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로, 너는 나에게로....
1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산새 사이로 흘러나오는 사찰의 종소리는 산새를 휘감아 숲속을 가로질렀다. 가을 녘 파란 하늘 아래 까까머리 동자승들은 다람쥐를 따라 도토리나 밤 따위를 줍기에 바빴다. 작달 만 한 동자승은 다람쥐를 쫒았고, 둥실둥실 보름달마냥 훤한 동자승은 밤나무를 흔들었다. 작은 꼬마 아이의 세찬 손짓에 주렁주렁 달려있던 밤송이들이 투덕투덕 떨어지기 시작했다. 쭈삣쭈삣 가시가 가득한 밤송이가 작은 동자승 머리로 툭 하니 떨어졌다.
“아야!”
동자승은 밤송이에 찔린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쓱쓱 비벼대는 손길에도 따가움이 가시지 않는지 동글한 동자승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홱 하니 던지고는 걸음을 산위로 옮겼다.
“공다! 너 혼자 가는 게냐. 사내자식이 그런 걸로 토라진 게야?”
말 한마디, 뒤 한번 돌아보지 않는 작은 동자승의 모습에 동글한 동자승은 장난치듯 작은 동자승에게로 달려가 작은 동자승의 발걸음에 맞춰 빙글빙글 동자승 주위를 돌았다.
“이런 일로 토라지고... 혹시 겉만 사내인 게냐? 성진님이 그러시던데 사내 녀석이 속이 좁으면 해탈을 할 수도 없다더라.”
짓궂은 언변에 작은 동자승은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했다. 둘은 절에 다 달았고 작은 동자승은 탁하니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오랜 나무의 부딪힘의 소리에 큰 스님께선 고개를 쭉 내미시며 무봉스님의 바라보셨다.
“무봉아 공다와 함께 들어온 게냐.”
“공다는 열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큰 스님.”
“어찌 그런 말은 하는 고.”
“오늘 공다에게 장난을 좀 쳤는데 공다는 그 일 때문에 토라져 방안에 숨어버렸습니다. 성진스님이 그러셨는데, 사내가 속이 좁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공다는 해탈을 할 수 없을 듯합니다.”
큰 스님은 웃어 보이시며 무봉스님의 머리에 알밤을 내려주셨다.
“예끼 이놈. 네놈이 잘못을 했는데 공다 속이 좁다?! 허허. 어서 들어가 공다에게 미안하다 전하거라 그러하지 않으면 너 또한 열반을 할없을 것 같구나.”
멋쩍은 듯 웃어 뵈는 무봉스님은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문 앞에 서성거리며 발로는 흙장난을, 입으론 중얼중얼 뭘 그리 그렇게 외시던지. 법당에서 묵언 수행하시는 현감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춘 것인지 무봉스님의 중얼거림은 탁탁거리는 소리에 맞춰 입을 벙긋벙긋 거렸고, 흙을 가지고 놀던 발 역시 탁탁 박자를 맞췄다. 그렇게 서성거리던 무봉스님은 머리 위에 무언가 놓여있단 느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셨다. 하늘대신 동자승을 반기는 것은 성진스님의 환한 미소였다. 산사로 솟아 오르는 하늬바람결에 휘날리는 잿빛 승복이 유난히도 말끔하게 보였고, 무봉스님 머리 위를 쓰다듬는 성진스님의 손길은 엄마의 손길마냥 유난히도 따사롭다.
“무봉스님. 어찌 들어가시지 않는 것입니까?”
“제가 공다에게 장난을 좀 쳤는데, 그만 공다가 토라져 버렸습니다. 성진스님이 그러셨지요? 사내가 속이 좁으면 열반을 할 수 없다고. 공다는 열반을 할 수 없나봅니다.”
