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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월악산 제비봉 산행후기
일시: 2024. 06. 16
참석: 87명 (25회 11명)
산행: A- 4.6 Km / B- 2 Km (4시간 / 3시간)
농사의 계절 6월과 추억의 보리
봄꽃 잔치가 끝이 나고 본격적인 농사의 계절인 6월에 충북의 대표 악산인 월악산의 20 여개 코스 중 제비봉(721m)을 산행하고 왔다. ‘악’소리가 나는 암릉과 지옥 같은 계단에 다리는 뻐근하였지만 충주호가 발아래로 멋지게 펼쳐진 천국의 경치를 맛보았다.
월악산 제비봉을 오고가는 도로변 논에는 모들이, 밭에는 여러 농작물들이 한창 자라고 있었다. 요즘은 모내기가 빨라서 5월 말이나 6월 초면 끝이 나지만, 1960년대 어릴적 시골의 6월은 보리 추수와 모내기로 ‘발등에 오줌 싼다’라고 할 만큼 바쁜 달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익은 보리를 베어내 타작을 하고나서 모내기를 하였다. 보리타작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비스듬히 세운 평평한 돌에다 보리단을 내리쳐서 낱알을 털어낸 후, 멍석 위에 풀어 놓고 도리깨로 두드려서 이삭까지 싹싹 털어냈다. 보리 추수를 하고나서 긴 줄에 맞춰 손으로 하던 모내기는 하지 무렵이 절정이었다.
어린 손길도 아쉬운 때라 보리 추수를 도와주다 보면 무더운 날씨에 땀은 쏟아지고, 보리 까끄라기(낱알 겉껍질의 빳빳한 긴 수염)는 젖은 몸에 엉겨 붙어 따갑고 가려워 미칠 지경이었다. 우물물을 몇 바가지 뒤집어 써야 겨우 떨어졌다.
쌀 떨어지고 원조 밀가루로 국수와 수제비를 만들어 먹으며 어렵게 버티던 보리고개에 수확한 보리는 최고의 주식이었다. 가마솥에 갓 찧어낸 보리를 삶고 숨겨둔 쌀 한줌 얹어 지은 밥, 윗어른 밥 한 사발 푸고 나면 꽁보리밥만 남아서 양푼에 열무김치, 나물, 고추장 등을 넣고 비벼 먹었다. 한 고비 넘기고 감자를 수확하였다.
학교에서 점심으로 옥수수 죽이나 빵을 나누어 주었지만 이 무렵 우리들 간식은 단맛이 강한 까만 뽕나무 오디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누에 치는 뽕밭에 몰래 들어가 한 움큼씩 따 먹었다. 입과 옷에 오디물이 들어 집에 와서 혼이 나곤 했다.
보리고개는 1970년대 통일벼 녹색혁명으로 없어졌고, 보리는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1980년대에 식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는 추억의 보리밥이 건강식으로 일부러 찾아가서 먹는 별미가 되었다. 그리고, 고창, 보령, 경주 등 일부 지자체의 청보리밭 축제가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어 버렸다.
월악산 제비봉 가는길
하늘은 맑고 푸르나 28도 날씨라 조금만 움직여도 땀으로 범벅이 되는 완연한 초여름이다. 초록의 나무들은 점점 더 짙어만 갔다.
오늘 총동산행은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하는 제비봉(721m)이다. 제비봉은 ‘악’소리 나게 어렵다는 ‘악’자가 들어간 산 중 충북의 대표 월악산의 20여개의 코스 중 천국의 계단이 있는 곳이다.
그렇게 높지는 않아도 산 전체가 기암으로 이뤄진 암산이고, 산세가 무척 당당하다. 장쾌한 암봉들이 정상까지 이어지고, 암봉을 오르는 급경사 계단이 많지만 충주호의 시원한 전망을 만끽할 수 있다. SNS에 뷰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제비봉 산행코스는 장회코스(2.3㎞)와 얼음골 코스(1.8㎞) 두 개다. 등산객 대부분은 장회나루에서 시작하여 원점 회귀하는 장회코스를 선호하고, 종주산행의 경우에는 빼어난 전망을 보며 내려올 수 있기에 얼음골에서 출발해 장회나루로 내려온다. 어느 경우에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오늘 제비봉 산행은 장회코스, 단양군 단성면의 충주호 장회나루에서 시작한다.
7시 25분, 강변역을 출발하여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충주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괴산 IC로 나왔다.
19번 국도로 세성교차로에서 우회전, 용천리 삼거리에서 월악산, 단양 방면 좌회전하여 36번 국도를 따라갔다. 차창 너머로 장마를 대비하여 물빠진 충주호와 초여름의 호변 풍경들이 펼쳐졌다. 한수, 수산을 지나자 충주호 유람선이 뜨는 장회나루가 나왔다.
