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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 전문서는 2000년까지만 해도 『수운잡방(需雲雜方)』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2001년 청계천8가 고서점 폐지 더미 속에서 『산가요록(山家要錄)』이 발견되면서 그 기록은 깨졌다. 폐지와 다름없던 이 책이 『수운잡방』보다 무려 80년이나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조리서’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사)우리문화가꾸기에서 입수한 이 책은 표지가 없으며 얇은 한지에 작은 한문체 글씨가 적혀 있는 형태였다. 이후 책의 표지를 만들고 배접하여 바로 책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이 책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2001년 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산가요록의 실물을 전시하는 한편 다양한 고조리서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열어 세간의 관심이 모이기도 했다.
2002년에는 궁중음식연구원에서 학문적으로 이 책을 연구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농업사학회 논문집에 「『산가요록』의 분석 고찰을 통한 편찬 연대와 저자」라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도 궁중음식연구원에서는 고조리서 연구 과정을 운영하며 『산가요록』 해설본을 만들어 교육을 진행 중이다.
이 책은 가로 18cm, 세로 26cm의 크기에 31장의 저지(楮紙, 닥나무로 만든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한문(漢文) 묵서(墨書) 반흘림체 필사본이다. 작물, 원예, 축산, 양잠, 식품 등을 총망라한 종합 농서로, 전반부는 훼손되었으며 남은 부분은 양잠, 재상, 과수, 죽목, 채소, 염료 작물, 가축(물고기, 꿀벌 포함) 등 28면, 식품 47면, 염색 2면 등 모두 77면이다. 면당 12행, 행당 40자 내외로 빽빽하게 기록되었다.
아주 낡아 앞뒤가 심하게 마몰되어 농업 부분이 기록된 앞부분과 문집으로 보이는 뒷부분 대부분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가운데의 조리 부분만은 한 장의 낙장도 없이 230여 가지에 달하는 조리법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산가요록』의 표지
조리 부분이 시작되는 부분
책의 앞뒤 부분은 마몰이 심하지만 가운데 조리 부분만은 낙장 없이 온전하게 남았다.
“전순의 찬(全循義 撰) 산가요록 종(山家要錄 終) 최유준 초(崔有濬 抄)”라고 적힌 부분지은이와 필사자를 확인할 수 있다.
집필 연대와 찬자의 의도가 드러나는 서문이 없어 정확한 편찬 연대와 의도를 파악할 수는 없으나, 염색 부분이 끝나는 곳에 “전순의 찬(全循義 撰) 산가요록 종(山家要錄 終) 최유준 초(崔有濬 抄)”라고 적힌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이것은 책 이름과 지은이[撰者], 베낀이[抄者]를 기록한 부분이므로 이 책의 제작 연대를 규명할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조선 초기의 명의가 쓴 평민을 위한 생활 안내서
이 책의 찬자인 전순의는 궁중에서 사용하는 의약의 공급과 임금이 내리는 의약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전의감(典醫監)에서 의관을 지낸 인물이다. 당대 보통 중인 계급이 의관을 지낸 것에 비해 전순의는 그보다 낮은 계급이었다. 미천한 출신에도 불구하고 세종 · 문종 · 단종 · 세조에 걸쳐 의관을 지내고 세조 10년에는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 즉 오늘날의 장관급 지위까지 이르렀으니 그가 입지전적인 인물임은 틀림없다.
조선시대 임금의 치료를 전담하던 의관들은 왕이 사망하면 질병을 잘못 다스렸다는 죄목으로 탄핵되는 것이 관례였지만 전순의는 다른 의관에 비해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왕의 승하 이후 강등되긴 했으나 단종 때 복권되었으며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도 승진을 거듭하며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가 미천한 신분임에도 출세가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비상한 재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단종 3년 신하들이 그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성화를 부리자 전의감 제조가 전순의의 천재성을 설파하며 더 이상 그에 대한 처벌을 운운하지 말 것을 상소한 기록과, 성종 9년 ‘세조 때에 의술을 중요시한 전순의는 의관으로서 당상관에 올랐다’라는 기록을 보면 그는 당대의 뛰어난 명의로서 저술과 의술을 펼쳤으며 부귀영화와 명예를 누렸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쓴 다른 저서로는 『식료찬요(食寮簒要)』, 김의손(金義孫)과 함께 저술한 『침구택일편집(鍼灸擇日編集)』 등이 있다.
『산가요록』이라 함은 문자 그대로 산가(山家)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여러 기술을 기록한 책이란 뜻이다. 산가란 산에 있는 집, 즉 산촌에 있는 집으로 알기 쉬우나, 사실은 평범한 서민층을 이르는 말이다. 재야에서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는 선비들을 산림처사(山林處士)라 부르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고 보면 된다.
