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근대골목길 투어
(1-B코스, 3-B코스)
□ 날 짜 : 2023. 2. 26.(일)
□ 인 원 : 나 홀로
□ 교통편 : 대중교통 ☞ 국민건강보험공단(경산역) → 사월역 환승 → 반월당 10번 출구
□ 코 스 : 1코스(경상감영북성길), 제3코스(패션쇼핑길)
【제1-B코스(달성토성삼성길) : 2.24km / 1시간 17분
이일우고택 이상화생가터 우현서루옛터 수창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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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0.23km 13:10 0.3km 13:15 0.28km 13:23
(5분) (8분)
수창초등학교 대구예술발전소 수창청춘맨손 이건희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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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3 0.27km 13:30 0.12km 13:37 0.4km 13:45
(7분) (7분) (8분)
이건희생가터 삼성상회터 달성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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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5 0.3km 13:50 0.34km 14:27
(5분) (달성토성 한바퀴 37분)
※ 달성토성 한바퀴 약 1.3km
【제3-B코스(약령시서문시장길) : 1.1km / 36분
서문시장 약령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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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8 1.1km 15:14
(36분)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 스팸프 투어 : 교남YMCA → 구제일교회 → 약령시한의약박물관 → 화교협회 → 공감게스트하우스 → 진골목 → 마당깊은집 → 서상돈고택/이상화고택 → 계산성당 → 3·1만세운동길 → 동산청라언덕
▶ 상세한 일정
11:30 경산역 출발 도보로 이동
12:00 지하철 2호선 정평역
12:25 지하철 2호선 반월당역 14번 출구
- 대구근대골목 스탬프 투어 시작 -
13:10 이상화 생가터
13:15 우현서루 옛터
13:23 수창초등학교 후문
13:27 수창초등학교 정문
13:30 대구예술발전소
13:37 수창청춘맨손
13:45 호암 이병철 고택(이건희생가)
13:50 삼성상회터
13:54 달성토성 입구
14:21 대구향토역사관
14:27 달성토성/달성공원 입구
14:43 서문시장
15:14 약령서문
15:16 근대골목 단팥빵
- 대구근대골목 스탬프 투어 시작 -
15:27 교남YMCA / 구 제일교회 스탬프 찍고
15:36 한의약박물관 약령시 스탬프 찍고
15:41 화교협회 스탬프 찍고
15:47 공감게스트하우스 스탬프 찍고
15:53 진골목 스탬프 찍고
16:02 점심(박가네 찜갈비)
17:02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스탬프 찍고
17:15 서상돈 고택/시인 이상화 고택 스탬프 찍고
17:20 계산대성당 스탬프 찍고
17:26 3.1만세운동길 스탬프 찍고
17:30 청라언덕 스탬프 찍고
- 대구근대골목 스탬프 투어 종료 -
18:00 지하철 2호선 청라언덕역 출발
18:25 지하철 2호선 정평역 하차 후 도보로 경산역 도착
오늘도 대구 중구 근대골목투어 트레킹하고자 집에서 나선다.
오늘 일정은 대구 근대골목 투어 마지막으로 제1코스 중 1-B코스 시작점 이일우 고택은 지난번 다녀온 곳이라 이상화 생가터 → 우현 서루 옛터 → 수창초등학교→ 대구예술발전소 →수창청춘맨숀→호암 이병철 고택→오토바이 골목→삼성상회 터 →달성토성 한바퀴 돌아 3-B코스 역방향으로 서문시장에서 출발하여 약령서문 지나 전국 3대 빵집 방문 후 근대골목 스탬프 투어 찍기 위해 교남 YMCA회관 → 약령시 → 화교협회 → 대구시간여행(공감게스트하우스) → 진골목 → 박가네 찜갈비로 점심먹고 → 연남대로→ 김원일의 마당깊은집 → 뽕나무골목 → 서상돈고택/이상화고택 → 계산성당 → 3.1만세운동길 → 청라언덕까지 마치고 경산역 도착한다.
