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에 대한 환상
동서고금에 문인들이 모여 단체 만들어서 무슨 문학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역사가 어디 있습니까? 문학은 정치와는 달라요, 결국 문학은 혼자 하는 것이고 혼자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 모임 만들고 그런데 나가는 것 헛되고 시간 낭비하는 것밖에 없어요. 이원수 선생이 한국아동문학가협회 만들어 오랫동안 회장으로 그 단체를 이끌었는데, 그런 일을 한 것이 이원수 문학에 무슨 보탬이 되었습니까? (이오덕)
문단 사정에 어두운 신인들은 단체에 대한 환상에 쉽게 빠져든다. 단체에만 들어가면 자신이 작가로 자리매김 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어엿한 작가로 인증(?) 받는 줄 안다. 또 단체에 가입했으니 나도 작가다, 라는 허상에 빠져 자만하기 싶다. 무지한 천진난만! 문단은 말 그대로 단체일 뿐이다. 문학상을 만들고 세미나를 열고 연간집을 만들어 회원들의 친목을 꾀하는 단체에 불과할 뿐이다. 세미나는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도 좀 있으면 알게 된다.
그리고 단체에 가입하여 이름만 알던 선배 작가를 만나면 우선 반갑고 뿌듯한 기분에 젖는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별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고 허탈감, 상대적 열등감만 맛보게 된다.
단체에 깊이 빠지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 단체가 작품을 평가하고 결정짓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결국엔 단체 내의 ‘작가들로만 둘러싸인 작가, 작가끼리만 아는 불행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작가끼리 서로 치켜세우고 알아주면 그것이 곧 독자들이 인정하는 작가인 것처럼 착각한다. 문단 밖에만 나가면 아무도 모르는 작가, 자기 혼자만 작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단체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자칫하면 회비납부 회원으로 마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단체가 작품을 써주지 않는다. 작품은 내가 쓰는 것이다.
단체에 안 들어가면 혼자 외톨이가 된 기분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좋은 작품 쓰기 틀렸다.
작품 쓰기에 바쁜 사람은 외로워할 시간이 없다.
바쁜 사람에겐 고민할 시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외로워야 한다.
단체에 빠진 이들은 사실 창작보다 세속적인 문단 정치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려는 사람이다.
굳이 단체에 들어가고 싶다면 한 발만 담그라고 권하고 싶다.
두 발 다 담그면 그대는 익사해서 영영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단체에 가입하는 것으로 자신을 작가로 여기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이는 없다. '아동문학가'가 되는 것만큼이나 쉽게 회원이 될 수 있는 게 우리나라 아동문학단체이다. 요새는 흔해 빠진 게 시인인데 그런 면에선 아동문학가나 시인이나 피장파장이다.
단체에 가입하라고 통지 오면 흥감해하며 가입한다.
지방 단체는 필요하다고 본다. 이마저 없으면 쓸쓸하니까.
제일 바람직한 것은 동인 성격의 모임이다.
서로 밥 같이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친목도 하고. 정보도 주고받고 하는 모임.
아동문학단체와 관련이 있는 잡지에서 '신인상'을 만들어 신인들을 남발하고 있다. 그리고는 단체 회원으로 가입케 한다. 요새는 성인문학단체도 마찬가지지만. 그렇고 그런 아동문학잡지들이 주는 신인상이나 추천을 받은 작품을 보면 시라고 하기엔 남부끄러운 수준이다. 구독자 늘이기가 목적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다.
운전면허증보다 더 따기 쉬운 게 '아동문학가'요, 그중에서도 '동시인'이 아닌가 한다.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고 또 내가 처음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달마다 계절마다 신인상이나 추천을 받은 이들의 작품을 예로 들어 비평한다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단체라는 게 처음에는 순수한 목적으로 출발하지만 몇 년 못 가서 그만 변질하는 게 현실이다. 정치성을 가진 속물 글쟁이들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되지도 않은 작품을 치켜세우거나 되지도 않은 작품에 상을 주는 심사위원으로 설쳐대니 작품 제대로 쓰는 이들은 얼마 안 가 단체와 결별한다.
덧붙이는 말:
작가는 작품 쓰기에 전념해야 한다. 혹 말동무가 필요하면 뜻이 통하는 몇 사람과 만나면 된다. 이미 단체에 가입했다면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알아보기 위해 어쩌다 얼굴 한번 내미는 정도면 족하다. 어떤 환상이나 기대에 젖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작가는 동료들 동태나 문단 동태, 또는 세속적인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져서도 곤란하다. 어떤 신인은 작품보다 문인들 동태, 출판 관계, 문단 소식에 왜 그리 관심이 많고 밝은지 등단한 지 몇십 년 된 사람 같아 속으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엉뚱한 쪽으로만 발달한 것이다. 이게 도를 더 하면 그만 문단 정치꾼, 속물 문학인이 되어 덩달아 거들먹거리는 꼴불견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2007.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