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들의 길 49:13~15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셀라)
14 그들은 양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 내시리로다 (셀라)
세상의 부유함을 대하는 자세 49:16~20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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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어리석은 자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이 그들 목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 자신은 하나님이 영접하시고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시리라고 고백합니다. 부자가 죽을 때 그의 영광이 못 따라가니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존귀하나 못 깨닫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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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들의 길 49:13~15
지혜로운 삶은 분별력이 있는 삶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49:6)의 말을 기뻐하며 그 행보를 뒤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 그들도 어리석은 자와 동일한 운명을 맞이할 것입니다. 재물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은 앞선 세대의 어리석음을 답습하다가 동일하게 멸망할 것입니다. 그들은 도살당할 양처럼, 사망이 그들의 목자가 될 것입니다. 죽음 이후 맞이할 새로운 세상에서는 정직한 자들이 어리석은 자들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때 악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들 사이에서도 믿음으로 정직하게 산 이들을 영접하시고 사망 권세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직하게 행한 삶은 그날에 보상받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어리석은 자들과 그들의 길을 기뻐하는 이들은 결국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이 영접하실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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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유함을 대하는 자세 49:16~20
하나님 백성은 재물이 많은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전에 누리던 영광도 의미가 없습니다.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업적에 만족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받을지라도, 죽은 후에는 아무것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존귀하게 살려면 진리를 깨닫고 실천해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문제는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한한 자취들을 자랑하고 만족하지만, 죽은 후에 아무것도 누리지 못함을 알지 못합니다.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삶이 지혜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시편 기자는 남들이 부자가 되고 집의 영광이 더할 때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나요?
영원을 사모하기에 내가 애착을 버릴 세상의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비록 지금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제 본향은 하나님 나라임을 잊지 않길 원합니다. 더해 가는 재물과 사람의 칭찬에 기뻐하다가 정작 믿음에는 가난해지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마지막 날에 제 인생이 하나님께 존귀한 삶으로 인정받게 하소서.
어리석은 자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들만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고, 스올의 세력에서 건짐을 받게 될 것임(13~20v)
하나님은 자신의 부를,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생명을 주시고,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시며 참된 안식을 주시는 당신만을 의지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 안에서 참된 지혜를 찾고, 삶의 목적을 찾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면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자
주어진 시간들을 더욱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맡겨 주신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기 위해서 더 잘 준비가 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준비해 나가자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9-15,20절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지혜 있는 자도, 어리석은 자도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으로 땅을 사고 집을 지으며 거기 오래 살기를 꿈꾸지만 결국 그 모든 재산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고 맙니다. 그 정한 시간(히 9:27)에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은 우리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위해 투자한 것들입니다. 유한한 인생길에서 오늘 우리가 지닌 자원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투자하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잠깐 살다 죽고 마는 미련한 짐승과 같을 뿐입니다.
16-19절 돈과 권세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발견한 시인은 뭇 백성을 향해 참 지혜를 선포합니다. 돈 때문에 불안해하는 이들을 향해 오늘 우리가 들려줄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기도
공동체-유한한 삶을 사는 동안 우리 소유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투자하기 원합니다
여전히 말할 수 없는 핍박과 이름 없이 죽임을 당하는 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있습니다.
아주 극히 일부분만 알려져 있지만, 북한 땅에서 믿는 사람들이 겪는 고초는 우리가 단순히 상상하는 차원을 초월합니다.
그들은 과연 그런 상황에서 무슨 힘으로 그 시간을 견뎌내며,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수백 년 동안 카타콤 지하의 무덤에서 어떤 마음을 품고 살수 있었을까?
