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하나라서 다행이다
새로 이사 온 이웃과 대화를 나누었다.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세 자녀를
알토란같이 키운 그녀는 마음에 부처를 모시고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로 일관되게
살면서 복을 받을 만큼 다 받았다. 그녀의 증언은 간단하다.
"부모에게 한 정성이 헛되는 일은 없는 것같아요.“
좋은 학력의 소지자인 그녀는 여느 사람과 달랐다. 시작도 기도이고 끝도 기도라는
말로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기의 결합이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녀에게서는 자신을 버리고 어쩔 수 없이 헌신했다기 보다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어려움을 부처님에게 간해 가면서 오늘까지 왔더니 다
이루어지더라는 증언이 따랐다. 어느 누구와 나누던 영적 대화보다 깊이 가 닿았다.
바닥을 기는 물고기를 잡으려면 바닥으로 가야만 하는 것처럼 자식을 건지려면
어미는 자식과 같이 고락을 겪고 부모와 같이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인생의 마무리를
지을 수가 있다. 쓴 것을 씹기가 어렵다고 도중에 뱉어버리면 마지막에 오는 단물을
마시기가 어렵다. 불평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모르는 처사다.
그녀의 자식들은 세상에서 한 몫을 야무지게 하고 사는데 이제 그녀는 짝지워
내보내고 홀가분해져서 집을 각시집 같이 꾸며두고 시간을 즐긴다. 그 집은 우리
집과 격이 달랐다. 엄청 좋은 자재로 아름답게 리모델링해 두었지만 좋아보여도
나는 하지 않겠다고 금을 그었다. 나쁜 게 아니라 보이는 좋은 것은 잠시일 뿐 내적
풍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경험하였다. 얼마 안가서 당연한 환경이 되고
다시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
우리는 두어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서로의 하드웨어를 어느 정도 꿰찼다. 그녀의
좋은 면모를 다 들어서 알아버렸다. 그녀의 한계 나의 한계를 보았다. 속이 상했다.
내가 고작 이 정도였나 싶어서 실망스러웠다. 그 집 자식, 내 집 자식 자리 잡은 것이
세상에 대해서는 무엇이며 그 집 좋게 고쳐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결국 우리는
초면에 묻지 않은 내용을 두루 말하면서 자랑아닌 듯 깨 자랑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묻지 않은 질문에 먼저 답을 하며 내가 부러워하는 기운을 벗겨주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우리가 멋스런 노인 되기는 당당 멀었군요.'
그러나 돌아오면서 세 자녀 잘 키우기와 시아버지를 모셨던 여인을 존경하기로 했다.
다음 날 곧 바로 어머니 집으로 가야겠다고 작정하고 우리 며느리가 사다 넣어준
한우를 구워 엄마를 찾아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하는 우리 어머니를 구체적으로
보고 싶었다. 배우기만 하고 감동을 받으면서 따라 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 있으랴.
어머니는 이미 목욕까지 마치고 하얀 머리칼에 어울리는 핑크색 루즈를 바르고
있었다. 한번은 보아주어야 할 풍경이라 보고나니 흡족하였다.
집으로 오는 길에 국밥을 맛나게 먹고 돌아와 앉으니 어머니의 입은 또 죽음 타령,
미움타령, 걱정 타령, 원망 타령으로 바뀌었다. 노래를 부르자고 하는 데는 설명이
필요하다. 노래를 취록해 두어야 나중에 어머니가 가시면 이 노래를 틀고 제사를
지내지 않겠느냐고 설득하였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어머니는 노래를 부르면서 입술이 실룩거렸다. 설움이 복받쳐 오는 것같다.
울먹울먹 하면서도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 끝까지 불렀다. 연달아 6곡을 부르고
보여주기를 반복하였다.
여태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다. 부끄러움을 타고 노래를 못
부른다고 생각하여 몰래몰래 연습해두었을까. 90이 넘은 어느 날부터 홀로 있을 때
어머니의 노래를 살금살금 듣곤 했다. 그 것도 신기하다. 가슴에 담긴 것을 다
내놓고 가는 모양이다.
어머니 나이 30일 때 우리 집에 하이파이 전축을 사 와서 처음 레코드판을 산 판이
‘기타부기와 ‘동백아가씨였다. 어머니는 연이어 빨간 마후라, 섬마을 선생님,
아버지가 자주 불렀던 일본 노래, 동요, 고향생각으로 이어졌다. 부르고 나면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다시 불러야겠다고 하여 노래를 시켰다. 입이 하나라서
다행이다. 어머니의 입이 노래하는 입이 되었다.
자극하는 대로 발달한다. 노래로 어머니를 자극하여 어머니의 마음을 노래
공장으로 만들자는 의도이다. 내 동생이 좋아하는 새 옷과 마 옷을 가져다 주고
함께 노래를 불렀더니 하루가 충만하다. 효 바이러스를 뿌려준 그 여인이 고맙다.
좋은 것은 펼치고 나쁜 것은 거두면서 살자고 작정하나 혼자 되는 세상이 아니라
쉽지 않다. 먼저 인생 구정물 빼는 분들은 나이 들기 전에 서둘러 빼고 이미 해방된
사람은 좋은 바이러스 퍼뜨리기로 살기. 그것이 노년 삶의 희망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