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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17. 1:55 PM
거리 : 14.9 km 소요 시간 : 4h 35m 13s 난이도 : 보통
작성자 dooldaklm@naver.com
강경읍 한바퀴돌기(강경역 -대흥로6번길 -계백로 140번길 -무궁화아파트 -강경충청방송 -계백로140번길 -799번 계백로 -대흥교 -
강경읍주민센터와 논산경찰서 -강경상고-강경여중-중앙초등학교 - 강경고등학교 -계백167번 길 -강경침례교회 -성지성당
-젓갈할인 매장 -옥녀봉로27번길 -염천교 -강경 옛날젓갈 -금백로 -황산근린공원(죽림원) -황산삼거리 부흥로-중식당 대만원
-익산시 망상면 화산리 소펄길-용안생태공원 -소펄 2길 -용안로 -용두리 -법성리- 석동리 간선길 -용안습지생태공원 -
바람개비길 -난포교 -성당삼거리
충남 논산시 강경읍(江景邑)
논산시 서부에 위치한 읍인데도 논산시의 법원, 검찰청, 경찰서 등 주요 공공기관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의 위치를 짐작케 한다.
강경은 강경천, 논산천이 금강으로 유입되는 육로와 수로가 교차하는 평야 지대로서 백제시대부터 많은 인구가 살고 있었다.
공주-군산-서해와는 수륙 양면으로, 남쪽의 전주와 동쪽의 대전과는 육로로 연결되고, 논산평야에 자리한 때문이었다.
인근 금강의 강폭이 넓고, 옥녀봉(玉女峰) 밑에는 외항이, 강경천 하안에는 내항이 있어, 충청도와, 전라도의 곡물, 제주도와 황해어장의 수산물과 심지어 중국 무역선이 싣고 온 비단과 소금까지 집결되고 판매되어서 동해의 원산항과 더불어 2대포구로 불리웠다.
17세기 말에 강경천 내항에 하시장(下市場), 1870년에 옥녀봉 동쪽 기슭에 상시장이 개설되고 강경천 양안에는 염창(鹽倉)을 비롯한 각종 창고와 정미소·곡물상 등의 건물이 세워지면서 강경은 '1평양, 2강경, 3대구'라고 불리우는 조산의 3대 시장이 되었다.
1900년대에는 일본인들이 군산과 강경포로 대거 진출하여 각종 상점과 금융 건물을 세워서 조선 근대화의 첫 번째 지역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1902년 충남 최초의 우체국이, 1920년대에 지방법원 지원과 전매서, 경찰서 등이 들어서고, 충남에서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왔고 상하수도가 생겼고, 호남지방 최초의 강경극장이 세워졌다.그리하여 전성기에는 인구가 3만명에 달했고 유동인구는 10만명에 달했다.
그러나 1911년 호남선 대전 -강경 구간, 1912년 익산-논산 구간 개통 이후 포구 기능이 줄어들고 교통과 상업의 요충지로서의 전성기가 끝나게 되었다.
2021년 현재는 주민이 남 3.979명+여 4.143 계 8.122명의 작은 읍이 되었다.
그러나 곳곳에 오랜 역사의 자취들이 남아 있어서 잘만 하면 역사 관광지로 변모할 여지가 있다고 느껴진다.
5월17일 13: 55. 강경역
16일 새벽3시30분 치통 때문에 잠이 깨다. 금강일주를 끝내고 임플란트를 하기로 했는데 그새를 참지 못하고 일이 터졌다.
어지간한 나도 욱신욱신하는 특유의 치통은 참기 힘들었다. 새벽 5시52분 무궁화편으로 귀가하여 어금니 두개를 빼다.
최소 2.3일은 무리하지 말고 휴식해야 한다고 했으나 한 번 멈추면 며칠 혹은 몇달이 지날 수도 있음을 알기에 무리하기로 하다.
그래서.하룻밤 자고 17일 아침 성남에서 지하철로 수원으로 그리고 무궁화호로 강경역에 도착하다.
강경역(江景驛): 1911년 11월 10일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1953년 사무관역으로 승격 1987년 현재의 역사 준공. 2006년 화물취급 중지.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이 운행
일단 역사가 깊은 고을 강경읍을 한바퀴 돌아보고 금강길을 걷기로 하다.
대흥로; 강경읍은 그 역사와 명성에 비하여 너무 한산한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잠재된 저력이 있어 보인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잘 보존하고 관리하여 관광지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중국에게 뒤지는 것 같다.
