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수 목사
요즘 한국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는 단연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 며"라는 영화 입니다. 이 영화는 "실미도"라는 최근의 히트작을 물리치고 1위로 올라갔습니다. 개봉첫날 무려 33만 명의 관객을 동원 했습니다. 그런데 첫날 30만명을 동원 했다 는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나 두 영화의 특징은 1950년대 6.25전쟁과 한국의 70년 대를 배경으로 만든 것으로서 상당히 극우적인 성향이 강 한 반공 교육을 목표한것 같은 극단적 내용을 담고 있습 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제작비만무려 147억을 들여 3년 반동안 만든 작품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6.25전쟁에 끌려 나가 싸우는 가난한 집 두 형제가 전선에서 서로가 서로를 도울려고 하는 눈물 어린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그 깊은 흐름속에는 처절하리만치 무서운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보살피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책임감이 강한 맏형 진태와 대학진학을 눈 앞에 두고 형과 함께 갑작스럽게 강제 징집되어 전쟁이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스스로 강해 져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변해가는 동생 진석이라는 두 형제의이야기 그래서 전쟁도 삼킬수 있었던 눈물겨운 형제애를 다룬 영화입니다.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지금은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마지막 사무라이"라는 일 본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도 일본 사람들이 미국과의 합작으로 만든 것 이지만 그 영화의 내용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철저하게 우익사상을 주입시키려는 의도가 깔린 작품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일본과 한국을 휩쓸고 있고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이런 영화 들을 보면 우익에 속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보급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착각인지 사실인지?) 굉장히 멧세지가 강합니다.
이런 현상은 또 다른 좌익 운동에 대한 저항과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일본 사람들도 10년동안의 불황에 시달리면서 그런 불황이 좌익세력의 영향이라고 판단했는지 극우파들의 활동이 강렬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런 문제들을 단순하게 풀이한다면 부의 균형이 깨진 사회의 불만이 폭발하는 극단적인 두 집단의 충돌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공산당 사상과 신 사회주의 운동이 다시 우리 사회에 먹혀 들어가고 있는 것도 결국은 배 고픈 사람들의 불만을 충동질해서 생겨난 현상입니다. 빈부차가 원인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상에는 약 63억의 인구가 살고있다고 하는데 그들 가운데서 약 1/3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절대 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들 입니다. 물론 상대적인 빈곤이라는 측면에서 따지자면 인구의 반이상이 가난하다고 생각 할 지 모르지만 제가 말씀 드리는 절대빈곤층이란 하루 하루 먹고사는 일도 보장되지 못한 채‘주 림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말 합니다.
그런데 63억 인구 가운데 또 다른 1/3은 경제적으로 과도한 풍요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계산 하면 이 땅을 살고 있는 풍요로운 사람 한 명이 가난한 사람 한 명을 책임지면 이 땅의 가난은 완전히 해결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소위 부자라는 사람들은 갈수록 욕심이 더 늘어 부의 균형이 깨 지는 폭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 제 하는 사람들은 부유층이 아니라 소위 중간 계층에 속한 사람들 입니다.
부자들은 부에 대한 욕심 때분에 가난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눈도 멀었고 귀도 막 혔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이 안보이고 그들의 신음소리도 안들리는 것 입니다.
그래서 과격한 혁명운동이 일어나고 그것이 피의 숙청으로 이어지고 결국 두 집단 이 피차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극단적인 싸움을 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가난의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바로 알고 그 말씀에 따라 살 필요가 있는 것 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이런 "공평과 정의"의 문제일 것 입니다.
여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자와 빈자가 서로 다 잘 살 수 있는 윈윈 전략이 있습니다. 성경의 원리는 매우 단순 합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 먼저 우리들이 물어야 할 질문들이 있습니다.
1.이 땅에는 왜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의 원인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이유이고 또하나는 사회적인 이유입니다.
