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로새서 3장 23~24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장 40절)
저는 약 1년 전에 위의 말씀을 기반으로,
‘전문성과 소명의식’ 즉, 한계상황에서의 우선순위를 직업적 소명에 두느냐, 삶의 유지를 향한 본능에 두느냐에 따라 내가 생명을 책임진 사람들의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에 평소에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 할 수 있는 전문성을 키우고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할 정도의 소명의식을 가질 것을 권면했었으며,
‘타인을 바라보고 듣는 법’ 즉, 서로를 보다 잘 보고 보다 잘 듣기 위해서는 내가 어두움 속에서 맑은 눈으로 살피며 침묵 속에서 경청함이 선행되어야 함을, 아무리 눈이 부시게 화려하며 옮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하여도 그것이 본질에 어긋나는 불빛과 소리가 되는 순간, 이것들은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하고 결국은 재난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상기해드렸었으며,
‘얼음판 위에서 길을 찾는 법’을 통하여 도무지 길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낙심했었지만, 가까이 접근해서 집중을 해보면 결국에는 길이 보였었으며, 그렇게 결국에는 보였었던 길이란게 없었던 길이 갑자기 생겼던 것이 아니라 이미 생성 또는 계획되어 있었던 길을 단지 사람의 아둔한 눈이 보지를 못했었던 것일 뿐이었던 것을 고백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힘을 사용하는 법’을 통하여 지혜롭게 힘을 아낄 때와 과감하고 저돌적으로 사용할 때를 잘 구분해야 하고, 그 순간을 잘 선택해서 집중함이 옳은 삶의 전략이라는 교훈을 나누었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7개월 반 동안 타고 온 배는 7개의 커다란 화물창에 석탄을 최대 93,336톤 까지를 실어서 수송할 수 있는, ‘산적화물 전용선’ 또는 ‘벌크선’이라고 하는 배였습니다. 배 자체의 무게는 51,365톤이며 길이는 229.2m, 폭 38m로 흔히 확장 공사 이전의 파나마 운하를 통과 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선박이라는 의미로 ‘Panamax’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 배는 한국 동해안의 호산항과 남해안의 하동항에 위치한 화력발전소에 석탄을 정기적으로 수송하는 계약이 되어있는 배이기 때문에 주로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 즉 칼리만탄섬으로 석탄을 실으러 가는데, 가끔씩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내려가기도 합니다. 제가 승선하는 동안에는 임시로 싱가폴 해협을 통과해서 말레이시아의 Johor Bahru 서쪽에 있는 Tanjung Pelepas 까지 간적이 있었는데, 비록 며칠간이었었지만 그나마 태국이랑 가까워져서 잠시나마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했었습니다.
이 배에는 항해사 실습을 하는 학생을 포함하여 22명이 타고 있었는데, 4명의 한국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도네시아인들 이었습니다. 이들 중 1명은 발리섬 출신으로 힌두교도였고, 3명은 크리스찬, 나머지 14명은 모두 이슬람교도들이었습니다. 이는 어떤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못 먹고 가능한 한 할랄 방식으로 마련된 음식들을 먹어야 하며, 어떤 사람은 소고기를 못 먹고, 어떤 사람들은 끼니때마다 김치가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인도네시아도 격동의 현대사를 겪었었기 때문에 지역별로 정치와 종교 그리고 역사에 대한 기억이 상이한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한국인들 역시 나이와 출신지역과 종교가 저마다 달랐었습니다.
요즘에는 배를 6개월에서 8개월을 타면 2~3개월을 쉬고 다시 배를 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렇게 길게 배를 탄 다음에 휴가를 받아서 집으로 갈 때는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이번 배를 내릴 때 특히 그랬었는데, 아마도 그리운 가족들을 만난다는 커다란 기쁨에 더하여 몇 달간 저를 누르고 있었던 책임을 무사히 내려놓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음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1. 겸손하지 않으면 괴물이 된다.