대흥로 6번길;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앙초등학교를 찾아 가는 길의 이 낡은 건물은 정체는? 그 옛날의 창고 혹은 공장 건물인가.
건물이 무언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은데 .
뒤에 보이는 것은 강경읍 어디에서도 보일 것 같은 강경제일감리교회
14:17. 강경읍의 중앙로인 계백(階伯)로:한산한 강경버스 정류장과 제일장로교회
우편 강경읍 주민센터. 좌편 논산경찰소
논산경찰서(6.25 당시 강경경찰서)와 강경전투
195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강경경찰서 병력이 북한군 제6사단의 대대 규모 부대의 공격을 방어한 전투이다.
금강은 강폭 300 ~ 500m, 평균 수심 2 ~ 5m로 대전을 가로막는 천연의 장애물이어서 지연전을 벌이고 있던 국군에 있어서 중요한 방어선이었다.
7월 12일 미 제24사단은 영동 옥천 - 신탄진 - 대평 - 공주 - 강경 - 장항을 연결하는 금강 남안에 경찰병력과 함께 방어선을 편성하였다.
7월 15일 전주 부근으로 철수하였던 강경경찰서 병력 67명이 강경을 탈환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7월 16일 08시부터 7시간의 전투훈련을 한 다음, 17시 서장의 지휘 하에 강경으로 진격하여 중요 지형지물을 점령하면서 북한군을 색출하였다.
그리하여 공비 5명을 체포하여 적정을 파악하고 17일 새벽 3시에는 무장괴한 10명을 포획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아군을 가장한 북한군 제6사단 예하부대 편의대의 유인전술에 말려 대대규모 이상의 북한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경찰서 내에서 항전하였으나 18시간 만에 탄약이 바닥났다.퇴로를 내기 위하여 수차례 육박전까지 하였으나 결국 67명 모두 전사하고
7월 18일 아침 북한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북한군은 계속 남진한 후 전북경찰과 충남경찰 혼성병력과 접전 후 일시 후퇴하였다.
7월 19일 아침 북한군이 다시 공격하여 경찰부대는 지휘체계가 무너진 채 여산과 익산을 거쳐 철수하여 완주경찰서 병력과 합류하였다.
방방곡곡 전쟁터 아니었던 곳 찾기가 어렵고, 존귀한 인간의 피 흘리지 않은 산하(山河)가 없다는 게 마음 아프다.
14:28. 강경여자중학교와 우편 강경고등학교(남녀공학) 사잇길
1936년 4월 공립실과여학교 개교 -1943년 4년제 강경공립 여학교 -1945년 강경공립여자중학교(6년제)
1976년 강경여자중학교와 강경고등학교(현재 남녀공학)로 분리
2022년 2월 제72회 졸업생 60명 (누계 17,880명)
2022년 4월 제75회 입학생 30명
논산 시니어 블러그 홍보단 사진: 논산시에서만(?) 운영하는 홍보단인듯. 다른 시에서도 본 받았으면 좋겠다.
강경고등학교 스승의 날 기념비
1936년 4월 강경공립실과 여학교(3년제) 개교. 1945년 12월 강경공립여자중학교(6년제)개명
1950년 12월 강경여자고등학교 개편 1976년 4월 중학교와 고등학교 분리
1991년 7월 강경고등학교(남녀공학) 2022년 현재 9학급 186명 재학
2022년 2월 제34회 졸업 71명 누계 14.668명 2022년 63명 입학
'스승의 날' 발원지:강경고등학교(현재 남녀공학)
1963년 대한청소년적십자중앙학생협의회(Junior Red Cross, J.R.C.) 강경여자고등학교 지부에서 시작되었다.
강경여고 J.R.C. 단원들은 병환 중의 선생님을 문병하고, 퇴직한 선생님을 찾아가 감사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1963년 그러한 활동을 공식화하기 위해 5월 26일을 ‘은사의 날’로 정하고 행사를 개최하고 1964년 '스승의 날'로 명칭을 바꾸다
1965년 대한교육연합회에서 스승의 날이 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제정 된 그 정신과 취지에 찬성하고 그 날짜를 세종 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정하자는 건의서를 제출하고 행사는 각급 학교 및 교직단체가 주관하였디.