동자승의 띄엄띄엄 거리는 말투가, 기막힌 언변이 성진스님의 입가를 간지럽게 했다. 성진스님은 무봉스님의 손을 잡고 공다스님이 계신 방안으로 들어갔다. 공다는 이불속에 묻혀 기척 소리에 고개만 빼꼼히 내어 보더니 어느새 성진스님의 품에 안겨 무봉과의 일은 이리저리 털었다. 그런 모습을 보던 무봉의 눈길은 부드럽지 못했다. 성진스님의 두 동자승의 모습이 어찌나 귀여워 보이셨는지 요놈들 하시며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둘의 손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가셨다. 흙 사이사이 마다 묻힌 넙적 돌을 하나하나 밟고, 돌계단을 올라 성진스님 방문 앞에 도착하자 스님께선 다과를 내오마. 하시며 두 동자승을 방안으로 들여보냈다. 장난 가득한 두 동자승은 오랜만에 들른 성진스님의 방에 이것이 뭘까, 저것이 뭘까 두리번두리번 가만히 있지 못했다, 공다가 성진스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편지를 들어 하나하나 외기 시작했다.
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 껑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보낸 시가 스님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부처 곁에 머무르시는 스님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며칠 전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산가족을 찾는 화면이었는데 평안도에서 해어진 김현아라는 여성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스님, 이미 속세를 벗어 나신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속세의 인연이었던, 지아비였던 그분을 만나보심이 어떠십니까. 주제넘다 생각하실 수도 있으나 몇 자 적어 보내봅니다. 부처님 곁에서 평안한 나날 보내시길 바라며 전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공다의 편지 외는 소리가 문풍지의 미세한 입자를 건너 다과상을 두 손에 쥔 성진스님의 귓가를 맴돌았다. 낡은 경첩사이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성진스님이 들어오셨다.
“공다. 뭐하는 거지요?”
“스님. 그냥... 편지가 있기에...”
길게 한숨을 내쉬는 성진스님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무봉은 항상 어미처럼 따뜻한 얼굴로만 맞아 주시던 성진스님의 차가운 얼굴에 덩달아 굳었다.
“스님. 제가 잘 못 한 것이지요?”
“...”
성진스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다과상을 바닥에 내려놓고 두 동자승을 상 앞에 앉히셨다. 그렇게 건너편 법당에선 목탁소리만 청아하게 울렸다. 간간히 들려오는 작은 종소리가 목탁소리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듯 했다. 성진스님은 아무말씀 없이 차를 따르셨고, 동자승은 차를 받들어 조금씩 마셨다.
“두 스님들께선 아직 나이가 미령하시지요? 출가하신지도 얼마 되지 않으시고요. 2년, 3년. 처음 뵈었을 땐 그저 어린아이들이셨는데... 세월은 참으로 빠른 듯싶습니다. 너무 그런 표정 하지 마세요. 화를 내려는 것도, 두 분을 혼내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냥 예전에 저와 함께 머문 어느 여승이 계셨는데 그 분 이야기를 조금 하려합니다. 들어 주시겠습니까?”
두 동자승은 고개를 아무런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성진스님 방 밖에 있던 소나무의 솔향은 산바람에 흘러들어 방으로 처마 끝으로 사이사이 스며들었고 성진스님은 차분히 입을 떼어 내셨다.
“몇 해나 지났을까요? 속세를 벗어나 부처님 곁에 머문 지가... 벌써 스무 해가 다 된 듯싶습니다. 그 분께선 열일곱에 남편을 만났지요.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둘은 살아가며 힘들었지요. 나라는 빼앗겼지, 항상 계속되는 일본 놈들의 횡포에...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던 나날들이었답니다. 그러던 도중 그분 남편은 돈을 벌로 가겠다며 떠나셨다지요. 그렇게 몇 해가 흐르고 그분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셨지요. 달 달이 돈은 오는데 남편이란 사람은 보이지 않고, 편지 한 장, 소식 한 통 없으니 그냥 잘 있나보지 하며 보낸 세월만 5년이었답니다. 5년이 지나고 나서부턴 돈도 오지 않았다 하더군요. 그렇게 또 다시 5년을 기다린 그분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남편을 찾으러 떠나셨답니다. 이리 저리 팔도를 유랑한지 어느 덧 일년. 딸아이는 여행 독인지,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이 없었던지 하늘로 훌쩍 떠났답니다. 바람마냥 흐르는 인생이, 피비린내는 나는 세상이 싫었던 게지요. 차갑던 세상 속에서 차갑게.. 차갑게 그렇게 떠났습니다.