제목이 의미하듯 이 책은 서민의 삶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총 망라한 종합 농서이다. 농업에 대한 내용은 고려의 『농상집요(農桑輯要)』와 상당 부분 일치하지만 내용 가운데 중국에만 있는 채소나 과일, 동물 기르는 법은 삭제되었고, 원래는 없던 양잠 부분이 추가된 것이 특징이다. 책은 크게 네 가지 분야로 나뉜다. 농업, 음식 조리 및 식품 저장, 염색법이 그것이며 나머지 한 편은 베낀사람의 시(詩), 부(賦)등이 기록된 문집이다.
230여 가지의 방대한 조리법 및 저장법 수록
음식 부분 중 ‘주방(酒方)’이라고 제목을 붙인 양조법은 도량과 술 빚는 길일 1종, 소주 2종, 청주 · 탁주 · 감주 등 50종, 술 단속 하는 법 1종, 누룩 2종으로 총 56종을 소개했다. 장류는 시(豉) 1종, 메주 띄우는 법[末醬薰造] 1종, 합장법(合醬法) 1종 등 비롯하여 전시(全豉), 말장(末醬), 간장(艮醬), 청장(淸醬) 등을 포함한 12가지의 조장법(造醬法)과 네 가지의 장맛 고치는 법[治辛醬]이 기록되어 총 19종의 장 관련 기록이 있다. 식초(食醋)는 17종, 김치는 38종의 조리법이 있고, 과일 및 채소 저장법은 겨울철 채소 가꾸기[冬節養菜]까지 포함하여 17종, 어육(魚肉) 저장법은 10종, 죽은 6종, 떡은 10종이 수록되었다.
국수는 6종을 소개했는데 자화, 육면, 세면, 창면, 진주면 등 다양한 조리법을 알렸을 뿐 아니라 국수 음식마다 반죽 및 모양내는 법, 특별한 도구 사용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만두는 2종, 수제비는 1종, 과자류 10종, 탕은 7종이 소개되었으며, 더덕, 표고, 참새 등으로 만드는 자반[佐飯] 4종, 생선, 양, 꿩, 도라지 등 다양한 식재료로 담그는 식해(食醢) 7종, 탕은 ‘흑탕’이라 하여 고기를 삶고 육수 내는 법을 포함하여 7종, 달걀 · 닭 · 소머리를 삶는 법이 각 1종, 그리고 순두부를 만들어 끓이는 법 1종까지 총 230여 종류의 방대한 조리법이 기록되었다.
산가요록 음식 부분 조리별 분류 및 음식 종류
분류세부 내용음식명술장초김치재료 저장곡물 음식과자자반식해고기 음식
(탕, 찜, 구이)
도량, 술 빚는 길일 | 주방(酒方) |
소주 | 취소주법(取燒酒法)(2) |
각종 술 빚는 법 | 향료(香醪), 옥지춘(玉脂春), 이화주(梨花酒), 송화천로주(松花天露酒), 삼해주(三亥酒), 벽향주(碧香酒)(2), 아황주(鴉黃酒)(2), 녹파주(彔波酒), 유하주(流霞酒), 두강주(杜康酒), 죽엽주(竹葉酒), 여가주(呂家酒), 연화주(蓮花酒), 황금주(黃金酒), 진상주(進上酒), 유주(乳酒), 절주(節酒), 사두주(四斗酒), 오두주(五斗酒), 육두주(六斗酒), 구두주(九斗酒), 모미주(牟米酒), 삼일주(三日酒), 칠일주(七日酒)(2), 점주(粘酒), 무국주(無麴酒), 소국주(少麴酒), 신박주(辛薄酒), 하절삼일주(夏節三日酒), 하일절주(夏日節酒), 과하백주(過夏白酒), 손처사하일주(孫處士夏日酒), 하주불산주(夏酒不酸酒), 부의주(浮蟻酒), 급시청주(急時淸酒), 목맥주(木麥酒), 맥주(麥酒), 향온주조양식(香醞酒造釀式), 사시주(四時酒), 사절통용육두주(四節通用六斗酒), 상실주(橡實酒), 하숭사절주(河崇四節酒), 자주(煮酒), 예주(醴酒)(5), 삼미감향주(三味甘香酒), 감주(甘酒)(3), 점감주 (粘甘酒)(2), 유감주(乳甘酒)(2), 과동감백주(過冬甘白酒), 목맥소주(木麥燒酒) |
