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이 몇 군데 있다. 그 중에 속리산이 속한다.
명산 중에 산의 이름이 妙(묘)하다. 俗世(속세)를 떠나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중생의 삶이 속세를 떠난다는 것은 곧 세상과 이별한다는 의미이다.
이것도 음양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관계적으로 父母 兄弟 妻子息 親知 親舊
(부모형제 처자식 친지 친구)들 모두와 이별하고 홀로 산다는 뜻이다.
前者(전자)의 경우는 歲月無常(세월무상)의 자연 이치이니 말할 나위 없지만
後者(후자)의 경우는 罪(죄)를 짓고 세상과 강제로 격리되는 옥살이가 아니면
스스로 求道(구도)의 길로 접어들어 세상에서 왕따 되는 경우이다.
그것이 자연법이다. 道(도)는 자연의 이치를 말한다.
陽曆(양력)으로 사월 말, 陰曆(음력)으로는 삼월 말일에 속리산에 오르다.
癸巳生(계사생)인 후학 道伴(도반)이
觀音臺座 穴處(관음대좌 혈처)를 관하고 싶어 한지 수년 만에 마음먹고 결정한 등산이다.
이곳의 등정이 내게는 이번이 4회차이다.
道詵國師 風水秘訣(도선국사 풍수비결)에 조선 5대 명당 중 한 곳 이기에
높은 곳의 오르기 만만치 않은 산이지만 수차 올라본 땅이다.
동행 신청자들이 있어 完成數(완성수) 인 10명이 함께 오르다.
전 전날 고사리 꺾으러 다닌다고 하루 종일 산길로 무리했던 몸이어서 인지
오르막 등산길이 多少(다소) 힘들다 여기면서
완행 열차처럼 등산객들에게 길을 비켜주고
자주 쉬면서 오르니 등산길이 많이 지연되다. 휴식은 어려움을 해소시켜 준다.
두 시간 거리를 세 시간이나 소요되어 정상에 이르다.
三派水(삼파수)의 꼭지점이다.
빗물이 東(동)으로 흐르면 낙동강이고
西(서)로 흐르면 한강이며 南(남)으로 흐르면 금강이다.
등산 당일의 일자는
壬寅年 甲辰月(임인년 갑진월)의 막 날인 30일로 癸丑日(계축일)이다.
검은 소가들에 나왔는데 그 소의 정체를 세상이 알아보지 못한다.
소 울음소리로 엄마 찾는 날임을 不知(부지)한다.
다행히 전날 금요치성 참석 겸 래방한
여자성씨의 강씨 독자까지 동행하게 되어 완성수의 十數십수) 인원으로 채워지다.
姜氏 姓(강씨 성)의 讀子(독자)는
수년전에 고등학교 교장직책으로 정년퇴직한 학교 선생님 출신이다.
내가 쓴 부녀문답 네이버 글의 팬이면서
유튜브 강의까지 청취한 信實(신실)한 독자로서 직접 래방 하게 되다.
牧牛堂(목우당)에서 一泊(일박)하고 다음날 함께 산행에 동참하다.
동행자 열명 중 卯辰生(묘진생) 동방 方 三合(방 삼합)의 3명과
亥卯未生(해묘미생) 3명이 木局 三合(목국 삼합)으로 도합 6명이다.
계룡산에서 동방인 속리산의 천왕봉이 위치한다.
東方木道之義(동방목도지의) 이다.
그 외에 4명중 3명이 甲年生(갑년생)이니 東方木道(동방목도)의 因緣(인연)이다.
남은 1명이 公州出身(공주 출신)인 癸巳生(계사생)으로
이곳에 등정하게 한 主人公(주인공)이다.
그의 선친이 고향의 후뫼 石窟(석굴)에서 수도한 도인이다.
正午時(정오시)에야 목적지에 도착하다.
날씨가 산행하기에 딱 좋아 기분이 더욱 상쾌한 날이다.
萬山朝拜形局(만산조배형국)의 大地(대지)이다.
풍수지리를 숭배하는 某處(모처)의 人事(인사)가
오래전날 이곳에 장사 지내었는데
雙墳(쌍분)의 墓 二基(묘 이기)가
步哨兵(보초병)으로 자리 잡고 혈처를 保護中(보호중)이다.
아직 때가 되지 못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이 臺(대)위에 정좌하여 천하 중생들에게
此岸(차안)의 난세에서 彼岸(피안)의 龍華樂園 世界(용화낙원 세계)로 나아갈
從道(종도)의 길을 說破(설파)하는 땅이니
주인이 따로 있는 大地明堂(대지명당)이다.
혈처에서 天祭(천제)를 봉행 하다.
명당에 머물며 道談(도담)을 한 동안 나누다.
동행한 甲申生 老後學(갑신생 노후학) 으로 부터 풍수 질문을 받다.
