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슈밍(Prosuming)
윤성인(KDI 경제정보센터 경제교육협의회 사무국 전문위원)2007년 08월호
친한 선배 언니가 새로 이사 갈 집을 직접 수리한다기에 시간을 내어 집수리 현장을 찾아갔다.
페인트, 스티커형 바닥재, 벽지, 도배용 풀, 각종 공구 등 DIY(Do it yourself)가 가능한 물건들이 거실에 있었고, 선배 언니의 수첩에는 포탈 사이트의 관련 커뮤니티에서 회원들이 DIY 경험으로 얻은 비결(Know How)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날 선배 언니 부부가 도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엘빈 토플러가 말한 프로슈밍(prosuming)이 떠올랐다.
엘빈 토플러는 자신의 책 「제3의 물결」에서 판매나 교환보다는 자신의 사용이나 만족을 위해 제품, 서비스 또는 경험을 생산하는 사람을 프로슈머(prosumer)란 신조어로 설명하면서, 미래에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구별하는 것이 점차 애매해지면서 프로슈머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족들을 위해 주로 여성이 전담하는 가사노동이나 자녀양육 등이 전통적인 프로슈밍이며,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최근에는 취미생활로 즐기려는, 예를 들면 선배 언니의 집수리, 가구 리폼(reform), 자동차 수리, UCC 등과 같은 새로운 프로슈밍이 증가하고 있다.
이외에 또 다른 프로슈밍은 없을까? 앞서 열거한 프로슈밍이 자신의 사용이나 만족을 목적으로 한 프로슈밍이라면, 타인을 도우려고 자신의 노동력을 무료로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만족을 느끼는 프로슈밍도 있다.
즉, 과거 농경사회에서의 품앗이, 재난현장의 자원봉사자, 의료시설이 열악한 오지에서의 의료봉사, 산골마을에 사는 노인들을 위한 차량봉사 등도 프로슈밍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자원봉사 활동이 사회적 비용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봉사의 수혜자와 제공자 모두에게 만족감과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해 준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성장잠재력 하락, 소득양극화 심화, 고령화 문제, 실업문제, 전통적 가족제도의 붕괴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하면서 사회복지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국가는 복지문제를 해결하고자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재의 사회복지체제나 인프라는 이에 대응하기에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복지는 국가의 일방적인 책임으로 보기 보다는 국가와 개인이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고, 개인은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동참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공익과 공공선 및 공동체적으로 나누고 베푸는 삶에 대한 의미를 체감할 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탄탄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역사회는 자원봉사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주민들은 지역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복지문제에 쉽게 공감할 수 있고 그 결과, 주민들이 지역복지문제 해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2005년 7월 전국 시·군·구 단위에 지역사회복지협의체를 구성하여 지역사회 단위로 정부와 민간 부분이 협력하여 지역복지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의사소통 구조를 마련하였다.
이는 프로슈밍의 사회적 가치를 활용하여 국가와 개인이 복지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아직은 구체적인 성과는 없지만 성공적인 참여형 복지제도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 저널 등이 30, 40대에 돈을 많이 벌었지만 사치를 멀리하고 평범과 자선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을 young and wealth but normal의 약자인「욘(yawn)족」이라고 정의했다.
이들은 제 3세계의 빈곤문제나 질병퇴치, 자연보호 등 자원봉사 활동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정신적인 만족과 보람에 높은 가치를 둔다고 한다.
프로슈밍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엘빈 토플러가 “미래의 부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욘족」은 미래의 새로운 부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욘족」처럼 물질적인 부를 가진 사람들만이 새로운 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배 언니 부부가 즐겁게 도배하는 과정, 지역에 사는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을 주는 것, 일상생활이 바쁘지만 시간을 내어 지역사회의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것 등은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의미의 부일 것이다.
출처: https://eiec.kdi.re.kr/publish/nara/column/view.jsp?idx=5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