술 단속하는 법 | 수주불손훼(收酒不損毁), 기주법(起酒法) |
누룩 | 양국법(良麴法)(2), 조국법(造麴法)(2) |
메주 띄우는 법 | 전시(全豉), 말장훈조(末醬薰造) |
장 담그는 법 | 합장법(合醬法), 간장(艮醬), 난장(卵醬), 기화청장(其火淸醬), 태각장(太殼醬), 청장(淸醬)(2), 청근장(菁根醬)(2), 상실장(橡實醬), 선용장(旋用醬), 천리장(千里醬), 치장(雉醬) |
장맛 고치는 법 | 치신장(治辛醬)(4) |
초 만드는 법 | 진초(眞酢), 진맥초(眞麥酢), 대맥초(大麥酢), 창포초(菖蒲酢), 고리초(古里酢), 병정초(丙丁酢), 전자손초(傳子孫酢), 사절초(四節酢), 사시급초(四時急酢), 고리조법(古里造法) |
초맛 고치는 법 | 의초법(醫酢法) |
채소절임 | 즙저(汁菹)(4), 하일즙저(夏日汁菹), 하일장저(夏日醬菹), 하일가즙저(夏日假汁菹), 과저(苽菹)(5), 가자저(茄子菹) |
김치 | 청침채(菁沈菜)(2), 동침(凍沈), 나박(蘿薄), 토읍침채(土邑沈菜)(2), 우침채(芋沈菜), 동과침채(冬苽沈菜), 동과랄채(冬苽辣菜), 침백채(沈白寀), 무염침채법(無鹽沈菜法), 선용침채(旋用沈菜), 생총침채(生蔥沈菜)(2), 침송이(沈松栮), 침강법(沈薑法), 침동과(沈冬苽), 침산(沈蒜), 침서과(沈西苽), 침청태(沈靑太), 침도(沈桃)(2), 침행(沈杏), 침궐(沈蕨) |
채소, 과일 저장법 | 장생과(藏生果), 장가자(藏茄子)(2), 장궐(藏蕨), 장과(藏苽)(2), 장소(藏蔬), 장강우(藏薑芋), 장리(藏梨)(2), 장율(藏栗) |
채소 건조법 | 건죽순(乾竹筍), 건송이(乾松耳)(2), 건천초(乾川椒), 건순채(乾蓴菜), 건궐윤법(乾蕨潤法) |
고기, 생선 저장법 | 건소어법(乾小魚法), 침계란(浸鷄卵), 하일건육법(夏日乾肉法), 하일장육법(夏日藏肉法)(3), 과년건육법(過年乾肉法), 건포육법(乾脯肉法), 팽육(烹肉), 치미변육(治味變肉) |
겨울철 채소 재배법 | 동절양채(冬節養菜) |
죽, 밥 | 백죽(白粥), 사시신미죽(四時新米粥), 담죽(淡粥), 두죽(豆粥), 목맥반(木麥飯), 백자죽(柏子粥) |
국수와 기타 음식 | 소마(塑亇), 자화(刺花), 우자박(芋紫朴), 수자화(水刺花), 면법(麪法)(5), 계란면(鷄卵麪), 육면(肉麪), 세면(細麪), 창면(昌麪), 진주면(眞珠麪), 만이창면(漫伊昌麪), 토장(吐醬), 수고아(水羔兒), 어만두(魚饅頭), 생치저비(生雉著飛) |
떡 | 백자병(柏子餠), 갈분전병(葛粉煎餠), 산삼병(山蔘餠), 송고병(松膏餠), 잡과병(雜果餠), 서여병(薯蕷餠), 잡병(雜餠) |
과자 만들기 | 건한과(乾漢果), 약과(藥果), 빙사과(氷沙果), 백산(白橵), 안동다식법(安東茶食法), 우무전과(牛毛煎果), 동과전과(冬苽煎果), 생강전과(生姜煎果), 앵두전과(櫻桃煎果), 무유청조과법(無油淸造果法) |
송자자반(松子佐飯), 산삼자반(山蔘佐飯), 표고자반(蔈古佐飯), 소작자반(小雀佐飯) | |
어해(魚醢), 양해( | |
흑탕(黑湯), 팽양(烹 |
※ 괄호 안의 숫자는 같은 요리를 만드는 방법의 수를 표기함
출처: 전순의 지음 · 한복려 옮김, 『다시 보고 배우는 산가요록』, 궁중음식연구원, 2007.