한양 서울의 청와대 터를 잡던 시절
鄭 道傳(정 도전)과 무학대사가 서로 다른 주장을 했다는데
누구의 말이 맞느냐는 질문이다.
그래서 나는 청와대가 아니고 경복궁 터라고 먼저 수정하여 답하다.
질문의 내용은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배경으로 하여 東向(동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에 대해 정 도전은 동향을 하게 되면 칼바람이 일어나므로 안된다 하면서
현재의 경복궁과 같이 南向(남향)을 했다는 것이다.
나의 답은 이러하다.
일반적인 풍수 지리학적으로는 무학대사 말이 맞고
왕가의 입장으로 본다면 정도전의 말이 옳다고 답하면서
남향을 하면 동방의 청룡이 부실하여 장손이 힘을 못쓰고
동향을 하게 된다면 좌청룡이 북한산이 되어 좋고
剛(강)하여 특출한 인물이 출현하게 되므로 무학대사가 주장하였는데
정 도전은 그리 되면 살기의 칼바람으로 나라가 위태해 진다고 보았으니
이 또한 맞는 말이라
두 명사의 말은 다 맞다.
다만 잘난 자손이 많을 수록 좋은 것은 일반적인 풍수결이나
왕가에서는 여러 잘난 자식들이 출현하면
왕권을 놓고 다투게 된다는 관점이므로 정 도전의 말도 맞다.
특히 정 도전은 王(왕)은 명예직으로 있어야 하고
정치는 大臣(대신)이 맡아서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현대의 민주주의에 가까운 정치체제를 꿈꾼 것이다.
그러나 태종 이 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한 맺혀 죽은 인사가 되다.
정 도전은 당시에도 민주정치 제도를 주장했던 것이다.
현 민주주의 제도에서 왕은 명예직으로 있는 나라가 여러 나라들이 있다.
일본, 영국 등이 대표적인 나라이다.
그리고 대통령제의 국가에서도 대통령은 명예직으로 삼고
내각수반이 정치를 주관하는 내각제를 주장하기도 한다는 설명을 덧붙여 답해 주다.
下山(하산)하기가 아쉬운 통쾌한 上坐(상좌)의 자리이다.
四砂格(사사격)의 主山(주산)인 玄武(현무)는 天王峰(천왕봉)이요,
左靑龍(좌청룡)은 九屛山(구병산)이다.
그리고 文章臺(문장대)로부터 서쪽으로 감싼 아름다운 白虎(백호)는
후천 조화정부의 천자가 玄武經( 현무경)으로 造化(조화)를 부리는 형국이다.
朱雀(주작)으로 案山(안산)은 혈처의 同脈동맥)인데
높이가 더도 덜도 아닌 딱 알맞은 冊床形局(책상형국)이고
거리 역시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위치에 자리한다.
同脈(동맥)이 案山(안산)이 되면
臣下(신하)가 아들과 같이 한 집안에서 함께 살며 보필한다.
멀리로는 많은 산들이 내려다보인다.
왕이 아침조회에 모여 拜禮(배례)하는 형국이니
이를 일러 萬山朝拜 形局(만산조배 형국)이라 칭한다.
혈처가 940m위치이니 근방에서 이보다 높은 산이 거의 없다.
壇(단)위에 모셔진 혈지이다.
壇(단)의 형국이므로 혈처 앞은 절벽이다.
바위가 수직으로 사각지게 세워진 寶穴(보혈)이다.
그러면서 높은 곳이지만 평지처럼 안정적이다.
지리를 볼 줄 아는 神眼(신안)이라면 감탄하고 통쾌한 感(감)으로 보일 곳이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고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할 것인가!
天機(천기)의 숨겨진 자리이다.
혹 찾아내어 쓴다 해도 천벌이 있을 것이니 언감생심 두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이 즐거운 날에 소위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가지도자라는 국회의 위원이란 자들은
천하에 꼴사나운 낯 부끄러운 짓거리로 독주 판결을 내린 날이다.
지워져야 할 역사의 한 장면이다.
말대의 때가 다가오니 막바지 시운으로 콩나물 신세를 자초하고들 있다.
지구를 떠나야 할 자들이다.
물론 세계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는 실정으로 天運(천운)이 이러하다.
壬寅年(임인년)은 너나 할 것 없이 한계에 처하여 곤궁할 것이다.
많은 나라가 국가부도의 위기이다.
그럼에도 인기를 받고 있는 한류에 찬물을 끼얹는
위정자인 저들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을 낯 부끄럽게 하는 저들을 어찌 그대로 두고 볼까?
俗離(속리)로 修行(수행)하여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의 길 案內(안내)를 받아야 하는 중요한 시절이다.
[출처] #2460 나는 누구인가? - 俗離(속리)라야 사는 길|작성자 금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