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에 눈을 뜨니 인환이는 이미 산책응ㄹ 나갔다. 희용이는 누룽지와 감자로 아침을 차려준다. 난 비에 젖은 풀과 꽃을 보다 온다. 인환이가 운전하여 산굼부리로 간다. 안개로 시야가 없고 검은 담장에 피어있는 빨간 채송화?인가가 그나마 보인다. 나무와 원추리를 보고 나온다. 가보고 싶었지만 처음인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갔다. 예술작품을 남긴다는 건 미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셔터 누를 힘이 줄어들 때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난 너무 게으르고 지멋대로다. 점심은 서귀포 용이식당인데 돼지두루치기다. 빨간 돼기고기가 껍질까지 달고 불판에 올려지고 콩나물 등이 보태진다. 기사식당이었다고 술이 없다. 인환이가 사오겠다는데 참기로 한다. 북적이는 올레시장을 지나 이중섭미술관에 간다. 이중섭생가와 공원부근을 몇번 걸었어도 미술관 안은 처음인 듯하다. 그가 일본인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가 보인다. 나도 학생 때 편지를 많이 썼는데 지금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다. 그 떄 내 마음을 토로하던 편지들이 내 마음속에 있을까 편지의 수신인에게 있을까? 곁에 있는 해녀작가의 유화작품을 보고 유동 커피에 앉아 있기도 한다. 희용은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답다는 7코스로 안내한다. 여전히 흐리다. 나리를 보고 하얀 파도를 찍어본다. 가끔 길을 벗어나 이슬 젖은 풀에 긁힌다. 외돌개를 돌아보다 차로 온다. 제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절이 약천사인 것 같다. 초기엔 그 규모에 놀라 들렀지만 그 위세가 불심을 일으키는 것 같지는 않았다. 3층의 시멘트 건물을 한바퀴 돌아 뒤쪽의 지하 가는 수월관음도전시장으로 내려간다. 난 무위사 수월관음도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옛관음도가 아니라 현대 작가스님의 작품인 모양이다. 그 세밀한 정성과 표현기술에 놀란다. 내 방의 한 벽에 저런 부처님 한분 모셔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돈이 꽤 된다. 대포 주상절리를 가는데 반쯤 막혀있다. 작은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들어가지 않는데 난 샌들을 신었지만 무식하게 바위를 건넌다. 구멍 뚫린 화강암은 미끄럽지 않다. 희용이의 계획이 있을텐데 내가 복렬이 형집에 가자고 한다. 모두 동의하여 제주에서 흑돼지를 먹는다. 낮에도 돼지고길 먹었는데 난 염치가 없다. 형은 외출하고 형수가 택시기사 아주버니와 술을 마시고 있다. 오겹살을 먹고 있는 사이 복렬이 형이 문어 등을 사 왔다. 그가 숙회를 썰어와 술자리가 이어진다. 경태는 그런대로 술을 마시지만 희용이나 인환이는 그리 즐기지 않으니 속으로 미안하다. 복렬형과 늘어지는데 어느 사이 친구들이 일어나 계산하고 나간다. 인환이가 긴 시간 악조건 속에 운전해 숙소로 돌아온다. 우린 또 술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