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한 방울》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 중에서)
탁월한 통찰력으로 문명의 패러다임을 제시해온 시대의 지성 이어령이 남긴 마지막 육필원고인 《눈물 한 방울》이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
2022년 2월 26일 별세한 이어령은 2017년 간암 판정을 받은 뒤 항암 치료를 거부한 채 집필에 몰두했다.
2019년 11월부터 영면에 들기 한 달 전인 2022년 1월까지 삶을 반추하고 죽음을 독대하며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생명과 죽음을 성찰하며 써내려간 미공개 육필원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친필과 손 그림이 담긴 이 노트를 생전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사멸해가는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루하루 대면하는 일상과 기억은 과연 저자의 내면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저자가 출간 계획 없이 내면의 목소리를 기록 중인 별도의 노트가 있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야 알려졌다. 새로운 화두로 제시한 ‘눈물 한 방울’은 무엇일까?
(출판사(김영사) 서평 중에서)
▲ 시대의 지성 이어령이 죽음을 독대하며 써내려간 내면의 기록.
저자 이어령은 병상에서도 사유와 창조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새로운 화두를 모색했다. 바로 ‘눈물 한 방울’이다.
‘디지로그’와 ‘생명자본’ 등 저자가 이전에 제시한 문명론의 핵심은 변화와 융합이다. 시대의 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이질적인 개념을 감쪽같이 연결하는 지성과 사유가 거대 담론의 원동력이다. 남이 못 보는 걸 보고, 없던 걸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날갯짓은 차이를 발견하고 비교하는 비평적 두뇌를 엔진으로 삼아 비약한다.
‘눈물 한 방울’은 심장에서 시작한다. 언어 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저자가 병상에서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말’을 찾아 노트를 써내려가면서 발견한 것은 ‘디지로그’ ‘생명자본’ 같은 거창한 개념어가 아니라 ‘눈물 한 방울’이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 ‘눈물’은 나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다. “자신을 위한 눈물은 무력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나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피(정치)와 땀(경제)의 논리로는 대립과 분열을 극복할 수 없다. 저자는 작은 눈물방울이 품은 관용과 사랑에서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씨앗을 보았다.
▲ 시대 변화를 앞서 꿰뚫어본 프로메테우스의 에필로그
적요한 밤에 하루를 되돌아보며 쓰는 일기처럼, 이 책은 인간 이어령이 써온 88년 인생의 에필로그와 같이 읽힌다.
항상 앞을 내다보던 선각자가 쓴 에필로그. 저자는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남긴 적은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살아온 삶의 면면을 짐작해볼 수 있는 인간 이어령의 내면 일기다.
지성과 상상의 원천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죽을 때까지 다 셀 수 없는 모래알들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징표로 등장한다.
(“어머니… 나는 지금 아직도 모래알을 세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다 헤지 못하고 떠납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망연자실의 감정이 드러나는 글(“지금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는데 국어 시험 치듯. 다 풀 수 있었는데…”),
고통이 생명의 일부라는 깨달음의 기록(“아픔은 생명의 편이다. 가장 강력한 생의 시그널.”)은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 ‘눈물 한 방울’ 연작의 시작은 저자 개인의 회한이다.
발톱 깎다가 잊고 있었던 새끼발가락의 존재를 환기하면서 흘리는 눈물 한 방울, 지인과 헤어지면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가늠하다가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은 병마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고단하고 쓸쓸한 저자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 “큰 욕심, 엄청난 것 탐하지 않고 그저 새벽바람에도 심호흡하고 감사해하는 저 많은 사람들,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세요.”라며 신에게 올리는 청,
“누구에게나 남을 위해서 흘려줄 마지막 한 방울의 눈물 얼음 속에서도 피는 기적의 꽃이 있다.”는 아포리즘은 눈물방울에 담긴 고귀한 인류애적 가치를 보여준다.
▲ 시, 산문, 평문 등 다양한 형식의 글,
▲ 글과 어우러지는 손 그림으로 담은 사유와 영감의 흔적
저자는 전문 영역에 붙박인 상아탑 안 학자가 되기보다 자유로운 사유와 창조적 영감으로 새로운 의미와 재미를 생산해내는 ‘크리에이터들의 크리에이터’가 되고자 했다.
이 책에는 88년간 이어온 저자의 독창적 생각의 편린들이 110개의 다양한 형식의 짧은 글과 그림으로 묶여 있다.
저자의 심연을 목격하면 숙연해지면서도, 저자의 창발하는 아이디어를 접하면 감정이 고양되기도 한다.
클레오파트라, 이상, 정지용, 사뮈엘 베케트, 쇼팽, 조르주 루오, 빅토르 위고, 공자, 노자 등 동서고금의 이야기들이 문학, 철학, 역사, 예술, 기호학, 물리학, 생물학, 기하학 등 풍부한 지식을 참고로 삼아 종횡무진 이어져 저자의 스토리텔링 장기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추억부터 가장 작아서 가장 큰 가치 ‘눈물 한 방울’까지, 세상을 놀라게 한 자유로운 사유와 창조적 영감부터 병마와 싸우며 가슴과 마음에 묻어두었던 절규까지.
생전에 공개하지 않았던 인간 이어령의 내밀한 말이 시, 산문, 평문 등 다양한 형식의 글로, 그와 어우러지는 그의 손 그림과 함께 세상에 나왔다.