개인적인 이유는 한 마디로 게으름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 합니다.
잠6:9 "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 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요즘 한국의 서점가에는 온통 아침형인간,저녁형 인간,새벽형 인간이라는 책들이 깔려있습니다만 어떤 형의 인간이든 부지런 한 자는 가난한 법이 없습니다.
잠언의 말씀들을 몇 구절 더 보겠습니다.
잠10:4 입니다.
"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19:15절입니다.
"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 것 이니라"
잠20:13절입니다.
"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에 족하리라"
게으름과 나태함과 늦잠 자는 버릇과 같은 것들은 명백한 개인작인 빈곤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부도덕한 사람들도 가난해 집니다.
잠23:21절에 보면… "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 질 것 이요…."
잠28:19절 입니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좆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이런 말씀속에서 우리는 게으름과 함께 술취함,탐식, 방탕함,사치와 같은 부도덕이 가난의 원인 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 뿐만 아니라 부정, 부조리, 부정부패와 같은 비윤리적인 사회 일수록 빈곤층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 다.이런 경우는 개인적인 원인과 사회 심리적인 원인도 섞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사회적인 원인을 든다면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재앙, 기근, 홍수, 지진, 온역 같은 것 입니다. 아시아는 지금 조류 독감으로인해 양계하던 사람 양돈하 는 사람 목축하던 사람들이 줄지어 망해 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루 아침에 날벼락 입니다. 카나다에도 소 키우는 축산업에 종사하던 분들이 완전히 몰락해 가고 있습 니다. 이런 것을 천재지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이런 천제지변의 원인 가운데는 인재라고 하는 사회적인 책임도 무시 할 수가 없습니다.
미리 예방을 잘 했더라면 나지 않을 홍수도 있고, 가축들에게 나쁜 사료를 주지 않았다면 조류 독감이 안 생길 수도 있을 것이고, 소고기를 적게 먹었으면 남미의 정글도 살리고 생태학계가 파괴되는 현상도 안 생겼을 것이고 아프리카의 사막화 현상도 안 일어났을 것 입니다. 그래서 사회 윤리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회적인 책임은 사회가 공동으로 고통을 분담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며 무감각하게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20%의 풍요 계층이 80%의 자원을 쓰고 있고, 미국은 자기나라보다 인구가 5배도 큰 중국에 비해서 40배도 더 되는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유럽의 낭비와 북미의 낭비문제만 개선되도 이 세상은 얼마나 더 밝은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빈곤의 문제를 개인들의 자업자득이라는 말로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구제 라는 가르침에 대해서 무관심 할 수가 없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 하는 빈곤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2.성경은 빈곤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
구약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은 한 마디로"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가난한 람들,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관심을 우리의 관심으 로 받아들여 빈곤한 자들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공유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10:14,18"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 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 하나이다. 주는 벌써 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고아와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시146:5,7-9"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 는 복이 있도다…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 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 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자를 해방 하시며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 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그래서 구약에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년 제도나 희년 제도와 같은 법들은 이런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남의 땅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었더라도 희년이 돌아오면 그 땅을 본래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돌려주도록 법으로 제정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먹고 살길이 없어 땅을 저장 잡히고 임시로 내 땅을 잃어버려도 그 땅을 영원히 잃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희년이 오면 당당히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자비로운 배려의 덕분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가난해 지는 것을 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수하는 게절에도 주인이 추수한 곡식이나 곡물을 싹쓸이 할 수 없게 되어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삭은 남겨두어 가난한 사람들이 줍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룻이라는 여인은 낯선 이방인으로서 낯선 이스라엘 땅에서 생존 할 수 있었 습니다. 보아스는 이런 하나님의 법을 충실하게 순종하던 사람 이었습니다.
구약에 보시면 3년에 한번씩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제의 십일조를 드리는 법이 있었습니다.
