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지만 견딜만 했다.
이사 업무까지 다 하느라 야근이 잦았지만, 그 누구도 내 업무에 지적을 할 수가 없었기에 하고싶은 대로 다 하면 그만이었다.
점심시간 통제하다가 미친놈처럼 이미지가 되버렸고,
몇몇 직원들이 내가 무섭다거나 기분파라는 둥 뒷담화 한다는 것도 전해 들었지만,
그래도 내겐 친한 친구들이 있었다.
계속 말을 바꿔대고 승질 부리는 사장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 기분 좋을 땐 그렇게 쿨한 놈도 없었다.
세세뇽까지 오자 원래도 일 안하던 놈이 더 극단적으로 안하려고 하는 슈이사를 보면서 토가 올라왔지만,
그래도 사람은 착했다.
그런 내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자꾸 위험한 일을 시켜서였다.
아무리 넷상이라 해도 위험할 수 있기에 자세히 풀 수는 없지만,
검찰에 들어갈 서류, 회계사에게 제출할 서류 등을 위조하는 업무를 나와 세세뇽에게 시켰다.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 사람들이 과연 나를 책임져줄까?'
어림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는 잡플래닛 평점이 낮은 편이기에 채용이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헤드헌터를 주로 쓰곤 했다.
수많은 헤드헌터에게 의뢰하던 중 나는 콩테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젠틀한 척 했지만 사실은 아주 다혈질이었다.
그 사람이 추천한 인력을 채용하고자 했다. 그러려면 연봉의 20%를 수수료로 납부해야 했다.
다른 곳은 수수료가 15%인 경우도 있지만, 이미 그런 업체들은 채용을 포기한 아주 어려운 건이었다.
난 해당 헤드헌터와 협약을 맺기 전 사장에게 분명히 보고했다. 수수료까지 말이다.
사장은 당장 급한 포지션이니 "빨리 해 빨리!"라고 할 뿐이었다.
사장은 콩테가 추천한 인력을 상당히 마음에 들었고,
연봉을 산정하여 보고서 올리라고 했다. 그래서 난 해당 보고서에 채용 수수료가 얼마인지도 넣었다.
갑자기 사장이 노발대발 하기 시작했다.
"락과장!!! 채용 수수료가 20%인 곳이랑 누가 하나!!!"
"으엣... 저번에 분명 말씀 드렸..."
"이걸 어떻게 내냐고오오오!!!!"
"네고 해보겠습니다..."
난 콩테에게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채용 수수료 20%라 하신 거 있지 않습니까..."
"네."
"네고가 가능할까요."
"네고를 문의한다는 것은 제가 추천한 인력을 뽑으려는 상황인가요?"
난 아무 것도 확답할 수 없었다.
NEGO가 안된다면 나도 사장이 어떻게 할 지 예상이 안 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아니고 그냥 여쭤보는 것입니다."
"이상한데요? 뭐하러 그냥 여쭤보시죠? 채용을 하실 마음이 있으니 여쭤보시는 거 아닐까요?"
"모르겠습니다. NEGO 가능한 지 사장님께서 여쭤보라고만 하셨습니다."
"NEGO는 당연히 가능하죠~ 우리 락과장님이신데~~
하지만 얼마나 가능할 지는 그 분을 뽑을 지 안 뽑을지부터 먼저 대답을 주시면 답변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숨 막히는 심리 싸움.
난 일단 전화를 끊었다.
사장님께 NEGO가 어느 정도까지 돼야 그 사람을 뽑을 것인지 확답부터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측에서 뽑겠다고 하면 헤드헌터는 해당 지원자에게 합격 사실을 알릴 것이고,
그 후 수수료 때문에 엎어진다 해도 채용을 취소할 순 없다. 그것은 해고에 준한다.
그렇게 사장님실에 들어갔는데 아르무아 이사가 있었다.
아르무아 이사는 슈 이사만큼 무능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으며, 이번 포지션 채용 시 1차 면접관이었던 사람이다.
