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할아버지의 눈물
김 선 구
“할머니. 이 그림에 색칠을 좀 해보세요.”
“나는 눈이 침침하여 아무 것도 안보여.”
“할아버지.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모습을 생각하며 글을 좀 적어보세요.”
“내가 늙은이 인데 이제 와서 부모에 대하여 생각할게 뭐 있노?”
“그래도 어렸을 때의 추억이 있을 게 아닙니까. 한두 줄이라도 적어보세요.”
“그래.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 그런데 글로 쓰려면 말이 막혀버려.”
우리가 노인기억학교에 처음 도착 했을 노인들의 보인 반응이었다. 글쓰기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나? 앞길이 막연했다. 원장선생님의 뜻은 “구청장님께 편지 한 장 쓸 정도”면 좋겠다고 했다. 허지만 그때 같아서는 편지는 고사하고 글을 써 보려는 마음을 갖게 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노인기억학교는 노인들의 치매예방과 관리를 위하여 대구시가 운영하는 노인복지시설이다. ‘치매 걱정이 없는 대구’를 실현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목적으로 대구시가 15개정도 기억학교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중 ○○노인기억학교에서 연금공단 대구지부의 상록자원봉사단으로 글쓰기 지도 요청이 왔다.
상록자원봉사단의 수필창작반 동료들 6명이 팀을 구성하고, 봉사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팀원들은 전문적인 논술 지도자들이 아니다. 퇴직 후 상록자원봉사단의 상록아카데미에서 수필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팀원 모두가 수필가로 등단하였기 때문에 글쓰기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노인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지도에 나서기는 처음이었다. 다행히 전직이 교육계 또는 행정 공무원으로 근무했었기 때문에 사람을 많이 접해 본 경험을 살려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글쓰기교육을 어떻게 진행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다. 교육대상자들은 고령층이고 치매초기에 이른 노인들이 많았다. 본인 스스로 원해서라기보다는 가족들의 요청에 의하여 기억학교에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건강이나 정신상태도 좋아 보이다가도 어느 날에는 전혀 다른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러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어떻게 글쓰기에 임하도록 관심을 이끌어 낼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학습에 무리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교육수준을 초등학교 저학년에 맞추고, 교육용 자료는 일상생활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글쓰기 제목에 맞는 그림을 준비하여 색칠을 하게 시킨 다음 그림을 바탕으로 글을 쓰도록 유도해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지나간 일에 대한 추억을 환기 시키는 일이 주효하다고 보고, 거기에 맞추어 교육프로그램을 짰다.
계획에 따라 봉사활동을 시작 하였다. 먼저 교육에 들어가기 전에 봉사 팀 전원이 할머니 할아버지들 앞에 나가서 각자 이름과 전직소속을 소개하고 그것을 기억토록 수시로 되풀이했다. 믿음과 친밀감을 갖게 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음단계로 백지 위에 스케치된 그림을 주고 색칠을 하도록 시켰다. 그림 소재는 산과 강, 하늘 등 자연의 모습, 과일과 곡식 등 농촌의 풍경, 가족과 집 등 가정의 모습 등 등. 계절이나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들을 준비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색칠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한 가지 색만을 가지고 그림 전면을 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색칠지도를 진행해 가는 동안 하늘은 파란색, 들판은 초록색, 흙은 황토색 등 대상과 사물에 따라 색깔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의 모습도 머리는 까만색, 얼굴은 분홍색, 리본은 빨간 색 등, 색의 용도를 분간하기 시작했다.
개성에 따라 어두운색을 선호하는 분도 있고 밝은 색을 좋아하는 분도 있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특정한 색을 좋아하는 반응도 보였다. 색깔을 구분하여 색칠 한다는 것은 그림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중에는 저고리와 치마, 양복과 바지 등에 자기가 좋아하는 색들을 각각 칠해서 예쁘게 단장시키기도 했다. 예쁘게 색칠한 그림은 선정하여 교실 벽에 붙여 놓고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글쓰기 지도이다. 그림색칠에 열심이었던 노인들도 글쓰기에는 온갖 핑계를 대어 피하려 했다. “눈이 침침하다.” “연필을 잡을 힘이 없다.” “글씨가 작아 안 보인다.” “아무런 생각도 안 난다” 등 등. 글쓰기를 정 못하겠다고 하는 분들에게는 준비 된 자료를 노트에 베껴 쓰도록 했다. 그것도 힘들다면 연필로 한 번 더 글자를 덧칠하게 했다.
글짓기는 연필을 든다고 써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쓰고 싶은 얘깃거리가 떠올라야 한다. 우리는 그날의 주제에 대하여 미리 동요나 동시를 준비했다. 동요를 부르거나 동시를 낭독하게 하여 그 정경을 그려보게 한 다음 글을 써 보도록 유도 했다.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무엇을 써 보려는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차츰 글을 써 보려고 애들을 썼다. 글쓰기가 끝나면 그날의 작품들 중 잘 쓴 글을 선정하여 낭독토록 했다. 모두가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할아버지들 보다는 할머니들이 열의가 더 높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할아버지의 글짓기가 우수작으로 선정 되었다. 신○○ 할아버지였다. 나이가 연로하고, 언제나 조용한 모습이었다. 그날의 글쓰기 주제는 “어머니”였다. 앞으로 나와서 쓴 글을 낭독토록 하였다. 한참 글을 읽어가던 할아버지가 감정이 복 바친 듯 낭독을 멈추더니 눈물을 흘렸다. 나름 데로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피력했었다. 갑자기 교실 안이 숙연해졌다. 한참 후 힘찬 박수로 할아버지를 고무해드렸다.
