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중학교를 다니던 1950년대는 한국전쟁을 격고 폐허에서 국가 재건을 하던 시절 이므로 모든 것이 부족해서 레코드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극 소수의 사람에게만 가능했습니다.
중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신 LP 음반 소리에 뿅가서 평생 음악을 듣고 살아 오는 동안 LP 음반을 수집하고 CD가 출현 한후 CD로 음악을 들었으나 CD도 죽고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이란 새로운 방법로 음악을 듣는 세상까지 살고 있습니다
LP가 부활하여 LP가 생산되어 젊은이들이 다시 LP를 구매한다고 하나 세상이 뒤로 돌아 갈 수는 없는 법.
시대는 계속 변하게 마련이고 그 속에서 진 짜 좋은 건 변하지 않고 끝까지 남는 다고 하나 모습이 바뀌어 디지털로 음악을 듣게 되었으므로 LP가 종을 친 마당에 한 세상 젊은 황금시절에 즐거움을 준 LP에 더욱 애착을
느낍니다.
1948년 콜롬비아 레코드가 처음 세상에 내논 LP는 1979년 CD가 등장 한 후 쇠퇴하여 20세기 말에는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 생에 50년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음악을 들려준 LP가 다음 세대까지 사랑을 받을까?
의심을 해 봅니다.
LP에 보관된 음악은 역사이며 과거의 유명 연주가,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리고 미치고 환장할만한 좋은 목소리로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준 수많은 명가수들이 음반에 담겨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주인공들은 저 세상 사람들이 되어 있지만 음반에 남아 있는 목소리와 선율은 좋은 오디오 장치로
들으면 죽음에서 부활을 합니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그래서 LP는 버리지 않고 중고 음반이 시장에서 거래되며 다음 세대로 전해집니다.
일분에 33 1/2 회전하는 LP가 나오기 이전에 일분에 78 회전하는 SP 레코드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레코드입니다.
부친께서도 음악을 좋아 하셔서 중학교 때 음악 이야기를 하니까 롯데 레만(1888년 - 1976년)이라는 가수를
좋아 하신다했습니다
6.25 전쟁 때 집안의 레코드는 모두 없어졌으므로 독일 쏘프라노 롯데 레만의 목소리는 레코드 수집을 한창 하던 40대가 되어야 들을 수 있었습니다.
SP음반 시절의 녹음 음질은 음폭이 좁은 협대역임에도 불구하고 롯데 레만의 목소리는 대를 이어 미치게
만듭니다.
롯데 레만 레코드는 녹음이 LP레코드로 옮겨져서 현제에도 들을 수 있습니다. CD로도 옮겨 졌지만 LP로 들으면 더욱 생생합니다.
LP의 마력은 사용 턴테이블과 카트리지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취미성이 강하며 각자 좋아하는 음질을 만들어 음악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레코드의 음질은 레코드 제작회사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이 회사 음질이 좋다고 한 곳에만 만든 레코드만 들을 수도 없습니다.
레코드 회사는 음악가들과 전속계약을 하기 때문에 여러 음악가를 들으려면 여러 레코드 회사에서 만든 레코드를 구입해야 합니다.
LP 레코드는 20세기 말에 CD에 밀려 사라졌다가 오늘날 부활하여 재생산 하지만 우리 젊은 시절 추억의 레이블을 가진 레코드 회사들은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노란색, 빨간색, 파랑색, 검은색, 흰색등의 아름다운 레이블로 장식된 각기 다른 회사의 레코드들은 LP를 담은
아름다운 쟈켓과 더불어 그 자체가 젊은 시절의 꿈과 회상입니다.
이미 옛날 꿈의 레코드 시절은 지나갔고 레코드 회사들은 CD나 DVD 영상물 그리고 마스터 테이프에 가지고 있는 음악을 디지털 음원으로 바꾸어 인터넷 스트리밍 써비스를 하는등 사업이 바뀌었기 때문에 꿈의 시절 레코드
전성기가 어떻게 시작했고 끝이 났는지 과거와 현제를 아래에 정리해 봅니다.
