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는 상공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불빛부터 장관이다. 별빛만큼이나 수많은 불빛이 지평선까지 아득하게 뿌려진다. 도시가 들어선 해발고도가 2,200여 미터. 굳이 따지자면 한라산보다 높은 고지에 2000여만 명이 거주하는 셈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불빛들이 죄다 삶의 흔적들이니, 세계 최대 고원도시의 이채로운 단상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멕시코시티는 색의 대비가 강렬한 도시다. 짙푸른 하늘 아래 소깔로 광장의 대성당과 도심 전경.
멕시코의 음식 중에 ‘또르띠야’라는 게 있다. 옥수수가루나 밀가루를 동그랗게 밀어서 구운 것으로, 또르띠야에 돼지고기, 닭고기를 넣어 먹으면 그 유명한 ‘따꼬’가 된다. 멕시코시티의 아침풍경은 곳곳에 줄을 서서 ‘따꼬’ 먹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미국의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보다 흔한 게 따꼬 판매대다. 멕시코시티의 첫 인상은 매운 ‘할라빼뇨(멕시코 고추)’ 소스를 곁들인 따꼬만큼이나 일상적이면서 자극적이다.
동이 튼 뒤의 거리 풍경은 어젯밤 마음을 들었다 놓았던 그 도시가 맞나 싶다. 지난 밤의 자욱했던 불빛 대신 짙푸른 하늘에 거리를 단장하는 것들은 모두 색의 대비가 선명하다. 멕시코시티 거리의 상징인 자주색 폭스바겐 택시 역시 도로 위를 바쁘게 오간다. 폭스바겐 택시는 왠지 운치 있어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승차료가 저렴한 저가 택시다.
멕시코시티는 본래 호수 속의 섬이었던 곳이다. 16세기 멕시코를 점령한 스페인군은 수도의 신전을 부수고 호수를 메운 뒤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섬을 오가던 뱃길과 운하에 지금의 도로가 형성됐다.
멕시코의 독립, 혁명을 담아낸 대형 벽화.
멕시코 사람들은 연방구인 멕시코시티를 그들의 언어로 ‘메히꼬 데헤페’라 부른다. 도시의 중심인 소칼로 광장(Zocalo Square)은 아즈텍인이 해발 2000m에 도시를 세웠을 때부터 거대한 신전이 위치한 도시의 심장부였다.
광장 주변의 풍경은 독특하다. 거리 공터에서는 아즈텍 후손들의 역동적인 춤사위가 펼쳐지는가 싶더니 또 한 곳에서는 송진과 풀로 만든 향을 피우며 나쁜 영혼을 쫓는 정화의식이 치러진다. 리어카를 끌며 구두를 닦는 구두닦이들 풍경 뒤로는 호사스런 금은방 골목이 뻗어 있다.
광장 일대는 멕시코시티를 대표하는 건축물들로 채워진다.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선 국립 궁전은 화려한 내부 벽화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중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거대한 벽화는 아즈텍의 부흥, 스페인의 침략, 멕시코의 독립 등을 대서사시처럼 담아내고 있다.
궁전 등 도시 곳곳에서 만나는 벽화들은 서구 대도시의 뒷골목에서 조우하는 그래피티들과는 그 뿌리가 다르다. 멕시코시티의 벽화는 20세기 초 혁명을 이끌었던 버팀목이었다. 정부에서는 이런 벽화운동과 벽화작가들을 직접적으로 후원하기도 했다. 독립,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한 국립 궁전 건물 안이 빼곡하게 벽화로 단장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소칼로 북쪽의 대성당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신전을 무너뜨린 뒤 성당을 세운 곳으로 성당 옆에는 ‘템플로 마요르’로 불리는, 아즈텍의 옛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중앙신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거리 좌판에서 거래되는 다양한 기념품들.
멕시코 소설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멕시코 요리의 특유한 맛과 향기를 통해 일상의 삶을 관능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고풍스런 소깔로 광장을 벗어나면 도심의 골목들은 그녀의 소설처럼 감각적인 표정들과 연결된다. 아티스트들이 주로 거주해 서울의 홍대 앞을 연상시키는 로마 지역은 예술의 중심지이자 멕시코시티 청춘들의 사랑을 받는 거리다. 흥겨운 음악과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코요아칸 주말시장 역시 멕시코시티의 이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시의 과거를 되짚어 보면 이런 번잡함과 화려함은 느닷없는 게 아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 호숫가 도시에 발을 내딛었을 때 유럽의 대도시 못지 않은 문화상에 놀랐다고 한다. 스페인 왕에 보낸 보고서에는 운하와 다리가 곳곳에 세워져 있고 온갖 장신구와 원목, 벽돌이 시장에서 거래되며 그림용 안료가게, 빵가게, 약국, 이발소가 있는 곳으로 멕시코시티가 그려지고 있다.
거리 곳곳에서는 스페인 외에 은근히 프랑스의 흔적도 묻어난다. 메트로는 프랑스의 것을 옮겨왔으며 도심을 가로지르는 레포르마 대로 역시 파리 샹젤리제를 본따 건설됐다. 레포르마 대로 주변에는 멕시코 독립전쟁 100주년을 기념하는 황금의 천사상, 다양한 벽화들이 전시된 예술궁전 등이 들어서 있다.
박물관이 밀집된 차풀테팩 공원(Bosque de Chapultepec), 갈색 피부를 지닌 과달루페 성모상(Our Lady of Guadalupe)을 기린 과달루페 성당 등을 지나 외곽으로 향하면 도시는 모습을 서서히 바꾼다. 고원지대 위에 한 뼘 더 솟은 야트막한 야산에는 산동네 판자촌 세상이다. 지난밤에 내려다 봤던 광활한 야경은 실제로는 대부분 이들 가옥에서 뿜어져 나온 삶의 불빛들이다. 서민들은 대부분 도심 외곽에 거주하며 도심으로 매일 수백만 명이 출퇴근한다.
혁명이 깃든 벽화, 매운 할라빼뇨 소스, 일요일마다 펼쳐지는 투우 경기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멕시코시티의 이미지는 공간이동에 따라 변화를 거듭한다. 높고 거대한 덩치 속에 이채로움이 숨쉬는 도시가 바로 멕시코시티다.
여행정보
한국에서 멕시코까지는 미국 로스엔젤레스 등을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출입국심사는 의외로 까다로운 편이다. 별도의 입국 비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미국 대신 캐나다 등을 경유할 수도 있다. 메트로는 총 10여개의 노선이 촘촘히 도시를 가로지른다. 공용교통 패스만 있으면 버스, 트램, 메트로, 트롤리 버스 등을 구분 없이 탈 수 있다. 앙증맞게 생긴 폭스바겐 택시는 야간 탑승은 자제하는게 좋다. 도심 센뜨로의 치안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오히려 로마, 소나 로사 등 신도심 등이 멕시코의 밤을 즐기기에 좋다. 멕시코시티는 11월~5월이 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