우리들도 큰 보람을 느꼈다.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감정의 샘이 솟아오른다는 의미이다. 매 말랐던 샘이 다시 솟아 오른 것처럼 감정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삶에 대한 희열을 의미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글로 표현 해 보고 싶은 의욕이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글쓰기 훈련을 시킨 보람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신 할아버지의 눈물 속에서 보람과 희망을 느꼈다.
우리의 봉사활동을 계속 되었다. 여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글쓰기에 탄력이 붙었다. 글쓰기 후 자신의 쓴 글을 낭독 할 때면 글 속에 감정과 리듬이 섞여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대외 활동에서 성과로 나타났다. 대구지역의 기억학교 연합회에서 노인학생들을 대상으로 시 낭송대회를 열었다. 거기에서 우리가 지도했던 할머니 두 분이 학교대표로 참석하여 대상과 우수상을 모두 차지해 버렸다. 이 모두가 열심히 하면 결실이 있음을 알려주는 메시지로 들렸다.
한번은 글쓰기 시간에 편지를 써 보도록 했다. 한 할아버지가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선생님들께.
저의 이름은 ◯◯◯라 합니다. 저는 자랄 때 형제도 많고 친구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것을 좋아 합니다. 집에 있으면 적적하여 매일 기억학교에 나오고 있습니다. 와서 얘기도 나누고 그림 색칠도 하니 좋습니다.
그렇지만 글을 써보려면 잘 안됩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머리가 안 돌아갑니다. 선생님들이 도와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학생 때 친구들을 대신하여 연애편지를 많이 써주었습니다. 그때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는 여자반 급장이었습니다. ◯◯◯는 공부는 못했지만 멋쟁이였습니다. ◯◯◯은 얌전이였습니다. ◯◯◯은 남자반 급장인데 나하고 무척 친했습니다.
이 친구들이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편지라도 써 보고 싶은데 잘 안됩니다. 선생님들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다가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고 가슴을 두드리던 할아버지였다. 편지를 쓴 것도 대견 했지만 어렸던 시절의 기억을 떠 올린다는 것이 놀라웠다. 비록 노인들일지라도 노력 한 만큼 성과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런 면에서 노인들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했다.
이제 구청장님께 편지를 쓸 수 있도록 지도하는 일이 숙제로 남았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우리의 봉사활동이 중단 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 되돌아보니 우리들을 즐겨 맞아주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습이 눈앞에 삼삼 거린다. 지금 노인기억하교 어른들은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 다시 그런 날이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본 글은 2018~19년 대구 서구 소재 샬롬기억학교에서 노인들에게 글쓰기봉사활동을 하며 느꼈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 사태로 우리의 봉사활동이 중단되고 말았지만 돌이켜 보면 하나의 추억이고 보람으로 여겨집니다. 끝맺음을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아서 활동이 다시 재개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봉사활동 초창기 내가 할아버지들 반을 담당했던 관계로 그 쪽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여기 소개된 신◯◯, 전◯◯ 두 할아버지 외에 “홍도야 울지 마라“를 열창하던 서◯◯ 할아버지, 시낭송대회 수상자 최◯◯, 김◯◯ 할머니 모습도 떠 오릅니다.
40여명 정도의 교육생 중 매일 30명 정도가 출석하여 그림 색칠에 열심히 임했고, 20여명 정도가 몸소 글쓰기에 참여 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글쓰기 참여유도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했습니다만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활동을 같이했던 6인 동료들과 지난날을 회고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봉사활동 경험이 토대가 되어, 이 분야로 수필창작반 문우들의 활동무대가 더 넓어 질 것을 기대 해 봅니다.
그동안 봉사활동에 도움을 주신 수필창작반 김정호 교수님과 문우 여러분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아울러 봉사활동을 지원해주신 상록자원봉사단과 연금공단대구지부에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첫댓글 그때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무렵 거기서 활동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메모해 두었는데 깜박 잊고 지내다가
얼마 후 찾으니 찾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니 그때 마주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얼굴과 생활모습들이 필림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이렇게 기억을 되살려주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봉사는 할 때는 힘들고 어려워도 지나고 나면 보람이 됩니다. 그때 모두 고생하셨는데 완전히 매듭을 짓지 못해 서운하기도 합니다. 위드 코로나가 되면 봉사의 길이 열리기를 기대해봅니다. 글을 읽으며 그때의 일을 잠시 회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지만 그때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지금도 기억학교에 나오시는지 궁금합니다.
인연이라는 소중함을 느낌니다.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지 대강 지나치는지를 금방 알아차리는 할머니,
정말 치매끼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하루는 대회에 나가시는 할머니를 더 살피는 동안 삐쳐서 선생님
정은 변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바람에 다시 살펴주느라 혼났답니다. 기억학교가 큰 아들학교라고 하면서
선생님들 늘 오라고 하시던 할머니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에 글을 올려주셔서 새롭습니다.
감사합니다.
훌륭한 봉사를 하신6분 모두 대단하십니다. 사랑과 정성으로 이루어가시는모습 더욱 좋아보이십니다.
모두 건강히 다시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망각의 세월속에 희미해져 가는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중단 되었지만 나름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생생한 글을 통해 그 분들의 얼굴이 떠올라 그리운 마음입니다.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려보며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