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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완주기 : 1-2구간편
박 인 수 (법학전문대학원)
완주기간 : 2022년 1월 22일 ∼ 2022년 11월 26일
완주방향 : 남원 주천안내소 출발 → 함양 → 산청 → 하동 → 구례 → 남원주천내소 도착
제1구간 주천∼운봉 :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2.4km)
→ 노치(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거리 : 약 14.7km, 소요시간 : 4시간 30분
제2구간 운봉∼인월 : 운봉읍 → 서림공원(0.2km) → 북천(0.8km) → 신기(1.1km)
→비전(2km) → 군화동(0.8km) → 흥부골자연휴양림(2.9km) → 월평마을(1.5km) → 구인월교(0.2km) → 남원센터(0.4km)
거리 : 약 9.9km, 소요시간 : 3시간
산행이 주는 매력은 대단히 다양하다. 맑은 공기와 푸른 숲, 깊은 계곡을 감싸고 도는 옥류천, 폭포, 용소와 반석, 깍아지른 기암괴석과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만물상 봉우리, 계절마다 제 모습을 드러내며 자태를 뽐내는 수많은 야생화 들꽃, 단풍과 설산 등등과 같은 자연의 모습에 감탄하며 빠져들게 된다.
또한 일상의 피로와 여러 가지 형태의 심리적 부담을 내려놓게 하면서 자신의 체력과 정신세계가 힐링되도록 하는 자아안정감을 느끼게 하기에도 적격이다. 나아가 웅장하면서도 항상 제 모습을 바꾸어가며 신선함을 제공해 주는 산의 자태 속에서 어느새 우리는 새로운 변화와 맞설 수 있는 강인한 내공을 배우게 된다.
산행의 즐거움에 빠져 명산산행, 능선산행, 계곡산행 등에 대한 선호 없이 시간과 여건이 주어지는 대로 가급적 산의 주위에서 맴돌면서도 늘상 마음 한켠에서는 아쉬움과 공허함이 함께하였다. 산과 강에 기대어 농토와 경작지를 일구어 생활의 터전으로 하고 있는 모습과 그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숱한 희로애락 중의 한 조각 편린이라 도 살펴보면서,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생동감을 느끼고 싶었던 내심의 소리였다.
지리산은 분명 명산이며 특별한 산이겠으나, 나에게는 그야말로 고향 같은 산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친 후 87년 전남대 법대 교수로 임용된 후 광주에 서 7년 정도 근무하였다. 이 기간 동안 광주, 전남, 전북 지역의 많은 산들을 등산하였다.
그 중에서 주중에도 틈만 나면 무등산으로 달려갔으며,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지리산 종주산행에 나서곤 하였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되지 않지만 88년 말 정도로 기억되는데, 뱀사골주차장에서 천은사에 이르는 도로가 개통되면서 성삼재를 기착점으 로 하는 지리산 종주산행이 등산객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게 되었다.
지리산 종주산행은 접근로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도 산길이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능선길에는 늘상 적지 않은 산행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리산 종주산행은 산행 일정에 따라 전 구간 종주 뿐만 아니라 일부구간 종주도 할 수 있었으며, 당일산행으로는 주로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노고단, 임걸령, 반야봉, 삼도봉 을 지나 화개재에서 뱀사골 계곡으로 하산하였다.
전 구간 종주를 당일 산행으로 다 니는 발 빠른 동호인도 있었지만, 나의 경우에는 최소한 1박2일 또는 2박3일의 일정 으로 다녔다. 전 구간 종주로서 잊지 못할 일정은 아내와 아들과 딸이 함께 1999년 12월 31일 중산리를 출발해서 장터목 산장에서 숙박 후 2000년 1월1일 지리산 천황 봉 일출을 감상하면서 새 천년을 다짐하고, 눈이 수북이 쌓여있는 능선길을 헤치면서 벽소령에 당도하여 2000년의 첫 밤을 보냈으며, 다음 날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새 천년의 기개를 가슴 가득 담아 성삼재로 하산하였던 2박3일간의 여정이라 하겠다.
여러 차례 지리산 종주 산행을 하면서도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산골마을, 역사가 흐르는 현장, 뿌리 깊은 전통이 빚어내고 있는 문화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2021년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되었던 영남알프스 9봉 완등 정보에 따라 11월 중순 완등을 마치면서, 그동안 버킷리스트에 담아두기만 하였던 지리산둘레 길 산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매주 전국의 명산을 산행하고 동해안의 해파랑 길과 백두대간을 등산하고 있는, 가히 산행전문가라 부르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경주대학교 최상태교수를 지리산 둘레길 산행의 대장으로 하고, 제자 변호사 두 사람을 동반 대원으로 하여 네 명이 출발하고자 하였다.