선장을 영어로 master 또는 captain이라고 합니다. Master는 이 배를 책임지고 운항하는 동안에는 선주, 즉 이 배의 owner를 대리한다는 의미입니다. Captain은 보다 실무적으로 ‘이 배를 지휘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의 계급 체계에도 captain이 있는데, 보통 육군과 공군, 해병대에서는 대위 직급을 말하지만, 군함을 보유하고 있는 해군에서만은 대위보다 세 직급이나 높은 대령 직급을 의미합니다. 이는 배에서 선장이 짊어지고 있는 책임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일이 충분히 단련되고 건강하며 지혜롭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맡아야 하는 일이라는 데는 대부분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저의 직업적인 지위를 자랑할 목적으로 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저는 작년부터 이 일을 맡았으며, 이는 같은 학교를 같은 날 졸업한 동기생들보다 정확하게 10년을 더 고생을 한 뒤 이 일을 맡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10년의 세월이 경제적인 계산으로는 아쉽기 그지없지만,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가지고 선 자로서 ‘정말 억울하기만 하냐?’라는 질문에는 ‘아닙니다. 오히려 더 감사 합니다’라는 답을 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2001년에 대학을 졸업한 저는 좋은 회사에 입사해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현대그룹에 속했던 그 회사는 지금은 없어진 한진해운과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1, 2위를 다투던 해운회사였었기 때문에 크고 빠른 배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고 항상 한 발 앞서갔었던 정교한 업무 메뉴얼과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제도와, 무엇보다도 ‘우리가 일류다’라고 하는 자부심이 넘쳐흐르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당연히 고생을 했었지만, 곧 적응을 해서 모범사원 상도 받는 등 인정을 받았었고 일을 하는데 재미를 붙여갔었습니다. 그랬더니 진급도 뒤처지지 않고 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일등항해사가 되었습니다. 한 부서의 leader이며 선장 바로 아래 직급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당시에는 제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었던 타락이 제 마음속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일등항해사로 배를 두 번을 타고 내린 후 아내를 만나서 결혼 하고, 하민이가 태어나고 많이 아팠었던 아내를 두고서는 더 이상 멀리, 오랫동안 집을 떠나있을 수 없어서 각고의 노력 끝에 외국계 시추선 회사에 취직을 해서 한동안은 좋았었습니다. 이후 국제유가가 폭락을 했고 전 세계적으로 시추작업의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미국 회사 특유의 쿨한 결정으로 저는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복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레고동산’을 차려서 가게를 운영하며 책도 써보고 했었지만, 결국 복직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화물선이 주류인 한국 회사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다는 낙담에 많이 망설였었지만, 결국 돈과 시간만 더 허비한 끝에 한국 회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2년 만에 한국 회사로 다시 돌아갔지만, 상황은 제가 생각했었던 것 보다 훨씬 좋지 못했었습니다. 이미 저보다 한참 후배들이 선장으로 진급해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난처한 경우도 있었고 일반적으로 해양대학 출신들이 다들 타는 배를 놔두고 외국계 회사에서 일을 했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배척을 당하기도 했었습니다. 여기에는 화물선을 오랜만에 탔다는 것에 대한 당연한 염려도 있었지만, 전에는 한국인이 쉽게 갈 수 없었던 좋은 조건의 회사에서 일을 했었다는 사실에 대한 시샘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여러 고비들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잘 참아내긴 했는데, 만일 제가 지켜내야만 하는 가족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참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었을 것입니다. 