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축제
신준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지나온 세월을 곰 삭이는 일이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그 체험의 축적은 어느 날 이야기 끝에 실타래처럼 풀려 나오기도 하고 더러는 낡은 사진첩에서 술래가 되어 숨은 사람을 찾아낸듯이 발견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더 많은 체험을 하기 위해 사회교육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사십대는 달마다 세월을 느끼고, 50대는 날마다 세월을 느낀다고 하더니 시간의 흐름은 급류에 휩쓸린 듯 휘청대며 어느덧 5월이다.
5월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원우회 축제 이야기로 꽃을 피웠고 각반 장기자랑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할까? 축제이니 만큼 즐겁고, 흥미롭게 하자는 의논 끝에 '사랑의 트위스트'와 안무, 소품 등을 결정하여 수업을 마친 후 노래방에 가서 연습을 하기도 하였다. 평소에 워낙 음치에 춤추는 재주조차 없는지라 트위스트도 배웠고, 다이아몬드 스텝도 하나, 둘, 셋, 넷, 박자에 맞추어 배워 보았지만 마른장작 같은 몸둥어리는 박자 음정을 무시하고 팔 따로, 다리 따로, 흐느적거렸다. 원터치 버튼만 누르면 전자동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하기만 했다.
드디어 축제날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스팔트 바닥을 녹일 듯이 내리 쬐던 불덩이는 잿빛 하늘 속에 감추인 채 좀처럼 나타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4시쯤에는 오랜만에 마음을 달래주는 초여름의 향기로운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고갈로 인해 기다렸던 비이고 어느 지방에서는 기우제까지 지낸다고 하지만 오늘만큼은 소리없이 내리는 보슬비가 염치없고 야속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정도 비야 괜찮지 역시 우리는 문예창작반이라 선경지명이 있어 소품으로 우산을 준비했으니 남들 다 비 맞아도 우리는 괜찮아 이럴 때 수필반의 진가를 보여줘야 해" 하며 우산도 들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축제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더 굵고, 많은 비가 내렸지만 먼지를 빗물에 씻기운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들의 어진 몸짓은, 가슴 가득히 안겨드는 푸른 입김으로 산다는 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없이 들려주었다. 무대에서는 풍물놀이패의 길 군학과 영남가락이 한창 흥을 돋우었다. 나도 달려들어 '덩덩 쿵따쿵'을 치며 신명나게 한마당 놀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손바닥으로 장단을 맞추는 동안 오방진 과 달팽이를 시작으로 축제가 시작되었다. 개회사와 내빈소개, 축사 등을 거처 2부 순서로 들어갔다.
빗줄기는 그칠 줄 모르고 후두득 후드득 노래까지 부르며 내리고 있다. 가로등 불빛과 조명등 아래 비추어지는 빗줄기는 찬란한 빛을 발하기도 하고, 갈증으로 신음하던 산야의 초목은 빗물을 마시며 하늘을 치켜보고 작은 기쁨으로나마 하늘거리며 음악에 맞추어 트위스트와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아 가며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장기자랑 순서에서는 서로 각자의 반 분위기에 맞는 소재들을 들고 나와 서로를 뽐내었다.
아동미술 반은 어린이를 앞세우고 나와 테크노 춤을 출때마다 오이씨 같은 예쁜 배꼽을 들쑥 날쑥 하는 날씬한 허리를 보며 가슴둘레보다 허리둘레가 더 굵은 나 자신을 도시락으로 준비한 맛있는 김밥과 음료수도 먹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영어회화 반과 일어회화 반은 알아들을 수 도 없는 영어와 일어로 노래를 하며 나의 짧은 지식 앞에 유식함을 뽐내었다. 오행 손 침 법반의 '병부잡이의 첫사랑' 제목만 들어도 요즘 인기드라마 허준에서 보여주는 병부잡이가 생각나 웃음이 비시식 나왔다. 병부잡이 특유의 몸짓과 언어로 연극을 보여주어 축제의 밤에 기쁨조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민화반의 '부채춤'은 자기를 가두는 번데기였다가 천상으로 날아오르는 나비가 날개를 펴고 향기있는 꽃밭에 날아드는 생명의 신비함을 느끼게 하며 며칠전 평양예술단이 보여준 '꽃놀이'춤을 연상케 했다.
시 창작반의 시 낭송 '어머니의 법'은 어릴적 어머니가 논에 피를 뽑으며 자식을 위해 드리는 간절한 기도였다. 하얀 밥 위에 까만 피씨 하나 영락없이 골라내며 자식들 에게 오점 없는 삶을 가르치시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였다. 내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쳐준 법은 무엇이 였던가, 나는 내 어머니의 법대로 선하고 진실 된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하며 손, 발이 다 닳도록 뼈가 으스러지도록 평생을 농사일을 하시고 지금쯤 모내기 준비에 바쁘실 어머니가 생각나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드디어 우리 수필반의 순서가 되었다. 쑥스러운 마음과 긴장된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명희 회원은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우산을 준비했는데 마침 비가 온다고 재치있는 대답을 하였다. 음악에 맞추어 트위스트도 다이아몬드 스텝도,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가사도 제대로 몰랐지만 열심히 따라부르며 나 자신을 오버 해가며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B반 회원들도 가면을 준비하여 우리와 하나임을 보였다.
'스포츠맨스' 반은 파트너들과 나와서 현란하고 요염한 춤을 부드럽고 점잖은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여고 2학년 학생이 보여주는 정확하게 밟아 주는 스텝과 손동작으로 보여주는 기교, 조금은 어색한 듯한 파트너쉽은 초보자인 나를 흥미롭게 했다.
2부 순서의 마지막인 '캠프파이어' 시간은 사랑 나눔의 한마당 축제였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손에 손을 맞잡은 따뜻한 온기는 좋은 만남의 뜨거운 사랑이였다. 기적소리 울리며 새벽을 달리는 듯한 기차놀이는 가슴깊이 스며드는 날마다, 시 마다 느끼는 세월에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했고, 음악에 맞추어 내리는 빗소리는 인간의 마음속에 자연의 소리나마 헤아릴 수 있는 혜안을 지니게 한 것 같다.
비와 어둠속에서 느꼈던 오늘의 아름다운 사랑, 자유, 자연의 감미로운 정서는 먼 훗날 술래가 되어 숨은 그림 찾기에 소중한 추억이 되어 생활에 더 없는 윤활유가 되리라.
첫댓글 음악에 맞추어 내리는 빗소리는 인간의 마음속에 자연의 소리나마 헤아릴 수 있는 혜안을 지니게 한 것 같다. 비와 어둠속에서 느꼈던 오늘의 아름다운 사랑, 자유, 자연의 감미로운 정서는 먼 훗날 술래가 되어 숨은 그림 찾기에 소중한 추억이 되어 생활에 더 없는 윤활유가 되리라.
음악에 맞추어 내리는 빗소리는 인간의 마음속에 자연의 소리나마 헤아릴 수 있는 혜안을 지니게 한 것 같다.
비와 어둠속에서 느꼈던 오늘의 아름다운 사랑, 자유, 자연의 감미로운 정서는 먼 훗날 술래가 되어 숨은 그림 찾기에 소중한 추억이 되어 생활에 더 없는 윤활유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