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25;1-33, 사무엘이 죽으매. 2022. 7. 10.
먼저는 지난 월요일에 이번 주일 설교 말씀의 본문과 제목이 결정이 되고 목요일에 주보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부터 설교문을 작성하고 마무리하는데 아베 전 총리의 피습소식을 듣습니다. 결국 오후에 서거했다는 소식이 보도 되면서 일본과 세계가 충격에 휩싸이게 되고 일본 열도는 슬픔과 낙심에 빠졌습니다. 이에 주의 이름으로 위로를 드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윗을 다윗이 되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없이는 다윗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삶의 모든 것을 바로 이끌어 주고 세워 가신 분은 사무엘 선지자 이였습니다. 지금도 다윗의 멘토는 시무엘 입니다. 그런데 25장으로 들어오면서 반전이 이루어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들에게 위기상황이 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정신적이며 신앙적 지도자인 사무엘이 소천을 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소천이 가져온 결과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무엘을 기대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낙심과 절망이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낙심하는데 특별히 낙심한 현장의 중심가운데 다윗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 가운데에서도 의연하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그의 절대적 후원자 사무엘이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고생이 되도 고생인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소망과 꿈을 성취시켜주실 하나님과 사무엘이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있는 한 다윗은 어디에 있든지 안전했고 든든한 지원 군 이었습니다. 특별히 다윗의 왕 됨에 필요한 인물은 사무엘 이었습니다. 다윗이 왕 될 때까지 사무엘은 반드시 다윗 곁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자신에게 돌려놓은 일도 사무엘이 있어야 가능한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떠납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없는 다윗의 마음속의 모든 계획과 모든 일정이 불투명하게 되었고, 마음에 없던 행동을 하는데 그것이 바란 광야로 떠나는 것이고, 또 이전에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일을 기억하고 그 은혜에 보답 하라고 합니다. 사무엘의 떠남은 뜻하지 않은 일이었는데 이 일로 자기의 자리를 지킬 줄 모르고 잠시 괴로워하고, 인생을 의지하고 방백을 의지합니다. 그러니까? 사실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윗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과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는 이 두 가지에 대하여 잠시나마 실패를 합니다. 그래서 바란 광야로 나와 이전에 베푼 은혜를 기억하며 나발을 찾아 가는데 이때 나발이 거절하고 모멸감을 줍니다. 이 거절에 대하여 다윗이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거절에 민감하게 되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지 자신에게 상처가 되고 괘씸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거절을 하더라고 정중히 거절하고 마음상하지 않게 하고 원한 사무치도록 하면 아니 됩니다. 그런가 하면 혹시 거절을 받으시더라고 상처받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5장의 시작과 함께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다윗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이 사무엘의 거처인 라마에서 사무엘을 기억하면서 슬퍼하고 장례일정을 마쳤습니다. 그리말씀다윗은 쓸쓸하게 바란 광야로 그의 식솔들과 함께 떠납니다. 살아갈 내일과 미래의 문제 때문에 고심을 하던 다윗이 마침 마온에 거주하면서 갈멜에서 생업을 하는 나발을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나발은 거부이었는데 나발이 부자가 된 배경에는 다윗과 다윗의 600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발을 도와주고 거부가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때 마침 나발이 양털을 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소년 10여명을 나발에게 문안을 드리게 하고 나발과 가문을 축복하고 이전의 은혜를 생각해서 좀 도와주기를 간청합니다. 그런데 나발은 말하기를 10-13;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와 이 모든 말을 그에게 전하매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방패와 담이 되어 주고 자산을 지켜준 그래서 갑부가 되게 한 은혜를 배반한 나발이 도움은 놔두고 저주에 가까운 말을 합니다. 다윗이 누구이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이며, 사울 왕을 떠난 사람이며 어디서 온 사람인지 모른다고 하면서 내가 어찌하여 내 떡과 고기를 다윗에게 주겠느냐? 선을 악으로 갚았습니다. 이런 보고를 받은 다윗이 화가 나서 400명과 함께 칼을 차고 나발에게로 직접 출정을 하는데 이 때에 나발의 하인이 나발의 부인에게 이 위급한 사실을 알리고 다윗 때문에 지금의 주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 내용을 들은 나발의 부인인 아비가일이 18-20,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에게 이르되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호젓한 곳을 따라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아비가일은 다윗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어떻게 합니까? 즉시 행동을 하고 화가 난 다윗에게로 향합니다. 아주 정교하게 섬세하게 표현을 하고 용서를 구하고 선처해 달라고 합니다.