또한 이 시대에 만약 우리에게도 그런 칼날이 다가올 때 어떤 방법으로 대할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세상의 명예와 부를 가진 자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붙들고 있는 것들은 다 사라질 것과 그 모든 화려한 것들은 다 썩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큰소리치며 휘둘렀던 권세는 정직한 자들의 다스림 아래 놓이고 그들이 붙잡았던 것들은 마치 짐승들의 사라질 욕망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구호민을 태운 마지막 비행기가 떠날 때의 장면처럼, 천국의 소망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가진 모든 것들은 배설물이요 쓰레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내 영혼을 죽음의 권세에서 건지시고 영광의 빛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힌 분으로 충분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편 49:12~20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지혜
어제의 말씀에 이어서 계속해서
물질을 신뢰하는 어리석음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돈으로 피는 살수 있지만 생명을 살수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이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요 존귀하다고는 하나
영원히 살 수는 없다.(12)
자신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운명을 보아라(13)
저들은 양 같이 죽을 것이며...
저들의 몸은 호화로운 저택에서 떠나 무덤에서 썩어 없어질 것이다.(14)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여
내 영혼을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시리다.(15)
참 지혜란? 참 깨달음이란?
인간의 유한 함을 인정하는 것이요
미래를 볼 수 있는 안목이요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다.
남이 돈을 모아 점점 부유해지고
그 집안의 명성이 높아갈 때
그런 것을 보고 부러워하지 말아라.(16)
왜냐하면 그가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이다.(17)
그렇습니다 주님 물질 때문에 기 죽지 않게 하시며
적은 물질 때문에 열등감 갖지 않게 하시며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비록 적은 것 일찌라도 주신 것에 감사하게 하옵시고
귀하고 값지게 쓸 수 있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부자라고해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가기 때문에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 할 필요도 없고
악을 행하며 부를 축적하는 자들을 시기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비록 이 세상에서 만족을 느끼고
성공했다고 칭찬을 받을찌라도(18)
결국은 자기 조상들 처럼 죽어 다시는 생명의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19)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20)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말씀하시는 것이 생각난다.
죽음 이후의 삶을 해결 하지 못한 자는 도살장으로 가는 개, 돼지와 같다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구원
생명의 구속 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없다.
성공보다 더 중요하고
만족과 칭찬보다 더 소중한 구원
돈으로 살 수 없는 구원, 생명의 빛 가운데 늘 행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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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고라 자손의 시로 일종의 지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를 서로 비교하면서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계 있는 인생은 사라질 운명을 갖고 있기에 짐승같이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곧 어리석은 자의 운명, 재물의 한계, 의인의 운명 등입니다.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 ‘그들은 양과 같이 무덤 안에 누워 있으니 죽음이 그들을 다스리리라’는 말입니다. 어리석은 자들과 그들의 운명을 양과 목자의 관계로 묘사한 말로서, 사망이라는 목자가 어리석은 자와 같은 양을 인도한 곳은 다름이 아니라 죽음의 장소인 ‘스올’이라는 것입니다. ‘스올’은 히브리어 ‘쉐올’을 그대로 번역한 말로, 구약 시대 히브리인들이 사람이 죽은 뒤에 영혼이 간다고 믿는 저승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땅 밑의 세상’, ‘죽은 자들이 들어가는 음부’, ‘무덤’ 등으로 종종 쓰입니다.
특이한 점은 그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것입니다. 즉, 어떤 일정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의 분리 상태라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로 들어와서 발전된 개념이 헬라어로 ‘하데스’입니다. 그 뜻은 ‘형벌의 처소’란 의미로 비로소 지옥이라는 곳이 밝혀집니다. 그래서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는 말이 이어서 나온 것입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모든 모습은 사라지게 되고 그들은 죽음과 어두운 형벌의 장소에서 거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곧 지옥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여 내 영혼을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시리라.’라는 말입니다. ‘건지다’라고 번역된 히브리동사는 ‘구속하다’, ‘속량하다’의 뜻으로, 아무도 자신의 생명을 돈으로 속량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영접하다’라는 동사도 에녹이나 엘리야 같은 의인을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문장은 시인의 핵심과 같은 말입니다. 불경건한 자의 어두운 종말을 묘사한 시인이 본 절에서부터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된 경건한 자의 찬란한 영원한 삶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 ‘아무리 영화를 누리며 살아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잠깐 살다 죽고 마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입니다. 즉, 제 아무리 명예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란 오래가지 못하고 죽는 짐승과 같으니 이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깨달음’으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지혜가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참 지혜를 가지라는 주문으로, 결국 본 시의 핵심은 재물을 믿고 사는 자는 짐승처럼 땅으로 들어가 버리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고 사는 자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 안식하게 된다는 선언입니다.