음악은 신기루처럼 나타나 엄청난 판매고로 많은 돈을 버는 펍쏭, 가요, 째즈음악등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분야가 있지만 여기서는 전통 클레식 음악분야 에 대해 주로 말씀 드립니다.
1. 음악 녹음의 역사 그 자체 EMI 레코드
1990년대 까지도 가장 큰 레이블이다. 옛날부터 전통의 강호다.
19세기 말부터 존재하던 영국의 그래머폰 컴퍼니9His Master's Voice-HMV)와 컬럼비아(Columbia)크래머폰 컴퍼니가 1930년대 초에 합병하여 EMI(Electric Musical Industry)가 탄생. 19세기 말부터 엔리코 카루소와 같은 수많은 최고의 아티스트가 소속된 회사였음.
2차대전 이후에 급격히 발전하는데 명 프로듀서 Walter Legge가 나치에 협력하여 공연 금지당한 패전국 출신
유명 아티스트들을 모두 전속 시켰다.
원래부터 소속되있던 오토 크램페러와 함께 프루트 뱅글러, 카라얀, 쥴리니, 에리자베스 슈발츠 코프 등이
공연대신 녹음의 시대를 열었음.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라는 녹음 전문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음. 많은 음반 판매를 하므로 엄청난 음악 제국을 만들었다. 기술이나 진보에는 보수적 입장을 취해 50년대 중반 까지도 새로운 기술로 나가는 라이발 회사인 DECCA에 비해 음질이 고전적 이다. 2010년에 Warner Classic에 합병되었다.
2. 클래식을 상징하는 노란딱지 도이치 그라모폰
1898년에 독일에서 설립. 2023년에 창립 125주년. 독일인 에밀 베를리너(1851-1929)가 미국에 가서 에디슨이 발명한 원통형을 원반형으로 개량한
발명품 그래머폰 이란 음반 회사를 만들어 영국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 지사를 만들어 판매함. 에밀 베르리너가 독일에 있는 조카에 독일 지사를 운영케 한 것이 도이치 그래머폰의 시작이다. 세계 대전 대 공황 등을 거치면서 여러 음반 회사들의 인수 합병이 생기는데 이 와중에 유명한 SIEMENS에 합병 되었다. 영국의 EMI가 패전국 아티스트들을 모두 가져가므로 1950년대 초반 까지도 매우 열세 였는데 50년대 중반부터 분발해서 후에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들을 다 보유한 세계 최고의 클래식 레이블이 되었다.
1960년 70년대에는 영국의 데카 레코드 네델란드의 필립스 레코드와 함께
거대한 Polygram이라는 연합체를 만든후 90년대 말에 Universal Music Group에 인수됨. 한국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영입되어 소속됨.
3. 데카 사운드는 특별하다
후발주자 이지만 영국의 EMI와 더불어 현제도 영국의 최고의 클레식 레이블이다. 이 회사의 굳건함은 기술에 대한 옹고집에서 나온다.
최고의 음향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이 회사의 경쟁력이므로 좋은 음질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믿고 구매하였다. 이 레이블은 미국에서도 만들어져서
런던 레코드라는 레이블로 판매함. EMI가 보수적으로 모노 레코드만 만들고 있을 때 1950년대 중반에 완벽한 스테레오 녹음 레코드를 생산함.
녹음과 공연 전달이 레코드로 만들기 힘든 오페라 전곡 녹음에 집중하므로 오페라의 왕국이 되었음. 유명 오페라 가수들은 모두 테카에서 녹음하기를 원 했으므로 죠안 서덜렌드, 루치아노 파바로티등 젊은 전성기의 목소리가 모두 테카 음반에 담겨있다. 1960년대 게오르그 솔티가 녹음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곡 녹음은 기념비적으로 남아있다.