【대구근대골목 투어】
● 제1코스 : 이 길은 북성로와 서성로를 중심으로 달구벌의 그때 그 시절을 주제로 엮은 길이다. 1-A, 1-B 2개의 코스로 총 3.25㎞로 천천히 걸어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대구의 옛 지명 ‘달구벌’의 기원과 조선시대 행정중심도시로서의 모습, 근대 상업발전의 근간 등 흘러간 시대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경상감영이 있었던 경상감영공원, 르네상스 양식의 근대건축물 대구근대역사관, 옛 번화가 향촌동, 수제화골목, 대구의 5, 60년대를 재현한 향촌문화관, 북성로, 경찰역사체험관, 최제우나무가 있는 종로초등학교, 사라진 대구읍성의 달서문 터, 지금의 대기업 삼성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 터, 오토바이골목, 예술발전소, 삼국시대 축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성이 남아 있는 달성공원 등이 연결된다.
• 1-B코스 : 달성토성 → 삼성상회 터 → 오토바이 골목 → 호암 이병철 고택 → 수창청춘맨숀 → 대구예술발전소 → 수창초등학교 → 북성로 → 우현서루 옛터 → 이상화 생가터 → 이일우 고택
● 제 3코스 : 동성로, 남성로를 중심으로 엮은 길이다. 3코스 역시 2개( 3-A, 3-B)의 코스로 2.65㎞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약령시가 있었던 약전골목, 교동귀금속거리, 주얼리의 제조, 판매가 한 건물에 있어 관람, 체험, 쇼핑이 가능한 주얼리타운, 대구 최고 번화가 동성로, 교동귀금속 거리, 전국 3대 재래시장 중의 하나인 서문시장을 볼 수 있다.
• 3-B코스 : 동성로 관광안내소 → 염매시장 → 영남대로 → 한방의료체험타운 → 약령서문 → 타올골목 → 옛 구암서원 → 3·1만세운동길 → 청라언덕 → 서문시장
▲ 반월당역 10출구 나와 통신골목에서 갤럭시 S23 보호필름과 울트라 지갑형 케이스 부착하고 낙지볶음 맛집 신라식당에는 오늘도 식당 앞에는 많은 사람들
▲ 종로 지나 최제우 나무 구경하고
▲ 이상화 생가터 라일락뜨락 1956 가는 입구
▲ 골목 좌측 사숙터와 우측 담교장터 사이 골목은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 이곳은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항일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 대문이 잠금 상태입니다. 이상화 생가 안채에는 한옥카페기 있습니다.
▲ 발길 돌러 우현서루로 향한다.
▲ 맛집이란다.
「우현서루」는 이상화선생의 백부 이일우선생이 1904년 급변하는 정세를 보고 인재양성을 위해 세운 학숙이다. 이를 토대로 강의원, 교남학교(現.대륜중고등학교)등이 세워졌으며, 일제 탄압으로 10여년 만에 폐쇄되었으나 구국정신과 학풍이 면면히 이어짐으로써 향토교육의 요람지가 되었다.
▲ 수창학교와 순종황제의 인연
경상도지역의 유생들은 경부선 철로에서 상소호곡(上訴號哭)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지역유지들의 자녀가 다녔던 수창학교 학생들은 당시 교동 향교에 있던 학교북편 경부선 철로에 몸을 던져 궁정열차를 막자고 모의했으나 교사들의 만류로 불발되었다. 통감부 문서에서는 종로 바닥에 누워 이를 저지하려 꾀한 일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토 통감의 귀에까지 전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일을 빌미로 박중양은 수창학교가 할당된 일본국기를 게시하지 않았다는 트집을 잡아 폐교조치까지 내리려 했다. 남순행이 끝나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순종은 수창 아이들의 용기를 치하하였고 당시 대한제국 관리들이 쓰던 제모를 교모로 은사하여 수창학교는 은사모를 교모로 가진 자랑스런 학교가 된 것이다.
