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 죽
"○○ 어른요. 쇠 안팔라니껴."
" 금은 개않는가."
소를 반살림이라 했다. 마실에 큰 일소를 키우는 집은 땅마지기라도 붙여야 일소를 키우지 그렇지 않으면 남의 집 솬지를 배매기로 얻어 길렀다. 큰 소 한마리는 장골이 두서너 몫을 거든히 하는 큰 일꾼이다보니 일소가 없으면 논밭을 갈 수도 없고 제때에 씨값을 넣을 수 없어 남의 집 일소를 얻어 부리고 나면 그 값으로 하루 농사일을 거들어 주기도 했다.
"어른요. 쇠 놀거던 좀 빌려 주이소."
"어디에 부릴라고?"
"감재밭 디벨라고요."
"낮전에 고추 숭굴밭 디베고 나거던 오후에나 부리게."
"쇠가 많아 부시대니까 너무 후리지 말고 댕가리라도 한 버지기 타 맥여서 일 시키게."
봄은 농부의 소부질 소리에 깨어난다. 봄철만 되면 동네 소들은 쉬는 날이 없이 바쁘다. 작년 늦가실에 얼갈이 쳐 놓은 논도 다시 갈아야 하고 앞산 밑에 고추 숭굴밭도 디배야 하고 온 마실 논밭을 다 갈아야 하니 쉴 틈이 없다. 소등에 질매를 얹어 걸금도 내고 구루마로 짐을 실어 나르기도 해야 한다. 그럴라면 삼동에 쇠죽을 잘 쒀 맥여야 봄철에 일도 잘 하고 새끼도 잘 낳고 살피듬이 좋아져 쇠전에 내다 팔 때에 금도 잘 받을 수 있다. 소는 가정살이에서 가장 큰 생금주머니이라 반 ㅕ살림이다.
쇠죽 여물은 계절마다 조금씩 다르다. 특히 풀이 나지않는 삼동에 쇠죽을 잘 쒀 먹이고 더 잘 거두어야 봄철에 논밭을 갈 때 소에 힘이 붙어 일을 잘하게 된다. 쇠죽은 보통 아침 저녁으로 두번 쒀 주고 솬지를 낳으면 삼시로 쇠죽을 쒀 준다. 쇠죽 여물은 주로 볏짚을 작두로 잘게 썬 것에 가실에 콩타작하고 모아 둔 콩깍지도 좀 넣고 여름철에 베서 말려 놓은 풀, 댕가리(등겨), 볼살씻을 때 나오는 뜬물과 설겆이하고 난 구정물을 쇠죽솥에 붓고 소여물을 넣어 한참을 끓이다 보면 쇠죽솥에 첫 눈물김이 흐른다. 이때 소두베를 열어 기역자 모양인 쇠죽꼬꾸리로 여물을 골고리 디베어 한번 더 삶아주면 두불 김이 나오면서 구수한 내미가 나는 쇠죽이 된다. 쇠죽쑤기도 기술이 있어야 하고 정성을 드려야 소가 먹기 좋은 소밥이 된다. 쇠죽을 쑬 때 정지바닥을 청소하는 몽달빗자루를 궁딩이에 깔고 앉으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다 는 어른들 말씀에 겁이나 맨바닥에 궁딩이붙이고 불을 핵시다 보면 부지깽이 끝이 까맣게 타면 정지바닥에 글자도 쓰고 그림도 그리기도 했다. 시나브로 흘러간 그 시절을 한 꼭지 꺼내어 톱아 본다.
어매는 신 새벽 예배당 종소리에 잠 깨면 정지로 나가 어제 저녁 불아구리에 도닥여 놓은 잿불을 입김 불어 불 살려 쇠죽을 쑤신다. 겨울철 정지안은 한대 날씨 만큼이나 추워 버지기 물이 얼어 터지기도 했다. 그래서 버지기마다 철사로 태를 매워 사용했다. 쇠죽쑤는 불김에 마굿간이 따스해 지면 늙다리 암소도 굽은 등을 꼬랑지로 두드려 고추고 일어나면 어부지는 마굿간에 소부터 살펴 보신다. 소는 가족과 같아서 정성으로 때때 맞춰 쇠죽을 쒀서 먹였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쇠죽 내미에 소는 고개를 이리저리 꺼덕이며 질다란 혀를 코구무속에 넣었다 뺐다 널름 거리며 밥주기를 기다린다. 아부지는 쇠죽을 다 먹었는지 때때마다 쇠죽통을 일일이 살펴 보시며 댕가리 한바가지를 넌즈시 주신다. 소는 짐승이 아니라 한집 식구와 같아서 정성으로 보살피 신다. 소는 언제나 사람보다 먼저 쇠죽을 맥인다.
소 키우는 집에는 소 여물칸이 꼭 있다. 여물칸안에는 여물을 썰 때 필요한 연장인 발작두가 있다. 농촌 연장중에서 제일 큰 위험한 연장이라 볏짚이나 쇠꼴을 썰 때나 연풀을 썰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아아들이 연물칸 근방에서 얼쩡얼쩡 거렸다가는 댄통 혼줄이 났었다. 마실에 보면 작두로 여물 썰다가 실수로 손가락이 잘리신분들이 더러더러 계신다. 손가락이 잘리면 총 날람쇠를 못 당긴다고 군대도 갈 수 없었다. 우리 옆 집 형은 쇠죽솥을 타 넘다가 발이 빠져 크게 화상을 입기도 했다. 쇠죽이 주는 훈장이다.