사람은 두 개의 세계를 살아야 합니다. 하나는 이 세상의 삶이고 또 하나는 저 세상의 삶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쩐 일인지 이 세상의 삶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저 세상은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에 올인합니다. 실은 저 세계의 삶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한데요. 왜냐하면, 이 세상은 촌음과 같이 빨리 지나가지만 저 세상은 영원하고,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보다도 더 분명한 것은 장차 우리가 살아야 할 당연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자기 존재만큼이나 저 세상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이나 지옥을 상징적인 개념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신학자들이나 일부 목사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인 교훈을 주기 위하여 성경이 그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어떤 장소의 개념이나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 신도 추상적인 것이니까. 예수님도 믿을 수 없다! 후대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기 위해 있지도 않는 세상을 위해 쇼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성경도, 하나님도, 그리스도도 다 거짓이고, 우리의 구원도, 영생도, 믿음도 헛됩니다. 결국 기독교는 사교가 되고 맙니다. 천국과 지옥은 존재합니다. 비록 우리 두뇌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형태로든지 반드시 있습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이 일편단심 구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서, 우리 주님이 그토록 십자가에서 고초를 당한 것으로 보아서, 또한 수많은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교부들이 그토록 복음을 외친 것으로 보아서 그것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처럼 보이는 세상만 알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금수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족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유가 있어 좋아 보이지만 그 여유가 영원한 세계를 보장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있을 때 칭찬받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칭찬 받을 때는 좋을지라도 그 칭찬이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인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돈 많은 사람들을 좇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돈이 자랑과 명예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을 받아 재산을 많이 모은 사람은 당대에 다 쓰고 가기를 바랍니다. 물론 선한 일을 위해서입니다. 유산은 자식을 망칠 수 있고, 아울러 그 사람의 영혼을 이 세상에 묶는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주님이 돈 많은 청년에게 모든 것을 다 팔고 그리고 따르라는 뜻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 세상을 갈 수 있는 선택은 이 세상에서 결정해야 하는데 필경은 돈이 그것의 결정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돌아야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은 본향입니다.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예수님이 우리들이 가기를 원해 마련해 놓으신 곳입니다. 그 세계를 위하여 이곳에서 지나가는 삶에 목숨 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늘나라를 가지 못하는 것은 수치이고 모욕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천국과 지옥을 신뢰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을 위해서라도 천국과 실체는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불신에 대한 어쩌면 보상차원을 위해서도요. 히브리서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요’ 그 말씀 그대로 믿는 자에게 하늘나라는 실제가 될 것입니다. 이미 시작된 그 나라를 살다가 기어이 주님이 계신 그곳에 우리는 당도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하늘나라가 열리는 영광이 있을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사람은 존귀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창1:27) 그러나 자기를 존귀케 하시는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하니, 그에게 영생이 없어서, 그 존귀가 아무 소용 없게 되고, 짐승과 다를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12)
그래서 하나님 없는 자들은 짐승이 죽음 같이 그들도 죽는 겁니다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전3:19)
그렇다면 왜 존귀한 자가 짐승처럼 죽는 것일까요?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
깨닫지 못하면 패망하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호4:14)
그러므로 우리는 깨닫기 원합니다 사람은 우매 무지함으로 짐승과 같음을 깨닫기 원합니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시73:22~23)
사람이 하나님 없이 살면 짐승과 다름이 없음을 깨닫기 원합니다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전3:18)
계속 그러다가는 사망이 그의 목자가 될 것임을 깨닫기 원합니다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시49:14)
그러나 하나님은 짐승보다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깨우치시기를 원하십니다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욥35:11)
그러므로 회개하기 원합니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욥34:32)
그리하면 주의 말씀을 묵상할 때 깨닫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시119:130)
그때 우리를 살게 하시고,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시119:144~145)
➲ 재물의 무익함을 깨닫는 삶이어야 합니다(13~20절).