▲ 수창초교는 100년이 넘는 역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수창초가 설립된 1907년은 의병항쟁이 활발히 전개된 시기였다. 순종은 선유사를 파견해 의병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산업과 교육의 부흥을 이끌도록 설득했다.
이때 경상도 지역으로 파견된 선유사 김중환이 수창초교 개교식에 참석했다.
김중환은 교육에 대한 순종의 뜻을 전하고 학습에 필요한 종이를 내려주었다. 종이는 조선 시대에 임금이 하사품으로 내린 물건 중 하나였다. 개교식에서 김중환의 말을 들은 학생들은 백성을 향한 순종의 마음에 감동하게 됐다고 전해진다.
이후 1909년 1월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한성 이남 지역 시찰이 있었다.
통감부에서는 추풍평, 대구, 부산 등 도착하는 곳마다 한일 국기를 게양하도록 했는데 당시 수창초교는 황제 순행길에 다른 나라의 국기를 걸면 불충하다고 생각해 일본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이에 경북도 관찰사 박중양은 일본기를 게양하지 않은 수창학교를 폐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전해진다.
수창초교와 관련돼 내려오는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대구를 방문한 순종황제를 맞이하기 위해 곳곳에 환영 준비가 한창일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구에 남쪽 지방 순행이 끝나면 순종황제가 일본으로 끌려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중구 교동 향교에 있었던 수창초교 학생들은 학교 북편의 경부선이 지나가는 철로에 몸을 던져 궁정 열차를 막고 순종황제를 일본군으로부터 구출하자고 결의했으나 교사들의 만류로 불발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순종황제는 의로운 학생들의 용기를 치하하며 은사금과 함께 당시 대한제국 관리들이 쓰던 제모를 교모로 은사 했다.
그렇게 수창초교는 은사모를 교모로 가진 자랑스러운 학교가 됐다.
1980년대까지 학생들은 검은색의 교모를 착용했으며 여름에는 하얀 면을 씌워 사용하다가 교복 자유화 시기에 자연스레 쓰지 않게 됐다.
지금 학교 정문 쪽에는 순종 황제 남순행로를 알리는 안내와 표시물들이 있고 담벼락에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기록들이 전시돼 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서는 그해 7월16일부터 33일간 대구가 임시수도가 됐다.
이때 후퇴해 온 정부 기관과 부대들이 대구의 학교, 관공서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수창초교에는 헌병학교가 주둔하게 되는 역사도 있다.
이에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 달성공원, 전매청, 생활이 넉넉한 학생의 집 등을 전전하며 수업을 받았다.
수창초교는 현대사의 세 인물과의 인연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에 수창초에서 몇 달간 교생으로 교편을 잡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수창초에서 헌병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지원한 적이 있다.
한국의 철강 신화를 이끈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은 한국전쟁 때 수창초교가 육군 헌병학교로 쓰일 당시 장교로 복무했다. 당시 재학생이었던 영화배우 고 강신성일의 인교동 집에서 하숙했던 인연을 가지고 있다.
남순행 당시 순종의 복장은 제국군복이었으나, 백성을 걱정하는 왕의 마음과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근엄한 대례복을 입을 모습으로 설정 하였고, 또한 앞쪽 표제석과 다리의 끊김에서 역사적인 흐름의 위기감을 보여주려 하였다. 암울한 시대상황에도 일제치하를 극복한 우리 백성들의 정신을 담은 다리는 표제석 너머로 연장되는 왕의 시선방향과 일치시켰으며,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순종의 모습은 백성을 걱정하는 왕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우리 백성들의 희망을 향한 염원이기도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순종의 업적을 기리기보다 순종의 대구달성토성 앞 행차라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역사를 재인식하고, 치욕적인 역사를 되돌아보고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소망하는 상징조형물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성찰하는 계기를 부여할 수 있는 역할을 기대하며 구상한 작품이다.