이곳 장회에는 조선 영조 때 자린고비 조륵에 관한 전설이 있다. 음성에 살던 자린고비가 열어 논 장독에서 다리에 아까운 장을 묻혀 달아나는 파리를 쫓아 단양까지 왔다가 강을 건너는 도중 그만 파리를 놓쳤다. 자린고비는 '장외'라고 소리치며 분해했다. 파리를 놓친 이 곳을 사람들은 장외(場外)라고 불렀고, 세월이 변하면서 장회(長淮)라고 부르게 되었다.
9시 50분, 장회나루 대형버스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서 제비봉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구호를 외치고 10시 정각에 제비봉 산행에 나섰다. 5년전 25회가 봄소풍을 왔던 유람선 매표소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제비봉 등산로 입구로 갔다.
제비봉 험한 초반 비탈길
제비봉은 장회나루 뒤로 우뚝하게 솟은 바위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다. 구담봉 방면에서 남동쪽으로 올려다보면 부채살처럼 뻗어 내린 산세가 마치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의 이름은 연자봉(燕子峰)이다.
장회코스 등산로 입구에는 제비봉공원지킴터가 있고, 탐방로 안내와 온갖 게시물, 현수막이 어지럽게 잔뜩 붙어있다.
시작부터 급경사의 나무계단이다. 허리도 부실한데 어려운 산행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상까지 동기들과 같이 보조를 맞추어 오르기는 힘들고, ‘쉬엄쉬엄 천천히 오르다 안되면 중간에서 내려오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급경사 나무계단을 지그재그로 힘들게 올라가니, 흙길이 잠시 나오고는 구불구불 바위 산길이 이어졌다.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는 경사구간이라 가쁜 숨을 내쉬어야 했고, 때로는 철난간에 의지해서 올라서야 했다.
등산길은 다시 흙길로 변하고 좌우 급사면에는 소나무와 활엽수가 우거졌다. 오른쪽 숲 사이로 햇살을 머금은 건너편 능선과 봉우리들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고, 앞에는 올라가야 할 작은 첫째 봉우리도 빤히 보였다.
봉우리를 비스듬히 왼쪽으로 돌면서 오르는 가파른 비탈길은 흙길, 바위길이 번갈아 나오고, 경사면 왼쪽편에는 철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좁고 가파르고 험한 비탈길을 줄지어 올라갔다. 길 가운데 바위 덩어리와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동기들은 벌써 앞서 나가고 인자와 둘이서 후배들과 같이 천천히 올라갔다. 힘든 오르막에 대한 보상인 듯 산행을 시작한지 10분도 안되었는데 왼쪽 나무 사이로 살짝 충주호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시야가 터졌다.
연이어 나오는 가파른 계단 중간에 작은 전망대가 있어 잠시 쉬며 충주호를 구경하였다.
왼쪽으로 장회교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충주호 선착장이 보였다. S자로 물길이 크게 휘어지는 곳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단양팔경의 하나인 구담봉이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의 형상이 마치 거북이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웅장하고 당당한 모습에 예로부터 숱한 시인묵객들의 대상이 되었다.
충주호 전망대와 좁은 암릉길
계단을 오르고 비탈길을 조금 더 올라가니, 또 다른 계단 위에 큰 전망대가 나타났다.
전망대 왼쪽 끝에 서니, 발아래로 장회나루 선착장과 널찍한 주차장, 봉우리 사이를 S자로 휘감아 도는 남한강 물줄기 충주호가 시원하게 굽어 보였다. 건너편에는 높낮이를 달리하는 말목산, 가은산, 금수산 등이 호수와 어우러져 산수화 같은 유려한 산세를 보여주었다.
25분의 짧은 수고에 비해 이토록 멋지게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경을 본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다. 탄성이 절로 나왔지만 이는 겨우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알고 봐야 보이지만 유람선이 턴을 하는 건너편에 무덤이 하나 있다. 그 무덤의 주인은 조선시대 단양 관아의 관기였던 두향이다. 이곳 두향마을 출신인데 단양군수였던 퇴계를 연모해 정을 쌓았고, 퇴계의 타계소식에 26세 꽃다운 나이에 강선대에서 몸을 던져 숨을 거두었다. 유언에 따라 강선대에 무덤을 썼으나 충주호 댐건설로 수몰되자 지금의 장회나루 건너편으로 이장하였다.
우측 끝에서는 선계 같은 제비봉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제비봉과 그곳에서 길게 뻗어 내리는 능선들, 제비봉으로 오르는 천국의 계단이 보였다. 앞의 커다란 암봉을 오르는 첫번째 철계단과 뒤의 더 높은 암봉을 오르는 두번째 철계단은 가파른 암릉이 받침이 되어 비스듬히 일직선으로 길게 이어졌다.
