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이야
박숙현
‘쇠르륵 쇠르륵’
오늘도 나는 쇠 목줄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소리가 차갑고 서늘하다. 부들부들 몸은 떨리고 소름이 끼쳐진다.
“할머니, 무서워요. 빨리 돌아오세요.”
이젠 목소리마저 잦아들었다. 사료가 옆에 있지만 그림의 떡이다. 4일 동안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이 바싹바싹 타들어 간다. 바싹 마른 목이 답답함을 넘어 따갑다.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는 것 같다. 내 힘으로 그 그림자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
‘모두 나 때문이야.’
눈앞이 캄캄하다. 눈을 감으니 정겨웠던 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어버이날이다. 나는 상자에 담겨 할머니 집으로 왔다.
“웬 강아지고?”
“어머니 혼자 외롭지 말라고 진돗개 선물입니다.”
아저씨는 할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나를 안은 할머니의 얼굴에 눈주름 미소가 피어난다.
“강아지 이름이 뭐꼬?”
“하얀 진돗개니 ‘백구’라고 부르세요.”
“아이고 백구야, 우리 집 복덩이 백구.”
할머니 얼굴 가득 복숭아꽃 웃음이 번진다. 나는 눈치를 보며 주위를 살폈다. 시골 마을이다. 집 앞에서 개울물이 졸졸 노래하며 나를 반긴다. 바람을 탄 나무들이 춤을 춘다.
“백구야, 우린 이제 한 가족이다. 행복하게 살자.”
할머니 목소리가 솜사탕만큼이나 달콤하다. 내 등을 토닥거리며 자장가를 불러준다.
‘아, 좋은 일들만 일어날 것 같아.’
마음이 몽글몽글 편안하다. 그 뒤로 나는 늘 할머니와 함께했다. 할머니는 내 밥그릇이 비워진 걸 보고서야 비로소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딜 갈 때도 나는 할머니와 붙어 다녔다.
“백구야, 시장 구경 가자.”
무릎이 아픈 할머니는 외출할 때마다 4바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처음엔 오토바이 기름 냄새가 싫었다. 그런데 오토바이에서 할머니 냄새가 나서 좋았다. 멀리 있어도 냄새로 알 수 있다.
옆집에 살구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저 살구 맛은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바로 그때 옆집 꼬마가 왔다.
“할머니, 살구 가지고 왔어요.”
노란 살구를 든 꼬마가 문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와. 꼬마야.”
나는 너무 반가워 꼬리를 흔들며 뛰어갔다.
“엄마야!”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던 꼬마가 마당 가에 있는 바위 걸려 넘어졌다. 할머니가 급히 쫓아가 꼬마를 일으켰다. 그런 할머니의 손에 빨간 피가 묻었다. 할머니는 깜짝 놀랐다. 옆집 할머니와 함께 급히 병원으로 갔다. 그 뒤로 나는 목줄에 묶이게 되었다.
“할머니, 답답하니 풀어주세요.”
“미안하다만 답답해도 참으렴.”
“내 잘못이 아니라고요.”
나는 억울했다. 등의 털을 세우지도 않았고, 이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반갑게 맞이한 것뿐이다. 그런데 묶이게 되었다. 불편했지만 할머니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그 뒤로 홀로 집을 지켜야만 했다. 할머니가 밖에 나갈 때마다 나는 길길이 뛰었다. 그럴 때면 실로 만든 목줄이 마당 가 바위에 스쳤다. 실올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 보풀이 일어나 터실터실해졌다.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밭에 가려는 지 호미와 괭이를 오토바이에 실었다. 밭은 도로를 따라가다가 산모롱이를 돌아가면 있다.
“백구야, 밭에 갔다 올 동안 집 잘 보거래이.”
“할머니 나도 데려가 주세요.”
내가 말해도 할머니는 그냥 갔다. 오토바이가 점점 멀어져간다. 할머니를 따라가고 싶어 나는 뛰었다.