겨울철에는 소가 추울까 봐 여름에 장만해 둔 보릿짚을 마구칸에 자주 깔아 주고 소 등에는 삼정을 입혀 소를 따뜻하게 해 준다. 아침마다 소를 마답에 매어 놓고 엉크런 싸리빗자루로 쇠등을 쓸어 주면 꼬랑지를 치켜들고 시원해 한다. 사람도 등떠리가 무러울 때 긁어 주면 시원한 것과 똑 같다. 피부에 붙어서 소 피를 빨아 먹는 부던지도 자주 잡아 준다. 어매는 겨울철에 쇠죽을 쑬 때에 잊지않고 장근 하시는 일이 있다. 내가 학교 갈 때 발이 시러울까 봐 쇠죽솥 솥전에다 운동화를 얹어 놓아 신발속을 따스게 해 주시고 소두베에 찬물을 부어 세숫물 대워 주셨다.
종다리가 봄을 물고 오면 노다지 쇠꼴 케러다니는 것이 내 할 일이다. 다랫끼 매고 쑥, 꽃다지, 풀 등을 호미로 캐서 뿌리에 붙은 흙을 봄물에 깨끗이 씻어 여물칸에 넣어 두면 쇠죽을 쑬 때마다 조금씩 넣어 끓여 주면 털가리도 빠르고 살피듬이 좋아져 억시기로 부시댄다. 봄철에 나는 쇠꼴은 사람으로 치면 '이밥에 고기반찬'을 매일 먹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부지런히 쇠꼴 케러 온 들로 다녔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저녁 쇠죽을 쑬 때가 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 여물을 준비해서 쇠죽을 쒀 준다. 쇠죽도 때때 맞춰 늦은 적이 없다. 소도 밥 때가 다 있다.
농사철이 시작되면 소를 식전부터 부리다 보니 아부지께서는 쇠죽에 신경을 많이 쓰신다. 쇠죽에 댕가리도 평소보다 더 넣어 주고 쇠꼴도 푸짐히 넣고 작년 가실에 벌거지 먹어 모아 놓은 쭉대기 콩도 조금 넣어 쇠죽을 쒀 소에게 먹인다. 한창 바쁜 모숭귀 철에는 논갈고 써래질도 해야하니 힘쌘 소도 코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이 든다. 이 때는 소도 삼시세끼로 쇠죽을 쒀 먹이고 사람처럼 새참으로 쇠죽을 준다. 때로는 힘이 부친다고 막걸리를 소에게 먹이기까지 했다. 소가 힘들면 사람도 따라 힘이 든다.
모숭귀 한철이 끝나면 소도 할 일이 없어 방학이다. 쇠죽도 쒀 주지 않고 아침에 소를 풀밭에 몰고 가 말때기를 박고 이까리를 질다랗게 해서 매어 두면 빙빙 돌아가며 알아서 풀을 뜯어 먹게 했다. 나는 오후만 되면 친구들과 소먹이로 간다. 주로 초선대 갱변이나 뒷뫼 그리고 문해 강나들에 소를 풀어 놓으면 지들 끼리 돌아 다니며 시시마꿈 배불리 풀을 뜯어 먹는다. 앞산 산그림자가 잠자러 마실로 내려 오면 소도 집으로 가고 싶어 한다. 어스름한 저녘길을 소이까리잡고 방천 길을 갈 때면 논에서는 억머구리가 '꿰액꿱' 그렇게도 울었다. 워낭소리 딸랑이며 삽적거리에 들어서면 기다리시던 아부지께서 소 이까리를 받아들고
"원아 소 잘 맥였다"
하시며 마당귀퉁이 마답에 소를 매어 두고는 소 곁에 모깃불을 피우신다. 소에 대한 지극 정성이다.
"원아, 앞산 가매실댁 밭 더겁하고 아랫깨 너네 외갓집 논둑에 꼴비지 마라. 오늘 낮전에 농약 뿌렸다."
더러는 농약을 친 줄도 모르고 쇠꼴을 베서 쇠죽을 쒀줬다가 소가 설사를 하고 심하면 죽기까지 했던 일도 있었다.
오늘날은 쇠죽을 거이 쑤지 않는다.
알갱이 사료와 볏짚을 생여물과 그냥 같이 준다. 들일도 시키지 않고 가두워 두고 길러 빨리 살을 찌워 고깃소로 내다 팔기 위해서다. 소는 식구가 아니라 고깃덩어리 상품이 되었다.
"원아, 쇠죽솥 소두베에 물 뜨사났다. 얼른 낯 씻고 학교 갈 준비하거라."
세월도 그렇고 그러하게 무시로 흘러 갔고 쇠죽쑤시던 부모님을 그리움으로 품는다.
지끼미, 어린시절만 생각하면
맨날 나만 슬프고 나만 그립다.
우 ㅓㄴ
https://youtu.be/aFmg-YLth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