25;23-31.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니라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가로되 내 주여 청컨데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으로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원 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의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사시고 내 주도 살아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수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여종이 내 주에게 가져온 이 예물로 내 주를 좇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쫒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수하셨다든지 함을 인하여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신 때에 원컨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옵소서. 얼마나 구구절절이 맞는 말입니까? 이런 아비가일의 행동과 표현과 선대함을 보고 다윗이 32-35.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치 아니하였으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나도 남겨두지 아니하였으리라,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 다윗의 마음과 결정을 돌려 놓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비가일은 그의 남편 나발을 봅니다만 밝은 아침에 일어난 나발에게 다윗의 선대함을 말했더니 37-38.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에서 깬 후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남편을 떠나보낸 아비가일은 이후로 부터 다윗과 함께 동행을 하게 됩니다. 이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내용이 주는 의미와 진리와 교훈이 무엇입니까?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받은 은혜를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까요? 여러분, 사람들은 일과 관계가 잘 풀리고 위치와 지위가 높아지면 이전의 은혜를 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좋은 시절이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좋은 시절이 계속 된다 하더라도 뜻하지 않은 일들이 발생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가 코로나19를 알았고, 누가 경제가 이렇게 흔들릴 줄 알았고 금요일 사건이 날 줄 알았습니까? 그래서 호사다마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다윗에게 연이어 어려운 일이 발생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세상을 떠나고 거부가 된 나발이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다윗을 향하여 저주를 합니다. 여러분, 나발은 원래 관계의 텃밭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부의 축적을 가져왔고 내리는 비를 내 것으로 만들고 그래서 흔들리는 환경을 견디며 승리할 수가 있었고 벌레와 짐승으로부터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지도록 관계의 가꿈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이 가꿈은 언제 어디서나 필요합니다. 이전까지 나발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다윗을 보면서 이전의 은혜를 버렸고 관계의 가꿈을 버렸습니다. 여러분, 신앙과 믿음은 내 안에 차려진 텃밭에 비와 바람과 폭풍한설을 견디고 볕을 드리게 하여 주님의 약속과 기대에 넘치는 삶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은혜와 도움도 가꾸고 축복과 사귐도 가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려움 속에서 다윗의 맨토인 사무엘 선지자가 없음 가운데 허전하고 외롭고 힘든 삶의 구석에서 배반을 당합니다. 모른 척만 해도 괜찮습니다. 안된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이런 유의 모든 것들은 다 참고 신앙 안에서 녹여 낼 수가 있는 다윗입니다. 그런데 나발이 무엇이라 합니까요? 저주를 합니다. 텃밭을 가꾸기는 커녕 자갈을 쏟아 붓고 엉겅퀴를 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쁜 일이 개입될 때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지만 다윗은 연이은 사건과 관계 때문에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화가 나서 400명과 함께 칼을 차고 나발에게로 직접 출정을 했습니다. 왜 출정을 했습니까? 나발과 나발의 가문과 거부가 된 나발의 현실을 무너트리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할 일을 정확한 시간에 할 줄 아는 것이 능력이고 은혜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때를 놓치면 기회의 상실이고 기회뿐만 아니라 생명 까지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나발이 그렇습니다. 물론 다윗에 의해서 나발이 제거되지는 않았지만 결국에는 이 사건과 연결이 되어서 결국에는 이루었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나발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잔치를 열었던 나발은 다음 날에야 자기 아내에게서 일의 전말을 듣게 되었는데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열흘 만에 죽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여기에 개입하셨습니다. 37-38.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에서 깬 후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그런데 여러분, 신앙인은 어떤 말을 들어도 낙담하면 아니 됩니다. 그 것이 내가 좌초한 일 이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 일지라도. 왜냐하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까지도 바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낙담은 세상 사람들이나 하는 행위입니다. 