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부, 1-1
우리 나라에는 실무적인 인물이 없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예을 들어,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장군들, 그리고 언제나 수요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만큼 온갖 분야의 경영인들은 많으나 실무적인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불평하고 있다.
몇몇 기차역에는 제대로 된 역무원 하나 없고 어떤 선박 회사에서는 그럭저럭 쓸만한 간부진을 갖추는 일조차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 개설한 어느 철로에서는 기차가 충돌했다느니, 어떤 철교에서는 객차가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기차가 눈 덮인 벌판에서 겨울을 날 뻔했다는 기사를 읽게 된다.
기차가 몇 시간 동안 달리다가 제자리에 멈추어 닷새 동안 눈 속에 갇혀 있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수천 파운드나 되는 물건이 이제나저제나 발송을 기다리다 그냥 썩어 버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곧이들리지 않는 얘기지만). 어던 역에서는 행정 책임자가,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현장 책임자가, 물건을 부쳐 달라고 어느 상점 종업원이 졸라 대자 물건을 부쳐 주기는커녕 오히려 따귀를 때리고 나서, 자신의 그와 같은 행정적 조치를 그저<약간 흥분해서>라고 해명했다.
그와 같은 관청의 숫자는 생각하기 조차 끔찍한 정도로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관청에서 근무했고, 지금도 근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근무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와 같은 인적 자원으로 능률적인 선박 회사의 경영진 하나쯤 편성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이러한 의문에 가끔 지극히 간단한 해답이 나오기도 한다. 그 답이 너무나 간단해서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사실 이렇게들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 2백 년 동안 가장 좋은 독일식 모델을 따라 증조부에서 증손까지 모두들 근무를 해오고 있는데, 근무자들은 가장 실질적이지 못한 사람들이어서,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상성과 실무 지식의 결여가 마치 최상의 장점이나 꼭 그렇게 해야 되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우리는 공연히 근무자들에 관해 언급한 모양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실무적인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소심하고 창의성이 부족한 것이 실무적인 사람의 가장 큰 특징으로 으레 간주 되어 왔다.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그러한 생각이 지배적이다. 만약 이러한 견해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우리 러시아인만을 비난해야 하는가? 세계 도처에서 언제나 독창성의 부족은 먼 옛날부터 실질적인 실무자의 첫번째 자질이자 표본이 되어 왔다. 적어도 1백 명 중 99명은(최소한으로 잡아서)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왔고, 1백 명 중 한 명만이 항상 시각을 달리해 왔을 뿐이다.
어떤 사회든 발명가와 천재는 항상 초기에(인생 말엽까지 그런 경우도 자주 있지만) 바보 이상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러한 사실은 비일비재 해서, 사람들은 이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수십 년 동안 모두들 자기 돈을 은행에다 맡기고 4부 이자를 받고 수십 억을 쌓아 두지만, 은행이 없고 모두들 자기식대로 살아가야 한다면, 그 돈의 대부분은 과열된 주식 시장 아니면 사기꾼 수중에서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하는 데도 고상함과 도의가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도의가 요구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 나라에서 도의적인 소심함과 독창성의 결여가 지금까지 사회 통념상 점잖고 실무적인 사람의 필수 불가결한 자질이라면, 갑자기 변화하는 것은 극히 무질서하고 심지어는 고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자기 아들이나 딸이 갑자기 탈선할 상황에 처해 있다면,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로서 누가 경악을 하지 않고 머리를 싸매고 누워 있지 않겠는가. <독창성 따윈 없어도 좋으니 그저 평범하고 행복하게만 살아 다오.> 모든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을 얼러 주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 나라의 유모들은 먼 옛날부터 아이들을 얼러 주며<장군이 되어 황금 옷을 입고 다니거라!>라며 콧노래를 흥얼거려 왔다. 그걸 보면 우리 나라의 유모들마저 러시아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은 장군이 되는 것이고, 장군이야말로 가장 평온하고 멋진 행복의 국민적 이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상 평범하게 시험에 합격하여 35년쯤 근무하고 나면, 누가 우리 나라에서 장군의 지위에 오르지 못하고 은행에 상당한 액수를 저축해 두지 못하겠는가? 이처럼 러시아 인은 거의 아무런 노력 없이 사무적이고 실무적인 사람이라는 명칭을 얻곤 했다. 실질적으로 우리 나라에서 장군이 될 수 없는 인물은 오로지 독창성이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모든 일은 그냥 넘기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아마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대체로 그것이 사실이며 우리 사회는 실무적 인간의 이상을 매우 공정하게 정의해 왔다.
그런데 여담을 지나치게 많이 늘어놓았다. 사실은 우리가 잘 아는 예빤친 가족은, 아니 적어도 이 집에서 가장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가족에게 거의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성질 때문에 줄곧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성질은 앞에서 방금 우리가 말했던 미덕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이들은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기네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어쩐지 남의 집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이따금 했다. 남의 집에서는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려 나가는데 그들의 집에서는 순조롭지 못했다. 이를테면 모두들 궤도를 따라 잘도 굴러 가는데, 그들만의 궤도에서 자꾸 이탈하는 것만 같았다. 또한 남들은 모두 도의 적으로 매순간 두려워하는 것이 있는데, 그들 식구만은 안 그런 것이었다.