지리산 둘레길은 이미 2012년부터 지리산 5개 시군을 잇는 전 구간이 열려있었으며, 홈페이지도 개통되어 있었기 때문에 산행에 관한 정보를 얻고 준비하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지만, 둘레길 중간 중간 쉬어가는 길목에서 스탬프를 찍는 아기 자기한 재미를 보태기 위하여 사단법인 숲길에서 제작하여 판매하는 지리산둘레길 전체구간 여행자 안내서 스탬프포켓북을 구입하였다.
매월 둘째와 넷째 토요일을 산행일로 하고 집결장소는 대구 월드컵축구장 제2주차장으로 정하였다. 연령과 체력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는 네 사람이기 때문에 전체 300KM 21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는 둘레길을 몇 차례의 산행으로 완주할 수 있을지 는 예측하기 어려웠으나, 매 산행마다 20KM 정도는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15차례의 산행을 예정하였다.
첫 번째 산행일을 검은 호랑이의 해인 2022년 1월 22일로 정하고 출발시간은 06:30이었다. 이틀 전인 1월 20일이 대한이었으며 일출시간도 07:43이니, 한해 중에서도 가장 추운날 꼭두 새벽부터 잠을 설쳐가면서 집결장소로 나아갔다. 마치 중고등 학교 시절의 수학여행 집결장소로 가듯이 설레었기 때문에 추위는 전혀 아랑곳 할 것이 없었다. 출발은 모두 여섯 명이 하게 되었다. 동아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 중인 딸도 둘레길에 관심을 두면서 참석하였으며, 강창오 변호사의 동생 강민성 팀장도 함께 하고자 경주에서 와 주었기 때문이었다.
제1회차 산행 구간은 1구간인 주천-운봉 15KM를 지나 2구간 운봉-인월 10km를 걷는 것으로 하였다. 카톡으로 “멋지고 건강한 드림팀이 둘레길 산행을 통해 단단하고 친밀한 단합과 체 력단련이 되기를 기대합니다.”라는 메세지를 공유하면서 출발하였다.
88고속도로를 타고 지리산 휴게소에 도착하여 이동식으로 준비하여 온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식사를 한 후, 9시경에 제1구간 출발지인 주천센터 주차장에 당도하였다. 산행대장인 최 교수님의 안내에 따라 스트레칭을 하고, 각자 등산장비와 복장을 정비 후 9시 반이 되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 어둑어둑하면서도 차가운 아침녘을 힘찬 발걸음으 로 뚫으면서 열어젖혔다. 출발하면서 벌써 마음이 급해졌다. 겨울은 낮 시간이 짧기도 하지만, 산길이 얼어 있거나 눈으로 덮여져 있기 때문에 길을 재촉하더라도 예정보다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천센터에서 내송마을을 거치니 개미정지에서 바로 첫 번째 스탬프를 찍는 장소가 나타났다. 흥미로웠다. 오래도록 산행을 다녀왔으나 산행 징표로 스탬프를 찍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걷다보니 우측 편으로 학선대와 춘향묘가 있다는 표시가 있었으나 일정상 그곳으로 들러볼 엄두가 나지 않아 힐끗 방향만 쳐다본 후 걸음을 재촉하였다.
중재를 지나니 약간의 경사도가 있는 산행길이 구룡치까지 이어졌다. 구룡치에 오르니 소나무 연리목이 용트림하면서 우뚝 서있었다. 일명 용소나무로 불리는 사랑목 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의 애절한 사랑이 이곳 구룡치에서 발현 되어 산길 넘어가는 나그네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었다.
구룡치를 지나 완만한 모퉁이 길을 걷다보니 평탄한 숲길 옆 돌탑 사무락다무락이
눈에 와 닿았다. 갈 때는 무사히 다녀오겠다고 하고 올때는 잘 다녀왔다고 돌을 얹어 놓고 빌었던 곳이라고 붙인 이름이라는데 명칭이 낯설면서도 정겹게 느껴졌다.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회덕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회덕마을은 평야보다 임야가 많아
지붕은 억새를 엮어 만들고 있으며, 지금도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 산골마을의 정취를 물씬 보여주고 있었다. 들녘을 따라 걷는 걸음이 다소 빨라지면서 백두대간이 경유하는 노치마을에 이르렀다.