"락과장!!! 방법이 다 있잖아!!!"
사장이 승질내듯 날 쳐다 봤다.
"에?"
"아르무아 이사가 1차 면접 때 개인 연락처를 받아 놨대."
뭔 개소리야. 그 지원자 개인 연락처는 나도 있어. 면접 안내 할 때 전화가 왔으니깐.
"그...래서요?"
아르무아 이사가 마치 자신이 어려운 상황을 해결했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
"헤드헌터한테는 탈락했다고 하세요. 그 후 제가 따로 연락해서 합격했다고 할 생각입니다."
잠깐만...
무슨 소리야...
진심이야?
"그렇....게는 못 합니다."
"왜."
"걸리면 소액재판 들어갑니다. 이 지원자가 속한 분야는 특히 업계가 좁습니다.
걸릴 위험이 너무 큽니다.
헤드헌터 분들 하는 일이 매일 이력서 보는 건데, 이분이 이력서에 우리 회사명 넣으면 언젠간 걸립니다."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정하지?"
"아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정말로... 걸리는 순간 소액재판 가는 것도 그렇고,
헤드헌터 분들 다 블랙리스트 기업 공유하고 있어서 나중에 진짜 사람 뽑고 싶어도 못 뽑게 됩니다."
아르무아 이사는 헛웃음 치면서 다가오더니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안 걸리게 락과장이 지원자한테 잘 말하면 되지~"라고 했다.
"전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난 90도로 인사를 박았고,
"너무 FM대로 하려고해 락과장은. 우리가 갑이야!!! 왜 끌려다니려고 하나!!!"
사장은 또 승질 내기 시작했고,
"좀 그런 면이 있더라고요~ 우직한 친구예요~~"라고 맞장구 치는 아르무아 이사가 더 싫었다.
"너는 그냥 이 일에서 빠져. 슈이사 들어오라 해."
"사장님... 진짜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제발요..."
"슈이사 오라 해."
난 터덜터덜 사장실을 나가서 슈이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슈이사는 멍 때리면서 듣고 있다가
"근데 아까부터 말하는 연봉의 20%라는 게 무슨 소리야? 수수료가 원래 처음부터 고정돼있지 않은 거야?"라는
정말 너무나 원초적인 질문을 해서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 지 감도 안 잡혔다.
그 후 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헤드헌터에게 매일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진행사항 있나요~?"
"아뇨 뭐... 아직 합격 여부 논의 중인 것 같습니다."
"참 이상하네요? 수수료 얘기가 나왔다는 건 연봉 얘기도 분명 나왔을 텐데... 아직 합격 여부가 결정이 안 된 건가요?"
"네 그렇죠. 당연하죠. 채용 할 때 연봉도 고려해서 채용 여부를 확정하는 게 당연하니깐요."
"흐음... 뭔가 촉이 자꾸 오는데... 안 좋은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만... 알겠습니다."
살다 살다 그런 헤드헌터는 처음 봤다.
대부분 헤드헌터는 굉장히 친절한데 그분은 진짜 끊임 없이 압박하는 스타일이었다.
슈이사가 관여하게 된 이상 의사 결정은 무조건 느려진다.
작은 사무실 조명이 나가서 어둡게 일하는 것을 4월에 말했는데,
슈이사가 자기가 아는 업체가 있다면서 도맡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작은 사무실의 조명은 무려 11월에 설치가 됐다.
그 기간동안 작은 사무실 직원들이 나에게 조명 달아달라고 1,243번 말했고, 나도 슈이사에게 1,243번 말했다.
드디어 정해졌다고 하여 지출결의서를 써주려고 서류를 받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견적을 받은 것이 슈이사가 아니라 작은 사무실 직원이었다.
기다리다 못한 작은 사무실 직원이 직접 업체 비교하여 최저가 찾고,
슈이사한테 준 것을 슈이사가 계속 뭉개고 있던 것이다.