산길을 다시 올라 오르막도 잠시 숨을 돌리는 첫째 봉우리에 도착하였다. 먼저 온 36회 후배들이 쉬고 있었다. 조망지점에는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철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충주호 조망은 앞서의 전망대와 비슷하였지만 소나무들이 풍경을 많이 가렸다.
첫째 봉우리 조망지점 위에 이정표가 서있다. 한참 올라온 것 같은데 공원지킴터에서 겨우 500 m다. 가파른 오르막 산길이라 힘이 들어 빨리 못 가고, 사진 찍고 구경하느라 빨리 못 가서 그렇다. 이정표를 지나자 올라가야 할 천국의 계단이 까마득히 보였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올라가려니 허리부터 걱정이 되었다.
이정표에서 천국의 계단 앞까지는 양 옆이 낭떠러지이고 폭이 좁은 암릉길이다. 그 길 초입에 작게 톡 솟아오른 SNS에 소문난 천국의 계단 포토존 바위가 있다. 바위에 서서 제비봉과 천국의 계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산객들이 많았다.
구불구불한 소나무들과 반질반질한 바위 덩어리들이 암릉길을 안내한다. 바위 틈에 자란 소나무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울퉁불퉁 튀어나온 바위들은 워낙 많이 밟혀서 하얗게 속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가까이 다가 갈수록 여러 단으로 이어진 천국의 계단은 수직으로 하늘에 닿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암릉길 끝에는 담장 위에 얹은 돌 덩어리 같은 역시 SNS에 소문난 충주호 포토존 바위가 있다. 바위에 앉거나 서서 충주호를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바빴다.
천국의 계단 천국의 풍경
첫번째 철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가파른 암릉이 떠받드는 철계단은 3단으로 나뉘어져 각 단을 오르고는 잠깐 숨을 돌릴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 덕분에 걱정을 했던 것 보다는 쉽게 아찔한 계단을 올라 갈 수 있었다.
철계단을 오르면서 바위에 붙어서 혹은 바위 사이를 뚫고서 구불구불 자란 멋진 소나무들을 볼 수 있다.
첫 단의 골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는 뿌리며 허리가 반질반질할 정도로 닳아 있다. 등산객들이 오르내리며 등산화에 스치거나 안전상 손으로 잡아서 그렇다. 그 자리에 서있는 자체가 고맙다.
까마득한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뒤틀며 푸른빛을 뿜어내는 소나무의 자태는 아름답다. 올라가도 계속 같은 방향의 풍경이라 비슷비슷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한 단, 한 단 오를수록 시야가 넓어지면서 점점 압도적인 풍경으로 변했다.
땀을 닦고 숨 고르며 뒤돌아보면 충주호의 압도적으로 시원한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서서히 천국의 경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것도 아직 최고가 아니었다.
10분쯤 걸려서 첫번째 철계단을 올라갔다. 두번째 봉우리다. 또다른 암릉구간이 가파르게 이어졌다. 거대한 용의 휘어진 등 같이 생긴 암릉 위에 비늘인 듯 울퉁불퉁 튀어나온 바위들을 밟고서 올라가니 마치 용을 타고 나는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자는 후배들과 먼저 올라가고 맨 뒤로 올아온 기웅이를 만나 같이 올라갔다. 암릉길 가운데 뿌리 내리고 악착스헙게 자라는 소나무를 지나자 암반 위에 자라는 작은 소나무 옆에 평평한 사각 바위덩어리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제비봉 최고의 뷰포인트이자 포토존 중 하나다. 이 멋진 곳에서 인증사진 하나 찍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더운 줄 모르지만 햇살은 따가웠다. 멈추는 곳이 전망대인 암릉길에는 여기저기 분재 같은 소나무들이 바위 틈을 따라 뿌리를 내리고 서있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키는 작고 몸통은 굵지만 바람결에 휘어진 자태는 꽤나 멋지다.
암릉구간에서 두번째 철계단을 올려다 보았다. 가파른 암릉 위에 2단으로 나누어 설치되어 있다. 첫번째 철계단보다는 짧지만 훨씬 더 가파르다. 35회 후배들과 같이 두번째 철계단의 1단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계단 끝자락에 피어 있는 빨간 산나리도 멋진 충주호 풍경을 굽어보고 있다.
숨을 헐떡이며 뻐근한 다리를 옮길 때는 지옥의 계단 같아도 오르고 나서 숨을 고르며 뒤돌아보면 왜 천국의 계단인지 바로 알게 된다.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비봉을 오르는 이유는 기차게 멋진 천국의 풍경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두번째 철계단의 마지막 2단 계단은 끝까지 올라온 등산객들에게 보답을 해주는 듯 최고의 인생샷을 선물한다. 철계단 끝이 제비봉 최고의 조망 지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전경에 취해 힘든 줄 모르고 오르면 천국의 계단이지만, 아찔한 계단에 무서워 손과 발에 힘들어 가면 지옥의 계단이다. 생각보다 힘이 덜 들었다. 부상 환자들인 나도 인자도 기웅이도 올랐다. 먼저 올라간 동기들 모습은 한결 가쁜해 보였다.