이러다가 내가 식구들을 지킬 정도의 최소한의 야성마저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라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왜 내가 이런 일들을 겪어야만 하는지가 당연히 매우 억울하고 궁금했었지만, 납작 엎드린 겸손에 익숙해지고 시간이 지나니까 문득 ‘어쩌면 이 몇 년간의 고생이 나에게 반드시 필요했었던 과정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속한 분야에서는 나름 빠지지 않는 학교를 졸업했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책임 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육상의 다른 직업들 보다는 제법 괜찮았었던 돈벌이에 몹시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배에서 일을 하는 동안 뒤처지는 동료들을 잘 이해하지를 못했었고, 부조리를 없애겠다는 명분하에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도 대놓고 무례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었겠지만, 마치 서서히 데워지는 물이 담긴 냄비 안에서 결국에는 둥둥 뜨고 만다는 개구리처럼 저는 저도 모르게 그동안 매우 천천히 타락해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도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마음껏 드러내고 지냈었던 저의 모습에서 과연 누가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요? 또한 당시에 제가 누렸었던 좋은 회사와 빠른 진급이라는 특권이라는게 일정 부분 이상은 저의 노력만이 아닌,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해운 산업기반의 혜택에 의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거저 받은 은혜를 거저 나누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자만의 도구로 변질시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과정 끝에 주류에서 벗어나서 눈물 젖은 빵을 씹은 후에야 힘들어하는 동료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의 얼굴 뒤로 그들의 가족들이 보였으며, 지금도 때때로 마주치는 거만하고 무례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저의 예전 모습을 발견하며 반성하고 또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이를 갈며 증오하던 모습들이 예전의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언제든 다시 식구들을 배고프게 만드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학습했음으로 인하여 직업적으로도 더욱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같은 해에 같은 대학을 졸업한 동기생들보다 화물선에서의 선장 진급이 정확하게 10년이 늦었습니다. 한참 후배들이 저보다 더욱 멋진 배를 타거나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직업적인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도선사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전의 저였었다면 결코 용납하기 힘들었던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이라도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하민이와 하율이가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라는 질문에 보다 쉽고 간단하게 답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고, 아내에게 이전 보다는 덜 미안하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이 경력을 바탕으로 더욱 큰 도전이 가능하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보다는, 남들 앞에서는 용케도 잘 숨겼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과 저만이 아는 저의 직업적인 성품의 매우 심각했었던 결함이 상당히 높은 확률로 야기했었을 지도 모를 ‘타인과 그의 가족들의 상처와 눈물, 직장 안에서의 분쟁과 그로 인한 사고 또는 재난’을, 제가 그토록 뒤처지며 담금질 당하며 연단되는 과정을 통하여 단 그만큼이라도 막아질 수 있었음을... 상처에 소독약이 부어지듯이 매우 쓰렸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감사합니다.
2. 책임의 무게
이렇게 매우 겸손해져서 새로 맡은 선장이라는 직책은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범위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입니다. 배에서 가장 많은 급여를 받고 존중을 받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배에서는 하루 24시간 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저의 책임이 아닌 일이 없습니다.
같이 일하는 선원이 아파도 저의 잘못인 것 같고, 계획에 없이 입항이 늦어져서 보급을 제때에 받지 못해 반찬이 떨어져도 다 저의 잘못인 것 같아 노심초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휴식을 취해야 하는 시점에도 저를 대리하여 당직을 수행하고 수리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잠을 포기해야 할지를 매번 고민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항차였었던 지난 7월 말에 인도네시아에서 필리핀 서안을 지나서 우리나라 동해시 바로 아래에 위치한 호산항을 향해 올라오는데, 먼저 지나간 5호 태풍 ‘독수리’는 중국 동안으로 상륙하여 많은 피해를 입혔고, 이어서 발달한 6호 태풍 ‘카눈(Khanun)’도 거의 같은 진로로 이동할 것이 예상되었으며 실제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태국어로 ‘잭풀룻’을 의미하는 이 카눈이 갑자기 그 진로를 크게 바꾸어서 우리나라 쪽으로 향하자 이대로 정해진 항로로 계속 올라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쪽으로 항해해서 태풍을 피할 것인지를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하루 연료비가 약 2,400만원인 이 배가 어느 쪽으로 항해하여야 이 태풍을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피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회사와 선주사와 기상 정보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회사에서 저마다의 advice를 제공했었지만, 결국 결정은 제가 해야 했었고 책임 또한 저의 몫이었습니다. 