신14:28-29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여러분 이런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율법이 무엇이며 또한 율법의 진정한 정신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역사의 어느 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찾아오기 위해서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분은 그 당시 세계를 제패하던 로마의 권력의 심층부를 장악하며 화려하게 군림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그 당시 세계의 지성들이 다 모여 있던 그리이스의 아테네나 알렉산드리아 같은 곳에 철학자들의 주님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부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힘없고 가난한 민중의 한이 서려있는 처절하게 도 가난했던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님 이었던 요셉과 마리아도 가난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돈이 없어 아기가 난지 팔일이 되어 결례 받는 날에 겨우 비둘기 한 쌍을 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부유한 사람들은 양이나 소 같은 가축을 예물로 바쳤으나 가난한 사람들은 비둘기를 제물로 바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사렛 회당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공생애 첫 번째 멧세지도 "성령이 내게 임하시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는 것 이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만 배려해 주시고 부자들은 무조건 배척 하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주님의 복음 선포의 일차적 관심이 가난한 사람 들 이었다는 말 입니다.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통한 소망 마져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 갈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서 나온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가난과 문맹 퇴치 같은 것들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아닙 니다. 주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 다.그러나 동시에 주님은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셨습니다. (오병이어)
이것을 나눔의 기적 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사실은 나눔의 실천이 가져온 기적이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청량리역 광장에서 라면 하나로 시작한 다일 공동체는 지금 "다일무료천사 병원"을 건립하게 되었고 "밥퍼 나눔의 집"을 통해 수천 수만의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인도의 가난한 도시 켈컬타에서 빈민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면서 부터 시작한 한 연약한 여인 테레샤 의 구제와 나눔의 손길은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는 거대한 사랑의 파도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구제의 손길과 함께 절대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더 중요한 사역은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므로 영혼을 구원 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은 육신이 먹어야 할 떡의 필요도 채워 주신다는 것 입니다.바울도 말하기를 갈2:10절에서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했습니다.
구제가 곧 선교는 아닙니다. 그러나 구제는 선교의 문을 여는 가장 위대한 방편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는 대개가 공산권과 이슬람권 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가장 기막힌 전략은 구제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공산권과 무슬렘권을 뚫고 들어 갈 수 있는 강력한 선교의 도구가 구제 입니다.
주님은 종말을 다루고 있는 마태복음 25장에서 결국 마지막 심판의 기준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십니다.
" 내가 가난 했을 때 언제 너희가 나를 도왔는가?>
" 내가 굶주렸을 때 / 내가 병들었을 때 /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 내가 추위에 시달릴 때 / 내가 목 마를 때…. 너희들은 나에게 관심을 가졌었는가? "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 할 것 입니다. "주님에게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있었겠습니까? 도데체 언제 주님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씀 이십니까?> 그 때 하셨던 예수님의 유명한 대답을 기억 하십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 이니라"
구제는 예수님의 최우선의 사역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 과 관심은 대단한 것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와 함께 가장 중요한 사역이 구제와 긍휼의 사역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물질관을 확립해야 합니다. 부유함과 물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 일까요? 부유함은 축복 일수도 저주일수도 있습니다.
먼저 전도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전5:19-19
"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 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 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기서 성경은 부요함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축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많아지면 죄를 질 가능성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부요함의 대표적인 두 가지 죄는 교만과 불신앙입 니다.
잠28:11"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겨도 명철한 가난한자는 그를 살펴 아느니라"
신8:10-14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 여 그를 찬송하리라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급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나를 죄와 저주와 질병과 가난에서 이끌어 내신 주를 잊지 말라!!!....
