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리 여행
벚꽃 구경을 위해 지인과 함께 중앙선 국철을 탔다.
전동차가 지날 때마다 산야에 핀 개나리와 벚꽃이 봄빛과 함께 다가왔다 사라졌다.
들판에 핀 보라빛 풀꽃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탄성이 절로 났다. 작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잔뜩 기대감을 품고 양수역에 내렸다. 그런데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작년에는 산 전체가 진분홍과 샛노랑 새하양으로 덮였었는데 검푸른 녹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도로변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자 개나리와 진달래가 보였다. 거리 풍경도 고급 커피숍과 음식점으로 변신을 거듭해 있었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가 호숫가로 접어들었다. 감촉도 부드러운 흙길 사이로 잔잔한 호수가 따스한 봄빛을 안고 유영하고 있었다. 물오리가 자맥질을 하며 먹이를 물었는지 물가에 포문이 일었다.
개나리와 벚꽃이 군데 군데 보였다. 호수 건너편 산에는 별장 같은 풍경이 보이고 양평으로 향하는 차량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봄바람이 햇살과 함께 마음속에 여유로움울 느끼게 했다. 자연은 순수함과 풍요로움과 힐링을 선사한다. 마음속에 끝없이 평화가 임하는 것 같다. 우리는 큰 대로변을 따라 걷다 양수대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우리가 가는 국밥집이 있었다. 나는 원래 뜨거운 국밥 종류는 좋아하지 않는다. 국수 종류는 너무 자주 먹어 질린 상태고 하여 고강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그 집은 국밥 중에서도 콩나물 국밥을 잘 하는데 펄펄 끓는 뚝배기에다 달걀을 풀어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데 맛이 일품이다.
곁들여 나오는 깍두기와 배추김치 노란 콩장도 맛있다. 땀을 흘리며 먹고 나면 자판기에서 커피도 뽑아 마실 수 있다. 겨울에는 무쇠 난로 위에 둥글레차도 따라 마실 수 있는데 그 은근한 맛이 아주 환상적이다. 음식점 바로 위층은 순복음교회인데 주일에는 조용기 목사님 이영훈 목사님의 설교를 화상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음식점을 나오면 바로 눈앞에 양수대교가 보이고 조금만 걸으면 두물머리 강가와 문호리로 가는 마을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나온다. 식사를 하고 나와 문호리 버스 시간표를 보니 50분이나 남았다. 그냥 가지 말까 하다가 근처에 있는 옷 가게로 들어갔다. 지인이 속옷을 놓고 한참 고르더니 드디어 사기로 했다.
나는 밖에 걸어놓은 잠옷 바지를 샀다. 둘이서 실컷 수다를 떠는데 한참만에 마을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를 타자마자 차창 밖으로 북한강이 기세 좋게 흘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거센 물살이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했다. 도로 주변에 샛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중간 중간 진달래와 벚꽃도 보였는데 작년 수준은 아니었다.
작년에는 흰 벚꽃이 주변 도로를 완전히 덮을 정도였는데 아직 봉오리만 있고 개화하려면 멀었다. 드디어 버스가 종점에 닿았다. 그런데 기대하던 꽃무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개나리도 벚꽃도 진달래도 이따금씩 눈에 띠는 정도였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가 내 단편 멜러 스릴러 드라마에 나오는 갤러리로 들어섰다.
작년에 개울가를 덮었던 벚꽃과 매화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괜히 왔구나. 잘못 왔구나 싶었다. 돌 탁자와 돌 의자만 그대로였다. 그래도 개나리는 주변에 피어 있어 사진 찍기에 좋았다. 한참 이야기 하는데 예술가 타입으로 보이는 중년남녀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들이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하기에 우리도 덩달아 인사했다. 화사하고 세련된 중년여자가 예술가로 보이는 남자에게 주변 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화랑 주변에 빨간 깃발이 꽂힌 철심이 박혀 있었다. 군(郡)에서 주변을 자전거 길로 만들기 위해 조성중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중년여자는 화랑 관장이었고 남자는 며느리의 아버지 사돈이라 했다. 차나 한잔 하라기에 화랑 내부로 들어섰는데 유명화가의 그림과 차를 마시며 담소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가 있었다. 커피 메이커 기계에서 커피 향내가 진동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국산차 향기도 봄빛과 함께 느껴졌다.
내부에서 바깥을 보니 풍경이 더 이채로웠다. 개울 건너편 산에 진달래와 개나리가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했다. 화랑 관장은 아들 며느리가 모두 한예종 미대 출신이라 했다. 자기도 마찬가지로 미술 전공했다는데 작년과 말이 틀렸다. 반갑다며 코엑스에서 하는 미술전시회 초대권을 주었다. 찻값보다 훨신 비싼 거라 했다.
화가들의 그림을 잘 감상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도착해 보니 대기소가 보여 들어갔다. 그냥 대기소가 아니었다. 잘 꾸며진 응접실 같았다. 탁자와 의자는 여느 커피숍 못지 않게 고급스러웠고 뒤에 있는 푹신한 긴 의자는 누워서 잠을 자도 좋은 침대 같았다. 창 밖에는 흘러가는 개울물과 산의 푸른 숲이 그대로 보였다.
더구나 대형 TV에서는 신사임당 재방송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마음 놓고 쉬었다 가도 좋은 동네 찻집 쉼터 같은 분위기였다. 한쪽 벽면에는 동화책으로 가득 채워져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했고 출입문 옆에는 우산꽂이도 준비돼 있었다. 여름에는 에어컨과 겨울에는 히터도 작동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서울 어디에서도 이와 같은 버스 대기소는 없을 것이었다. 쉬고 있는데 버스가 도착해 모두 우르르 뛰어나가 탑승했다. 다시 양수리에 내려 두물머리를 산책했다. 두물머리 강가는 언제 봐도 환상적이다.
어른 팔뚝만한 물고기가 강가에 많이 서식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 몰오리가 잠깐 잠수 타더니 떠올랐는데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물고기를 단번에 입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느티나무와 강가를 구경하고 서울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전자 알림판이 고장 나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이상하게 의자가 따듯했다.
노인들을 위한 온돌의자였다. 밧데리를 깔았는지 어디 연결고리도 없는데도 앉아 있는 내내 온기가 느껴졌다. 찜질 효과마저 느껴졌다. 노인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설치해 놓은 온돌의자는 사랑의 의지로 여겨져 참 마음이 훈훈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이윽고 도착한 버스를 타고 양수대교를 건너는데 어둔 강물 위로 낭만이 흘러가고 있었다.
도로를 달릴 때마다 차창 밖으로 샛노란 개나리와 벚꽃무리가 수도 없이 스쳐 지나갔다. 팔당댐을 지나고 망우리 고개를 넘었을 때 봄 기운은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들뜨게 했다. 어둔 밤에도 봄은 마음을 기운차게 했다.
end
첫댓글 좋은 구령했네요 / 나는 간접여해을 했어요
문호리 버스 정류장 대기소에 동화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어요, 동화작가들 살맛 나겠습
저도 매년 신작가님 덕분에 간접여행 잘 하고 있네요!
문호리 버스 정류장 근사하네요. 어떤 분의 아이디어인지^^
감사합니다. 문예신 단체로 여행 갔으면 하는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