딸아이를 차갑디 차갑던 땅에 묻던 그날 여인에 마음엔 커다란 비수가 턱하니 묻혔다 합니다. 자신하나, 자식새끼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럽고 바보 병신같이 느껴져 딸아이 무덤 앞에서 수일을 그렇게 쓰러지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더랍니다. 깨어나 반기는 것이라곤 파란 하늘 위 두둥실 떠가는 구름과 모진 인생으로 불어터진 뺨과 손을 스치는 서늘한, 아니 싸늘한 바람 뿐이었답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요. 또 다시 깨어난 그날 딸 아이 무덤에 손을 짚어 냈습니다. 우연히 잡힌 것이 있었는데 보랏빛 도라지꽃이었답니다. 그분은 도라지꽃을 쓰다듬으시며 펑펑 우셨답니다. 힘겨운 이 세상에 의지할 것이라곤 남편과 딸아이 뿐이었는데... 남편과 딸아이 뿐이었는데... 결국 그분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셨답니다. 파리한 여인내의 모습에서 부처의 미소를 받는 여승으로 다시 태어나셨지요. 그래도 속세와의 이별에 머리를 깎던 그 날 머리 깎던 그 절 마당에 속세 속의 눈물을 묻으셨답니다. 촉촉이 젖어가는 흙은 아마도 영원한 속세와의 이별이었을 겁니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도, 그 분 곁에 흩어져 휘날리는 깎여진 머리칼도 아픔만 줬던 속세와 이별을 한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었을 겁니다.......”
성진스님의 눈가에 눈물인지 모를 것이 맺혔다. 투명한 유리구슬 같기도 하고, 물방울 인 것 같기 한 것이 스님의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스님......”
무봉스님의 짧은 한마디에 성진스님은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시나요? 스님.”
“아직까지도 그분을 뫼시며 수행을 하고 계신답니다. 여기 계신 동자승과 같은 어린 스님들도 계시고 그분 보다 어른이신 노스님들도 계신 어느 한 절에서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공다는 조그마한 입을 조금씩 움직여 내더니 길게 호흡을 내 쉬고 말을 꺼냈다.
“스님, 혹 스님께서 그 여승을 만나시게 된다면 남편 분을 찾으라 하십시오. 남편을 찾아 이리 말하면 어떨까, 라는 제 생각을 전해 주세요. ‘나는 부처 곁에서 잘 머물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있던 딸아이는 도라지꽃이 좋아, 도라지꽃 한 아름 안고 잿빛 구름 속으로 떠났답니다. 아이가 떠나고 저 또한 뿌옇기만 했던 속세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얻어냈습니다. 가끔 바라본 북녘 땅, 북녘 하늘에서 당신이 보일까, 아이가 보일까 바라본 세월이 어느새 수십 년입니다. 이제 당신도 나도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실 것입니다. 세월을 잘 못 만난 우리 인연 그리고 우리 아이와의 인연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 좋은 세상, 좋은 세월 만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때가 되길 바라며 전 저 바람이 가라는 대로 저의 길을 헤어 나갈 것입니다. 저기 흐르는 바람결에 제 숨결이 담겨 흘러 하늘로 오르게 될 때까지요. 그때까지 당신도 편안한 마음으로 한 많은 세월 다독이셨으면 합니다. 너무 죄책감을 갖지도 마세요.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 거니 하며 남은 세월 편안하게 보내세요.’ 라 말이에요.”
