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馬江懷古(백마강회고)
취선(翠仙:?~?)
호는 설죽(雪竹). 김철손(金哲孫)의 소실.
저물녘에 고란사에 배를 대고
晩泊皐蘭寺 만박고란사
서풍을 맞으며 홀로 다락에 오르네
西風獨倚樓 서풍독의루
용은 죽어서도 강은 만고에 흐르고
龍亡江萬古 용망강만고
꽃 떨어진 낙화암에 지나 간 세월이 얼마이런가
花落月千秋 화락월천추
⭐제가 한문 실력이 없다 보니, 해석은 참고 삼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백마강은 소정방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용을 낚았다 하여,
그 바위를 조룡대(釣龍台)라 하고 강의 이름도 사하(泗河)에서 백마강으로 바뀌었다고 하나,
백제 말기보다 1백60여 년 앞선 무녕왕시대에 이미 금강을 ‘白江(백강)’으로 표기했던 사실이 있다.
역사적으로 말(馬)을 ‘크다’는 뜻으로 써온 것을 감안할 때 백마강은 곧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이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낙화암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명망 할 때, 백제 궁녀들이 이곳에서 강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꽃이 떨어진 바위란 뜻으로 ‘낙화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유래는 네이버에서 참고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