일정치 않은 액체 계량 단위에 대한 분량 제시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그동안 정확한 기준을 알 수 없었던 액체류의 계량 단위가 정확하게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는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전해 내려온 도량형 단위인 척관법(尺貫法)을 사용하였다. 길이를 재는 단위로는 자[尺] · 치[寸] · 푼[分] 등이 있고, 무게를 재는 단위에는 관(貫) · 근(斤) · 돈[錢] · 푼[分] · 냥(兩) 등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섬[石] · 말[斗] · 되[升] · 홉[合] · 작(勺) 등은 부피를 재는 단위로 쌀과 곡물을 잴 때 사용했다.
이렇게 대부분의 계량 단위는 그 기원부터 분량을 정확히 알 수 있었지만 물이나 술을 재는 단위는 그렇지 않았다. 액체는 일정한 표준 계량 단위 없이 잔(盞), 사발[沙鉢], 병(甁), 동이[東海], 대야[鐥]로 기록되어 있어 도무지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산가요록』의 양조 부분 첫머리에 그 계량 단위가 정확히 기재된 것이다.
<酒方>
二合爲一盞 二盞爲一爵 二升爲一鐥 三鐥爲一甁 五鐥爲一東海……
2홉이 1잔이 되고, 2잔이 1작이 되고, 2되가 1복자[鐥]가 되고, 3복자가 1병이 되고, 5복자가 1동이[東海]가 된다는 뜻이다. 또한 한 동이는 1말[斗]과 같은 분량이고, 1병(甁)은 6되[升]가 됨을 알 수 있다. 이는 모호한 계량 단위에 대한 배량 및 분량의 관계를 기록한 것으로, 그동안 막연히 알려진 동이, 대야, 병의 계량 단위를 정확히 제시한 것이다.
이 계량 단위가 찬자 전순의 가정만의 계량 단위였는지 그 시대 사회의 일정한 표준인지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나, 계량 단위를 양조법의 첫머리에 기록하여 누구나 기록을 보고 그대로 응용할 수 있도록 한 찬자의 배려는 그가 탐구력과 사고력을 가진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액체 계량의 기준이 되는 계량 도구왼쪽부터 잔, 작, 복자, 병, 동이.
『산가요록』의 계량 단위
계량 단위양(量)비교유사 표현
1동해(東海) | 5선(饍) = 10승(升) = 1말(斗) | 50잔(盞) | 동이, 분(盆) |
1병(甁) | 3선(饍) = 6승(升) | 30잔(盞) | - |
1선(饍) | 2승(升) | 10잔(盞) | 복자, 대야 |
1작(爵) | 2잔(盞) = 4홉(合) = 0.4승(升) | 2잔(盞) | - |
1잔(盞) | 2합(合) | 1잔(盞) | - |
1종자(種子) | - | - | 종지 |
1발(鉢) | - | - | 사발 |
1국(掬) | - | - | 움큼, 악(握), 부(抔) |
세계 최초 온실 개발법 수록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온실 설계법이다. 겨울철 채소 기르기라는 뜻의 ‘동절양채’라는 항목에 온실 짓는 방법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온)실을 짓되 그 크고 작기는 임의대로 할 것이며, 삼면은 황토로 막고 온실 내의 벽은 종이를 발라 기름칠한다. 남쪽 면은 창문에 살창을 만들고 기름칠한 종이를 바른다. 구들을 놓고 흙을 덮는다. 굴뚝은 벽 밖에 만들고 가마솥은 벽 안쪽에 걸어놓는다. 채소를 심고 나면 아침저녁으로 항상 따뜻하고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하며, 날씨가 추우면 거적을 두껍게 하여 창을 덮어주고, 날씨가 풀리면 즉시 치운다. 가마솥에 물을 끓여 수증기가 방안에 고루 퍼지게 하고 흙에도 물을 뿌려 항상 따뜻하고 촉촉하게 해야 한다.
‘동절양채’ 온실 축조법에 따라 온실을 재현한 모습난방 온실의 시초로 널리 알려진 독일 하이델베르크 온실보다 무려 170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온실이다.
황토벽과 온돌로 보온하고, 기름 바른 한지를 붙인 창으로 통풍을 조절하면서 자연 채광으로 난방 효과를 높여 겨울철에 봄나물을 키워 먹을 수 있게 하였다. 온돌과 채광창을 이용한 독자적인 온실 설계는 선조의 우수한 영농 기술을 증명한다. 『산가요록』에 기록된 온실 기술은 1619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난로를 이용한 단순 난방 온실보다 170년이나 앞선 것으로, 세계 최초의 온실 개발이라 평가받고 있다.
연관목차
음식고전 8/182
[네이버 지식백과] 산가요록 [山家要錄] - 1450년 (음식고전, 2016. 10. 17., 한복려, 한복진,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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