공다스님은 그렇게 말을 끝내셨다. 말을 마친 공다스님은 조용히 일어나 하얀 한지 위로 스미는 문을 여셨다. 문을 엶과 동시에 옷자락이 산자락을 건넌 바람에 닿아 풀냄새를 풍기며 휘날렸다. 햇빛은 공다승에게 향했고, 공다의 뒷모습은 하늘에서 내려 온 부처 인양 투명히 빛났다. 그 때쯤 조용히 흐느끼는 성진스님의 기척을 느낀 것인지 공다는 성진스님을 향해 고개를 돌려 입가의 잔물결과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후 총총거리며 사찰 마당 한가운데를 향해 뛰어가는 그 뜀박질 소리와 공다의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내리며 조금씩 공다도, 그 뜀박질 소리와 웃음소리도 옅어졌다.
성진 스님 곁의 무봉은 성진스님 어깨에 기대어 커다란 두 눈만 멀뚱멀뚱 그리 무표정하게 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조금씩 따뜻해져 가는 성진스님의 손은 무봉의 따뜻함이라.
성진스님의 그리 곱지 않은 손은 어느새 무봉의 고사리 같은 작은 것에 매여 따뜻해졌음 이라.
“두 명의 동자승이, 두 분의 부처였나 봅니다. 이리 힘을 주시니...”
흐느끼는 성진스님의 울음소리는 기울어가는 저녁놀에 물들어 점차 소멸되었다.
무봉스님도 물러간 성진스님의 방엔 어둠과 함께 그 어둠을 밝혀주는 커다란 달 하나가 떠올랐다. 하늘 위 달은 마치 성진스님을 향하는 동자승들의 마음 마냥 유달리도 은은하니 부드러웠다.
“달이 참 곱기도 하지…….”
저물어 가는 가을바람이 콧등을 무디게 스치운다. 깊은 밤에도 불구하고 달빛에 밝혀진 어스 푸름한 하늘빛과 그런 하늘을 떠다니던 구름을 살피던 스님은 지그시 두 눈을 감고 불경을 외운다. 유달리 서러운 불경 외는 소리는 깊은 산속을 떠나 속세로 흘렀다.
2
아침 솔향이 머리를 시원하게 했다. 사찰의 종소리가 울리고, 처마 끝에 달린 작은 종은 바람이 시키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 마당을 촉촉이 적신 아침 이슬을 사뿐사뿐 내딛는 성진스님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의 끝에서 울리는 성진스님의 여린 목소리로 외는 큰스님, 이란 이름이다.
책을 보셨던지 성진스님이 들어오자 큰스님은 책을 덮으셨다. 오래된 책이었는지, 책을 덮는 순간 책 속에 숨었던 작은 먼지들이 아침햇살이 곱게 내린 방안에 하늘거리며 위로 솟아올랐다. 먼지가 점차 얕아지고 큰스님은 미소를 지으시면 말할 것이 있어 오신 듯 합니다,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조금 숙이셨다. 큰스님의 신호를 받은 성진스님은 그제 서야 굳게 닫혔던 입을 여셨다.
“스님, 참으로 많은 생각 끝에 드리는 말씀이니, 혹이나 곡해 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며칠 전 편지 한 통이 왔습니다. 속세에 있던 때 아시던 분의 편지였는데, 우연찮게 제가 속세에 있을 적 지아비였던 그 분이 저를 찾는 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묵묵히 듣고만 계시던 큰스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입을 여셨다.
“부처께서 가시라면 가셔야지요. 이 곳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다만, 성진스님의 자리를 잊으시면 아니 되십니다. 속세를 벗어나신지 이미 수십 년째. 또한 지아비와 이별을 고한 것 역시 수십 년째입니다.”
큰 스님은 조용히 일어나시며 문을 여셨다. 그리고는 절간 마당을 가리키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저기, 저 마당 기억하시지요? 성진 스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흘리신 눈물이 스민 곳입니다. 지금 잃어버린 머리칼 또한 그 흔적이겠지요. ...
허허. 너무 그런 표정하지 마세요. 늙은 중이 걱정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수십 년 만의 외출이니 걱정이지요.”