11월에 작은 사무실 인원이 이젠 더는 어두워서 일을 못하겠다며 나에게 하소연을 했고,
나도 그 하소연 듣는게 지겨워서 슈이사한테 "도대체 언제 됩니까! 그냥 제가 하게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준 것이 그 견적서였다.
조명업체에서 우리가 어딘지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채용 여부 확정도 지체되고 있었고,
그 기간 동안 난 헤드헌터에게 매일 독촉을 받았으며, 슈이사에게 매일 결과를 문의하였으나
슈이사는 "아직..."이라고 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난 헤드헌터의 전화를 언제부턴가 그냥 안받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자 언제 시간 되시냐 문자가 계속 오더니
"시간 되실 때 사무실 좀 방문 하겠습니다. 언제 가능하실 까요?"라는 문자가 왔다.
난 해당 상황을 슈이사와 아르무아 이사에게 말했다.
정말 둘 다 하나도 든든하지 않았다.
슈이사는 그 말을 듣고 모니터를 보며 "오라 그래~ 문 잠그면 되지~"라고 하고 있었고,
아르무아 이사는 "하아... 락과장... 애초에 제가 하자는 대로 했으면 됐잖아요... 왜 일을 복잡하게... 참..."이라는 개소리를 했다.
너무 막막했다.
둘 다 병X이다.
오십보 백보지만 그나마 백보는 아르무아였다. 그래도 뭔가 한다고는 하니깐 말이다.
"에휴... 제가 얘기 나눌게요. 오라고 하세요."
그치만 불안했다. 탈락했다 하고 따로 연락하는 헛짓거리를 할까 봐.
"아르무아 이사님... 정말 부탁 드립니다. 길게 보십시오...
절대... 절~~~대 위험하게 하지 마세요...."
"흠... 알겠어요... 나도 뭐... 락과장이 뭘 걱정하는 지도 알고, 동의하는 부분도 있어요~"
아르무아 이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믿음이 1도 안 갔다. 자꾸 이상한 짓을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콩테 헤드헌터와 아르무아 이사가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아르무아 이사는 당당하게 나에게 오더니 "해결했어요..."라고 했다.
그 결과는 채용수수료를 2% NEGO한 18%로 채용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난 장담한다.
애초부터 솔직하게 오픈했으면 더 NEGO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 결과지를 받고 너무나 허무하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이 2%를 위해 약 한달 간 스트레스 받은 것이 너무나 억울했다.
시간이 흐르고 회사를 오래 다닌 형과 담배를 피며 얘기를 나누었다.
"형, 근데요. 그 때 아르무아 코치가 편법을 쓰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가 뭘까요?"
"정당하게 하고자 마음 먹은 게 절대 아니야."
"그러면요?"
"그냥 그 사람은 누구 속여먹을 깜냥이 안 돼. 근데 지도 그러면서 그 일을 널 시키려고 한 거야."
'왜 일을 자꾸 이딴 식으로 하는 지 도저히 모르겠다.'
-끝-
에피소드에 추가할 정도는 아닌 소소한 일화
우리 회사에는 엄청 무서운 전무가 있었다. 그는 가투소 전무.
그는 모두에게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욕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나에겐 친절했다.
아마 내가 인사팀이어서거나 아니면 내 덩치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가 급하게 전화를 하더니 자신이 면접 본 사람에게 합격 발표를 하라고 했다.
"연봉이나 직급은요?"
"뭐 한 X800만원? X900만원? 그정도 줘~
직급은~~~ 아마~~~~ 과......... 보자 보자.... 차장?"
너무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 머리에서 나오는 즉흥이었다. 이대로 오퍼할 순 없다.
"사장님께 보고 드리고 오퍼하겠습니다."
"그냥 하세요. 그러다 그 사람 놓칩니다."
"사장님께 보고 드리고 오퍼하겠습니다."
"내가 이미 보고했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사장님께 보고 드리고 오퍼하겠습니다."