절망과 낙담과 낙심과 포기와 같은 것들은 내 인생의 사전에는 없다고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사람은 혹시 잘못을 하더라도 빠져 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줍니다. 이때에 깨닫고 돌아서면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자기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인과 세상 사람의 차이입니다. 위대한 축복이고 커다란 은혜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있습니다. 다윗은 창을 들면 아니 됩니다. 나발의 집안을 멸하려고 하는 일을 하면 아니 됩니다. 그러면 절대로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일에 관여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나발 스스로 죽도록 내버려 두었는데 하나님께서 라는 표현이 붙었고, 자기의 길을 가도록 내 버려두셨는데 이것이 은혜를 아는 주의 사람과 다른 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받은 은혜를 늘 가꾸어 가시는 가꿈을 통해서 여러분의 삶이 늘 확장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늦었다고 생각 할 때가 가장 빠른 시간입니다. 늦었다고 포기하고 좌절하고 절망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때에라도 시작하면 가장 현명한 사람이 됩니다. 늦었지만 그 때 바로 시작하는 사람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집니다.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되고 나중 사람이 먼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비가일이 그렀습니다. 나발의 한 소년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원대한 계획과 세밀한 지침을 세웠어도 때-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그것은 모두 무위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아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비가일은 늦었지만 촌각을 다투어서 준비하고 만들었고 나발을 쓰러뜨리고 이루어 놓은 자산과 부를 무너트리려는 다윗에게 달려갔습니다. 14-22, 소년중 하나가 나발의 아니 아비가일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사자들을 보내었거늘 주인이 그들을 수욕하였나이다.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상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을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잡아 준비한 양 다섯과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뭉치 이백을 취하여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에게 이르되 내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 남편 나발에게는 고하지 아니하니라.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유벽한 곳으로 좇아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 도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중 한 남자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다윗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에게 달려가는 아비가일입니다. 아비가일은 늦었다고 포기하고 좌절하고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늦었지만 나발의 한 소년과 아비가일은 할 일을 했습니다. 나발의 소년은 아비가일에게 이야기를 했고 아비가일은 다윗을 만나기 위하여 늦었지만 준비를 했고 행동을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이미 늦었다고 판단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격언은 단순히 위로나 격려를 위한 것이기 보다는 경험의 산물입니다. 늦은 대로 아비가일이 급히 서둘지만 다윗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아 정성스럽게 마련합니다. 요구 사항을 잘 읽어내야 성공 인생이 됩니다. 사업과 관계가 그렇습니다, 소비자나 고객을 읽어내지 못하면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사회를 잘 읽어내고 정치와 경제와 미래 정보까지 잘 읽어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비가일은 이 읽어내는 일을 잘 했습니다. 남편 나발이 거부한 일을 늦었지만 떡과 고기와 과일을 넉넉히 준비해서 자기 집을 멸족시키기 위해 다가오는 다윗을 향하여 화급히 떠납니다. 그리고 만납니다. 아비가일과 다윗이 만난 곳은 아주 험한 지형이었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나귀를 타고 그곳까지 온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음식을 잔뜩 싣고 온 아비가일의 그 정성과 용기를 본 다윗은 이미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만난 아비가일은 가문을 지켜냅니다만 그러나 아비가일은 사랑하는 남편을 잃게 됩니다. 물론 나발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간섭을 하셨지만 아비가일이 나발에게 말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타이밍을 잘못 맞추었습니다. 심리적 타격을 주는 말이나 고통 받을 말은 누구에게든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해결이 되었든지 아니 되었든지 이 말을 해서 가슴을 쓰러 내릴 정도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비가일은 기쁘고 감사해서 다윗에 대한 문제를 나발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나발이 이 말을 듣고 낙담해서 몸이 돌과 같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래 전의 일이지만 저는 이렇게 이야기 말을 했습니다. 나를 화나게 하고 분을 내게 하는 소식과 말은 되도록 당신이 소화 하도록 하고 나에게 까지 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회초리를 들지언정 악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상대를 낙담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는 잘했고 하나는 잘못 한 아비가일입니다.