여느 때나 입던 승복인데, 오늘 따라 유달리 곱게 보이는 승복이 어쩐지 낯설다. 빗어낼 머리칼도 없지만 괜스리 쓸어내리는 머리가 부끄럽기만 해지는 날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스님.”
“조심조심 다녀오세요.”
큰스님의 미소가 성진스님께 건너오고 성진스님은 그 고마운 웃음을 되돌려 주는 것인냥 웃어 보였다.
발걸음이 가볍다. 산새의 웃음소리도, 산새를 휘감는 저 바람도, 그런 바람을 보내는 파란 하늘도 여느 때와 다른 것이 없는데 여승의 발걸음, 발걸음이 닿아 특별해진 모양이다.
오랜만에 오르는 버스가 그리 낯설지가 않다. 굽이진 산길을 벗어나와 사람 많지 않은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들자 가을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금빛 이삭들이 너울너울 춤추고 있다. 한올한올 정성스럽게 짜 놓은 비단마냥, 한 톨, 두 톨 모여 넘실대는 가을날 축복을 보고 있노니 두렵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진다. 어느 덧 한적한 시골길을 벗어나 제법 사람이 넘실거리는 곳에 들어서니 성진스님은 오랜만에 보는 많은 사람들이 두려운 것인지 반가운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잠시 서성거렸다.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발걸음 속세의 많은 변화에 새삼 놀란 것인지 그것은 스님만이 아실 테지.
스스로 흐르는 것을 찬찬히 살펴보자면 물과 햇빛과 바람 그리고 사람이었다. 자연스레 누가 움직여 주지 않아도 스스로 흐르는 그것들이 자연이다. 그러고 보니 시간 역시 자연의 일부인가보다. 자연스레 흐르는 시간에 흘러 스님은 어느덧 서울에 도착했다. 눈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서울인데 스님은 두렵지도 않으셨나 보다. 어느 때보다 당당한 그 걸음이 다른 이들 보다 눈에 띄었으니 말이다.
“스님!”
걸음을 멈추고 살며시 뒤돌아보는 스님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연하게 비추는 눈가 반짝임은 고마움인지 미안함인지 모를 것이 담겨 흘러 내리락 말락 고민을 하는 듯 했다.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고맙다니요 스님.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그냥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입니다. 제가 언제 하기 싫은 일 하는 거 보셨습니까?”
은근히 던지는 남자의 장난스런 말투에 변함이 없네요, 라는 표정으로 살짝 웃어보시는 스님의 모습에 남자 역시 쑥스럽단 듯이 웃어보였다.
남자는 잠시 그렇게 소리 없이 잔잔히 웃어 보이다 말을 꺼냈다. 스님의 지아비였던 그 사람이 지금 서울에 와있다는 것과 이산가족상봉일은 내일 모래라는 재회의 내용이 주된 것이었다. 남자의 말이 끝나고 스님은 한동안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무엇 가를 생각하시는 듯하였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그때 그 얼굴을 기억해 내려는 걸까? 한참을 그렇게 생각하시던 스님은 아이처럼 환히 웃어 보이시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님은 남자에게 근처에 서점이 있느냐 물었고 남자는 길을 안내 했다.
산 속 작은 세상 속에 홀로가 아닌 홀로로 살아갈 때와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 수차례 스친다. 짧은 길이의 치마를 입은 처자, 장발인체 머리를 물들인 청년들. 흔치 않던 사탕이나 과자 따위를 양손 가득 든 꼬마 아이들의 모습들. 넉넉하지 못해 차고 넘치는 그 풍족함이 스님은 부러운 신 듯 하다. 속세를 등 진 수십 년 동안 이곳은 참 많이 변했다 생각하는 스님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난으로 이곳까지 왔으니 그럴 만도 하시겠지.
