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문의 조작이 일제 대본영 참모본부의 첩보작전의 하나였다는 것이 알려진 시기는 약 80년의 세월이 흐른 후이고 다시 삼십 년이 지난 요즘에 와서야 비문의 원래 뜻이 국제학계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한. 중. 일 삼국 학자들이 비문의 진위를 따지는 논쟁은 상당히 첨예했는데, 일제 첩보작전의 높은 수준을 말해 주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틀림없습니다. 실제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중국은 계속 일본 편을 들어서 한국 역사 깍아내리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와 같은 맥락의 주장이었습니다.
진돗개는 현재 우리민족 전체가 사랑하는 대표적인 토종개인데, 이 개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이 일본인에 의해서였고 천연기념물로서의 의미와 기준이 모두 일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아시는 대로입니다. 일제의 첩보작전은 한반도 전체에 광범위하였고 그 방법의 치밀했던 점은 광개토대왕비문 조작을 아는데 80년, 해명하는데 몇 십 년이 걸렸던 것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진돗개도 광개토대왕비문 조작수준의 작전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보려 합니다. 진돗개의 천연기념물 지정 경위와 의도를 김정호 선생님의 저서 "진도견"에서 그 분의 글을 인용하여 옮겨 보겠습니다.
<.....37년 목포를 경유해 진도에 들어갔다. 그는 이 곳에서 군내면과 지산면을 돌아 본 뒤 상경, 진돗개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내고 일본견과 유사한 이 곳 개는 내선일체의 생물학적 자료로써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1938년 진돗개는 이 같은 경위로 천연기념물 제 53호로 지정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진돗개는 그 성능의 우수성 때문에 문화재가 된 것이 아니라 일본견 연구를 위한 학술상 가치 때문에 지정을 받은 셈이다. 진돗개는 일찍이 일본에 건너간 그들 자손 덕으로 야겡가리의 무차별 박살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조선보물고적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의 보호를 받게 된 진도견은 이듬해 모조리 등록 및 실사가 실시됐고 합격 견에는 견표가 지급됐다. 그리고 불합격 견 및 잡견 도태를 위한 도태부가 면마다 한 명씩 지정되고 이들은 마을을 순회하며 한푼의 보상 없이 견표를 달지 않은 개를 때려 죽였다.
당시 진도견 심사표준은 일본 중형견 표준을 중심으로 했고 사냥의 실적 여부를 고려했다. 조선총독부는 이 사업을 위해 연간 당시 3円을 보조해 주었다. 일인들은 그들의 명령을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5백円 이하의 벌금이나 과료에 처한다는 내세웠기 때문에 일제 하 현지주민들은 그들의 명령을 무조건 순종했다.....>
당시 일제의 조선 통치방법이 철저히 역사와 민족의 말살에 주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기본적으로 생각하고서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일제가 철저하게 우리를 위해 했다고 하는 것일수록 우리를 말살시키는 정책이라는 것과 그들이 행한 식민지정책에는 반드시 대본영 참모본부의 첩보작전이 함께 작동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도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첩보 수집과 내부지침을 전달하는 분들을 전국 행정 부서에 파견하여 통치를 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이해하면, 대본영 참모본부의 파견관들이 조선총독부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을지 납득이 갈 겁니다. 더구나 38년도는 광개토대왕비문 조작 후 50여 년이 지난 후 입니다. 천연기념물 지정 경위는 위에서 김선생님께서 밝히신 대로 모리도 밝혔으며, 모리 보고서에는 없는 내용인 "야겡가리"에 의한 진돗개 도태 작업이 위의 글에는 비교적 소상히 적혀 있습니다.
1938년에 등록 및 실사가 실시됐고 합격 견은 살려놓았지만 불합격 견은 모조리 도태시켰는데 그 형벌이 상당히 가혹합니다.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당시 중형 견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벗어나는 개들을 잡종으로 몰아 도태시키기 위한 방법이 철저하고 완벽했습니다. 이 자들이 진돗개를 위해서 이런 일을 했을까요? 그 방법이 철저할수록 자기들을 위해 한 겁니다. 총독부와 군부의 치밀한 합동작전이었던 것입니다.