만지면 묻어날 듯한 파란 하늘, 떠다니는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 발이래로 펼쳐진 충주호 푸른 강물, 깎아지른 암봉들과 수려한 산물결은 한 폭의 산수화이다. 천국의 풍광이다. 더 오른다 해도 제비봉에서 이렇게 멋진 선경을 보여주는 곳은 없을 것 같다.
굳이 정상까지 가지 않고 여기서 되돌아 내려가도 아쉬울 게 없었다.
마지막 계단을 다 오르니, 고사목과 젊은 소나무가 있다. 죽어도 안전 바로 쓸모가 있다.
시야가 최고로 넓어진 상태라 이곳에서 굽어보는 풍광은 밑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구담봉 너머로 옥순봉, 그리고 청풍호의 물길이 제천 쪽까지 아득하게 펼쳐졌다.
단양군수 퇴계를 연모한 관기 두향이가 태어난 두향리 마을과 그 뒤로 뾰족하게 당차게 솟아 있는 월악산 영봉이 시선을 끌었다.
용의 목덜미 같은 셋째 봉우리 암릉지대를 지났다. 멈춰 서는 곳마다 전망대이다.
2년전인가 50대 등산객이 정신을 놓고 구경을 하며 지나다가 100미터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사망사고가 있어서인지 '추락주의' 경고문과 밧줄이 쳐져 있다. 가파른 거대한 암산이라 드문드문 부주의에 의한 사망사고가 발생한다.
이정표 아래 숲속에서 뒤처진 3인이 간식을 먹으며 30여분 쉬었다.
제비봉 하산길
인자는 좀 더 쉬었다 내려간다 하여 기웅이와 둘이 먼저 하산을 하였다.
얼음골에서 시작하여 제비봉 정상을 거쳐 내려오는 다른 산악회 사람들과 장회나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로 셋째 봉우리의 암릉구간은 붐볐다.
암릉 구간의 우측으로 병풍처럼 늘어진 기암절벽의 바위 능선을 감상하고, 아래로는 청풍호와 충주호, 옥순봉과 구담봉, 가은산, 금수산과 말목산이 그려내는 명품 산수화를 감상하며 천천히 내려갔다.
제비봉 등산로는 멈추는 곳이 바로 훌륭한 전망대다. 고도를 낮출수록 풍경도 따라 변한다.
계단을 올라올 때 뒤돌아 잠깐 보았던 풍경이 눈 앞으로 계속 멋지게 펼쳐졌다. 인위적인 계단이지만 이곳 암릉과 잘 조화를 이루어 멋진 풍광을 보여주었다. 구경하며 천천히 내려가느라 힘들게 올라왔던 시간과 비슷하게 천국의 계단을 내려갔다.
기웅이는 중간에 쉬었다가 천천히 내려간다기에 혼자 천천히 내려갔다. 장회나루의 선착장은 한 시간마다 유람선이 쉼 없이 물살을 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람선인지 선착장인지 모르지만 음악소리가 산 위까지 들려왔다. 술 땡기는 노랫소리다.
장회나루 제비봉공원지킴터에서 천국의 계단까지 올라갈 때는 1시간 30분, 내려올 때는 1 시간 걸렸다.
점심식사와 귀경
13시 10분, 장회나루 식당에 들어서니, 단양잔도길 C코스를 돌고온 선후배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4인 1테이불, 인원이 차기를 한참 기다렸다. 간식을 먹어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땀을 많이 흘려 물만 들이키고 있으니, 옆에 있던 48회 장미라 후배가 배고프겠다며 제육볶음 쌈을 싸서 먹으라고 전해주었다. 마음씨가 고맙다. 한참을 기달려 제비봉 정상을 오르고 제일 먼저 내려온 29회 후배들과 제육볶음과 된장찌게로 식사를 하였다. 뒤이어 24회 선배들과 인자가 내려왔다.
1호차 출발 인원수 맞춘다 하기에 허리도 아파서 다른 동기들보다 먼저 버스에 탔다. 14시 38분에 만차로 서울로 향했다.
36번 국도, 단양 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들어가 남제천 IC에서 평택제천고속도로로 갈아 타고 금왕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대소 IC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강변역에 18시 경에 도착하여 집으로 갔다.
7월 산행 유명산에서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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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배님 안녕하세요?
항상 후기 글이 기다려집니다.
이번 월악산 산행은 힘들긴 했지만 뷰가 너무 좋았고,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어 산행의 힘듦을 잊게도 했던 거 같아요,
사진과 함께 글을 보니 산행 때의 풍경 하나하나가 그려집니다.
월악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