노치마을은 해발 5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으로는 지리산의 관문이라 부르는 고리봉과 만복대가 자리하고 있는 명소로 주민들은 이 곳을 ‘갈재’라고 부르는데, 높은 산줄기가 갈대로 덮인 것에서 유래하고 있다고 한다. 노치마을 앞들에 일제는 백두대간의 맥을 끊기 위해 길이 100m, 폭20m, 깊이 40m의 방죽을 파서 지맥을 끊었고 그 안에 목돌(목 조임석) 3기(6개)를 설치하였다는 남원문화원 기록의 입간판 도 볼 수 있다. 노치마을 앞들은 사람의 신체에 비유하면 백두대간의 목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목돌을 설치하여
한반도의 숨통을 조이도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목돌의 크기는 가로 120cm, 세로 95cm, 두께 40cm 크기로 반원을 이루며 두 개를 서로 연결하여 하나의 조임석이 되는데 땅속에서 5개가 발견되었으며, 2013년 광복절 을 맞이하여 남원문화원이 이 곳으로 옮겨 전시하고 일제의 만행과 악행에 대한 경각 심을 심어주는 표본으로 삼고 있다고 적고 있었다. 지리산의 애환과 민족의 아픔이 한겨울의 세찬 겨울바람과 함께 가슴깊이 적셔 들어오는 현장이었다.
노치마을에는 또한 고려시대에는 절터였던 곳으로 고승이 도술로 팠다는 노치샘 이야기가 있다. 노치샘에는 산신인 호랑이가 샘 주위를 돌며 지키고 있다가 당산제 새벽 제사 첫물을 올리면 이를 확인한 후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는 어르신도 많이 계셨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이렇듯 신성시하는 신비로운 전설의 성수인 노치샘물은 아직도 이 곳을 지나는 탐방객들이 걸음을 멈추고 목을 축여가는 곳이 되고 있으며, 백호와 황호 조각상이 쌍을 이루며 그 앞을 지키고 있다.
덕산저수지를 지나 심수정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는 이어지는 숲길로 다시 접어드는 듯 하다가 바로 농로 쪽으로 해서 도로변으로 길을 내어주고 있었다. 세시간째 산길과 농로를 지나다가 개서어 나무숲이 아름다운 행정마을 근처에 당도하니 시장기가 감돌고 있었으나, 1구간이 마무리되는 동하마을 정자까지 가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남원 주천센터에서 출발한 1구간은 15km이며, 도착지점인 운봉읍까지 이미 네시간 반정도를 걸었으니 오후 2시경을 넘어서고 있었다. 겨울산행이어서 체력소모도 상당하여 이미 피로감이 오기 시작하였다. 10km정도의 거리인 운봉-인월 제2구간 산행 여부에 대해 잠시 망설여졌다. 일몰시간을 넉넉히 잡아 오후 5시라고 하더라도 세시간 정도 만에 10km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와 닿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모처럼 둘레길 산행을 통하여 지리산의 풍광, 환경과 문화를 경험하고 있는 젊은 동행자들의 눈길이 어느새 2구간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마음을 다잡고 예정대로 2구간을 출발하였다.
제2구간의 출발은 운봉읍사무소에서 인월 방향으로 100m 정도만 가면 시작점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으며, 안내판과 나란히 서림공원까지는 200m 라고 적어놓은 표지판이 있어 서림공원을 잠시 들렀다가 가기로 하였다. 서천 리 ‘선두숲’으로도 불리는 서림공원에 들어서니 석장승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석장승은 운봉 전체를 지키는 방어대장군과 진서대장군이 있었다. 열악한 운봉의 자연조건 에서 공동체의 힘을 키우는 방편으로 마을의 수호신 석장승을 세웠다는 것이다. 서림 공원에는 또한 운봉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모아 놓았는데, 그 중에서도 갑오토비사적비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이 사적비는 동학혁명 당시 관군인 민보군의 전적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당시의 권력을 상징하듯 제법 커다랗게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서림공원 석장승 앞에서 두 번째 스탬프를 찍고는 바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운봉 읍내의 북쪽 냇가마을인 북천마을과 신기마을을 지나 황산대첩비가 있는 비전 마을까지 약 5km의 길은 운봉 들녘의 젖줄인 람천 둑길이어서 평지길이나 마찬가지 로 걷기가 편안하였다. 제법 겨울의 차가운 바람결이 볼곁을 스치고 지났지만 거의 뛰다시피 하며 걸어가는 속도와 열기로 인하여 오히려 시원한 가을바람과 같은 청량감이 느껴졌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낙동강과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데, 이곳 람천은 인월, 경호강,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지류에 해당 하는 곳으로, 지금은 얼어붙어 있지만 얼음이 풀리고 나면 수달도 간간히 눈에 띈다고 하고 있다.
