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 창설 43주년 기념 자유통일 담론 확산 토크콘서트 #2
만행 한용운의 출생은 1879년 8월29일 충남 홍성으로 일제강점기 불교계에 혁신적인 사상을 전하고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던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 자는 정옥,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이며 유년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으나
1905년 백담사에서 득도한 뒤 수년간 불교활동에 전념했다고 한다.
1918년 불교잡지 <유심>을 창간하고 계몽적 성격의 글을 발표했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일제에 체포되어 3년형을 받았다.
1925년에는 한국 근대시사의 불후의 업적 <님의 침묵>을 펴내어 민족의 현실과 이상을 시적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이후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에서 1944년 6월 29일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북천(北川)과 만해교
만해 문학박물관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친필 서예와 작품집,
만해 한용운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만해 문학박물관 입구의 만해 한용운 像
자유는 만류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징에 쓰여진 글귀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를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숸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
한용운의 시 문학을 대표하는 시집으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수록된 시 88수를 오세암과 백담사에서 완료한 것은
1925년 8월 29일이고 1926년 5월 20일 애동서관에서 출판하였다.
님의 침묵은 시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고 한용운을 독립운동가에서 시인으로 등재시킨 시집이다.
독립선언서
1919년 3월 1일, 3.1만세운동의 당위성, 독립정신을 명쾌히 개진한 독립선언서.
이 선언서의 전문은 최남선이 작성하였고, 공약심장은 한용운이 작성하였다.
한용운은 3월 1일. 태화관의 민족대표의 선언식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대한독립 만세 삼창을 선도하였다.
민족대표 명단에 한용운의 이름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