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조의 종류
정형시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 민족정서의 보편적 리듬, 즉 민족의 내재율이 패턴화한 詩形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과 문화의식의 변화 및 시정신이 향하는 바에 따라 새로운 장르가 형성되기도 하고 기존의 시가형식에서 변형된 형식이 나타나기도 한다.
시조에는
단(형)시조(평시조),
중(형)시조(엇시조),
장(형)시조(사설시조),
양장시조 등의 4종류가 있고 그 길이에 따라 구분된다.
단형시조(평시조) : 시조의 중심이 되는 형식으로서 3장 6구 12음보로 구성된 시형이다.
중형시조(엇시조) : 초·중·종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6∼7음보로 이루어진 시형이다.
장시조(사설시조) : 초·중·종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8음보 이상 길어지거나 各 章이 모두 길어진
산문적 시형이다.
양장시조: 시조의 형식 가운데 개화기에 이르러 출현한 시형으로서 초·중장 가운데 한 장이 줄여진
시형이다.
출전: 김제현,「,시조문학론」,예전사,1992,21쪽
2. 엇시조(중형시조)의 형성
중형시조, 즉 엇시조의 발생시기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究明되어 있지 않다.
17세기 영·정조 때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받아들인 실학사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중간적 단계로 평시조에서 파생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엇시조 역시 사설시조와 마찬가지로 작자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아 그 형성시기를 고증하기 어려우나 자체적으로 볼 때 발생기는 세종 대(代)로 추정되어진다.
먼저 작자를 밝힐 수 있는 중형시조로서는 윤선도의 <漁夫四時訶> 가운데 冬 10首를 들 수 있다.
어와 저므러간다 안식이 맏당토다
눈 브린 길 불근 곳 훗터딘
흥치며 거러가셔
雪月이 西峰에 넘도록 松窓을 비겨잇쟈
<孤山遺稿 75>
이 시조는 다른 평시조(후렴구 제외)와 아울려 「어부사시사」의 맨 끝수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중장이 6음보로서 평시조보다 1구(2음보) 더해진 형태의 엇시조이다.
「어부사시가」의 정확한 연대는 효종 2년이나 엇시조 역시 시조(단가)로서의 형식 개념은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고 독립적으로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연시조에 포함되기도 한 듯하다.
사실 엇시조의 발생 및 형태에 관한 고찰은 극히 단편적이었고 17∼18세기 평시조에서의 파생설과 명종때의 발생설로 요약할 수 있다. 평시조의 음률을 조금 더 자유롭게 구사했을 때 평시조의 파격적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엇시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시조는 박인로의 < 달은 뒷東山 말네……>이다.
달은 뒷동산 말네 덩지 둥그러이 돋아 고
질 는 니 수풀에 풀덕풀덕 나라들재 외나무 다리예 가아
녜 저리 얼 나 멀건데 묘죵성(暮鍾聲)이 들니다
朴仁老 : 「蘆溪歌辭」
이 시조는 중장이 7음보인 엇시조이다. 박인로의 생존 기간이 명종 16년∼ 인조 20년이니 작가가 밝혀진 최고의 엇시조이다. 그러나 근래 발견된 백수회의 문집 <松潭遺事>에 실린 시조 3장과 가사 2편 가운데 「到對馬島歌」는 엇시조임을 알 수 있다.
海雲臺 여흰날의 對馬島 도라드러
눈물 베셔고 左右 도라보니 滄波萬里를 이라 게이고
두어라 天心順助?糖? 使返故國 ?糖?라
白受會:(到對馬島歌)
이 시조는 선조 때 임진왜란을 당하여 19세의 나이로 일본에 끌려간 백수회의 所作이다. 9년간 일본에 억류되어 있으면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정과 귀국의 염원을 노래한 것으로서 중장이 7음보인 엇시조이다.
비록 선조 이전의 엇시조는 찾아볼 수 없으나 정극인이 「불우헌가」를 단가(사설시조)로 일컬었고 또 「상춘곡」과 같은 국한문 혼용체의 가사가 이미 있었음으로 보아 백수회에게도 엇시조, 사설시조에 대한 형식개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식개념을 통해 볼 때 이미 前代로부터 先行作이 있어 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엇시조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 이후 우리의 어문이 점차 발전하여 서민계층에까지 확대되고 평시조의 형식적 제약을 어느 정도 벗어나 자유롭게 말을 구사하면서부터 평시조에서 파생되어 형성된 시형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엇시조의 발생 시기는 세종대로 추정되는 것이다.
출전: 김제현,「,시조문학론」,예전사,1992,148-1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