내가 결정을 할 수 없다고 다른 이에게 미루게 되면 무능한 선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를 피하고자 아무렇게나 결정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고민 끝에 6시간 주기로 업데이트 되는 태풍 예상진로와 같은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만한 결정을 내려서 배를 대만해협 쪽으로 돌려서 우리나라 서해안 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동해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입항이 약 3일 지연되었을 뿐 다른 피해는 없었지만 이 3일간을 무척 초조하게 보냈었으며, 매번 다른 상황이 강약을 다르게 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되는 일임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선원들의 건강과 사기에 직결되는 식사 문제도 매우 중요합니다. 매달 약 980만원어치의 주.부식을 주문해 올려서 선원들이 잘 먹도록 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수시로 식자재 창고와 주방을 살피며 관리를 해야 하는데, 이게 너무 습관으로 굳어져서 휴가를 받아 집에 와서도 냉장고와 찬장을 관리하며 잔소리를 하다가 결국엔 아내에게 혼이 나는 선장님들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배에서 다루는 거의 모든 문서에 선장의 서명이 필요한데, 이 서류가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하여 내가 가진 권한만큼의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서명을 하는 일에도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달마다 선원들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수당, 주.부식 구입비, 각종 운항 경비 지출 등으로 한 달에 약 2,000천만 원 정도의 현금 사용에 대한 경비 보고서를 자세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짐을 가득 실은 배는 그렇지 않은 배보다 훨씬 더 주의해서 조종해야 합니다. 일단 배가 물에 잠기는 깊이가 달라집니다. 제가 이번에 타고 온 배는 그 차이가 약 10m에 달하는데, 육지나 섬에 가까운 얕은 바다에서는 불과 몇m 차이로 배가 좌초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배의 방향을 틀 때가 되어 조타기를 조작해도 그 반응이 현저하게 늦으며, 한번 방향을 돌리기 시작하게 되면 무거운 만큼 관성이 커지기 때문에 이를 멈추게 하는 것도 짐이 적을 때보다 훨씬 오래 걸리며, 회전반경도 커지고 입항을 할 때가되어 배를 정지시키는데 소요되는 거리도 늘어납니다. 마트에 가서 카트에 무거운 물건을 많이 실어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얼추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또한, 같은 양의 연료를 소비해도 speed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렇듯 책임이 늘어나게 되면 그 부담이 매우 늘어나게 됩니다. 저는 영어로는 ‘overall charge’ 라고 표현되는 말 그대로 전적인 책임을 지도록 규정된 선장이라는 직책으로 배를 타는 한 언제라도 이 일을 내려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선원들이 규정된 절차를 준수하여 성실하게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는 무엇이 되었든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본인의 직무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은 그 권위만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인하여 혼탁해집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임의 정도에 따라 그 일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적은 책임을 맡았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다 큰 책임을 맡게 되었을 때 비로소 보이게 되고 이를 각자가 체득한 가장 좋은 방식으로 짊어지며 살아가는 것이 발전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을 배우기 위해서 굳이 배를 탈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이것은 인생을 살면서 형이 되어보고 누나가 되어보고, 선배가 되어보고, 직장에서 leader가 되어보고, 무엇보다도 부모가 되어보면 결국에는 이해 할 수 있는 원리이며,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숭고한 과정 중의 하나입니다.