성경은 부유한 사람들이 자기를 의지 하거나 재물을 의지할 가능성이 많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돈이 나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고, 돈이 나를 안전하게 하는 것 이라고 착각하는 것 입니다. 여기서 온갖 죄악들이 발생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돈은 책임있게 관리되어야합니다. 내것 이라는 착각을 부단히 버리고 돈 이야 말로 하나님의 것이라는 청지기 의식을 철저히 가지고 책임있게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번에 구제헌금을 사용하면서도 우리들의 책임있는 노력이 무척이나 중요 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구제 사역은 확실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이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냥 남에게 맡기는 것도 무책임 한것이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헌금 을 사용하는 것도 게으름의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미화 약 5만불 정도(43,000 + 추가 헌금) 되는 돈을 가지고 옷을 살 수도 있고, 쌀을 살수도 있고, 석탄을 살 수도 있고, 컴퓨터를 살수도 있고, 비료를 살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가서 연구해 보니 가장 유익한 것이 약 7-8개월을 미리 내다보고 곡식 종자를 좋은 것으로 찾아내어 보내주는 것이 적어도 100-140배 정도의 효과가 있다 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근원적인 필요가운데 현재 가장 알맞는 것이 "종자 개발" 이라는 것을 알고 종자를 찾아내어 보내 주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당장에 먹을 수 있도록 옥수수 60톤과 쌀 30 톤 그리고 옥수수 종자 20톤을 보내고 평양에 있는 즉석 국수 공장에 밀가루 60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의 사역은 약3,000톤이 넘는 엄청난 양의 곡식을 지원 한 셈이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은 200 씩 150만명의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양 / 만오천명/100일분) 돈을 책임있게 관리하는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구제를 많이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유한 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명령합니다.
딤전6:17-18 "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3.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어떤 축복을 가져 올까요?
두 가지 축복을 받는데 물질의 축복과 영적인 축복 입니다. 구제 할 수록 윤택해 집니다. 과도하게 아낀다고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라는 것은 남에게 퍼주는 것인데 어떻게 물질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 입니까?
잠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하나님이 체무자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구제 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빚졌다"고 말씀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빚을 내가 직접 갚아 주겠다고 말씀 하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 같으신 채무자 라면 아무리 많은 돈을 꾸어 주었다 할지라도 걱정 할 것이 없겠죠? 하나님은 구제를 좋아하던 이방인 고넬료의 선행을 기억 하셨다고 성경은 증언 하고 있습니다.
(고넬료 뿐 입니까? 테레샤/ 미국/유럽의 나라들/선명회/구제순 " 부자순….)
성경이 가르쳐주는 돈 버는 방법대로 하면 틀림없습니다. 돈 버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항상 주는 자가 더 복되도다고 했습니다. 구제는 물질의 축복을 받는길 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제는 영적인 축복도 받습니다.
성경은 경건 생활의 본질이 구제라고 가르칩니다. 경건하다는 말이 외형적으로 거룩한 폼을 잡는다는 말 이 아닙니다. 구제하는 사람의 삶의 모습이 경건생활 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신앙의 행위면을 강조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약1:1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 이니라”(돈 유혹)
성경은 금식 기도에 대한 교훈을 베풀면서 이렇게 말 합니다. 사58:6…
"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우리는 여기 까지만 읽기를 좋아 합니다.rfjsk 성경은 그 다음 절에서 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말 합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 입니다. 이런 금식에 대해서 성경은 이런 보상을 약속합니다. 8절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4.어떻게 구제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1)자족하는 마음 입니다./ 절제/절약/저축/자족/
2)사랑하는 마음 입니다./가난한 자/헐 벗은 자/배고픈 자/ 그들의 영혼과 육체3)인내하는 마음 입니다./인내/협력/기다림/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가장 중요한두개의 성경구절 / 작은 성경 / 요3:16 요일3:16
우리가 사랑의 빚진 자 임을 안다면 이제는 그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자족하는 삶과 살ㅇ과 인내의 마음을 갖고 살 수 있다면 누구나 구제 할수 있습니다.전도와 구제 이것은 교회의 가장 큰 사명입니다.
기도: 자기 중심의 생각과 생활 회개/ 주를 닮아 남을 위해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