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1974년
예과에서 한 해 전사하고
드디어 후배들과 함께
본과로 올라갔을 때이다.
그 때 본과1학년에는
본과 올라와서 여러 번 전사하여
또다시1학년인
나이 많은 고교선배가 한 사람
우리를 반가이 맞이했다.
환영회 겸 해서
선후배 간에 막걸리 파티가 열렸고
그 선배는 자신이 야외미팅을
한 번 주선하겠다 했다.
당시 부산의 대학생들은
봄에 단체 야외 미팅을 할 때면
주로 부산역에서 만나
동해남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 딸기밭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죽 갈 데가 없었으면
그늘도 잘 없는 딸기밭에 앉아 놀았을까?
싶다만
그 땐 그런대로 낭만이 있고
그런 날이 설레고 기다려 지고
세월이 지나면
많은 추억거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통과치레였다.
어느 날 예의 선배가
자신이 딸기밭 미팅을 주선했으니
모월 모일 모시에
부산역 광장으로 모이라 했다.
다들 기다리던 그 날이 와
부산 역으로 갔는데
아침부터 흐리더니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여
광장으로는 못 나가고
전부 지하도 안에 모여있는데
약속시간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그 선배는 오지 않는다.
30분이 지나자
안되겠다 싶어
한 명이 여자들을 찾아 나섰다.
당시에는
일요일 아침11시 전 후에는
그런 그룹들이 많이 모이는지라
이 친구
여대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마다 다니면서
물어 물어
역사(驛舍) 안에 있던 상대팀을 만났다.
이런 날씨에
딸기밭에 앉아 놀았다간
미친놈 취급 받을 것이고
그대로 해어지기엔
서로의 꼴이 너무 우습고 하니
간단히 식사라도 하자 하고
근처의 중국집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처음 보는 남녀는
서로 눈 마주치기도 쑥스러워했던
그런 시절인지라
주선자 없는 단체미팅의
그 어색함 속에
짜장면 한 그릇
군만두 몇 개
탕수육 몇 조각 먹고
헤어졌다.
다음날 학교에서
그 선배를 만났더니
아~~ 미안하게 됐다.
그 날 내가 갑자기 일이 있어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다음에 한 번 확실하게 주선하겠단다.
그로부터 한 달쯤 후
토요일 오후에
시내에서 미팅을 하기로 했다.
장소는 당시 창선 파출소에서
미문화원으로 올라가는 대로(大路)
오른쪽에 ‘박카스’란 유명한 나이트클럽이
있었는데 바로 그 건물2층에 있는
다방 겸 술집(낮 차 밤 술)이었다.
한 쪽 구석엔8명쯤 되는
우리 일행이 있었고
한 쪽 구석엔 비슷한 숫자의
여학생 한 무더기가 모여있었는데
시간이 되어도
예의 그 선배는
또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우째 이럴 수가??!!’
또 다시 예의 그 친구가 나서서
여학생들과 합석을 하고
어색한 자기소개가 있고 난 후
짝 맞출 분위기는 전혀 아니고
눈 둘 곳이 없어
아래로 쳐다보고 차나 홀짝이고 있는데
갑자기 스피커에서 마이크 소리가
흘러나와 쳐다보았더니
‘산까치야’란 노래로
인기가수 반열에 오른 최안순이 나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w2teT1NKXY
알고 봤더니
그 날 그 시간에
기독교 부산 방송이 주최하는
대학생 노래경연대회 생방송이
최안순의 사회로 그 자리에서
열리게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후배들이
‘형요! 안 그래도 열 받는데
형 저기 나가서 상이나 탑시다~~’
하며 옆구리 콕콕 질러댄다.
‘지금 참가 신청이 가능하겠나?’
그랬더니 예의 그 친구가
잽싸게 주최측에 물어보고 와선
가능하단다.
‘그런데 기타가 없잖아!.’
‘아이고 형님, 걱정도 팔자셔!
저기 나오는 사람들
다~~ 지 기타 들고 나올긴데
그거 하나 잠시 빌려 쓰면 되지요.’
하더니 잽싸게 기타섭외까지 마쳤다.
그리하여 나는 제일 마지막에
꼽사리로 하나 끼어넣이게 되었다.
출연자들의 노래가 시작되어
하나 둘 들어보니
다른 지방에서 온 친구들도 있고
기타는 나 보다 더 잘 치고
노래도 그냥 아마추어들이 아니다.
다들 자기 학교에서
나름대로 한 가닥씩 하는 솜씨들이다.
‘야~~이거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네.’
게다가
그들은 이 프로를 익히 알고 있어
미리 신청하고
철저히 준비해서
나온 사람들인데
나는
이런 프로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멋 모르고 왔다가
연습 한 번 안 해본 상태에서
출전하게 되었으니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원래 생방송에서
현장신청이란 있을 수 없다.
나의 신청을 받아 준 것은
참가자 한 명이
출전을 포기하는 바람에
마침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인데
만약 떨어지면
나는 완전히 시간 땜빵 밖에 더 되나?
그러게 되면
당시 부산 대학가의 스타였던
‘Medical Four’ singer인 내가
왠 개쪽이냐!!!
크`~~~~
드디어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왔다.
내가 신청한 노래는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맹인 가수 호세 펠리시아노의
‘Rain’
https://www.youtube.com/watch?v=UJ2xCjTjz5g
원래 이 노래
기타반주가 어렵고
영어가사 무지 빠르고
노래도 쉽지 않다.
그 와중에
왼손 힘이 떨어지는 내가
손에 익지 않은 남의 기타를 치는 건
쉽지 않았고
본과 올라와서는
공부 때문에 노래 할 기회가 없어
목구멍에 기름칠이 안되어 있는 데다
연습 한 번 없이 무대에 오르다 보니
노래를 부르면서도 진땀이 났다.