"야이 씨X새끼야!!!!!!!!!!!!!!!!!!!!!!!!!!!!!!!!!!!!!!!!!!!!!!!!!!!!!"라고 갑자기 소리를 치더니
"죄송합니다아아아아!!!!!!!!!!!!!!!!!!!!!!!!!!!!!!!!!!!!!!!!!!!!!!!!!!!"하고 바로 소리 쳤다.
"에?"
"욕한 거 아닙니다! 혼잣말입니다!"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네네... 사장님께 보고만 드릴게요."
"네!!!!!!!!!! 그러십시오!!!!!!!!!!!!!!!!!!!!!!!!!!!!!!"
사장님께 전화 드려서 보고 했는데 "흠 뭐~ 가전무 원하는 대로 하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합격 통보했고, 채용이 확정 됐다. 난 사장, 가전무에게 보고 메일을 썼다.
그리고 슈이사에게 가서 "이사님 이 사람 채용 확정 됐습니다. 근데 가전무가 저한테 욕했습니다."라고 했고,
"왜!!!"라고 했다. 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슈이사는 벌떡 일어나더니
"그 사람은 정말 욕쟁이야." 하고는 다시 앉았다.
그리고 집 가는 길...
갑자기 가전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 전무님. 그 분 채용 확정 돼서 메일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네네. 쉬세요~"
"아까 욕한 거 락과장님한테 한 거 진짜 아닙니다."
"엥..? 알겠으니 그만 사과하세여;;;"
"감사합니다..."
그 사람은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왜 그랬는 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욱하는 성질이 강한데 인사팀에 욕을 한 것이 인사 고과에 영향이 갈까봐 그런 것 같았다.
사실 그러기엔... 슈이사와 나와 세세뇽은... 아무 힘도 없는데 말이다....
-끝-
첫댓글 빨리 사이다 퇴사 결말 보고 싶어요... 가슴이 턱턱 막히네요 너무
갑자기 부담되네요
사이다 맞나ㅜㅜ
10 시리즈에 나눠서 글로 적어주셨지만 이 안에 담지 못한 감정들과 이야기가 많으리라 생각 됩니다.
남들보다 더 빨리 큰 경험 하셨다 생각하고 다음번엔 천사같은 직장동료들과 좋은 회사 있길 바래용
정말 감사해요 위로 받았습니다
저기 임원들 어떻게 거기까지 간거죠? ㄷㄷㄷ 와.. 밑에 직원들 너무 힘들겠는데..
도저히 모르겠어요
드디어 결말이 슬슬 보이네요
곧입니다 곧!
꿀잼이네 ㅋㅋ
감사합니닼ㅋㄱㄲ
오우 감사해요
괜찮아여~~
삭제된 댓글 입니다.
신기하게 굴러갑니닷
꾸르쩀
감사해여ㅋㅋ
와 이게 뭐라고 집중해서 보게되나
감사함도ㅏ
선생님 30편까지 만들어주지 않으면 신고할겁니다.
장난이고 너무 꿀잼이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어요ㅋㅋㅋㅋ
30편은 10년은 다녀야ㅋㅋㅋ
슬슬 끝이 보이는데 몇부작일까요
11부~12부작
아숩네요...꿀잼시리즈인데...
저도 2년 밖에 안다녀서리 헤헤ㅠㅠ
2년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눈에 선합니다 이제 행복하십쇼,,,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당 다들 완결까지 함께 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해요
필력ㅋㅋㅋㅋㄱㅋㅋ
오우 감사합니다
이제 퇴사에 가까워 오는군요 ㄷ 쭉 읽었는데 실제라는게 안 믿김
감사합니닷
잘읽었습니다
감사해요!
꿀잼이네요 ㅋㅋㅋ
재밌으셨다니 다행임돠
하 윗사람들 정말 숨막히네여
100명짜리 작은 기업에 전무가 여럿이군요...
완전 역피라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