3. 나쁜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은 빠져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다윗이 지금까지 한 번도 나쁜 생각이나 나쁜 마음을 갖지 않았는데, 나발의 저주에 가까운 말을 듣고 좋지 않은 결심을 합니다. 그러면 나쁜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을 빼어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지금 다윗의 마음은 나쁜 것으로 가득했습니다. 원수 갚는 일로 가득했습니다. 베푼 은혜를 망각하고 저주한다고, 모멸감을 주는 나발에 대하여 머리끝까지 악에 바쳐있습니다. 사울 왕을 용서했던 다윗이 지금은 악한 것으로 가득 했습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다윗을 누그려 트릴 수 있을까요? 그런데 다윗의 마음속에 가득 찬 분노와 악한 생각들을 바꾸어 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가는 로드맵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백성으로 부터는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일이 이루어지게 됩니까? 위로하는 아비가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습니다. 그 내면은 많은 부분들이 말로 표현이 됩니다. 마음에 있는 것은 싫든지 좋든지 말로 표현이 되는데 말 한마디가 천 냥 빚도 갚고 깊은 원한도 바꾸어 놓습니다. 분을 내려놓게 하고 칼을 휘두르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펼쳐진 영역에서 사업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오늘 본문을 잘 이해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시면 많은 사람들을 내 사람으로 돌아 서게 할 수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큰 지혜와 용기로 자기 집의 위기를 넘기고 장차 왕이 될 다윗에게 큰 오점이 될 수 있는 일을 막아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다윗이 인정을 받아야 왕으로 오르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데, 인정받을 수 없는 다윗의 무모한 일을 아비가일의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문제와 위기를 해결합니다. 아비가일이 한 말은 잘 세공된 보석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롱하게 빛나는 단어들로 채워졌습니다. 대화의 기술이나 홍보의 교본으로도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외교가 여기에 있는데 악한 사람도 격에 맞는 말을 들으면 바뀌게 됩니다. 말이 무엇입니까?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의 내면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말로 표현되고 마음에 있는 것이 말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내면의 아름다움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다윗이 나발을 제거하기 위하여 출동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이 다윗이 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분과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찬 그래서 나발의 가문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려고 하는 다윗을 만납니다. 여러분, 무슨 일이든지 뜻을 이루려면 만나야 합니다. 회피하면 아니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될 것 같지만 촌각을 다툴 때가 있습니다. 만나야 해결하고 만나야 풀 수 있습니다. 풀기를 원한다면 만나야합니다. 그래야 가부간에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다윗을 만나고 다윗 앞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얼굴을 땅에 붙였습니다. 자신은 종처럼 낮추고 상대방은 왕처럼 높였습니다. 무엇입니까? 만나면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머리 숙이면 이것을 이용 하겠지 라고 생각이 들더라도 상대방이 감동을 하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상대가 감동을 받든지 아니든지 그것은 생각하고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할 일을 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아비가일은 시작을 하는데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여러분, 얼마나 감동적 입니까? 시작을 감동으로 합니다. 문제를 풀려면 시작이 좋아야 하는데 그 시작을 감동으로 풀면 사람은 여기서부터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아비가일은 그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에게 감동을 준 이후에 표현을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비중이 다른 것으로 바꾸는 설득의 내용이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일단은 만나야 되고 만나면 감동을 줄 수 있는 첫 번째 행동을 하고 그리고 설득의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상대방의 결심을 어떻게 해야 바뀝니까? 상대방의 마음에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설득이면 됩니다. 그 설득의 내용은 상대방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해야 합니다.