그 기준에 의해 살려 놓은 개들이 진돗개가 되고 그 기준에 의해서 진돗개가 홍보되고 도태되기를 몇 십 년, 살아남은 개들 중에 국민의 머리 속에 깊이 인식된 진돗개에 대한 개념으로 여러분이 진돗개를 생각하고 논쟁하는 겁니다.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모리의 보고서를 살펴보면서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고서는 진돗개를 천연기념물로 건의하는 보고서가 아니고, 이미 천연기념물이 된 뒤에 그 과정을 보고하는 형식입니다. 모리가 37년 2월에 진도를 다녀간 뒤 38년 5월에 지정이 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사쿠오중위 같은 첩보원들이 진도에 얼마나 다녀갔고 전국의 개 기르는 실태를 얼마나 조사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일제 때는 총독부 배후에서 식민지 정책의 두뇌 역할을 참모본부가 했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모리의 진돗개에 대한 보고서는 첩보원 사쿠오의 광개토대왕비문의 처음 탁본과 같은 역할을 했고 일제 군부는 그 기간동안 이를 철저히 연구한 후에 야겡가리를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개들을 귀 세운 개로만 만들려고 한 것이고 그 이유는 한국과 일본개들의 동일화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성씨와 언어, 한글 말살정책이 다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 한국적인 것은 완전히 말살시키려 했던 것이고 도태된 개들은 거기에 해당된 겁니다.
다음은 모리의 사후 보고서의 일부입니다.
<....한국 고유 견으로서 비교적 순수성이 남아 있으며........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 됐다.....
석기시대에 기른 옛 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같은 형이고, 오늘날 것과 같아 한. 일 관계를 말하는데 흥미 있는 사실 중 하나다..... 예를 들면 일본의 高松宮家가 소장하고 있는..."野行幸의 圖"나 한국 李왕가 소장의 영조시대 金翊胄 鏡岩의 매사냥에 쓰인 개 그림으로 귀가 서 있고 꼬리를 위로 쳐들고 있는 것이 요즈음 동부아시아 계통의 개라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여기까지의 문장에서 보면 모리는 동부아시아에서 기르는 개들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 그림에서 유독 귀가 선 개를 그린 그림을 예로 들어서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따라서 이 자가 비교적 순수성이 남아 있다고 한 개들의 기준은 귀가 선 개들이었음이 당연합니다.
<특히 진도견은 신석기시대의 것이 들어와 중형보다 약간 크고 주둥이도 약간 긴 개와의 혼혈형같다. ...이 계통의 개 후예가 한국 전역에 번졌으나 근래 서양개나 다른 개들이 섞여 귀는 축 쳐지고 꼬리도 내리는 잡종이 되어 버린 것이다......그러므로 진돗개와 일본개와의 관계는 한. 일 민족의 유래와 발전 즉 내선일체를 말하는데 유력한 자료가 되고 학술상 귀중한 개라 아니할 수 없다. 현존해 있는 진돗개의 형태를 말할 것 같으면 일본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는 진돗개가 중형보다 약간 크다고 했다는데 주목해 주시기 바라고 귀 내린 개들을 잡종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귀 선 개들이 ) 내선일체를 강요하는데 <유력한 자료>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위에 예문에서 보면 일차적인 도태대상이 귀 숙인 개들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모리가 순수성이 비교적 남아있다고 한 것을 봐서 귀 숙인 개들의 비율을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한 진도 분은 예전에는 진돗개의 60%이상 귀가 안 섰다고 하셨는데 귀 안선 개들이 과반수 이상 되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모리는 귀 숙인 개들을 잡종으로 단정지어 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사이래 귀 숙인 개를 우리의 토종개로 알고 길렀던 민족인데, 이 자들이 귀 숙인 개는 잡종인 것으로 완전히 세뇌를 시켜놓은 장본인들입니다. 여러분은 조선총독부의 귀 선 진돗개로의 획일화 정책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정말 좋은 일을 해 준 것으로 감사하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그로 인해 고서적에서 "개"자만 나와도, 개뼈부스러기만 나와도 무조건 귀 선 개로 인식하고 있는 겁니다.