경계를 넘나드는 창조적 지식인이자 죽음 앞에 선 단독자, 마음 따뜻한 아버지이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로서 저자가 품었던 무지개 같은 세계가 펼쳐진다.
[13]영등시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영등시는 1년 중 한두 차례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때를 말한다. 통상 음력으로 보름과 그믐 무렵이 조차가 가장 큰데, 어민들은 이때를 ‘사리’라고 한다. 영등시는 사리 중에 으뜸이라 ‘영등사리’라고도 부른다. 지난 3월 10일(음력 2월 16일)과 11일이 영등시였고, 오는 4월 7일(음력 3월 15일)과 8일이 또 한 차례 영등시이다. 이때 진도 ‘신비의 바닷길’을 비롯해 서해 여러 곳에서 바닷길이 열린다. 영등시가 되면 영등할미가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하늘에서 내려와 바닷가를 돌며 전복 씨, 바지락 씨, 미역 씨를 뿌려 준다. 이때 풍어를 기원하는 영등굿을 하는 곳도 있다.
영등시에 드러난 갯벌에서 어민들은 바지락, 개조개, 개불, 낙지, 해삼, 미역 등을 채취한다. 하지만 마을 주민이라도 마음대로 갯벌에 들어갈 수 없다. 마을 회의에서 정한 장소와 시간을 지켜야 한다. 이를 여수나 완도 등 서남해 어촌에서는 '개를 튼다'거나 '영을 튼다'고 한다. 갯벌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통영이나 거제에서는 '개발'이라고 하고, 제주에서는 '바릇'이라 표현한다.
여수 소경도는 지난 10일 마을 어장 중 ‘밀라리’와 ‘엄낙도’의 영을 텄다〈사진〉. 이렇게 영을 트면 병원에 입원하거나 가족상을 당하지 않는 한 반드시 참여했다. 그만큼 엄격했다. 소경도 주민들은 지금도 도시에 나갔다가도 영을 튼다는 소식을 들으면 작업에 참가하기 위해 귀가한다. 입원하거나 부고가 없는데도 영을 따르지 않는 것은 큰 ‘흉’이라 생각한다.
영등시에 채취한 바지락을 팔아 마을 운영 기금과 경로 잔치·여행 비용 등을 마련하니 참석하지 않으면 1년 내내 마을 생활이 불편하다. 개인의 권리보다 공동체의 규칙이 우선이다. 마을 어장이라는 어촌의 독특한 공유 자원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영을 트고 막는’ 마을 규칙이 있고, 이를 지켜야 하는 어촌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귀어·귀촌한 도시민들이 그 ‘흉’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진짜 어민이 되는 것이다.
[16] 오비도의 조개 농사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뭍에서 짓는 농사는 1년 농사가 대부분이지만 바다 농사는 3년 혹은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지난주 오비도 주민들은 마을 앞 갯밭에 어린 조개를 뿌렸다. 갯밭은 바지락, 살조개, 개조개 등 조개류나 미역, 톳, 우뭇가사리 등 해조류가 서식하는 조간대다. 오비도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에 속하는 섬이다. 풍화리는 통영에서 드물게 갯벌이 발달했다.
통영 서호시장과 중앙시장에 나오는 바지락, 살조개 등 조개류는 십중팔구 풍화리산(産)이다. 오비도는 뭍에서 300여m 떨어져 있어 통영에서 육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섬이다. 목바지, 외박골, 사당개, 소웅포, 대웅포 등 다섯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30여 가구 60여 명이 살고 있다. 한때는 이곳에 80여 가구가 살았고 학교도 있었다.
오비도에서 가장 좋은 갯밭은 대웅포와 월명도 사이 갯벌이다. 이곳은 모래 갯벌이 발달해 살조개와 개조개가 서식하기 좋은 곳이다. 이곳만 아니라 섬 안쪽에는 펄과 모래와 작은 돌이 섞인 혼합 갯벌이 발달해 바지락이 잘 자란다. 굴이나 멍게 등 이렇다 할 양식을 하지 않지만 주민들이 생활할 수 있는 건 모두 갯밭 덕분이다.
월명도 앞까지 물이 빠져 바닷길이 열리자 주민 30여명이 호미와 괭이로 갯밭을 긁고 조개 씨를 뿌렸다. 마을 이장은 다섯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을 한 것은 무척 오랜만이라고 했다. "요리 좀 히비 주이소(이렇게 좀 긁어주세요). 물 들어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장 목소리가 높아졌다. 잠깐 길이 열렸다가 잠기기 때문에 그 사이에 갯벌을 긁고 조개 씨를 뿌리고 다시 묻어줘야 한다.
봄에 맛이 좋은 바지락이나 살조개는 3년 정도 자라야 하며, 개조개는 5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그사이 큰 태풍이나 파도라도 오면 조개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가기도 한다. 이름표가 달려 있지 않으니 찾을 수도 없다. 해수 온도 변화나 뜻하지 않은 오염원으로 한순간에 조개들이 입을 벌리고 몰살하기도 한다. 몇 년을 기다리며 갯밭을 일구는 어민들 심정이 오죽할까. 우리 밥상에 오른 조개들이 그냥 쉽게 바다에서 건져 온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