24-25 나발의 잘못을 나에게 돌리시고. 책임의식입니다.
26, 상대방의 실수를 지적할 때는 완곡하고 간접적으로 좋게 합니다. 상대를 칭찬하고 높여 줍니다.
27, 상대방의 과오를 시정하는 것은 아주 쉬운 것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이 예물을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28-29, 정직하게 상대방을 인정해 줍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심과 악한 일은 찾을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높이 평가해 주고 그 수준에 맞추어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30-31, 상대방이 체면을 세울 수 있도록 하시되 마음에 꺼림 찍 한 것이 없도록 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32-33, 상대방이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그랬더니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아비가일을 자신에게 보내신 일과 아비가일의 지혜로움을 칭찬하고 축복하고 다윗의 손으로 피 흘림을 막았다고 스스로 말을 합니다. 이 순간의 다윗은 그의 심령에 악한 것이 모두 다 빠져나갔습니다.
여러분,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한 말은 성경에 나오는 여성의 말 가운데 가장 깁니다. 대체로 긴 말에 명언(名言)없는데 아비가일은 그 논리와 감성과 지성과 모든 부분에서 흠을 찾아보기 어려운 언어의 연금술사입니다. 이런 아비가일에 의해서 다윗이 가졌던 강팍한 마음과 결심이 무너집니다. 아비가일의 총명함과 지혜가 더하여 아비가일의 일을 더욱 빛나게 되고 자신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고 삶의 보금자리를 지켜 냈습니다. 여러분, 이런 표현을 듣고도 설득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말뜻을 모르거나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면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만은 알아듣고 결심을 중지합니다. 이 후에 그 때 무엇에 홀렸나? 라고 이야기 할 지라고 이런 설득 앞에 다 내려놓게 됩니다. 살의(殺意)를 거두고 오히려 아비가일을 칭찬합니다. 그러면 다윗이 무엇을 깨달을까요? 다윗은 갈6;9,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 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신 말씀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인이 신앙대로 살면 반드시 때를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면서 왜 힘 대 힘으로, 능력 대 능력으로 싸우고 싶지 않았을까요? 복수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의 친히 개입 하셔서 다스리실 것을 믿으면서 피하고, 멀리하고, 져 주며,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며, 인내 했습니다. 그런데 나발의 저주 때문에 얼마동안은 자신의 행동이 옳은 줄 알았지만 다윗이 안 해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거둘 때가 있다는 것을 이번 일로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400명과 함께 칼을 찬 다윗이 아비가일 앞에서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이 일 후에 총명하고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됩니다. 다윗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해야 세상과 사람 앞에 총명하고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이 될까요? 세상은 우는 사자와 같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문화와 문명의 혜택을 배우고 교훈을 받고 좋아 지기보다는 그 교육을 받고 배운 것으로 더욱 악하고 더욱 사납고 더욱 교묘해 집니다. 배운 것을 나쁜 곳에 이용합니다. 그래서 세상과 사람들 앞에서 시원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같이 살아갈 존재이기 때문에 또한 맞추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여러분, 답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묵상할 때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고 분을 삭일 수가 있습니다. 주야로 묵상하고 마음에 두고 살면 위기 때에 아비가일과 같이 표현 할 수 있습니다. 모른다, 누구냐, 그런 사람은 본 적도 없고 모른다는 인격에 상처를 주는 표현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발은 남자에게 자존심은 생명과 같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가 있습니까? 관계가 소원하십니까? 풀어야 하십니까? 일단은 만나시고 만나시면 감동을 줄 수 있는 첫 번째 행동을 하시고 그리고 설득의 내용이 있는 지혜롭고 총명한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그래서 여러분들 앞에 놓여있는 모든 문제를 거뜬히 해결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