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
베드로전서 2:11~25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새로운 변이인 ‘오미크론’이 기존 ‘델타’ 변이의 3배에 이르는 재감염 위험을 갖고 있다는 남아공 의료 당국의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미크론 변이가 백신접종이나 이전 감염으로 형성된 면역을 우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빠르게 델타 변이를 제치고 지배종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변이 바이러스가 확인된 지 불과 1주일 만에 확진자의 74%가 오미크론 변이였다고 밝혔습니다.
긍정적인 소식으로는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인 오미크론이 처음 발견된 보츠와나에서 오미크론에 감염된 확진자 전원은 무증상이거나 경증이었다고 합니다.
독일의 공중보건 전문가인 카를 라우터바흐 교수는 오미크론 변이가 코로나19 대유행의 종식을 앞당길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미크론 변이의 스파이크 돌기가 델타 바이러스보다 두 배가 많은 32개 이상의 돌연변이가 있기 때문에 델타보다 감염력이 세배가 높다는 것입니다.
오미크론은 감염력을 높이는 동시에 감염자에게 덜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이런 특징은 대부분의 호흡기 바이러스가 진화하는 방식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오미크론 변이를 처음 발견한 남아공의 의사들도 오미크론 변이가 이전 변이들과 달리 두통이나 피로와 같은 가벼운 증상만 야기했고 단 한 명도 입원 치료를 받거나 사망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코로나바이러스 변이가 나오면서 치명률은 점점 약해져 결국 감기처럼 가볍게 걸리고 지나가는 풍토병처럼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남아프리카의학협회 회장으로 처음 오미크론 변종을 발견한 안젤리크코이치 박사가 “오미크론에 감염된 환자들이 피로감, 근육통, 두통, 마른기침을 포함해 훨씬 더 가벼운 증상을 보이고 있다. 누구도 후각·미각 상실,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고 발언한 데 따른 것입니다.
반면 남아공에서 발견된 오미크론 감염자가 중증으로 가지 않은 것은 대부분 젊을 뿐 아니라 중증으로 악화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백신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대다수 감염자가 경증환자가 되기를 기대하지만, 위험도를 가늠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전염성과 심각성에 대한 보다 확실한 정보를 얻을 때까지 ‘약 2주가 더 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오미크론은 아직 ‘잠재적 공포’에 불과한 반면, 델타는 ‘이미 닥친 폭풍우’”라며 델타에 대한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위드 코로나를 시행하면서 감염 확진자가 하루 오천 명을 오르내리고 중증환자들도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재앙이 지나가기까지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 내가 의지할 하나님"이라고 선포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보호의 깃으로 우리를 덮어 주시고 우리도 그의 날개 아래로 피할 것이니, 주님의 진실하심이 우리를 지켜 주는 방패와 갑옷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이라는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신분을 주셨다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믿지 않고 살았던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고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육체의 욕망과 세상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셔서 왕과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시고 거룩한 나라와 민족으로 삼으셨으며 그의 특별한 소유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을 따라 그 축복을 누리며 살뿐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선하심을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신분을 이렇게 존귀하게 만들어 주셨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나그네와 거류민 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나그네와 거류민 같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적 정욕을 멀리하십시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전부인줄 알고 그것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육체적 정욕을 따라 어떻게 하면 더 잘 먹고, 더 소유하며, 오래 살까를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고상하게 사는 것 같지만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삶의 초점이 육체적 정욕을 따라 세상에 모든 소망을 걸고 삽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저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성도들은 세상을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도 소중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것이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잠시 있다가 없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믿음으로 살았던 성도들은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살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늘에 예비하신 나라를 돌아갈 본향으로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나그네와 거류민 같이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적 정욕을 멀리하면서 본향을 향하여 걸어가는 나그네와 거류민 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말을 하게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2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은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본향을 바라보며 사는 성도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시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행실을 바르게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사회생활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주제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3~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3 여러분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주님을 위하여 복종하십시오. 주권자인 왕에게나,
14 총독들에게나, 그렇게 하십시오. 총독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고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게 하려고 왕이 보낸 이들입니다.
15 선을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한 입을 막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16 여러분은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그러나 그 자유를 악을 행하는 구실로 쓰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십시오.
17 모든 사람을 존중하며, 믿음의 식구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십시오.
우리는 지금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초대교회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부당하고 잔인한 박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보낸 서신을 받고 있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지키다가 애매하고 억울한 고난을 당하는 밀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억울하게 고난을 받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사도 베드로는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악을 행함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부당한 박해를 당하는 사회 가운데서도 좋은 시민이 될 것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운 모든 제도나 지도자들에게 주님을 위하여 순복하라고 말씀합니다.
