림은 장대하였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 이렇게 짧지만 화려하게
각인 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3월, 그 눈꽃처럼
3월의 사랑 노래 /정연복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시냇물 녹아
즐거이 노래하며
졸졸 조르르 흘러가듯이.
오랜 세월 사랑을 잊고
움츠려 있었던 내 가슴도
사르르 녹아
사랑 노래 부르리.
온 땅의 생명이 활짝
기지개를 켜는 지금
삶을 뜨겁게 사랑하겠노라
힘차게 기쁘게 노래하리.
삼월의 어느 봄날 /오애숙
청아함 쏟아져 내리는
거룩한 해맑음 부채 되어
온~ 누리에 활짝 펼쳐지는
눈부심의 삼월 어느 날 아침
삶이 봄 속에 성긴 가지에서
잎이 나고 꽃이 피워 향그러워
심술궂은 꽃샘 바람 분다 해도
싱그러움 휘날리며 자리 잡은 봄
휘파람 불며 홍빛 사랑 속삭이는
희망의 꽃 물결 속 진달래 그 향기
내 삶에 살며시 한줄기 붉은 빛으로
그 옛날 첫사랑의 향그러움 윙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