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족보》에 붙인 서문〔崔氏族譜序〕
옛날의 이른바 ‘친한 이를 친히 한다’는 것은 반드시 구족(九族)을 거두는 것이니 구족이란 위로 고조(高祖)부터 아래로 현손(玄孫)까지일 따름이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구족을 말할 때 외가가 아홉 가운데 셋을 차지하고 처가가 둘을 차지한다고 하니 구족을 거둔다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예(禮)에는 상치(上治)도 있고 방치(旁治)도 있으니 ‘치(治)’라는 것은 삼년복으로부터 감쇄(減殺)하여 기년복이 되고 기년복으로부터 감쇄하여 오월복이 되고 오월복으로부터 감쇄하여 삼월복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적손(適孫)으로 조(祖)의 후사가 된 자는 삼년복을 입고, 증손으로 증조의 후사가 된 자 역시 삼년복을 입으며, 현손으로 고조의 후사가 된 자 또한 삼년복을 입는다. 세대가 비록 점차 멀어져도 모두 부자 관계의 천륜이 있기 때문이다.
방치(旁治)라고 하는 것은 조부가 같을 경우에는 구월복을 입고, 증조부가 같을 경우에는 오월복을 입으며 고조부가 같을 경우에는 삼월복을 입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종부형제(從父兄弟 사촌)도 역시 형제이고, 종조형제(從祖兄弟 아버지의 사촌형제, 자기의 재종형제)도 형제이며, 족형제(族兄弟 동종(同宗) 유복친(有服親) 안에 들지 않는 같은 항렬의 형제)도 형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부가 같거나 증조부가 같거나 고조부가 같은 경우도 아버지가 같은 경우와 같다. 친속 관계가 비록 점점 멀어진다 해도 모두 형제의 윤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개 부자와 형제의 윤리는 천하에 모두 통용되는 것이어서 달수와 더불어 감쇄되지 않으니 이것이 구족을 거두어야만 하는 이유인 것이다.
《주관(周官)》에서는 육행(六行)을 설명하면서 ‘목(睦)’을 앞에 두고 ‘인(婣)’을 뒤에 놓았다. ‘목(睦)’이라고 하는 것은 동성(同姓)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고 ‘인(婣)’이라고 하는 것은 이성(異姓)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다. 예로부터 군자가 동성과 친하게 지내면서 인척들과 화목하게 지내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이른바 외가와 처가를 동성과 비슷하게 대한다면 부자 형제의 윤리는 천하에 밝혀질 수 없으니 어찌 구족(九族)이 어지러워지지 않겠는가?
대저 외구(外舅 장인)는 시마복(緦麻服)에 해당하는 사람일 따름이요 외형제(外兄弟 고모의 아들) 역시 시마복에 해당하는 사람일 따름이다. 그리하여 옛날에 족보를 잘 만든 자는 모든 사위들과 외속들은 생략하고 자세히 적지 않았으니 이성이라고 하여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그러한즉 《주관(周官)》에서 인(婣)을 뒤에 둔 것은 진실로 씨족의 족보를 바로잡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혜공(文惠公) 영규(永奎)는 고(故)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 부(溥)의 후손이다. 고려 시대에 공이 있다하여 수성(隋城)의 백(伯)에 봉해졌고 최씨 성을 하사받았다. 그 자손은 14대에 걸쳐서 현달하였고 그의 사위와 외속들 가운데도 조정에서 벼슬을 하면서 경대부가 된 자 또한 많았다. 그러나 족보를 만들면서 동성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쓰고 이성에 대해서는 생략하였으니 아름답지 않은가.
대저 이성으로는 사위보다 친한 이가 없다. 그러나 사위를 그 조부의 후사로 삼지 않는 이유는 부자의 윤리를 어지럽힐까해서이다. 가깝기로는 외형제만한 이가 없다. 그러나 외형제를 친족에 포함하지 않는 이유는 형제의 윤리를 어지럽힐까해서이다. 그러므로 《주역》에서 “족속을 구별하고 사물을 구별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이른 것이다. 세상의 씨족들이 보첩(譜牒)에서 이성을 구별하지 않아 미생(彌甥 자매의 손자, 즉 생질의 아들)처럼 소원한 관계라 하더라도 모두 싣지 않음이 없는데 최씨는 이성을 구별하여 족보를 만들었으니 세상의 씨족들보다 매우 현명하도다. 이에 서문을 쓴다.
