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괜찮아…” 그녀는 말했다.
어쩌면 케이크를 향해 달려드는 참새들에게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울타리를 멋지게 훌쩍 뛰어넘던 소녀의 우아하고 능숙한 동작, 왠지 그 아이의 성급하고 무모한 계획의 부당함을 부각하는 듯한 그 동작을 떠올렸다.
"아, 안 돼." 레인 부인은 말했다.
"아, 안 돼. 그럴 순 없어. 너무 아깝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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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자선병원으로, 맥비 간호사로 돌아가기를 열망했을 때 그녀가 원한 것은 질서, 확실성이었다.
에밀리는 사방이 높고 미끈한 깊고 캄캄한 구덩이에 빠진 기분이었다.
간호사 수습 기간에 신경쇠약증을 '다룬' 적 있지만 그 방면의 간호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제야 유감스러웠다.
그 캄캄한 구덩이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기분이 더 나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게 하나 있었다.
스스로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은 해줄 수 없었다.
억압적인 아버지에게서 누가 그녀를 구조했던가?
자신이었다. 오로지 그녀 자신. 다른 사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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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을 볼 때, 심지어 이제 막 초로에 접어든 사람들을 볼 때도, 그 평범한 얼굴 뒤에 광활한 대륙과도 같은 경험이 쌓여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직접 늙어보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스치는 시선이나 작은 손짓 하나도 경고나 보상을 의미할 수 있음을 알기에 경계를 배우며 예민해진 눈치 빠른 아이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두 노인이 눈물이 깃든 눈빛을 주고받거나 “기억나…”하고 말할 때, 이는 삼십 년간 기억할 가치가 있었던 무언가를 가리키는 이정표다.
심지어 어떤 말투나 다정함이나 짜증이 십 년간의 연애, 혹은 반목을 나타낼 수도 있다.
부모에 관해 글을 쓸 때는 기민한 자식들도 핵심을 놓칠 수 있다.
“그래, 맞아, 그해 여름에 메이비스와 함 께 동커스터에 살 때 그랬지."
"뭘 하셨다고요? 그런 얘기 하신 적 없잖아요."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른 삶을 상상해 글을 쓰면서, 나는 성격적 특성을 추론하거나 확대해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어조, 한숨, 아쉬운 표정 등을 비롯해 숙련된 추적자들이 주목할 만한 극히 사소한 표시에도 의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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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요즘에는 그런 상태를 완화하고 심한 우울증 아닐까 싶은 증상에도 효과를 내는 약이 있다.
"캄캄한 구름 속에 있었어. 그 구름이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거야.
사상병들 말이야, 우리 중대 사람들, 아, 다들 훌륭한 친구들이었는데.
그 사람들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더라.
가슴이 얼마나 무거운지, 내 심장이 커다랗고 차가운 돌같이 느껴졌지…”
슬픔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이 가슴에서, 차가운 통증의 무게처럼 느껴진다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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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머니는 그 일을 생각했다, 그것도 무척 자주.
때로 전쟁의 공포는 두 줄기로 함께 흘러, 어머니의 "오, 그 불쌍한 소년들"이 참호의 추억이라는 주선율에 고음부를 더해주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내면 깊은 곳에도 이런 고난의 짐이 있었으니, 오랜 세월
을 감내한 이런 종류의 고통이 무시무시한 타격을 주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몇 년, 또 몇 년, 또 몇 년이 걸려서야 깨달았다.
어머니에게 눈에 보이는 흉터나 상처는 없었지만, 어머니 역시 불쌍한 내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피해자였다.
뒤돌아보면 그 시절은 평행하게 흐르는 두 줄기 경험이었다고 느껴진다.
책, 전쟁담, 회상, 그다음으로 신체적, 정신적 질병.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더 강렬한 관목 숲과 그 속에서 보내는 시간.
모든 재미로부터 멀리 떨어진 교외에 사는 소녀만큼이나 좁은 틀에 갇힌 기분을 느끼는 사춘기의 아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순 없으니 애석할 따름이다.
"너 자신을 봐. 자, 보라고.
세계의 아동문학 작품이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잖아.
지난 전쟁의 정수가 여러 책에 담겨 있고, 살아 있는 부모의 이야기 속을 흐르고 있어.
넌 BBC 라디오를 듣고 부모님은 유럽 정치를 논하지.
집 밖으로 나가면 저녁 산책을 나온 호저나 쿠두나 큰 뱀을 적어도 한 종류는 볼 수 있어.
