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YOU
꽃망울을 틔울까, 매화가 망설이던 시절이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고 소문은 흉흉했다. 섬유화가 진행된 폐는 감염에서 회복되더라도 손상이 영구적이라고 한다. 심한 근육통은 불면不眠을 가져와 우울증과 자기학대로 이어진단다. 시뻘건 선혈처럼 낭자한 소문은 사람들을 안으로, 안으로 몰아넣었다.
뚝, 고개 꺾이는 동백꽃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공기흐름은 수상했고 어지럽게 떠도는 바이러스에 급습을 당할까 두려웠다. 문밖은 온통 살얼음판이었다. 송곳이나 레이저 같은 무엇이 스치기만 해도‘쨍그랑’깨질듯 한 긴장감이 도시에 팽팽했다.
청정도시를 질투했던가. 대수롭잖게 여겼던 환자가 COVID-19에 양성반응하며 벼린 칼날이 되어 팽팽함에 닿았다. 바이러스에 침투 당한지도 모르고 금호강 동쪽에 있는 직장으로 호텔 뷔페로, 택시를 타기도 했단다. 갑작스럽게 존재가 드러난 바이러스에 당황했다.
마른 검불에 불붙듯 두려움이 화르르 번졌다. 삽시간이었다. 호텔 방향으로 출장을 갔던 직원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왔다. 광활한 중국 대륙을 마구 할퀴었으니 한반도 작은 강 언저리쯤이야 일순간에 점령하리라. 환자가 머물렀다는 주변으로 눈도 돌리지 않았다. 왠지 그곳에는 강력한 회오리를 일으키며 몸속으로 파고들 독한 균들이 창궐하고 있을 것 같았다.
불온한 소문은 곧장 생물이 되어 날뛰었다. 독이 서린 털끝을 세운 붉은 성게를 닮은 코로나는 단숨에 공공의 적으로 등극했다. 비상사태였다.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은 사람들이 회의장에 모였다. 비상근무반이 조직되고 환자가 다녀간 현장으로 급히 투입되었다.
놀란 개나리가 노랗게 바들바들 떨었지만 공격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차디찬 허허벌판을 달려오는 속도와 펀치가 놀라웠다. 후퇴해야 했다. 새해 업무보고를 시작으로 정례조회 전시회 공연 일정이 줄줄이 최소, 연기되었다. 복지관 체육관 문화센터도 굳게 문을 닫았다. 거리엔 인적이 끊겼다.
일찍이 본 적 없는 무법자였다. 만물의 영장을 능청스럽게 굴복시키면서도 소리도 냄새도 남기지 않았다. 증상으로만 존재를 드러내는 비겁자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휘저었지만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적을 모르니 백전백패였다.
기세등등해진 적군은 혼비백산한 사람들을 매일 수 백 명씩 굴복시켰다. 난데없는 침략을 당한지 열흘이 넘자 달구벌은 위험한 도시가 되었다. 대구에 사는 사람도, 고향이 대구인 사람도 감염원으로 의심 받았다. 고속버스 ktx조차 머무는 걸 꺼렸고, 사업차 대전에 들른 친구는 부산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했단다.
공격당한 사람은 갈수록 많아졌고,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에서는 입국을 금지했다. 병원체를 지닌 감염도시는 의기소침해져 백척간두에 섰다. 다급하고 간절했지만 맨손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에 빌고 문둥병을 낫게 했다는 예수님, 만병을 치료한다는 약사여래불을 부여잡고 발원했지만 요행은 찾아오지 않았다.
침몰하는 <달구벌>호에 희망의 깃발을 달고 닻을 올려야 했다. COVID-19 급류에 휩쓸려 발버둥치는 달구벌호를 구해야 했다. 치밀한 소독이라는 창矛과 세심한 방역을 방패盾로 삼아 노를 저었다. 거친 물결에도 달은 차오르고, 북풍한설이 휘몰아쳐도 봄은 오는 법이다. 선장은 애면글면 노를 저었고 선원들은 차오르는 위험을 소독제와 마스크로 씻고 막으며 분투했다.
불안이 하늘을 덮고 공포는 너울성 파도로 삶의 경계를 넘실댔다. 방역차량과 소독약품이 온 종일 도시를 돌아다녔다. 환자를 이송한 차량은 소독하고 거리는 방역됐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감염 검사를 받았다. 삼교대 방역, 증상 상담, 격리자 모니터링, 감염차단을 위한 점검. 마스크 세대별 배부... 숨이 찼고 연일 강행군하는 행정력은 충혈 된 눈으로 지쳐갔다. 격전지 최일선의 사람들은 일상이 사라졌다.
내 집, 내 가족조차 의심스러웠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자 마주앉아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외출자제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생계가 위태해졌다. 정리해고 된 실업자가 쏟아졌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창업자들이 쓰러지고 넘어졌다.
회오리처럼 솟구쳐 순식간에 급습하는 적군과 외부로 퍼지는 바이러스를 막을 음압텐트가 곳곳에 세워졌다. 너도 나도 검사를 의뢰하여 넓은 체육공원에 임시 검역소가 설치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들이 달구벌로 달려왔다. 눈물겨웠다. 패전으로 주눅 들던 도시는 천군만마를 얻어 전열을 재정비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너를 위한 마스크 쓰기와 손 소독,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했다. 드라이브슬로우 방식의 검진과 면봉을 이용한 간단한 병원체 체취에 세계가 놀랐다. 지역사회와 시민단체는 자율적으로 방역단을 조직하여 다중이용시설을 안전하게 지켰다.
평생 익명으로 살아갈 타인을 걱정하며 행정복지센터를 무료 방역하겠다는 업체도 나왔다. 군부대도 연계했다. 자체적으로 마련한 소독제를 등에 진 장병들이 동대구 복합 환승센터 버스차고지 재래시장을 두루 돌며 불안을 씻고 희망을 심었다. 각자도생의 쓸쓸했던 시간이 훈훈한 연대의 for YOU로 빛났다.
생계를 위협받던 시민들도 for YOU행렬에 동행했다. 도시락과 식혜 찹쌀떡 피로회복제. <당신을 위한> 응원을 만난 도시는 코로나 극복의지로 풀full 충전되었다. 희망으로 환해지고 동행한다는 든든함에 벅찼다. 서로를 염려하는 for YOU는 현장을 뛰는 사람들에게 생명수가 되어 가슴을 적셨다.
사월 중순, 이지러지고 차오르던 달이 쉰 밤과 이틀 낮을 지나던 날이었다. 생명수를 달게 마신 사람들이 희망의 첫 꽃망울을 터트렸다. 온갖 시스템이 힘을 모아 피워낸 꽃송이“0”은 눈물겨워 눈부셨다. 무차별 공격에서 모두가 비켜섰던 그 날, 달구벌전투의 승리가 예감되었다.
격전지 달구벌의 승자는 대구였다. 남他의 비말 따위에 몸을 숨기고 공격을 감행하는 파렴치한은 애당초 상대가 아니었다. 자질 없는 비겁자를 당당하게 따돌렸다. 위험이 흩어진 사이로 햇살이 내려와 도시를 보듬는다. 아직 치료제는 없지만 for YOU는 시들지 않으리라. 2차 3차 팬데믹이 오더라도 대구를 다시 멈추게 할 순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