리자베따 프로꼬피예브나는 지나치게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것도 가족들이 예상하고 있는 도의적이고 세속적인 두려움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녀 한 사람만 불안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딸들은 모두 통찰력이 있고 냉소적이었지만, 아직 젊었다. 장군도 통찰력은 있지만(그러나 융통성은 없었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흠!>소리만 낼 따름이었지 모든 것을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에게 의존했다. 그렇게 되자 결국 그녀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갔다. 그녀의 가족은 독자적인 창의성 때문에 그렇게 뛰어나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독창성에 대한 의식적인 집착 때문에 궤도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별로 고상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한 요소는 전혀 없었다.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설정한 목적 따윈 전혀 없었다. 그러나 예빤친 가족은 대단히 존경받을 만한 가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일반적으로 존경받는 가정과는 사뭇 달랐다.
최근 들어서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는 모든 일에 대한 잘못은 자기 탓이라고 보고 자신의 <불행한>성격을 탓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의 고통은 더욱 커졌다. 그녀는 매순간 자기가<멍청하고 덜 떨어진 괴짜>라고 욕을 하며 스스로를 의심하는 병으로 괴로워했다. 또한 그녀는 계속 안정을 찾지 못하고 채 자신의 불행을 줄곧 과장했다. 우리는 이미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예빤친 가(家)가 일반인의 실질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심지어는 천한 계급 출신의 예빤친 장군마저 어딜 가나 존경을 받을 만했는데, 첫째는 그가 부유하고<그리 둔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리 영리하지는 않았지만 점잖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간 둔하다는 말은 모든 인사에게 적용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돈을 착실하게 모으는 사람에게는 거의 없어서는 안 될 자질인 것 같다. 더욱이 장군은 단정한 매너에 겸손하고 침묵을 지킬 줄 알며, 동시에 장군으로서뿐만 아니라 정직하고 고상한 인간으로서도 남에게 자신의 권위를 침해당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인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로 말하면, 그녀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듯이 명문 집안 출신이었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는 특별한 인척이 없으면 그다지 가문을 따지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러한 인척이 있었다. 그들이 그녀를 존경하고 아껴 주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에 따라서 그녀를 존경하고 인정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집안에서 겪는 고통이 아무 근거 없고 그 이유도 보잘것없어서 우스꽝스러울 만큼 과장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자기 코나 이마 위에 사마귀가 나 있다면, 자기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자일지라도 그런 사실은 개의치 않고 모두들 사마귀만을 보고 자기를 비웃거나 손가락질할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를 <괴짜>로 보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존경받고 있다는 것은 절대적인 사실이었다. 그런데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는 이 사실을 믿지 않기 시작했는데, 바로 거기에 그녀의 모든 불행이 있었다.
딸들을 바라 볼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성격이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럽고 고상하지 못해서 그것이 딸들의 장래를 망쳐 놓치나 않을까 고민을 하곤 했다. 그런 성격 때문에 그녀는 끊임없이 딸들과 남편을 책망하며 매일같이 그들과 입씨름을 벌이면서도, 자신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그들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신의 딸들이 자기 같은 괴짜가 되어 가고 있다고 괴로워했다. 자기 딸들 같은 처녀들은 이 세상에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렸다. <저 애들은 완전히 니힐리스트들이야!> 그녀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곤 했다.