비전마을은 이성계가 고려 말에 왜구를 이곳에서 물리치고 승전을 기념하였던 황산 대첩비를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던 곳으로, 마을의 이름도 비(碑)앞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비전마을로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 비전마을에서 조선말 동편제의 가왕 송흥록과 송만갑이 출생하였으며, 명창 박초월이 성장하였다. 남원시에서는 동편제 소리의 발상지이자 춘향가와 흥부가의 배경지인 것을 기념하고, 판소리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록을 시작으로 하여 람천 둑 건너편에 국악의 성지를 설립하고 동편제 마을로 부르고 있다. 집 앞에는 가왕 송흥록 – 국창 박초월 생가라는 검은색 대리석의 안내판이 우리를 반겨주었으며, 생가 안으로 들어서니 송흥록이 춘향가를 완창하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석상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흥부가가 동편제 판소리에 속한다는 사실도 이 곳을 지나지 않았더라면 까마득하게 모르고 지났을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리라.
람천 둑길이 끝날 즈음해서 다시 산길로 이어졌다. 옥계저수지를 지나면서는 제법 넓게 트여진 임도가 우리를 인도하였으며 오르막길을 따라 걷노라니 어느새 덕두봉 자락에 위치한 흥부골 자연휴양림에 당도하였다. 제2구간을 출발하여 벌써 7km 거리 를 두 시간 여만에 걸어온 터인지라 발바닥에 조금씩 통증이 오기 시작하였다. 아직 인월마을까지는 2km 이상이 남아 있지만 일몰까지는 한 시간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아, 통증을 무릎쓰고 걸음을 재촉하기로 하였다.
흥부골 자연휴양림 이후에는 계속해서 완만한 내리막길이어서 걸음도 한결 수월하였다. 속도를 붙여 걸어 내려오니 어느새 월평마을을 거쳐 들판 가운데 있는 신기마을에 도착하였다. 신기마을에는 한복 을 곱게 차려입은 처녀 총각들을 그려놓은 담벽과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 어 놀고 있는 모습을 그린 담벽들이 인상적이었다.
서둘러 2구간의 종점인 지리산둘레길 남원센터에 이르니 4시 45분 경이었다. 모두가 일몰 전에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는 안도감과 1구간 15km와 2구간 10km를 동시에 마쳤다는 성취감에 잠시 젖어들 수 있었다. 어스름해지는 날씨와 함께 차가운 기운과 시장함이 순식간에 찾아들고 있었다. 따뜻한 장소와 요기를 할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마침 산행대장인 최상태 교수께서 인월시장의 맛집 장터국밥집을 검색하였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허겁지겁 국밥 한 그릇을 어느새 말끔하게 먹어 치우면서 바깥을 쳐다보니 벌써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택시 두 대를 불러 나누어 타고 아침에 출발하였던 주천센터에 돌아오니 주변은 어둠으로 덮이고 있었다.
오늘의 산행을 트랭글이 기록하고 있는 내용을 보니 운동 전체시간은 7시간 25분, 운동거리는 25.1 km, 평균속도 3.7km를 표시하고 있었다. 둘레길 구간을 모두 종주 한 후에 박남준 시인의 ‘지리산에 가면 있다’를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이 시를 옮겨본다.
지리산에 가면 있다(박남준)
순한 애벌레처럼 가는 길이 있다.
땀 흐르던 그 길의 저기쯤 마을이 보이는 어귀에는
오래 묵은 당산나무 귀신들이
수천천수 관음의 손을 흔들며 맞이해서
오싹 소름이 서늘한 길이 있다.
두리번두리번 둘레둘레
한눈을 팔며 가야만 맛을 보여주는 길이 있다.
더운 여름날 쫓기듯 잰 걸음을 놓는 눈앞에는
대낮에도 백년여우가 홀딱홀딱 재주를 넘으며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무시무시한 길이 있다.
서어나무 숲이, 팽나무 숲이,
소나무 숲이, 서걱서걱 시누대 숲이
새파랗게 날을 벼리고는
데끼 놈, 게 섯거랏 싹뚝,
세상의 시름을 단칼에 베어내고
도란도란 낮은 산길이 들려주는 이야기
작은 산골마을들이 풀어놓은 정겨운 사진첩
퐁퐁퐁 샘물에 목을 축이며 가는 길이 있다.
막거리 한 두잔의 인심이
낯선 걸음을 붙드는 길이 있다.
높은 산을 돌아 개울을 따라 산과 들을 잇고
너와나, 비로소 푸른 강물로 흐르고 흐르는
아직 눈매 선한 논과 밭,
사람의 마을을 건너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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