한국 음악가 정경화가 70년대 초반에 데카와 계약을 해 많은 바이어린 협주곡 녹음을 해서 음반을 발매 했다. 성악가 조수미도 데카 음반이 있음.
최근에 한국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데카와 계약하여 새로운 음반을 페케지로 인기리에 발매중임.
현제 Universal Music Group에 소속되어 있음
4, 추억의 빨간줄, 명반 제조기 필립스 클레식
1950년대에 발족한 네델란드 회사. 필립스는 종합 가전 회사로 오디오 장비와 더불어 음반 녹음 제작도 하였음.
네델란드는 수도 암스텔담에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의 하나인 콘서트 헤보우가 있으므로 함께 녹음을 많이 하였으나 부족하여 적은 악기 구성으로 할 수 있는 바로크 음악 녹음에 집중함, 이무지치가 녹음한 비발디 4계가 유명함, 1950년대 바로크 음악의 부흥을 이르킴.
특화된 정갈한 음으로 승부 하면서 레파토리의 다양함을 더하여 발전해 갔음. 필립스가 세계적 전자 회였으므로 녹음 방식등 음향 기술발전도 많이 하였음. 특히 디지털 레코딩을 가장 먼저 하였음. 80년대 초에 처음으로 CD를 만든 회사가 필립스임.
매년 열리는 독일 바이로이트 바그너 작품 공연 실황 녹음 전속회사로 많은 유명 녹음 음반이 있음. 영국 테카 레코드 회사에 흡수 합병 된 후 모 회사였던 필립스가 필립스 레코드 레이블을 쓰지 못하게 해서 지금은 데카 레이블을 달고 음반을 판매함.
5. 미국의 양대 음반사를 품다 소니 크레시컬
콜럼비아(CBS)와 RCA 라는 미국의 양대 음반 레이블이 지금은 소니안에 다 담겨져 있다.
영국 컬럼비아 그레머폰 컴퍼니의 미국 자회사 컬럼비아가 가 대 공항 시대에 미국의 방송사 CBS에 합병되었다. 소속 아티스트는 대 지휘자 부르노 발터등이 있었고 뉴욕 필하모니등과 관계가 돈독하여 유명 지휘자 번스타인이 뉴욕 필에 있을 때 함께 녹음한 많은 명 음반들이 나왔다.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와도 사이가 좋아 죠지 셀이 지휘한 음반도 많이 나왔다. 1950년 60년 70년 초까지 미국 오케스트라의 전성기 때의 한축을 담당했던 위대한 레이블.
1980년대에 일본의 소니가 CBS를 사들임.
영국의 그레머폰 컴퍼니의 미국 지사가 Victor였는데 20세기초반에 RCA방송 회사에 인수가 되어 RCA Victor가 되었다.
전속 아티스트는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있었다.
뛰어난 오페라 음반들이 많았는데 유명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이 젊은 시절에 많은 RCA 뛰어난 명반을 만들었다.
1990년대에 독일 멀티미디어 구릅인 BMG에 넘어감.
BMG는 다시 일본의 소니에 흡수되면서 예전 RCA 명반들이 지금은 소니레이블을 달고 시장에 나옴.
소니 크레시컬은 현제 최고의 테너가수 요나스 카우프만을 전속 아티스트로
만들어 음반을 시장에 내놓는 등 클레식 음반작업을 계속하고 있음.
아래의 동영상은 데카 레코드의 기념비적인 작품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녹음하는 장면입니다. 장소는 오스트리아 빈이고 빈 필하모니를 거장 게오르그 솔티가 지휘 하고 있습니다.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1. 라인의 황금 2. 발퀴레 3. 지그후리트 4. 신들의 황혼등 4부작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각 부의 공연 시간이 3-4시간쯤 되므로 전곡을 다 들으려면 12 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무대장치는 신들의 영토인 하늘과 인간의 영토를 이어서 만들어야 하므로 기존 오페라 극장에서는 공연이 불가 하여 작곡가 바그너(1818-1883)는 독일의 바이로이트에 전용 극장을 만들어 공연 하였습니다.