고개를 들면 머리 위로 수없이 많은 매가 날고 있지. 세상의 아이들 가운데 몇 명이나 이런…”
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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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들 역시 러시아 작가들만큼이나 짜릿했다.
시어도어 드라이저 - 요즘은 아무도 그의 작품을 읽지 않는 듯하지만 훌륭한 소설을 여러 편 써온 작가다 - 스타인벡, 더스패서스, 그리고 조금은 덜 감탄스러웠던 헤밍웨이.
『위대한 개츠비」도 좋 았지만 내 생각에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훌륭한 소설은 딱 한 편뿐이다.
포크너는 조금 늦게 읽었고, 다음으로 영국 작가들이 있지만 그즈음 나는 영국 작가들의 작품을 대부분 읽었다.
하디는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고 조지 메러디스- 역시 유행이 지났다 - 대니얼 디포, 조지 엘리엇,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 그리고 미치게 근사한 『트리스트럼 샌디」. 빠뜨린 게 있나?
시인들, 하지만 시인들은 일찍부터 접했었다.
그리고 내 목록에서 절대로 마지막이라 할 수는 없는 프루스트, 그 믿기지 않는 열정.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또 읽으면서, 이것이 내가 실제로 처한 삶에 대한 해독제임을 알았다 - 전쟁중인 로디지아, 대영제국의 마지막 몸부림.
물론 그때는 그게 마지막이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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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로부터 도망침으로써 나 자신을 구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식의 삶을 장악해 대신 살려는 부모의 욕구가 얼마나 막강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어머니가 자기 아버지에게 어떻게 맞섰는지 살펴봐야만 한다.
존 맥비는 이상적인 아버지였다.
그는 에드워드 시대의 아버지가 자식에게 쏟아야 할 모든 것을 쏟았다.
독일 황제의 런던 방문이나 각종 가두행진, 왕실의 생일 행사, 군대의 분열행진, 마페킹 해방 기
념행사 등 모든 공공 행사에 자식들을 데려갔다.
어머니의 기억은 공적 행사의 연감 같았다.
어머니는 좋은 학교에 다녔다.
연주회나 연극과 관련해서는 원하면 뭐든 볼 수 있었고, 하키와 테니스를 했으며, 피아노 연주 실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이렇게 귀여움을 받고 자란 소녀가 아버지에게 맞서 "싫어요. 안 할래요" 하고 말한 때가 있었다. 왜 그래야 했을까?
당시로서는 특이하게도, 존 맥비는 총명한 딸이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랐다.
시원찮은 아들 말고, 바로 이 딸이어야 했다.
그래서 모든 시험에 합격하고 밥 먹듯 일등을 하는 딸에게 그의 야심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딸은 그에게 "싫어요"라고 말하더니 간호사가 되겠다고 떠났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그게 얼마나 불합리한 말인지 의식하지 못한 채, "다시는 내 집에 얼씬도 하 지마" 혹은 "더는 너를 딸로 생각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
왕립자선병원은 여성 의사를 키우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왜 의사가 되려 하지 않았을까?
틀림없이 아버지가 기뻐하셨을 텐데.
하지만 이미 내가 한 말 속에 정확한 답이 있다. 아버지가 기뻐하셨을 거라고.
바로 그래서 그녀는 싫다, 간호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의 엉 덩이를 닦으며' 살겠다, 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왜? 그 의문을 풀 만한 말을 어머니에게서 들은 기억은 없다.
어머니는 새어머니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냉정하고 엄격했다는 말 빼고는 새어머니에 대해 말한 적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 아버지에게 맞서 "싫어요"라고 말한 에밀리 맥비의 행동은 어쩐지 난데없지 않은가.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자족적인 중산층의 넉넉한 아버지는 왜 총명한 딸을 자신의 연속으로, 정당성의 증거로 여겨야만 했을까?
어머니는 그것을 설명한 적이 없고, 어쩌면 설명이 필요한 일이라고 여기지도 않았을 텐데, 이 얼마나 이상한가.
순종적인 어린 딸, 아버지의 모든 말에 따르며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이 소녀가 아버지 앞에서 양팔을 몸에 붙이고 자처럼 뻣뻣하게 서서 칭찬 혹은 꾸중을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가 이 장면을 내게 연기로 보여줬기 때문에 나는 엄격하고 막강한 아버지와 그 딸을 눈앞에 그려볼 수 있었다).