이 자들이 도태했을 개를 추측해 보면 첫째 귀 안선 개인데, 이 귀 안선 개들의 도태가 내선일체를 실행하기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진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철저하게 귀 선 개로 일본화하려 했던 겁니다. 당시 일본의 내선일체 정책은 조선인의 혼을 바꾸려고 할 정로 전방위에서 철저하게 진행됐는데 진도에서 그런 자료를 제공해 주는 개가 발견된 것입니다. 군사작전 하듯이 엄격하고 집요하게 집행했을 겁니다.
"진도견"에서 申 均씨의 증언에 의하면 쇼와 13년부터 5년 간 '야겡가리"를 했다고 하는데, 이는 개의 수명을 놓고 볼 때 없애고 싶은 개의 종자를 멸종시키려는 치밀한 계획 후에 나온 방법입니다. 내리 5년이면 도태대상이 많았다는 것이고 씨가 마를 수 밖에 없는 기간입니다.
둘째는 귀가 섰어도 중형견보다 상당히 큰 개가 도태됐다고 생각됩니다. 귀 선 작은 개요?
그런 개는 아주, 많이, 모두 남겨 놓았을 겁니다. 그 자들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에 도태된 개들의 형태는 키가 크고 머리폭이 넓으며 둥글고 굵은 주둥이, 긴 털, 말린 꼬리를 가진 티베탄 마스티프 형태였던 것입니다. 한반도가 지리적으로 대륙에 붙어있고 우리 얼굴이 그 쪽인데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가 동남아입니까? 일방적으로 귀 세운 개만 돌아다닌다는 것이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일제가 계획적으로 그렇게 한 겁니다. 1/2*1/2*1/2.....=? 진돗개는 이런 식으로 남은 겁니다.
모리의 머리 폭 넓은 개를 보는 관점에 대해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자가 이 머리 폭 넓은 개에 대해서 훨씬 좋은 관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진도견" 책 89쪽 도표를 보고 설명을 하는 것인데,
<위에 측정표에서 본 바와 같이 진돗개는 두골의 최대 넓이가 최대 길이에 대한 비가 작은 것이 많다. 즉 일본견에 비해 머리가 약간 길고 머리 폭이 약간 좁은 편이다.....제 3호나 4호 같은 진돗개는 일본개에 못지 않게 머리 폭이 넓은 古型이다.... 그러므로 일본개 쪽이 더 구석기 시대에 길렀던 머리 폭이 넓은 家犬에 가까운 古型이라 할 수 있다.....>
모리는 머리 폭이 넓은 개를 훨씬 오래 전에 가축화된 개로 보았으며 이런 개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쪽이 적은 쪽보다 고대 문화가 발전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머리 폭이 넓은 개의 원래 형태가 여러분이 지금 아시듯이 그런 낮은 개가 아닙니다. 큰 개가 다 사라지고 남은 걸로 배운 겁니다. 모리가 일본개들이 진돗개보다 머리 폭이 넓은 개가 많다고 한 그 개들은 기쥬견을 말하는 것인데 그건 황당한 거짓말입니다. 이 자가 사후 보고서에서 공개적으로 한국민을 세뇌시키고 있는 겁니다.
1935년(쇼와10년)에 제 1회 기쥬견 대회 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개들이 단 일곱 마리 , 7호견 뿐입니다. 그리고 42년도에 8호부터 15호까지 지정하고, 43년도에 20호까지, 44년도에 27호까지 지정합니다. 구년동안 27마리입니다. 이 자가 진돗개의 견본사진으로 표지에 실은 것도 아주 의도적으로 그 정도의 체격과 두상의 개를 실어 놓았습니다. 진돗개의 순종을 이 정도 수준으로 하라는 뜻이고, 무지한 백성들을 은근히 세뇌시키는 방법입니다.
20여 년 전에도 큰 개들이 많이 있었고 그 당시에는 상당히 많았을 텐데 의도적으로 그런 개의 사진을 실어 놓았고 우리는 그 사진을 옛날 조상 진돗개의 사진이라고 신기하게 보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만약 일제 참모본부의 첩보책임자이거나 총독부의 책임 있는 관리일 경우에, 진도에 있었던 개들을 내선일체의 자료로 삼기 위해 귀가 직립 한 개들만 남기고 귀 숙인 개들은 모조리 도태시킨다고 할 때 살아남는 개들은 어떤 형태로 정리해 놓겠습니까? 이건 아주 상식적인 일입니다.