- [주-D001] 구족이란 …… 있는가 :
- 구족(九族)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고조(高祖)부터 현손(玄孫)까지의 친척이라는 설이 그 첫째이다. 이는 《예기》 〈상복소기(喪服小記)〉의 “아버지와 자기와 자식 삼대(三代)가 있고 할아버지와 손자를 더하여 오대(五代)를 이루며, 다시 증조와 고조 및 증손과 현손을 더하여 구대(九代)를 이룬다.”라는 말에 근본한 것으로 공안국의 주장이다. 둘째는 부족(父族)이 넷, 모족(母族)이 셋, 처족(妻族)이 둘라는 설이다. 이 때 부족(父族)으로는 고모의 자녀, 자매의 자녀, 딸의 자녀, 자기의 동족(同族)을, 모족(母族)으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의 자녀를, 처족(妻族)으로는 장모, 장인을 포함한다. 이는 임소영(林少㯋)이 《이아(爾雅)》에서 주장한 설이다. 조선 후기 구족에 대한 논란은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증은 “고모와 자매와 딸의 남편은 모두 다른 종족의 사람이지만 우리 집안에 들어왔으므로 우리 종족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고모의 자식은 외형제(外兄弟)가 되고, 자매의 자식은 생질(甥姪)이 되고, 딸의 자식은 외손(外孫)이 되는데, 이들은 우리 종족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여 후자의 설을 지지했다. 정조 때 이 문제가 경연에서 논란이 되었을 때 이서구는 공안국의 설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고 황경원 역시 이성은 친족이 아니라는 입장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明齋遺稿 卷21 答李彥緯武叔》 《弘齋全書 卷97 經史講義34》
古之所謂 “親親”者,必收九族,九族者,上自高祖,下至玄孫而已矣。然而今人言九族也,母黨居九之三,而妻黨居其二焉,安在其收九族也?
禮有上治,有旁治,治也者,自三年殺之爲期,自期殺之爲五月,自五月殺之爲三月。然適孫爲祖之後者,爲三年,曾孫爲曾祖之後者,亦爲三年,玄孫爲高祖之後者,亦爲三年。世雖寖遠,而皆有父子之倫也。
旁治也者,於同祖也,爲九月,於同曾祖也,爲五月,於同高祖也,爲三月。然從父兄弟,亦兄弟也,從祖兄弟,亦兄弟也,族兄弟亦兄弟也。是故同祖同曾祖同高祖,猶同父焉。屬雖寖疏,而皆有兄弟之倫也。蓋父子兄弟之倫,達於天下,不與月數而殺之,此九族之所以收者歟!
《周官》六行,先其睦而後其婣。睦也者,親於同姓也,婣也者親於異姓也。自古君子旣睦矣,未嘗不婣也。而所謂母黨妻黨疑於同姓,則父子兄弟之倫不明於天下,幾何其不亂九族也?
夫外舅緦而已矣,外兄弟亦緦而已矣。故古之善爲譜者,凡女婿及其外屬,略而不詳,爲其異姓而外之也。然則《周官》之後其婣者,誠可以正氏族之譜也。
文惠公永奎,故新羅敬順王溥之孫也。王氏時,以功封爲隋城伯,賜姓崔氏。其子孫歷十四世而光顯,其女婿與其外屬,仕於朝,爲卿大夫者亦多矣。然其爲譜詳於同姓,而略於異姓,不亦懿乎?
夫異姓莫親於婿,而不以婿繼其祖者,恐其亂父子之倫也。莫近於外兄外弟,而不以外兄外弟合其族者,恐其亂兄弟之倫也。故《易》曰 “類族辨物”,此之謂也。世之氏族於譜牒,不別異姓,雖彌甥之疏且遠者,無不具載,而崔氏能別異姓,以爲譜,其賢於世之氏族,亦遠矣。於是乎序。
- [주-D002] 예(禮)에는 …… 있으니 :
- 원문의 ‘上治’란 조상들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것을 말하고 ‘旁治’란 형제들과의 차서를 바로 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대전(大傳)〉에 “위로 조부와 부친의 사당을 잘 관리하는 것은 존자(尊者)를 높이 받드는 것이고, 아래로 자손을 잘 다스리는 것은 친히 해야 할 사람을 친히 하는 것이며, 옆으로 형제간에 잘 지내는 것은 음식의 예절로 친족을 단합시키고, 소목의 일로 질서를 정하는 것이다.〔上治祖禰, 尊尊也, 下治子孫, 親親也, 旁治昆弟, 合族以食, 序以昭.〕”라는 말이 있다.
- [주-D003] 주관(周官)에서는 …… 놓았다 :
- 육행(六行)은 여섯 가지의 선행(善行)이다. 《주례(周禮)》 〈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에서 육행(六行)을 설명하면서 효(孝)ㆍ우(友)ㆍ목(睦)ㆍ인(婣)ㆍ임(任)ㆍ휼(恤)의 순서로 나열하였다. ‘목(睦)’은 구족(九族)과 화목한 것이고, ‘인(婣)’은 외척(外戚)과 화목한 것이다.
- [주-D004] 문혜공(文惠公) 영규(永奎) :
-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후손이자 고려 현종의 외손자이다. 1261년(원종2)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 대경을 지내고 이후 문학에 임명되어 서경에서 학문을 가르쳐 명망이 높았다. 충렬왕 때 수주(隋州) 일대의 풍속이 퇴폐하고 사람들이 인륜을 지키지 않아 왕이 분노하자 자청해 호장(戶長)으로 부임하여 짧은 기간에 기강과 풍속을 바로잡았다. 이에 왕이 가상히 여겨 1302년(충렬왕28)에 상을 내리고 수성백(隋城伯)에 봉한 후 최씨 성을 하사함으로써 수성 최씨의 시조가 되었다.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 [주-D005] 족속을 …… 구별한다 :
- 《주역》 〈동인괘(同人卦) 상(象)〉에 “하늘과 불은 동인이니, 군자는 이로써 족속을 유별하고 사물을 구별한다.〔天與人同人, 君子以類族辨物.〕”라고 하였다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 박재금 이은영 홍학희 (공역)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