지난 `1년 동안, 특히 최근 들어서 그처럼 쓸쓸한 생각이 점점 강해져 갔다. <그런데 저 애들은 왜 시집을 안 가는 거야?> 그녀는 시종일관 이렇게 자문을 해 보았다. <이 어미를 괴롭힐 작정을 한 거야! 이게 저 애들의 목적일 거라고, 맞아, 그게 소위 신사상이라는 거고 그 저주받을 <<여성문제>>라는 거야! 그래서 반년 전에 아글라야가 멀쩡한 머리를 자를 생각을 한 게 아닐까? (맙소사,난 젊었을 때도 그런 머리를 가져 보지 못했는데!) 가위를 손에 들고 있어서 내가 무릎을 꿇고 빌다시피 해서 말리긴 말렸지만 말야..........! 그게 다 이 어미를 괴롭히려고 심술을 부렸던 거야. 원래 남의 말이라면 코방귀나 뀌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데다, 무엇보다 천성이 심술궂기 때문에 그래! 그런데 뚱뚱이 알렉산드라까지 자기 머리를 잘라 달라고 내밀었던 것은 대채 무슨 심산이었을까? 그건 심술궂고 변덕스러워서가 아니라, 머리카락이 없으면 잠도 편안히 잘 수 있고 머리도 아프지 않을 거라는 아글라야의 말에 홀딱 넘어갈 정도로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지난 5년 동안 그 애들한테 청혼한 신랑 후보가 오죽이나 많았느냐 말야? 그것도 보기 드물게 멋진 신랑감들이 아니었던가! 우리 애들이 계속 기다리며, 결혼을 미루어야 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로지 이 어미의 속을 썩이기로 작정한 것이겠지. 그 밖에 다른 이유가 전혀 없단 말이야! 무슨 이유가 더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마침내 모성의 가슴에도 태양이 떠올랐다. 셋 중에 하나이지만 아젤라이다가 시집갈 준비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부담을 덜게 됐어.>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는 소리 내어 표현해야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혼잣말을 할 때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부드럽게 말했다). 모든 일이 너무나 훌륭하고 순조롭게 진행 되어, 사교계에서도 경의를 표할 정고였다. 공작인 신랑감은 유명 인사에다 재산도 상당했고 성품도 좋아서 그녀 마음에 쏙 들었다.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그녀는 다른 두 딸보다 아젤라이다에 대해서는 걱정을 덜한 편이었다. 물론 아젤라이다의 예술가적 경향 때문에 의구심이 많은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의 마음 한구석이 항상 꺼림칙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 대신 성격이 명랑하고 사려 판단력이 뛰어난 애니까 잘못되진 않을 거야> 그녀는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그녀가 가장 못 미더워하는 딸은 아글라야였다. 내친김에 하는 말이지만, 큰딸 알렉산드라에 대해서는 어머니인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도 걱정을 해야 할지 안 해야 할지, 도무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스물다섯이나 되어서 노처녀 신세로 남아 있는 것이 그녀 눈에는 완전히 <끝장난 처녀>같아 보였다. <저만한 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는 밤마다 큰딸 때문에 울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밤에도 당사자인 알렉산드라는 아주 태평하게 잠을 잤다. <도대체 어떻게 된 애이기에 그럴까? 니힐리스트인가 아니면 그저 바보인가?> 알렉산드라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는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녀는 큰딸 알렉산드라의 판단을 지극히 존중했고 그녀와 상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라가 <얼뜨기>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얼뜨기라 해도 그렇지 어떻게 저리 태평할 수가 있을까? 참으로 한심해! 나는 저런 애들을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어!>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는 귀염둥이 아글라야보다도 큰 딸 알렉산드라에게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의 불끈 하는 행동하며(그러한 표현은 어머니로서의 배려와 동정의 표현이었다), 싸움을 걸어 올듯한 태세, <얼뜨기>라고 부르는 별명은 알렉산드라를 웃기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따금 극히 사소한 일을 가지고서도 어머니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는 정신없이 혼을 내곤 했다.
예를 들어 알렉산드라는 잠자는 것을 몹시 즐겼기 때문에 보통 남들보다 많은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일곱살 배기 어린애의 꿈처럼 허황되고 천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렇게 천진한 꿈 얘기를 들으면 왜 그런지 신경질을 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알렉산드라가 꿈속에서 9마리의 암탉을 보았는데,그걸 가지고 모녀간에 대판 말싸움이 벌어졌다. 왜 벌어졌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어렵다. 어느 날 알렉산드라는 꿈 같은 꿈을 딱 한 번 꾼적이 있었다. 그녀는 어느 깜깜한 방에서 한 승려를 보았는데, 그 방은 너무 깜깜해서 들어가기가 몹시 꺼림칙했다. 그 꿈 이야기는 즉시 깔깔거리는 두 동생에 의해 어머니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어머니는 또다시 화를 벌컥내며 세 딸을 모두 바보들이라고 불렀다. <흥! 바보처럼 태평스럽기는..........완전히<<얼뜨기>>야. 그런데 표정이 서글퍼 보여. 어떤 때는 아주 슬퍼 보인다니까. 뭐가 슬픈 걸까? 뭐가?> 그녀는 이따금 이러한 질문을 예빤친 장군에게 던지곤 했고, 항상 그러하듯이 히스테릭하게 즉각적인 대답을 기대했다. 예빤친은 <흠> 소리를 내며 인상을 쓰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두 팔을 벌리며 대꾸를 했다.
<신랑이 필요한 거야!>
<다만 당신 같은 신랑은 안 돼요.>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는 마침내 울화통을 터뜨렸다. <당신처럼 판단하고 결정하는 사람은 안 돼요. 당신처럼 거칠디거친 사람은 안 된단 말이에요.>
예빤친 장군은 즉시 물러났다.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는 한번 <폭발>을 하고 난 후에야 진정되었다. 물론 그런 날 저녁이면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는 반드시 <거칠디거친>, 착하고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운 남편에게 다정다감해지며 경의로운 마음으로 한껏 신경을 써주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평생 동안 이반 표도로비치를 사랑했고 완전히 그에게 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반 표도로비치 역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를 끊임없이 존경했다.
첫댓글 잘 읽었어요~~
다시 연재를 시작해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나! 레아님, 다시 글 올려주셨네요. 고맙습니다. ^^
러시아나 한국이나...
정서는 비슷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