자신을 믿는 어리석은 자들과 그들의 말을 기뻐하며 따르는 자들의 운명은 양처럼 스올로 끌려가고, 죽음이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고, 그들의 육체는 무덤에 묻혀 썩어질 것이고, 무덤이 그들의 호화스런 저택이 될 것(13~14절,새번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 목숨을 건져 주시며, 스올의 세력에서 건져 주실 것(15절)이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더라도, 그 집의 재산이 늘어나더라도 초라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어차피 죽을 때 재신을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기 때문이요, 세상에 성공했다며 칭송을 받더라도 그 인생 역시 죽음이라고 하는 공평한 자리에 설 수 밖에 없는 존재(16~19절)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돈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동물들과 같습니다...’(20절,쉬운성경)... 그러므로 인간은 환상에서 깨어나 궁극적인 실재, 즉 영접하시는 하나님을 붙잡아야 함을 시인은 교훈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내 인생의 궁극적인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재물이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사용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잠시 후에 없어져 버릴 단지 이 땅의 것만을 위하여 쓰여 지고 있느냐, 아니면 하늘에까지 영원하며 신령한 일에 쓰여 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 참 많은 것을 누리며 하나님 뜻과 상관없이 살다 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허탄한 삶을 부러워하는 인생이 아니라 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인생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을 사모하는 참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결코 인생에 구원을 주지 못하는 재물을 의지하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영원한 말씀을 믿고, 따르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사라질 들풀과 같읕 다른 이들의 형통함에 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말고, 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시 49:1~20절)...
오늘의 말씀요약
종말에 어리석은 자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될 것이지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자신을 영접하실 것이라 합니다.
부자가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도 따라가지 못하니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어리석은 자들의 길 (49:13~15)
어리석은 자의 길은 영원한 멸망이며, 지혜로운 자의 길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도는 지혜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발견하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생명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삼고 따르는 성도는
하나님의 영접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15절; 요 5:24).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주님을 거부함으로 영원한 죽음에 처하게 됩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아름다움은 모두 사라지고 말 뿐이며, 그들을 사망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구원자로 영접하면, 종말의 때에 생명의 주님이 우리를 두 팔 벌려 맞이해 주십니다.
또한 사망 권세가 우리를 조금도 해하지 못합니다.
- 종말에 어리석은 자는 어떻게 되며, 죽음의 권세 앞에서 시편 기자가 담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종말에 하나님의 영접을 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는 인생 (49:16~20)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뜻이 삶 속에 이루어질 때 의미를 갖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타협하거나 스스로 강해지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곧 사라질 대상을 의지하는 이들은 이름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악인은 폭력과 거짓으로 잠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지만,
인생에서 그토록 얻고자 했던 명예나 재물이나 그 어떤 세상 것도 자신이 죽을 때 함께 가져갈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도록 존귀하게 창조된 사명을 깨닫지 못하면,
결국 멸망하는 짐승처럼 살다가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질 뿐입니다.
우리 삶은 하나님의 존귀한 창조 목적을 이루어 드릴 때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 악인들의 성공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서 가장 의미 있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오늘의 기도
사라질 들풀과 같은 악인의 형통을 보고 부러워한 것을 용서하소서.
세상 명예와 재물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영원의 관점에서 가치 있게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칭찬받게 하소서.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허탄한 것들을 붙잡지 말고
오직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영광과 기쁨을 소유하는
주님의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가운데 잠시 넘어지고 연약한 존재로 살아갈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그의 친구로 손잡고 걸어가는 복된 삶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요.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기름을 부으사 풍성히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눈물 흘리는 이들을 찾아가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뻗어 주시옵소서.
저 북한 땅에 백성들에게 영광의 빛을 바라보게 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중심에 두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