3. 존중이 먼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가 타고 온 배에는 14명의 인도네시아 무슬림 교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독실한 신자들이었으며 이들 중 한 사람이 작업 중에 손가락을 다쳐서 봉합 수술을 했었는데, 그 때가 라마단 금식기간이었기 때문에 낮 시간에는 항생제를 먹는 일 조차 무척 망설이기도 했었습니다. 매일 배가 이동함에 따라 달라지는 메카까지의 방위를 식당 앞 게시판에 공유하며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기독교인 선장인 제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변화시켜서 그들이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 그 복음이 그 가정으로 전해져서 그 지역이 변화되고, 결국에는 온 인도네시아가 복음화 되는 그런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선교사가 아닌, 인명과 환경과 재산상의 안전을 책임지는 선장으로 그 배를 탔었습니다. 제게 그들은, 가증한 이방 종교를 가지고 있는 적이 아니라 반년 이상을 함께 생활하며 일을 하는, 유사시에는 서로 생명을 의지해야 하는 동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항상 halal 음식을 구해주려고 노력했었고 그들이 모르고 돼지고기를 먹게 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썼으며, 작업과 당직에 지장이 없는 한 그들이 한 달간의 라마단 금식 기간을 보내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고, 라마단이 끝난 후 가지는 연휴인 ‘하리라야’ 때는 조촐한 파티를 열도록 허가해주었으며, 이슬람교의 신년에 해당되는 날에는 회사에서 보고서를 잘 썼다고 지급한 포상금 200달러로 명절 물가로 인하여 값이 1.5배나 오른 염소 고기를 사주었습니다. 집사인 제가 이를 모두 기쁜 마음으로 했다면 뜨악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전도의 방식에 대한 논쟁은 인류가 수천년 동안이나 피를 흘리며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저는 우리 기독교의 진정한 주적은 다른 종교가 아닌, 공산주의가 아닌, 동성애가 아닌, 바로 우리의 타락과 반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죄악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다른 종교, 공산주의, 동성애 등과 같이 우리가 저지를 가능성이 극히 낮은 죄를 비난하면 우리는 그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더욱 가증한 죄를 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목소리 높여 비난하고 혐오하는 동안 한국 교회는 하나님과 쌍욕을 할 정도로 친하다는 전광훈씨 같은 사람의 망령된 목소리가 곳곳에 울려퍼지는 것을 막지 않았으며, 세습하는 교회의 분열과 몰락을 방조했으며, 사기와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들을 제대로 심판하는데 매우 소극적이었으며,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현대사 속에 교회가 정치세력의 도구가 되어 권력에 기생했었던 일을 반성하고 사과할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도대체 이것들이 왜 죄냐고,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불쾌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줄로 압니다. 하지만 조직적으로 행하는 죄는,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앞사람 옆사람 뒷사람이 함께 저지르는 죄는, 그것이 죄라고 인식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집단적 타락’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인류 역사의 비극은 다름 아닌 이 집단적 타락으로 인하여 수없이 반복되었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으며, 이로부터의 돌이킴이 없는 한 앞으로도 반복될 전망입니다. 그리고 침묵하는 자들도 결국은 공범인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저는 정말 많이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민망함으로 인하여 저의 입으로 직접 복음을 전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도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만약 저의 권한을 사용했었다면 한번쯤 다 모아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도 선물하고 입술로 영접을 고백하게 해서 복음을 전하는 흉내를 내어 저의 영적인 허영을 채울 수도 있었지만, 저는 복음은 ‘전하기만 하는’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달’ 즉, ‘전해서 그 대상의 영혼에까지 이르게 함’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계를 사용하여 복음을 억지로 그들 앞에서 읊어댈 수도 있었지만, 전도라는 것은 마치 그 옛날 할머니의 포근했던 사랑을 통하여 제게 복음이 들어왔었던 것처럼 먼저 신실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일이 선행됨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승선 중에도 단 한사람도 기독교인으로 변화시키지를 못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제가 ‘모든 일을 주께 하듯이’ 성실하고 투명하게 일하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께 한 것’이라는 마음으로 함께 일하는 있는 선원들 모두에 대하여 그들의 실수에는 관용을 베풀고 책임은 제가 지는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기독교인다운 직업적 자세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언젠가 누군가는 이로 인하여 마음을 여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4. Chain에게도 경의를!
