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산 2부
홍종음
장금산7/보릿밭
*옥정 댐을 준공하고 처음
만수위로 차오르던 해
비도 어떻게 그런 비가 내렸을까
여름방학 기념으로
친구 따라 보릿밭 갔던 날
친구의 부친께서 능다리가
떠내려 갈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오셔
서둘러 다리를 건너 주시던
날을 생각한다
격류에 휘감기는 교각이
윙윙 울어 놀란 어른은
반대편으로 까마득히 서서
하얀 손을 어서 어여 흔들어 대고
종아리에 스치는 물살을 견뎌
아이 혼자 어떻게 건넜을까
갓 배운 가곡을 흥얼거리며 오르내린
보릿밭하면 그 친구를
고향이 물에 휩쓸리던
그 날을 생각한다
다리 난간에서 내려다본
아름드리 벚나무 군락 속에
들어앉은 일본식 정원 능교 국민학교가
급류에 떠내려가던 기억을
*유역 변경식 댐: 장금산 건너편에 산허리 뚫고
섬진강 물길을 바꿔 수력발전과 농업용수 공급을 한
1965년 당시 남한 최대 칠보발전소의 취수원
* 그날의 담수로 수재민 삼천세대 이만명이 부안 계화도
경기 안산으로 원조 밀가루 이주를 당하였고 이후 수도권에서 모여 살아
호남시 달동네의 시작이 되었으며 하필이면 세월호 침몰 때 희생된 학생들 중엔
안산으로 갔던 수재민의 후손이 많다
두세대에 걸친 실향민들의 뿌리 내리기가 그 꽃들이 남해바다에 진 것이다
장금산8/굴렁쇠
하루에 두 번 덜컹버스
지나가는 신작로 길엔
수몰 후 드러난 長錦橋에서 빼낸
굵은 굴렁쇠가 굴러다녔다
철 모르는 아이의 신명이
어른들의 눈총을 피해
요리조리 잘도 굴러다니다가
황토 먼지가 산도 집도 집어삼킨
탱크와 야포
군용트럭 행렬이 끝도 없이
장금산 절벽을 흔들어
굴렁쇠는 돌담 뒤로 도망쳐
오들오들 떨었다
상잔의 난리 지나가던
핏빛 기억들이 그 당시도 여전하던
어른도 아이도 숨어 눈만 빼곰
그날은 3 공화국 국가 최고 국민회의 의장이
섬진강 댐 준공식에 오던 날
굴렁쇠는 툇마루 밑에 꼭꼭 숨어들어
오들오들 떨었었다
장금산 9/ 까치더덕
뱀딸기 빨간
아그배나무 감고 올라간 넌출
출렁거리는 까치더덕 밭
엄마가 뱀 물린다
어서 어여 불러도
종 꽃 달랑달랑 향기 너무 좋아
못 들은 척 캐본
알록알록 작은 까치 불알
까치더덕 캐러 가면
까치독사 똬리 풀며 날름날름
호랑이 장가간 날
까치독사 지키는 더덕밭에
長錦山 기운 함초롬히 서린 꽃타래
진한 향내 승천하는
무지개가 떴다
장금산 10/감자 꽃
實하게 밑이 들라고
흰 꽃 자주 꽃대 순 집어
밭둑으로 던지는 어머니와
얼른 주워 머리에 꼽고
좋아라 따라다니는 여동생과
하지 지나며 주렁주렁한
열매를 가지고 놀은
조막손 씻겨주며 맛본 아린 맛이
몸의 어디에 배어
교외를 달리던 차 멈춰
길 아래 피운 감자 꽃 꺾어 드니
그날이 아릿아릿
그 아이가 컸으면
저들 중에 섞여 앞 다퉈 가는
중년의 아줌마 되어
푸진 원망들 주고받는 오누이로 살며
마른 정까지 다 가져가도 좋아
장금산 11/꿩
-내리던 눈 그치고
꿩이 난다
눈 쌓인 바람골을 건너서 날아가면
양지바른 데서 비칠거리던 동네 청년들
우르르 몰려나오고
겨울 내내 골방에 틀어박혀
동치미에 물고구마 까먹어가며
날밤 새운 노름꾼 남정들
외딴집 과수댁 바람기를
무다리에 비벼가며 길쌈 놓던 동네 아낙들
모두 모두 토방을 내려서 구경 났다
난리 지나가고 십여년
아직도 회문산에 공비 출몰하던
정 이월 고향 전라도
방 한켠에 신주처럼 모신 뒤주에서
고구마 싹트는 냄새 시큼 콜콜
할머니의 문지방께 콩나물시루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쪼르륵 퐁당
다가올 보릿고개야 한 입 덜어 누이들은
금의 귀향했던 친구 따라
봉천동 스웨터 짜는 공장에 달려 보냈고
들쥐 발자국 성큼성큼 따라간
*살가지 사는 뒷산의 꿩이 녀석은
머리만 쳐 박으면 도망칠 줄 몰라
함초롬 눈 뒤집어쓴 조릿대 수풀
뒷등을 뒤져도 쥐 죽은 듯 꿈쩍 안 하던 놈이
할머니 저녁 군불 넣으시다가
노린내 꾸들꾸들한 부엌문 열어젖히고
뛰어나오시는데
그놈 꿩이 녀석 *고래 속에 숨었던가보다
불티 날리는 날개를
이 저 구석 왼 부엌을 쳐 박고 있어
*살가지: 살쾡이, 전북 정읍 지방 방언
*고래: 아궁이 속 구들 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