▲ 대구예술발전소는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로22길 31-12(대구 중구 수창동 58-2)에 위치한 예술가와 시민을 위한 아트플랫폼 문화예술복합센터이다.
2008년 10월 “지역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문화예술 창작벨트조성” 계획의 정부사업으로 선정되어 추진되었다.
지금은 공사중이다.(전시 준비중)
▲ 1층 내부 잠시 구경하고 수창청춘맨숀으로 향한다.
▲ 대구시 중구 수창동에 위치한 수창청춘맨숀은 구 KT&G 연초제조창 직원들의 관사로 있던 아파트를 리노베이션 한 문화예술복합공간이다. 1976년부터 관사로 이용됐으나 1996년 폐쇄 이후 20년이 넘도록 버려져 있었다.폐아파트 단지는 2016년 문체부의 문화 재생 사업에 선정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낡은 건물의 외벽을 살려 아파트가 가진 50년의 세월을 보존하고, 정돈된 내부를 청년 작가들의 무대로 만들면서 옛것과 새것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2년간의 개보수 후 2017년 12월에 ‘수창청춘맨숀’으로 공식 개관하였고 이후 2018년 9월 대구현대미술가협회가 수
창청춘맨숀의 수탁 운영을 맡게 되어 2018년 11월 3일 재오픈하였다. 그저 옛 건물로 존재하고 있던 수창청춘맨숀은 현대 대구 청년작가들의 예술활동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도 현재 전시 준비중이다.
▲ 안내판을 따라 작은 골목길로 50m쯤 걸어들어가시면 호암 이병철 고택이 보입니다.
▲ 여기는 그냥 일반 가정집으로 지금도 일반인이 살고 계시다고 합니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일반 가정집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의 선구자이셨던
호암 이병철 선생님( 1910년~1987년)이 결혼을 하시고 대구로 분가하셨을 때
가족과 함께 생활을 하셨던 집입니다.
선생님의 첫 번째 아들인 고 이건희 화장이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 다음 방문지 삼성상회터 가는길에는 길게 늘어져 있는 오토바이골목를 지나면
▲ 세 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진 곳에는 삼성상회에 대한 역사를 적어 놓았습니다.
호암 이병철 회장님은 1995년 제2회 한국경영사학회 창업대상을 수상하셨고.
198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삼성 초대 총수를 역임했습니다.
6개의 현판에는 삼성의 발원지 삼성상회 터에 대한 이야기와 대구 상업활동의 중심지인
한강 이남의 제일 큰 전통시장인 서문시장. 삼성( 三星)- 크고. 많고. 강하며. 완전한 존재를 나타내는 숫자 삼( 三)에 밝고. 높고. 깨끗이, 그리고 영원히 빛난다는 의미의 성(星)을 합쳐
'삼성' 크고, 강하고, 영원하라.는 메시지 설명도 적혀져 있습니다.
▲ 1-B코스 마지막 달성토성(달성공원) 입구에는 순종 동상
대구 달성(達城)토성은 평지의 낮은 구릉을 이용해 쌓은 삼국시대 성곽이다. 높이는 일정치 않으나 4m 정도며, 둘레는 약 1300m 정도다. 성벽 아랫부분에서 초기 철기시대의 조개더미와 각종 유물이 발견됐다. 미루어 보건대 이 지방의 중심세력이 성장해 초기 국가 형태를 형성하면서 쌓은 것이리라. 또 경주 월성처럼 평지의 낮은 구릉을 이용해 쌓은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달성은 우리나라 남부지방 초기 성곽의 전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성벽은 주로 흙으로 쌓였고, 성벽 윗부분에는 큰 돌덩어리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어 후대에 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안에는 조선시대 전기까지 군대의 창고가 있었고, 우물과 연못도 있었다고 한다. 성의 서남쪽으로 연결된 구릉지대에는 돌방무덤(석실분)이 수없이 흩어져 있고, 무덤에서 금동관을 비롯한 유물이 발견됐다.
다음 트레킹은 생각을 담는 길 종주 6코스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