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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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연/ 시인은 시에 미쳐야 한다
김소월(김정식)은 평북 곽산 출생(1902-1934)으로 32세 때 음독자살함으로써 짧은 생애를 살았다. 그의 시는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여성 화자話者를 통해서 보여주는 작품이 많고, 향토적 소재와 설화적說話的 내용을 민요적 기법으로 노래하였다. 1920년 2월『창조』에「낭인浪人의 봄」「야夜의 우적雨滴」「그리워」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그의 작품 세계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ㆍ1922년:「금잔디」「엄마야 누나야」「밤 제물포에서」「새벽」「진달래꽃」「개여울」「강촌」「먼 후일」「님과 벗」
ㆍ1923년:「님의 노래」「옛이야기」「못잊도록 생각나겠지요」「예전엔 미처 몰랐어요」「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ㆍ1924년:「밭고랑 위에서」「생과 사」「나무리벌 노래」「이요俚謠」
ㆍ1925년:「옷과 밥과 자유」「남의 나라 땅」「천리만리」「꽃촉불 켜는 밤」「옛님을 따라가다가 꿈깨어 탄식함이라」「물마름」
ㆍ1934년:「생과 돈과 사」「제이.엠.에쓰」「돈타령」「고락苦樂」「박넝쿨타령」「삼수갑산」
그의 시는 형태론적, 소재론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다. 음률상 2음보, 3음보, 후장 3음보, 3·3·4조 등의 리듬을 빌려 발전시켰다. 「진달래꽃」「그리워」「산유화」등에서 이런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작「진달래꽃」은 떠나버린 임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3·3·4조에 맞추어 읊었다.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등에는 순종의 미덕보다는 미련과 원망, 자책과 갈등이 숨겨져 있다.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에는 임은 떠났지만 끝내 체념할 수 없다는 감정이 숨어 있다. 이런 역설적 감정은 결국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로 끝나고 있다. 그의 시는 별난 시어의 선택이 아니라 별난 배합과 조직에 있다. 단어와 단어를 묶고, 행과 행을 고도의 긴장관계로 엮는다. 따라서 그의 시는 음수율과 음보율을 밝히는 운율학의 좋은 자료가 된다.
좋은 시는 오랜 동안 독자들이 읽어서 생명력을 갖는다. 하지만 좋지 않은 시는 그 수명이 오래가지 않아서 아주 짧은 시간을 살다가 사라질 뿐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많은 시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좋은 시를 주위에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본질을 왜곡하고 너무 자조적自嘲的인 시들이 많기 때문이다. 작자가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시를 쓸 수는 없다. 또한 독자들 역시 어떤 시를 읽고 그것을 쓴 작자의 정서情緖를 다 이해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본질이 왜곡된 허구虛構가 생긴다. 하지만 우주의 본질이 아닌 껍질은 문학의 대상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허구를 추구하게 되면 병들은 시가 남발하게 된다. 따라서 좋은 시는 언제나 읽어도 우주의 본질本質이 담겨 있어야 하고, 일회성이 아닌 영구불변성永久不變性이 있어야 한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하고, 우리들에게 늘 좋은 시로 읽혀지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의 시에는 미학성과 사특함이 담겨 있어서 늘 즐겨 읽게 되고, 우리에게 읽는 즐거움을 준다.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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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1연’은 이별을 맞는 상황이라고 본다. 이별의 순간을 예상하거나 가정하는 상황일 수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여인은 말한다. 내가 싫어서 떠난다면 언제라도 아무런 말없이 보내 주겠다고, 그런데 여기서 재미가 있는 것은 ‘싫다’는 말을 쓰지 않고 ‘역겨워’라는 말을 쓰고 있다. ‘역겹다’는 말은 싫다는 말보다 강한 거부의 말로써 비위를 거슬릴 만큼 몹시 싫다는 뜻이다. 문자적 해석으로 보면 싫다 못해서 쳐다보기조차 역겹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렇게 싫어서 가겠다면 붙잡지 않고, 그냥 보내 주겠다는 말로 연결된다. 이러한 이유들을 음미해 보면 시적 표현의 묘미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2연’은 정말로 싫어서 간다면 가는 길마다 꽃까지 뿌려 주겠다는 것이다. 아무 꽃이나 뿌리는 것이 아니라, 경치가 빼어난 영변 약산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진달래꽃을 한 아름이나 따다가 임이 가시는 길에 뿌려 준다고 하는 말로 ‘1연’의 상황을 강조한다. 약산이란 산은 평안북도 영변면에 있는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산이다. 그런데 왜 하필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을 꺾어다 뿌린다고 했을까, 국화나 개나리꽃, 장미 같은 꽃으로 표현하지 않고서, 아마도 그것은 계절적으로는 봄을 상징하는 꽃이고 연인들에게는 사랑을 노래하는 꽃이기 때문인 것 같다.
진달래는 그 꽃말 자체가 미학적이고 여성적인 면이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진달래꽃 하면 봄을 생각하고, 사랑을 생각하는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고향을 떠난 슬픔이나 연인과 이별한 사람들, 모두가 그래서 진달래꽃에 향수와 그리움을 느끼고, 그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컥해지게 된다. 그런 꽃을 가시는 님과 이별하는 순간에 생각하고, 더욱이 그것을 길 위에 뿌려 놓고 붙잡지 않겠다고 하는 표현으로, 더욱 애절함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말로서는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만, 님은 떠나지 않겠지 하는 마음도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3연’은 그래도 정녕 떠나가겠다면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는 말로서, 상처를 주지 않고 떠나가라는 말로 음미가 된다. 어떻게 상처 없이 꽃을 밟고 떠나겠는가. 여기서 작자의 역설적 표현이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결국 꽃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떠나지 말라는 말도 성립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4연’은 떠내 보내는 애절함이 있지만, 그래도 떠나겠다면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떠나보내겠다는 슬픈 마음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이 연에서 ‘죽어도’ 라는 말로서, 가슴에 슬픔이 가득하지만 울지 않고 참아 내겠다는, 여인의 아름다운 마음이 다소곳이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된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은 3음보의 시이다. 그래서 더욱 기교의 묘미가 있다. 세 걸음을 걷다가 한 걸음을 쉬고, 다시 걸어가는 형식의 시로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애절하게 그리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누구든지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말이, 이토록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