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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따라잡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 산책·부부 싸움·사냥 떠오르는
피아노 연주곡 썼죠
▲ 산책하는
베토벤을 그린 그림. 평소 베토벤은 숲길을 산책하며 악상을
가다듬곤 했대요. /베토벤박물관
2023년 6월 28일부터 7월
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
빈더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가 7회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탁월한
영감과 뛰어난 완성도로 '피아노 음
악의 신약성서'라 불리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완성하고 싶어 하는
레퍼토리
죠. 부흐빈더는
한두 번도 어려운 이 전곡 연주 시리즈를 무려 60회 이상
성공시키며 현존하는 최고의 베토벤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중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명곡들이 참 많습니다. 8번 '비창', 14번 '월광',
23번 '열정', 26번
'고별' 등은
인상적인 부제와 함께 잘 알려져 있죠. 그런데 이 곡들보다 약간
덜 유명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는 소나타도 있어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속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작품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전원'과 '부부 싸움'
베토벤의 교향곡 6번은 '전원'이라는 부제로 유명하죠. 그런데
피아노 소나타에도 '전원'이라는 별명이 붙은 작품
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그의 피아노 소나타 15번
작품번호(Opus, 줄여서 Op.)28은 독일 함부르크의 한
출판업자가
'전원(Pastorale)'이라는 별칭을 붙였어요. 작품 전체에
흐르는 평온하고 낙천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립
니다. 평소
베토벤은 숲길 산책을 즐겼는데, 거기서 악상을 가다듬곤
했죠. 베토벤은 "덤불과 숲을 거닐며 나무와
풀, 바위
사이를 산책할 때 참으로 행복하다. 나처럼 전원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 소나타에는
이런 그의 내면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소나타는 모두 네
악장으로 구성돼 있어요. 편안한 기분
으로 선율을 노래하는 잔잔한 악상이
인상적인 1악장, 슬픈 감정과 유머러스함이 번갈아 나타나는
2악장, 탄력 있
는 리듬이 발랄함을 만들어내는 3악장과
단순하게 시작해 점차 화려함을 더해가는 4악장까지 모두 개성 있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소나타 내에서 특징이 뚜렷한 악장
때문에 별명이 붙은 경우도 있죠. 피아노 소나타 10번
Op.14-2(1799)는 작은
규모의 작품으로
아기자기하고 부드러운 성격이에요. 흔히 '부부 소나타' 혹은
'부부 싸움'이라는 별명으로
불려요. 소나타
형식에서 등장하는 두 개의 주제가 서로 대조를 이루는데 그 모습이
부부간의 대화, 혹은 갈등을
연상시킨다는
베토벤의 제자 신틀러의 표현에서 이런 제목이 나왔습니다. 3개
악장 중 1악장이 특히 그러한데,
달콤한 느낌의 주제로 시작되는 첫머리의
악상과 이어지는 밝은 느낌의 둘째 주제, 계속해서 등장하는
대화풍의
진행은 정말
남녀가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는 듯합니다. 이 곡과 분위기는
다르지만 역시 사랑의 대화처럼 들리
는 소나타가 또
있어요. 소나타 27번 Op.90(1814)은 두 악장
구성인데요. 1악장은 악상이 매우 변화무쌍하고
극적이라 듣는 이를 긴장시키고 2악장은
이와 대조적으로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느낌의 노래가 아름답게 이어지
죠. 이 곡에
대해서는 작곡가가 직접 언급한 내용이 남아있어요. 1악장은
'이성과 감정의 싸움', 2악장은 '연인들끼
리의 대화'라고 베토벤은 설명했습니다.
'사냥'과 '함머클라비어'
베토벤이 1802년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18번 Op.31-3은
모두 네 악장 구성인데, 통상 한 악장 정도 들어 있는
느린 악장이
하나도 없다는 특징이 있죠. 이 중 마지막 악장은 '프레스토 콘
푸오코(매우 빠르고 정열적으로)'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어요. 이탈리아의 춤곡인 타란텔라가 등장하는 이 악장은 8분의
6박자로 돼 있는데, 강하게 '쿵
쿵' 하는 느낌으로 울리는 리듬이 마치
사냥터에 나간 말들이 힘차게 달리는 소리를 연상케 해
'사냥'이라는 별명
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악상으로, 피아니스트의
기교를 화려하게 나타낼 수
있는 곡입니다.
1819년 출판된 피아노 소나타 29번
Op.106에는 '함머클라비어'라는 부제가 있어요. 함머클라비어는
'망치를 사용
해 연주하는
피아노'라는 뜻인데, 이 자체로 현대의 피아노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곡은 베토벤 소나타 가운데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연주 시간이 다른
소나타 평균보다 약 두 배 길이로, 약 45
분간 연주되는
대곡이죠. 곡에서 요구되는 피아노 연주의 기교도 이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어려운 내용이 담겨
있어서 이
작품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능력을 120% 발휘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베토벤은
평소 피아노의
기술적인 발전에 매우 관심이 많았는데요. 1818년 여름 영국
런던의 피아노 제작업자 브로드우드
악기에서 새로운 피아노를 선물 받은 후
매우 감격해 이 악기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거대한
소나타를
작곡해요. 소나타 29번은 한 대의 악기로 연주하지만 마치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스케일이 크고 웅장
한 소리가 들어
있죠. 아울러 4악장에서는 당시 베토벤이 즐겨 사용하던 푸가(여러
개의 멜로디가 한꺼번에 등장
해 발전해가는 작곡 기법)가 대규모로
사용돼 멋진 피날레를 이루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만든 32개의 소나타는 한 곡
한 곡이 모두 고유의 색채와 의미를 갖는 음악사 속
명곡들이죠. 차례대로
모두 들어보면 위대한 작곡가의 생애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 영국
브로드우드사의 1817년 피아노. /베토벤하우스
▲ 오스트리아
빈에서 베토벤이 청력 회복을 위해 머문 곳. 지금은 베토벤
박물관. /베토벤박물관
▲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자필 스케치. /미국 모건라이브러리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기획·구성=김윤주
기자
2023. 06. 12 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