오래도록 계속 그렇게 흘러갔다.
그동안 딸은 더욱 좋은 성적을 내며 모든 일에 박수를 받았고 원한다면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말도 들었는데, 그 총명한 에밀리 맥비가 어느 날 - 모든 게 끝 - 말한 것이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요."
존 맥비의 첫번째 아내인 에밀리 플라워는 어린 자식 셋을 남기고 죽었는데, 아들은 실망스러운 아이였고 아마 두번째 아내도 그리 큰 즐거움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서 승승장구하는 총명한 딸이 있었다.
그래, 이 딸이 대학에 가서 눈부신 성적을 거두고 각종 우등상과 박수갈채를 받으며 등장한다면? 무슨 공부를 할 것인가? 그가 골라준 전공.
그는 자 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그런 꿈을 품었을까?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없다.
에밀리 맥비는 무엇에 영향을 받았기에 하필이면 간호사를 택하게 되었을까?
"하지만 간호사는 우리와 같은 계층이 아니야, 에밀리.” - 자아실현을 위해 간호사가 된 것일까.
그런데 이제 그녀의 딸이 "싫어요"라고 말하며 편지를 찢어버리고 어머니에게서 전속력으로 달아나고 있었고, 그 끝에는 어머니에게 시달리던 여자들의 아주 오래된 도피처가 있었다.
"아, 물론 난 어머니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결혼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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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저기에 남십자성이 있구나."
"봐, 저기가 오리온자리…북두칠성, 플레이아데스성단…”
어머니가 자꾸만 "자러 갈 시간이야"라고 채근해도 아버지는 “그냥 놔둬"라며 대꾸했다.
아버지는 별빛에, 경이로움에 취했고, 달이 떠 있을 때는 달빛이 마법의 주문처럼 우리를 의자에 붙들었다.
"피커딜리에서는 이런 걸 절대로 볼 수가 없을 거라고, 이 사람아."
아버지는 어머니를 일깨우며 말했다.
"가끔 나는 이런 밤 들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 아침에 잠에서 깨면 밤이 오겠구나, 그러면 여기 앉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
"가치가 있다고!"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싶어서였다.
농장에서 겪은 오랜 고생을 달이, 별들이 보상해준다고….
그렇다,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하고 있었고, 아마도 본심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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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어, 이 사람아? 영국과 비슷하다고.
우리는 피트족, 스코트족, 앵글족, 색슨족, 바이킹, 그리고 프랑스인까지 다 섞여 있어.
침략한 부족은 매번 강간하고 약탈했고, 사제들은 그 전 침략자들의 사제들을 죽였고, 그러면 새로운 왕과 신하들이 등장했어.
모르겠어? 똑같다고.
부시먼족이 이곳에서 수천 년을 살았다고들 하잖아, 그러다 이 무리가 왔고 그다음에 우리 백인 이 왔어.
우리 다음엔 누굴까?
아랍인이라 해도 놀라울 건 없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올 거야…
그리고 매번 새로 몰려오는 이들이 전에 여기에 있던 것들을 파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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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농장 탈출'을 이뤄냈다, 안 그런가? 이런 추락이라니, 이런 실망스러운 결말이라니!
부모님은 교외의 허름하기 그지없는 작은 단층 주택으로 이사했고, 두 사람 다 그 상황을 끔찍이
싫어했다.
우리 농장이 팔린 뒤 대형 농장의 부속시설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그곳의 진정한 지위가 판가름났다.
우리가 살던 집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곳에 사는 동안 가까운 곳에서 들불이 일어나면 우리의 이엉지붕이 물에 흠뻑 젖는 광경을 여러 번 봐왔는데…
하지만 우리집이 서 있는 언덕에는 물이 없었다.
물은 이륜 짐수레에 실어 위로 날랐다.
물 두 통을 실은 목제 수레를 황소 두 마리가 끄는데 길의 특정 구간을 올라갈 때는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이 귀한 물을 평소에는 이 엉지붕 아래에 놔두어 실내 기온을 식히는 데 쓰지만, 들불이 가까이 오면 황소들이 오후 내내 가파른 길을 대여섯 번씩 힘겹게 왕복하기도 했다.
사다리와 나무줄기 여러 개를 이엉에 기대어놓고 남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지붕에 물을 부었다.