국가에서 만든 법이나 제도를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모든 제도나 국가의 법에 무조건 순종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국법이나 사회적인 제도가 하나님의 법에 위배될 때는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권위가 요구하는 것이 다를 때 더 높은 권위를 따라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권위 중에서 가장 높은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이며 최고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의 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와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키다가 고난을 당하거나 순교를 당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악을 악으로 갚거나 대항하여 싸우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참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세상에서는 나그네 인생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일시적으로 체류하는 나그네는 돌아갈 본향이 있기에 현실의 어려움을 견뎌냅니다.
나느네 인생을 살아가면서 돌아갈 본향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분명하면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외부로부터 박해를 당하는 고난은 없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서운한 마음과 억울한 감정이 쌓이면 마음의 상처가 되기도 하고 화병을 앓기도 합니다.
부당한 대우를 당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을 때,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여 억울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올바른 태도일까요?
로마 제국 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일어난 변화는 무력혁명보다 광범위한 혁명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의 법과 제도 속에 살면서 압제와 불평등과 착취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새로운 섬김의 질서를 실현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정에서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복음의 원리와 말씀으로 살아갈 때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8 하인으로 있는 여러분, 극히 두려운 마음으로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선량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만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그리하십시오.
이런 권면은 주인이나 윗사람의 입장에서 들으면 당연한 말씀이지만 노예의 입장에서 보면 절망과 분노를 일으킬만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노예제도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원리적용을 해야 합니다.
직장생활에서는 상하 관계가 형성이 되는데 이때 나이나 직위에서 아래 있는 사람은 윗사람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회사의 경영주나 직장의 상사들이 상대하기 까다롭거나 괴팍하더라도 그들을 존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9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을 참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나 억울하게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다는 말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 삶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나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한 일들이 아닙니다.
모든 일들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 가운데서 일어나는 줄을 믿게 될 때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일들을 경험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까다롭고 괴팍한 사람을 만나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까다롭고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거나 선하게 대하는 사람을 선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까다로운 사람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참아내고 견디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아낼 때 인격의 변화가 나타나고 신앙이 더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0 죄를 짓고 매를 맞으면서 참으면, 그것이 무슨 자랑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서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입니다.
불의한 일을 행하거나 잘못을 하여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고난을 당하면서 참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선한 일을 행하면서도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올바로 반응하며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 앞에서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이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21 바로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여러분이 자기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나 직장생활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어떻게 반응하며 갈등이나 문제를 풀어 가는지요?
서로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 자기주장을 하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면 자기변명을 하면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며 비난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 더 많은 잘못을 하고 살아왔는지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과거에 있었던 좋지 않은 기억들을 꺼내어 서로를 공격하는 비난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난과 공격하는 말로 인하여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고 작은 문제가 도리어 더 큰 감정싸움이 되어 후회와 죄책감을 남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부당한 대우를 받으시고 억울한 일을 당하셨지만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시며 십자가의 수치와 고난을 참아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참아내심으로써 우리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2 그는 죄를 지으신 일이 없고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거짓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3 그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이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모욕을 당하면 모욕으로 갚아 주려하고 비난을 당하면 더 큰 비난으로 되갚아 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내가 그래도 너보다는 더 의롭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다 맡기셨습니다.
우리도 옳고 그름이나 잘하고 잘못한 일을 따지면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참아내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4 그는 우리 죄를 자기의 몸에 몸소 지시고서,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매를 맞아 상함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25 전에는 여러분은 길 잃은 양과 같았으나, 이제는 여러분의 영혼의 목자이며 감독이신 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부당하고 억울한 고난과 죽임을 당하는 길을 선택하신 것은 우리 죄를 자기의 몸에 몸소 지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마다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용서를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에게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인 의를 위하여 살아갈 수 있는 은혜와 힘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매를 맞아 상함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 마음과 몸의 상처를 받고 살면서도 위로 받을 사람이나 위로 받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그들이 당하는 고난과 상처를 치료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세상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며 살던 우리들이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안식을 누리듯이 이 복음을 깨닫는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와 사랑과 인도와 보호를 받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서 믿음으로 올바른 반응을 보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될 때 나타나는 유익들이 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맡기고 도리어 선한 일을 도모하면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갚아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관계들과 생활 속에 개입하시는 손길을 경험하게 되면 믿음이 자라고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인내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선하심과 성실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