‘나 혼자라도 찾아갈 거야.’
나는 계속 길길이 뛰었다. 때마침 너덜너덜한 줄이 툭 끊어졌다.
“야호, 자유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뛰어갔다. 밭이 눈에 선했다. 산모롱이를 돌자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 나 왔어요.”
“아이고, 백구야 그렇게 오고 싶었나?”
할머니는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할머니의 품은 포근하고 손길은 부드럽다.
“남의 밭에 들어가면 안 된다.”
“네, 멍 멍.”
나는 신이 나서 풀밭으로 마구 뛰어다녔다. 마침 놀란 개구리 한 마리가 배추밭으로 뛰어 들어갔다. 개구리를 잡기 위해 펄쩍 뛰었다가 두 앞발로 내리찍었다. 용케도 개구리는 내 발을 피해 배추 사이로 숨어들었다. 몇 번을 그러고 난 뒤에야 개구리 사냥에 성공했다.
“야! 잡았다.”
승리자가 된 내 목소리가 들판으로 메아리쳐 갔다. 그때야 돌아본 할머니가 깜짝 놀랐다.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배추가 망가져 밭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백구야!”
할머니의 짜증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 보기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고개를 숙이고 밭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가을 상추 모종들이 줄을 지어 흔들렸다.
‘저건 농작물을 해치는 두더지야. 저 두더지를 잡아서 할머니의 화난 마음을 돌려놓아야지.’
나는 재빨리 두 발로 땅을 파헤쳤다. 두더지를 잡기 위해 냄새를 맡으며 계속 땅을 뒤집으며 따라갔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상추들이 허연 뿌리를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백구 니 자꾸 사고 칠 끼가?”
할머니의 고함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지?’
내가 생각해도 한심스러웠다. 할머니를 위한 일인데 실망만 시켜드렸다. 할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오토바이를 탔다.
‘나를 태우고 가지 않는 걸 보니 단단히 화가 났군.’
할머니는 산모롱이에서 갈라지는 읍내 쪽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먼저 집에 가 있거라.”
할 수 없이 나는 집으로 갔다. 한참 후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쫓아나가니 할머니의 손에는 굵은 쇠줄이 들려 있었다.
“백구 니를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목에 굵은 쇠줄을 채웠다.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다. 하지만 할머니와 함께 있으니 괜찮다.
겨울의 문턱이었다. 할머니가 읍내 장에라도 가는지 나들이옷을 챙겨 입었다.
“할머니, 나도 따라갈래요.”
나는 또 뛰었다. 쇠줄이 무거웠다. 할머니는 이런 나를 향해 손사래를 치며 떠났다. 나는 하염없이 할머니가 지나간 동구 밖 길을 지켜보았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차가 무섭도록 빨리 달린다.
“할머니, 산모롱이 굽이 길은 사고가 많으니 조심하세요.”
나도 모르게 뜬금없이 이렇게 짖었다. 내가 방정맞은 말을 했기 때문일까? 어둠이 내려도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밤이 깊었는데도 가로등이 밝히는 동구 밖 길은 텅 비었다.
“할머니가 왜 오지 않을까?”
그때 길고양이가 왔다.
“할머니는 너를 버리고 가버렸어.”
“뭐?”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거든. 네가 싫어서 떠났다고.”
개가 싫어 주인이 집을 떠났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새벽이 되어도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고양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그다음 날 할머니 아들인 아저씨가 아줌마와 함께 왔다. 아저씨는 양동이에 물을 떠놓고 사료도 넉넉히 준다. 나를 보는 아줌마의 눈길이 싸늘했다. 말투는 얼음장보다 더 차가웠다.
“개 때문에 토요일마다 여기에 와야 한다는 게 말이 돼요?”
“어쩌겠소. 굶겨 죽일 수는 없으니.”
“그냥 다른 곳에 보내버려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어디로 보내버릴 것만 같아 불안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고맙게도 내 편이었다.