걸음은 그리 빠르진 않았으나 시간이 흘러 금세 서점에 도착했다. 한참을 서성거리던 스님은 찾으시는 책이라도 있으신 듯 이리 저리 책을 살피셨다. 그렇게 몇 분 뒤 이거다, 라는 표정으로 책을 보이시며 또 다시 웃어 보이셨다. 세상에 몸 담지 아니하셔 그런지 티 없이 밝은 미소는 봄날 제일 먼저 눈을 따듯하게 해주는 새싹마냥, 노오란 개나리 꽃잎마냥 그렇게 유난히도 밝게 빛났다.
스님이 고르신 책은 어느 무명시인의 시집이었다. 스님은 시집을 촤르륵 펼쳐 보이시더니 대뜸 시 하나를 외기 시작하였다.
사람이란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그런 것이다
내가 아파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아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행복해 웃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행복해 하기에
살며시 미소 짓는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 선생님 저 역시 사람이기에 참 많이 미워했었습니다. 소식도 없이 떠난 그 세월이 원망스러웠고 여린 딸아이와 저만 홀로 남긴 채 떠난 것도 원망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해서 미워했고, 사랑해서 원망도 했던 듯합니다. 사람이기에 다시 만나는 그날 용서하려합니다. ... 미안해할지는 모르겠네요.”
남자는 스님의 운율에 젖은 것인지 깊은 한숨과 함께 약간의 눈물을 훔쳐내었다.
3
도심 속에서도 자연이 있나보다. 서울 시내 곳곳이 심어져 있는 단풍나무 들은 빨갛게 물들었던 입들을 차츰 땅에게 되돌려주고 있었고, 사람들은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저마다 제 길을 헤쳐 나갔다. 낙엽 한 장에도 인생이 있듯 그것들을 즈려밟고 가는 이들에게도 저마다의 인생이 있다. 그 중 성진스님은 수십 년간 가슴에 묻은 응어리를 풀기 위해 그와의 재회의 문을 여신다.
울음소리로 차고 넘치는 이산가족 상봉 장소에 성진스님은 홀로 외로이 앉아 계신다. 이쪽저쪽 흘러나오는 기쁨과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이 묻어나는 흐느낌에 절로 눈물이 나는 성진스님이다. 살며시 흘러나온 눈물이 입가에 닿았다. ‘스읍’, 숨을 들이 마시니 눈물이 혀끝에 닿았다. 뭐가 그리 슬퍼 이리 짤까. 수많은 생각들이 혀끝에 닿은 짠맛에 엉퀴어 어지럽게 놓였다.
밝게 비추는 전등 빛이 누군가에 의해 가려졌다. 그 누군가에 의해 다가온 어둠에 흠칫하는 스님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스님과 비슷한 또래인 듯한 중년의 남자가 스님 앞에 섰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정장과 정장 깃에 달려 있는 작은 북조선 배지가 눈에 띄었다. 남자를 발견하고 몇 초간 스님은 한동안 그 남자를 계속하여 바라봤다. 마치 모든 시간이 멈춰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는 것 마냥 두 사람의 눈빛이 일정한 공간에서 맴돌았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그 눈빛이 한동안 그 공간, 그 시간, 그 곳에서 맴돌았다. 맴돌던 시선은 수십 년 전 그들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듯했다.
“우리 아기 참으로 예쁘지요.”
“암. 그렇고 말고 누구 딸인데.”
......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는 마음에 닿았나보다. 남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흘렀고, 스님 또한 눈물을 뱉어 내셨다.
주섬주섬 스님을 서점에서 샀던 책을 꺼내 드시더니 말없이 쑤욱 내미셨다. 그리곤 방긋 웃어 보이시며 말을 꺼내셨다.
“잘 지내셨습니까? 이곳에 오기 전 시집을 한권 샀습니다. 오랜만에 뵙는데 어떤 선물이 좋을까 고민했지만 떠오르는 것이 이것뿐이라. ......”
책을 받아든 남자는 눈물을 훔쳐내고 책을 바라봤다.
“좋은 선물이구먼. 적적할 때 하나하나 찬찬히 읽으면 되겠어. 그리고 ... 만나면 이 말 꼭 하고 싶었네. 미안하네. 아이는... 자네는 어찌하여...”