일본의 내선일체 정책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지배계층이 건너갔다는 정책이 아닙니다.
그 반대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교육하여 하나로 만드는 정책입니다. 사람도, 문화도 그 쪽에서 왔다는 것을 주입시키려던 정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들이 한반도에서도 임나일본부를 주장했던 가야 일대의 고분을 집중적으로 발굴해서 증거인멸을 하려고 했던 겁니다. 지배계층은 역사의 진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모리가 머리 폭이 넓은 개들을 더 古型으로 보았으니 이런 개들을 일차적으로 반출해 갔을 것은 뻔한 겁니다. 머리폭 넓은 개들을 바로 이 자들이 가장 좋은 개로 보고 가져간 겁니다. 그 다음에 진도에 있는 개들을 일본에 있는 개들보다 더 좋은 쪽으로 기준을 정해주었을까요?
여러분 같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 자들이 볼 때는 진돗개가 귀만 서 있고 형태는 중형견 이하면 되고 귀 폭은 좁고 작은 키가 많은, 자기들 개보다 약간 아래 급수에 놓이는 개로 다듬어 놓고, 머리 폭 넓은 古型의 개들이 일본에서 진도로 들어 온 것처럼 만들려고 했던 겁니다. 귀 숙인 개, 키 큰 진돗개를 잡종시하는 인식을 철저히 세뇌를 시켜 놓은 겁니다. 모리가 기준을 정하기 전에는 순. 잡이 없었습니다. 이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간단한 겁니다. 법이 있기 전에는 죄가 없는 겁니다...종교에서도.
머리 폭이 넓은 개들이 더 古形이라고 생각한 것은 모리의 착각이지만 그런 개들을 훨씬 좋은 개로 생각한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 일을 여러 해 동안 집요하게 한 끝에 <진돗개>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진돗개의 기준에 의해 우리의 국민적 인식이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지금 전국에 귀 숙인 토종개가 몇 마리나 있습니까?
키 고고 준수했던 귀 숙인 개의 사진이 조선시대 광화문 앞에서 찍힌 흑백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일제의 내선일체 강요 작전에 의해 멸종의 길을 걸은 겁니다. 그런 개들의 멸종은 귀 선 개에도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영국에서 개량한 티베탄 마스티프 말고, 유목민들이 기르는 자연스런 몽골견들의 두상에서는 사라진 육지 토종개의 이미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도의 겹개는 몽골견의 두상과 체형에 원형을 두고 있는 개로 보아야 합니다.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해 주는 글이 다나베교수의 논문입니다. 몽골견 형태의 개들이 진도에서 씨가 마르게 사라진 후에 진돗개는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그 후에 다수의 그런 개들의 유전자가 발현됐다고 하나 수적으로 적고 기준이라는 인식에 의해 잡종으로 몰려 도태대상이 됐던 겁니다.
일제의 진돗개 이미지 바꾸기 작전은 대 성공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일제가 만든 진돗개의 이미지는 한국인의 머리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나 같은 나그네가 이런 식으로 누누이 말한다고 해도 여러분의 인식이 바뀌는데 몇 십 년이 더 걸릴지 모릅니다. 광개토대왕비문 조작을 밝히는데는 많은 학자가 동원되어도 삼십 년이 걸렸습니다. 귀 숙인 진돗개가 진도에 많았다는 것은 몽골견과 같은 개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 개들이 머리 폭 넓고 키 큰 진돗개들의 여러 특징을 전해주는 유전인자의 창고 역할을 했던 것인데 이런 개가 사라지면서 우리의 겹개 상도 바뀌었고, 바야흐로 요즘에 와서는 개도, 사람의 인식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고정된 겁니다.