“어머니가 그토록 아끼는 백구를 어디로 보낸단 말이오?”
“족보 있는 진돗개라 알아보면 키울 사람이 있을 거예요.”
“백구는 어머니의 친구고 가족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요.”
“그럼 주말마다 대구에서 여기까지 계속 와야 한단 말이에요?”
“입원한 어머니한테 오는 길에 잠깐 다녀갈 뿐인데 뭘.”
순간 나는 할머니가 나를 버린 게 아니라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까지 고양이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어!’
고양이가 괘씸했다. 믿지도 않았지만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진실을 알았다.
‘오기만 해봐. 혼쭐을 내줄 거야.’
마침 고양이가 왔다. 많이 굶었는지 배가 홀쭉했다.
“사료 좀 같이 먹자.”
“너 같은 거짓말쟁이한테는 안 줄 거야.”
나는 으르렁거리며 경고했다. 그래도 고양이 입이 내 사료통에 간다. 너무 화가 나서 등을 물어버렸다. 고양이도 덤벼들었다. 나는 등의 털을 세우고 흰 이를 드러냈다. 고양이는 슬그머니 뒷걸음질로 물러나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다시 오기만 해봐라.”
나는 큰소리를 쳤다. 고양이는 먹지도 못하고 물리기만 해서 억울한지 양동이 물을 엎질러버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사료를 먹고 난 뒤에는 물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집 앞에 개울물이 흘러도 그림의 떡이었다. 한발 앞에 수도가 있어도 먹을 수가 없다. 목이 더 타들어간다. 이젠 견딜 수도 없을 것만 같다.
‘하늘이시여! 눈이라도 좀 내려주소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기운이 빠지면서 모든 것이 흔들린다. 땅도 나무도 집도 빙빙 돈다. 다시 목이 따가워지며 콱콱 막힌다.
‘참자. 주말이면 아저씨가 올 테니 조금만 더 참자.’
나는 이를 지그시 물며 버티기로 했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오토바이라도 곁에 있으면 할머니 냄새라도 맡을 수 있을 텐데......’
오토바이마저 그립다. 빈 하늘에 할머니의 얼굴이 어린다.
‘묶인 것도 할머니 사고도 물을 못 먹는 것도 모두 나 때문이야.’
생각할수록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고양이한테 먹이를 좀 주었더라면......’
누구나 죽기 전에는 착해진다더니 정말 그랬다. 사고뭉치여도 나를 사랑한 할머니처럼 나도 고양이를 용서해주고 싶다. 때마침 고양이가 왔다.
“백구야! 조금만 먹으면 안 될까?”
“그래 먹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부러웠다. 배가 부르자 고양이가 말했다.
“거짓말해서 미안해.”
“응, 그런데 어떻게 사고가 났니?”
“저기 산모롱이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한 승용차에 부딪쳤대.”
“많이 다치지는 않았겠지?”
“병원에 갔는데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들었어.”
“오토바이는?”
“할머니 퇴원하면 탈 수 있도록 아들이 수리 맡겼나 봐.”
고양이가 떠나자 다시 힘이 풀렸다. 검은 그림자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았다. 그때 귀에 익은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야호! 오토바이다.’
할머니는 아직도 병원에 계신가 보다. 그래도 괜찮다. 오토바이가 왔다는 것은 할머니의 퇴원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니 물이 엎질러졌구나.”
아저씨는 서둘러 양동이에 물부터 채워 주었다. 흩어진 구름 사이로 해님이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는다. 아직은 차갑고 시린 하늘이지만 오늘만큼은 봄볕처럼 따사롭다. 그 하늘에 할머니 얼굴을 그리며 외쳤다.
“할머니, 할머니 보고 싶어요.”
내 외침이 봄이 오는 하늘로 넓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첫댓글 올 여름호에는 동화로 당선되신 분이 두 분이나 됩니다.
기뻐하며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