그러면 불똥이 이엉에 튀더라도 곧 꺼졌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떠나고 집이 빈 뒤로 다시 일어난 들불이 불꽃을 퍼부으면서 우리집은 불길에 날아갔다.
원래 그 집은 순전한 환상의 산물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오래도록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정신 나간 환상이 차단된 현실 안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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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어두워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했어 - 변변한 보청기가 없었잖아.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거야.
귀가 어두웠어도 볼 수는 있었잖아. 지각 능력이 있었다고.
하지만 모든 게 둔했어. 먹먹했어.
물속에 들어가 멀리서 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티그스, 내 인생 대부분을 그렇게 살았다는 거잖아.
난 전혀 여기에 있지 않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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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아주 잘 이해했다.
내가 아버지 옆을 지키는 긴 오후나 저녁에 병상 옆에 앉아 있으면 아버지는 내 손을 잡았고 우리는 서로 이해하는 분노에 동참했다.
전장의 참호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를 아주 어려서 흡수한 뒤로 그 분노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감정을 느낄까? 그렇다, 느낀다.
그리고 내게 그것은 없어도 괜찮았을 유산이다.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나?
과거의 전쟁이 내 기억 속에, 내 의식 속에 살아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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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들 - 그리고 생각 - 이 우리의 정신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이상한가.
'군산 복합체'는 그때와 어감이 달라 졌고 우리에게 과거를 일깨우거나 생각을 자극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에서 덤불숲단 몇 에이커를 위해 무의미해 보이는 전쟁이 시작되면 부모님이나 그 세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군수업자들이 또 활개를 치는군. 모리배들이야."
그 전쟁이 끝나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수백 명이 죽었지만 무기에 쓰인 돈 수백만 파운드는 누군가의 주머니에 안전하게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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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리했고, 그들은 먹었다.
우리는 딱 한 가지가 비슷했다.
진짜 삶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모두가 병에 걸렸다가 회복중인 사람들 같았다.
전쟁의 시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 멍하고 망연자실한 상태.
그 점에서라면 나는 세상이, 심지어 지금도, 전쟁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을 부정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전쟁에 대해, 대개는 나치에 대해, 아무리 많은 영화를 만들어내면 뭐하나.
그때는 온 세상이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우리는 그 모든 분쟁의 영역을 샅샅이 살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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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는 없었다.
왜냐면, 우리는 모두 "식탁에 앉기 전에 손을 씻어라" 같은 말을 듣고 자랐으니까.
"아니, 그러지 마, 그러면 원피스가 찢어지잖아." "주세요, 라고 말해야지. 주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라고 말해야지." "착한 녀석." 못된 꼬마 아가씨.”
"착하게 굴어야지, 에마, 탈, 한스, 딕, 이반, 잉그리드 - 친절하게 굴어야 해."
이런 모든 말들.
그런데도 폭탄은 떨어 졌고…법과 질서를 기대하록 길러진 이 아이들 가운데 일부는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사오 년이나 들었다.
"이게 다 끔찍한 꿈이 아니라는 걸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어."
그래서 그 전쟁을 겪으며, 그 극악무도함을, 그 무게를, 그 공포를, 그 기괴한 심술을 겪으며, 우리는, 우리 모두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 그럴 수는 없어…
베란다에서 한 청년이 어머니가 기르던 조그만 흰 개와 놀면서 선율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종이 인형을 가질 거예요…”
그가 기둥에 공을 튕기고 개는 그 공을 잡으려고 한다.
이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청년은 고향 집에서 키우던 개를 어쩔 수 없이 안락사시킨 적이 있
었다.
늙은 개였고 그 작은 위는 전시 배급품 사료를 소화하지 못했다.
"엄마가 자기 몫의 배급 식량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우리 개가 워낙 좋은 음식에만 익숙했거든요. 이름은 패치였어요. 한쪽 귀에 검은 반점이 있어서…”
그가 공을 세게 튕겼고 어머니의 조그만 개는 뛰어올랐다.
"이제 우리 떠날 시간이 되었죠? 잘 자요, 그대, 내일 다시 만나요…”
그가 개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영국 공군은 마침내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편지를 보냈고, 우리도 답장을 썼으며, 어머니는 동생이 결혼할 때 그 집을 팔았고, 일흔셋에 돌아가시기까지 몇 년간 다른 과부들과 브리지 카드를 치면서 오후와 저녁 시간을 보냈다.
다들 입 모아 말했듯이, 어머니는 브리지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