눈물은 도대체 어디서 이리 쏟아져 나오는 걸까.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손수건은 축축이 젖어만 간다. 쏟아내고 쏟아내는 그리움이 눈을 적시고 마음을 적신다. 눈물에 배어나오는 미세한 목소리의 떨림을 안고 성진 스님은 다시 입을 여셨다. 그리고는 공다스님이 일깨운 그것을 남자에게 전했다.
“나는 부처 곁에서 잘 머물고 있습니다. 당신과 저의 아이는 도라지꽃이 좋아, 도라지꽃 한 아름 안고 잿빛 구름 속으로 떠났답니다. 아이가 떠나고 저 역시 뿌옇기만 했던 속세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얻어냈습니다. 가끔은 바라본 북녘땅, 북녘 하늘에서 당신이 보일까, 아이가 보일까 바라본 세월이 어느새 수십 년이네요. 이제 당신도 나도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실 것이어요. 세월을 잘 못 만난 우리 인연 그리고 우리 아이와의 인연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 좋은 세상, 좋은 세월 만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때가 되길 바라며 전 저 바람이 가라는 대로 저의 길을 헤어 나갈 것입니다. 저기 흐르는 바람결에 제 숨결이 담겨 흘러 하늘로 오르게 될 때까지요. 그때까지 당신도 편안한 마음으로 한 많은 세월 다독이셨으면 합니다. 너무 죄책감을 갖지도 마세요. 이 모든것이 하늘의 뜻이 거니 하며 남은 세월 편안하게 보내세요. 저는 이 말을 전하기 위해, 그러기 위해 수십 년간 버린 속세에 잠시 들린 것입니다. 당신을 용서하기 위해서요. 당신도 나도 사람이니까 그래서 온 것입니다. 부처께서 용서하라 하시기에 그래서 온 것입니다.”
남자는 고개를 떨쳐냈다. 흘러 나는 울음소리를 죽여 가며 흐느끼는 그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처량함이 묻어난다.
이 사람 저 사람 흐느끼는 눈물바다 속에 성진 스님도 남자도 눈물 속에 묻혀 이리저리 흘러간다. 창가 너머 하늬바람이 흐른다. 하늬바람 속 산속 사찰의 종소리가 베어 온다. 그 또렷한 울림이 흐느끼는 그들 머리 위에 울려 그들의 아픈 마음을 다독여 준다. 부처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차디차던 그들의 마음을 다시 따사롭게 했다.
“아파하지 말게.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파. 당신이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한 거야. 죽기 전 만난 것만으로 미안하고 고마우이.”
가을 놀이 붉게 부서진다. 그들의 마음도 붉게, 따사롭게 부서진다.
......
“큰스님, 다녀왔습니다.”
“가시는 길, 오시는 길 불편하진 않았습니까?”
오랜만에 느끼는 산세의 향기가 피부에 스민다. 조용한 산사의 오후, 동자승의 웃음소리가 끝이지 않던 어느 날과는 다른 모습에 성진 스님은 고개를 기울이신다.
“공다스님과 무봉스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공다스님과 무봉스님이라뇨?”
“두 분의 동자승 말입니다.”
“...?
그나저나 저기 산 아래 아이들을 좀 보세요. 떠들고 노는 철부지 아이들인 듯허나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꼭 부처님을 닮지 않았습니까. 기껏 모아온 도토리를 다람쥐에게 건네고 벌레 하나 밟을까 저리 조심조심 걸음을 내 걷는 모습이요. 아이들의 눈이 부처의 눈이고 아이의 생각이 부처의 생각이며,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부처라는 말이 그러고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허허. 다시 태어나면 그 부처의 마음을 잃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러하며 이리 부처님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닙니까.”
보랏빛 하늘에 한줄기 햇살이 내려온다. 그 햇살을 타고 두 마리의 하얀 새가 힘차게 날게 짓을 한다. 아마도 저 새들은 구름을 넘고 햇살은 넘어 그 분께 되돌아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