진도에 계신 어른들은 진돗개의 역사 중에 깊이 남아있는 이러한 감춰진 일들을 밝히는데 일조를 해 주셔야 합니다. 과거에 귀 숙인 개가 얼마나 됐었는지를 말씀으로 남겨주시고, 더 옛날 분들의 증언을 더듬으셔서 일제 도태 전에 개들은 큰 개들이 얼마나 있었으며 얼마나 큰 개들을 사냥개로 썼는지를 말씀해 주셔야 진돗개의 역사에서 일제의 잔재를 떨어내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다나베교수가 일본인으로서 그런 논문을 남겨 주었는데, 한국인으로서, 진도인으로서 망설이시면 정말 안됩니다. 그런 개가 지금 없다고 해도 진실은 밝혀 놓아야 하는 겁니다...
진돗개의 이미지는 일제에 의해 지금까지 철저하게 조작되어 왔지만 최근 십 년 사이에 고정관념의 변화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지금의 원로들께서 어렸을 때에 듣고 보았던 개들을 말씀하셔도 일제가 조작하기 전의 개들을 다 밝히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충분히 유추할 수는 있습니다. 많은 자료들이 있으며 요즘 진돗개 애견가들 중에는 상당한 전문지식을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저는 일제의 치밀한 작전에 우리 민족 모두가 지금까지 감쪽같이 속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분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한국적이어야 할 개들이 사라진 것과 진돗개의 이미지가 한국 내에서도 일본개들에 못 미치는 것으로 인식이 되게 된 것은 일제의 한국 혼 말살 작전이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축구를 보면 그 나라 남자들의 기질을 알 수 있듯이 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보다도 진도 분들이 이 내용의 심각성을 인식하시고 역사의 진실을 밝혀서 진돗개의 위상을 높여 주셔야 합니다.
모르고 기르는 것과 알고 기르는 것은 큰 차이입니다. 진실을 알아야 번식의 방향도 정하고 진돗개의 연구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의 비문이 조작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약 80년이 지나서입니다. 광개토대왕비문의 조작을 밝힌 것은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던 우리 역사학계에 대단한 파문을 일으켜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이 모두 보이지 않는 전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돗개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갖고 계시는 진돗개 상이 바뀌지 않고 마음의 문이 닫혀 있다면 일제의 우리 개 내선일체화 작전은 영원히 성공한 작전이 될 것입니다.
진돗개는 조선총독부와 일본군부의 내선일체 강요작전이 시행되기 전의 아무 이름조차 없었던 때의 진돗개가 진정한 의미의 진돗개입니다. 홑, 겹개도 그때의 진돗개에서 정해진 이름입니다. 일제의 의도대로 도태되고 정리된 상태로 세상에 알려진 진돗개들은 한국적 이미지, 한국인의 기상을 가진 개들을 모조리 도태시킨 연후에 나왔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하다고 보는 겁니다. 그동안 우리의 진돗개 역사에는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논쟁들의 중심 깊이에는 일제가 정한 기준이 제왕처럼 군림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 틀 안에서 놀아났습니다.
아직도 진돗개 뜯어보기 싸움으로 날을 지새울 때가 있습니다. 진돗개 뜯어보기는 下手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高手들은 그런 식의 뜯어보기 하시면 안 됩니다. 진돗개 그림을 크게 그려 주셔야 高手입니다. 일제의 간악한 흉계가 시행되기 전 진도에 있던 개들은 세계 최고의 개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진돗개가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개였다면 일제가 진돗개에 손을 안 댔습니다. 그런 내용을 진도의 어른들께서는 요즘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조선총독부와 대본영 참모본부의 흉계가 완벽하게 성공한 작전이 진돗개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일제가 진돗개 이미지 왜곡했다.|작성자 부여의 구가
첫댓글 이글을 보면서 많을걸 느꼈는데 막상 적당히 적어볼려고 했는데 머리만 복잡해지네요~
적어도 우리나라 진돗개를 바로 알고 또 발전함에 있어서 부끄러운 사람이 돼질 앟았으면 좋겠네요^^
좋은내용글입니다 우리의 자손심인 진돗개는 우리가 보존 해야 합니다
진돗개. 알고 기르면 재미있다. 라는 자료라고 해야 하나요,
김포 애견가 님의 글인듯 싶군요.
구름 나그내 님은 기금도 그곳에 진돗개 좋아하고 계신지요?
지금도 진돗개는 많은 숙제를 갖고 있습지요.
그 보존 대책을, 진돗개 좋아하고 사랑하는 우덜이 마련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
모두 저마다 진돗개 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