우째 우째 정신 없이 노래를 끝냈다.
10여분 후
발표시간이 되었다.
그 때의 경연은
8명이 나와서 예선을 치르고
그 중 4명을 골라 다시 본선을 해서
그 주의 탑싱어를 뽑는 방식이었다
본선 진출자의 이름이
하나 하나 발표되었고
그 때 마다
응원 온 사람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한 명,
두 명,
세 명,
내 이름은 부르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한 사람!
입안이 바싹 말라왔다
최안순의 입이 열렸다.
‘마지막 예선 통과자는~~~~
부산의대의 한~~ 상~~ 석~~~’
‘휴~~~’
가슴을 쓸어 넘기는 사이
예선 통과자들에 대한
심사평이 이어졌다.
그런데
나에 대한 심사평이란 것이
지랄 같다.
‘이 참가자는 고음에 무리가 있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더러븐 소리만 골라가며 하고 있다.
마치 본선 수준도 안 되는 사람인데
네 명이라서 할 수 없이 올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존심이 파~~악 상하면서
오기가 불끈 발동하면서
‘뭐 어쩌고 어째?
그래 한 번 두고 보자 이 영감탱이야!’
그리고 이북에서 내려온
상억이 형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노래대회 나가게 되믄
팝송은 부르디 말라우.
심사위원이란 치들이 말이야
수준이 낮아서 말이디
팝송을 몰라요.
그러니 팝송 부르믄
기냥 떨어뜨려부려 야.’
언젠가 그 말을 들을 때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 피부에 콱 와 닿는다.
그 당시
가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엔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이 잘 없었고
대학 나온 사람도 드물었다.
그래서 그들은 ‘딴따라’라는 비하어로
불리었다.
게다가
심사위원은 제법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런 사람이
20대 대학생들이 좋아하던 팝송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본선에선 가요를 부르기로 했다.
그 때 고른 곡이 바로
장현의 ‘나는 너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FjbvwXfdi8
이 노래는
아주 smooth하고 평이해서
별 무리 없이 부르기 좋은 노래다.
반주도 간단하고.
노래가 시작되자
Rain으로 목구멍을 한 번 틔운 터라
기름칠을 한 듯 매끄럽게 잘 넘어갔다.
드디어 발표시간.
최안순이 마이크를 잡았다.
‘금 주의 탑싱어는~~~~~~~~’
‘한 상 석~~~~~짝작짝’
우리 테이블에선
여학생들까지 함성을 내질렀다.
다들 이 맛에 딴따라 한다.
이제 심사평 시간.
나는 속으로 느긋이 즐기고 있었다
‘저 영감쟁이
앞서 나에 대해 그렇게 혹평을 해 놓고
이 번에는 뭐라 할란고? 흐흐흐’
‘오늘 탑싱어가 된 한 군은’
예선과 달리 분선에선
곡 선택을 참 잘했군요....
어쩌고 저쩌고.
그 땐 어려서
나에 대한 혹평에 기분이 나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심사위원의 말
다 맞는 말이고
특히
실력 차라 해 봐야
도토리 키재기였을텐데
자신이 한 번 혹평한 출연자를
자신의 위신을 무릅쓰고
탑싱어로 뽑아 준 그 분의 용기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 Epilogue
그 때 주말 탑싱어 부상으로 받은 것이
당시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남포동 입구 ‘미음사’ 레코드점에서 제공한
레코드 판 2장 교환권과
남포동의 한 양장점에서 제공한
‘셔츠 맞춤권’ 한 장이었다.
경연을 마치고 나니
방송국 관계자가 와서 하는 말이
다음 주는 ‘월말 탑싱어’를 뽑는데
지금껏 본 주말 탑싱어들 중
당신이 제일 가능성이 높으니
꼭 출연하라고 종용을 하면서
그 때의 부상은 냉장고 한 대라 하였다.
그러자 모두 군침이 넘어갔다.
냉장고라!!
그 당시
냉장고는 비싸고 귀한 물건이라
아무 집에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행님! 냉장고 타믄
그 것 팔아서 한 잔 거하게 합시다.’
당시 우리 집에는 냉장고가 있었다.
하여 상으로 탄 냉장고
팔아서 후배들 한 잔 사준다고
뭐라 할 사람 없을 터이고 하여
‘까짓거 그라지 머’
‘그라모 이래가지고 될끼 아이고
미리 계획을 잘 짜야됩니더.
그 날 상 받았다 하믄
냉장고를 옮겨야 할 것 아임니꺼
그랄라면 용달차 미리 섭외해 놔야 되니
운반책 한 명
그 다음에는
판로를 알아 볼 판매책 한 명.
그 날 먹고 놀 계획 짜고
고급술집 알아 볼 조직책 한 명
요래 세 사람은 필요한기라요.’
그러면서 그 세 명을 다다닥 지명한다.
그 다음 일 주일 후에
제일 낙제를 많이 시키는
해부학 시험이 있었지만
냉장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드디어 그 날이 밝았다.
그 동안 열심히 연습을 했다.
냉장고가 눈 앞에 어른거렸다.
정시에 도착했다.
뭔가 분위기가 썰렁했다.
최안순도 안 보인다.
??????????
대회가 취소됐단다.
이유는?
냉장고 제공할 스폰서를 못 구해서....
내가 받은 주말 톱싱어 상품도
담당 피디가 남포동 광복동
온 가게를 돌아다니며
사정 사정해서
겨우 구한 것이었단다.
그 때가 그런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