각국의 해군, 해병대나 해양계 학교들의 상징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닻, 즉 anchor입니다. 많이들 보셨을 것입니다. Anchor는 해저면에 내려져서 물 위에 떠있는 배가 이동을 거의 안하고 한 자리에 머물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래쪽이 뾰족한 생김새로 인하여 이 anchor가 해저에 푹 박혀 들어가서 버티는 힘으로 배를 한곳에 묶어두는 원리일 것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커다란 배의 anchor도 보통 30~40t 정도일 뿐입니다. 이 무게로 몇만톤이나 나가는 배를 붙잡아두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를 가능하도록 조력하는 것은 anchor와 배를 연결해주는 chain이라는 존재입니다. 큰 배에서는 영화에서 보듯이 ‘닻을 내려라~!’하면서 anchor를 확 떨구는 경우는 좀처럼 없고 천천히 신중하게 내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해저에 닿은 anchor의 양쪽 fluke이 해저에 제대로 박히게 되면 chain을 수심 등에 따라 계산된 길이까지 계속 천천히 내리고 배는 후진을 해서 꼬임 없이 일자로 잘 위치하게 합니다. 이렇게 잘 자리잡은 chain은 바람이나 조류가 약할 경우에는 적은 장력을 유지하다가 이들이 거세져서 배가 뒤로 밀리게 되면 단단히 힘을 받게되어서 배가 chain의 길이만큼의 거리 밖으로 벗어나지 않토록 해줍니다. 물론 이 chain도 anchor 없이 chain만 내린다면 제 기능을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anchor와 chain은 서로의 좋은 조력자이며, 이중 chain은 멀리서 본다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숨은 조력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여러 기관이나 조직들의 symbol들 중 chain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anchor만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anchor가 이토록 상징적인 의미로 사랑받는 이유는 이 역시 물속에 들어가서 드러나지 않게 희생하며 묵묵히 제 역할을 한다는 이유 때문이며, 이를 ‘anchor 정신’이라고 합니다.
저희 가정이 두 아들을 이곳 치앙마이에서 양육하며 생활하는데 소요되는 돈은 제가 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 아내가 집에서 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저의 직업적인 특성상 전업주부인 아내의 조력이 없다면 저희 가정이 계획한 목표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나가서 돈을 버는 anchor와 같은 역할은 제가 하지만, 하민이와 하율이를 지혜롭게 양육하여 정서적인 안정을 유지하며 함께 예배의 지정석을 충실히 지키는, 든든한 chain과 같은 역할은 아내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내를 포함하여 자신이 드러남을 포기하고 chain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chain 보다는 anchor의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본능이 있으며,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chain 보다는 anchor와 같이 어느 정도는 가치가 드러나는 사람이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Anchor 역시도 배의 충실한 조력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충분히 겸손한 위치까지 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anchor와 같은 사람이 된다면 참 좋겠지요. 성경은 바울의 바나바와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 모세의 아론처럼 수많은 anchor 같은 조력자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그 아름다운 조력 역시도 ‘조력자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chain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주님의 나라에서는 이들이 더 귀하지 않을까요?
5. 상륙정의 hatch가 내려가는 순간
1998년에 개봉된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초반부의 전투장면이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표현되어서 ‘전쟁영화는 이 영화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번 captain 배역을 맡았던 톰 행크스가 미육군 대위 Capt. Miller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쉽을 인상적으로 연기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카메라는 노르망디 해변으로 향하는 상륙정 안의 미군 병사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hatch가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 다음 장면이 다소 충격적인데, 노르망디 해안을 방어하고 있던 독일군의 강력한 중기관총에서 발사된 탄환에 순식간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병사들의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모습으로 상륙을 준비하고 있었을 테지만 상륙지점에 도착해서 hatch가 내려가는 순간, 적의 십자포화에 노출되는 순간, 총알 세례를 받고 쓰러질지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저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이 영화를 종종 떠올리곤 하며, 어떤 때는 다시 돌려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모습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 테지만 인생의 중요한 시험과 조우해서 우리의 가식의 베일이 내려지는 순간, 우리의 악함과 나약함이 사방에 노출 되는 순간, 그대로 무너져버리고 말지 이를 이겨내고 결국에는 정금과 같이 단련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총알에 눈이 있어서 어떤 조건을 충족시키는 병사들은 피하고 그렇지 않은 병사들의 몸에만 명중하는 것이 아니듯이 때로는 불가항력적인 환란과 시험들이 있습니다.