지금도 매년 바이로이트에서는 바그너 축제를 열고 공연 하고 있습니다.
10 여년 전에 미국의 오페라 극장 뉴욕 메트로 폴리탄에서도 특수 무대장치를 만들어 공연 한적이 있어서 초 고화질 영상으로 찍어 한국의 메가박스 극장에 보내주었기 때문에 감동적으로 보았습니다.
바이로이트 공연 실황은 전속 계약을 한 필립스 레코드 회사가 영상으로 만든 DVD를 판매하므로 구입하여
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동영상 장면은 산들의 황혼 최종 피날레를 보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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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om님은 당시 문화적으로 많이 앞서가신 부친의 영향을 받아 음악 애호가가 되신 것 같습니다 만
저는 6.25때 통신병으로 참전 후 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19세 위의 형님의 영향으로 광석라디오 부터
시작해서 중2 때 5구 트랜스리스 수퍼 헤데로다인 진공관 라디오를 만들어 일찌감치 팝송이나 크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가 있어서 그 당시 유명했던 음악인들의 이름을 아직도 몇몇 기억하고 있습니다.
성악가로는 '마리아칼라스' '카루소' '리차드토크' '유시비어링' '스테파노' '피셔디스카우' ....
지휘자로는 '카랴얀' '쥴리아니' '토스카니니' '게오르그 솔티' '부루노발트' '번스타인' 등이 기억납니다만
지금은 대부분 고인이 되셨겠지요?
벌써 꼭 20년전 이야기 입니다만 시카고에서 육로로 나이야가라 폭포도 구경할 겸, 손위 동서가 사는
토론토를 방문하고 돌아오던 도중 오하이오 주를 지나올 때 '크리브랜드'라는 도시를 거치면서 유명한
'크리브랜드 오케스트라'가 생각이 났던 추억이 있습니다. hi
< 아래 계속 >
<계속>
저는 오디오 메니아는 아니지만 그저 (기독교)신앙생활 하는 과정에서 음악을 떼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세속적인 대중음악 보다는 크래식을 선호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어릴 때 까지만 해도 LP판 1장 사오면 1주일은 행복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젊을 때는 시향이나 유명 교향악단의 초청공연 때 비싼 입장료 지불해 가며 연주회장에 자주 다녔지만
이제는 그런 열정은 없고 '꿩 대신 닭'으로 자작 진공관 앰프로 주로 CD나 가끔씩 LP를 들으며 자족합니다.
다른데서 듣기 쉽지않은 음반관련 뒷얘기랑 크래식 관련 사료들을 잘 정리하여 올려주셔서 여태껏 모르던
스토리들을 알게되어 유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HL5IL 고인이 된 세기의 명 아티스트들이 후손들에게도 사랑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열거하신 아티스트들은 저도 매우 좋아하여 대부분 LP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혹시 댁에 없는 듣고 싶은 LP가 있으면 찿아 봐서 선물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집중하고 반복해서 들을 때 더 큰 즐거움이 옵니다.
@HL2IR 7~80년대 LP 1장이 3~4천원 정도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당시 돈 가치로도 여러장 사기는
부담스러워 듣고 싶은 곡이 있을 때 1장씩 사들고 오면 무척 행복했었지요? hi
첫 아이(지금 미국의 딸)를 임신했을 때 부터 크래식 음악을 주로 틀어놓고 들었으니 자연스럽게
태교 음악이 되어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릴적 부터 크래식 음악을 좋아하더군요?
유치원 다닐 때 부터 초등학교 5년까지 피아노를 쳤는데 싫증을 내는 것 같아 그후 3년간은
바이올린을 시켜봤지요?
기계공학을 전공했음에도 지금까지 피아노 치는 것을(주로 바흐 곡)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격이 장난이 아닌 스타인웨이 후손들이 설계한 고급 그랜드 피아노까지 구입해서
거실에 들여놓고 스트레스 느낄 때면 지금도 수시로 치고 있네요? 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