바다에도 여러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태풍의 진로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는 등 예전보다는 안전해지고 있지만, 먼 바다는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닙니다. 태풍이 가까워져서 몹시 사나워진 바다를 직접 목격한 사람은 자신이 섬기는 신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미 수십년 전부터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안전’이 거의 종교와 같이 숭배되는 개념이 되었지만, 여전히 작업 중에 크고 작은 사고가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배들이 점점 커져서 길이가 300m이상 되는 경우도 보통이고 400m에 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를 바다에서 운항하다보면 항상 소금기에 노출되어있고, 여러 작업들로 인하여 페인트가 손상되고 녹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녹을 벗겨내고 페인트칠을 하는 작업을 항상 해야 합니다. 배 앞쪽부터 뒤쪽까지 다시 페인트칠을 하는데 반년 가까이 걸리는데, 뒤쪽까지 마칠 때 쯤이면 이미 앞쪽에 다시 녹이 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어차피 이렇게 해도 일어날 일이고, 저렇게 해도 일어날 일이고, 해봤자 또 다시 반복해야 하는 일에는 그냥 손을 놓고 있어야 할까요?
제가 어렸을 때 개미집을 발견하고 장난으로 이를 밟아서 무너뜨렸을 때 그 개미들은 그 당시의 저로서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었는데, 아주 잠깐 동안의 혼란스러운 몸짓들 바로 뒤에 각자의 역할대로 먼저 알들을 옮기고 나서는 역시 각자의 역할대로 처참하게 무너진 집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든 그 집을 다시 밟아서 망쳐버릴 수 있는 커다란 괴물이 옆에 있는데도 주저하지 않고 맡은 일들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낮 미물인 이들의 행동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었을까 하지만, 적어도 제게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는 모습’과 매우 닮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는 사람이 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낙심해서 포기하거나 또는,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며 쉽게 의욕을 잃어버릴까요?
Hatch가 내려가는 순간 바로 옆의 전우가 허망하게 쓰러져가는 상황 속에서도 천천히 진격하던 영화 속 병사들의 모습들처럼, 하고 싶은 일 보다는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에 두며 결코 빠른 속도는 아니더라도 올바른 방향을 향하여 살아감을 한번이 아닌 여러번이라도 다시 일어나서 반복하는 것이 바로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으로부터 기인한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이번 휴가기간 동안 제게는 ‘해야 할 일’이라고 오해했었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주일 설교라는 ‘해야 할 일’이 생기게 되었고 이를 준비하는데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준비한 것 보다는 훨씬 정교하고 깊이가 있는 말씀이 이 시간, 이 예배당에 힘 있게 울려퍼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넓은 아량으로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마저도 준비하느라 쉽지는 않았지만 저는 이 덕분에 감사하게도, 다음 휴가 때 부터는 비로소 직업적으로 ‘해야 할 일’이 될 예정인 다음 도전을 보다 성실하게 준비할 힘을 얻었고 그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기쁨으로 행하는 순종과 헌신을 통하여 그러한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노인과 바다를 읽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루 연료비가 약 2,400만원인 배. 태풍과의 정신적 사투,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바로 우리의 타락과 반목.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 anchor와chain.... 영화제목 같은 두 분의 역할을 앞으로도 지켜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