1973년 정부의 방침으로 스승의 날이 폐지되었으나 지속적으로 스승의 날 부활에 관한 여론이 조성되어
1982년 ‘각종기념일에관한규정’에 스승의 날이 포함되면서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강경여자중학교:
1936.04.강경공립실과여학교로 설립 인가(3년제)
당시 입학생이 일본인 여학생 9명뿐 이었음을 미루어보면 일본이 일본 여학생을 위해 설립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1943.04.강경공립고등여학교로 인가 1950.04.강경여자중학교로 교명 변경
1951.09.강경여자중학교와 고등학교로 개편 1976.03.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
2022.02.제72회 졸업생 60명 (누계 17,880명)
2022.03.제75회 입학생 30명 6학급 105명 재학
논산시 시니어 블러그 홍보단 안경숙님 사진
강경상업고등학교 교훈: 그 시절엔 최고의 덕목이자 교훈이었던 '성실'
우리 시절엔 일찍이 가정 살림에 이바지해야 했던 학생들이 선호했던 것이 상고와 사범고등학교였다. 실제로 이들 졸업생이 효도도 빨리 했었다.
논산시 시니어 블러그 홍보단 안경숙님 사진
설립 102주년이 된 강경상업고등학교: 교훈 성실(誠實)
1920년 5월 강경공립상업학교개교(공립보통학교 교사를 임시 교사로 사용)
1946년 2월 상업중학교로 복구(6년제)
1950년 6월 4년제 상업중학교와 3년제 상고로 분리 허가
2022년 1월 제98회 졸업(남 45. 여38 83명) 누계 총 23.776명
2022년 현재 15학급 남 153명 여195명 합계 258명 재학:
이정도 통계라면 아직은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듯하여 감사하다
강경초등학교 옛 강당; 1937년 6월 30일 강경공립보통학교 개교 30주년 기념으로 학교 후원회에서 기증했다고 한다
14: 33. 중앙초등학교
1905년 04월 사립 보명학교 2년제 개교 1907년 04월 공립 강경보통학교 교명 개칭 4년제 개교
1920년 03월 6년제로 인가 1924년 10월 우리나라 최초 신사참배 거부운동
1937년 06월 강당 준공(등록문화재 제60호) 1949년 04월 강경중앙국민학교로 교명 개칭
1950년 07월 6. 25 동란으로 교사 전소
2022년 01월 제113회 졸업 3명 (총 17,213명 졸업)
2022년 현재 운동장 2.350평. 교사 6.939평인데 학생 6학급 남 17명 여 27명 합계 44명 교직원 15명이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무슨 해결책이 있을 것도 같은 데. 아니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책을 찾아 내야 하는 데.
14: 38. 1896년에 설립된 제일침례교회. 한국기독교침례교 최초의 교회.
원래 설립했던 장소는 옥녀봉 인근이었다고 한다
외부와 잘 어울리는 내부
설립자 선교사 가족과 한국 최초의 침례교인 지병석집사(1896년 2월9일)
강경침례교회 옥녀봉 시절의 기역자 교회(빌려온 사진)
전통과 규모를 자랑하는 젓갈 가게들이 즐비하다
좌편 멀리 강경 성결교회 그리고 우편의 강경 성지성당
강경읍은 읍단위로는 종교성이 가장 강한 고장 중의 하나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모두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를 잘 극복할 수 있기를.
14:51. 성지성당: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 활동지와 사제관이었던 강경성당은 1961년 건립된 것으로,
당시로서는 특이한 구조방식인 첨두형 아치보로 내부를 구성하는 등 현대적 처리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2015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50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강경천의 지류인 대흥천 염천교:역시 여기서도 제일감리교회당이 보이다. 어쩌다 보니 내부에는 들어가 보지 못하였다.
옥녀봉로 27번길과 금백로 교차로; 사방에 젓갈 가게 천지다 모두 140여개가 된다고 한다.
강경젓갈시장은 생선 등의 거래 규모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였으나 1970년대부터 도로의 발달에 힘입어 급속도로 번성,
전국 최대의 젓갈시장이 형성되어 많은 도매·소매 업소가 성업 중이다. 매년 10월에 강경발효 젓갈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황산리 주차장 자전거길: 군산 하구둑까지 33.4km. 보통 때 같으면 하룻 길이다.
강경젓갈전시관; 멀리서 보면 호텔처럼 보인다.
강경젓갈전시관에서 본 운동장과 옥녀봉 방향; 시즌에는 유채꽃이 볼만하겠다.
어쩌다 보니 오늘도 옥녀봉에 오르지 못했다. 후회막급이다
15:11. 죽림원에서 올려다 본 임리정(臨履亭): 1626년 김장생(金長生)이 최명룡·송흥주·윤운구와 함께 집을 지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
임리정 이름의 근거: 戰戰兢兢(전전긍긍) 如臨深淵(여림심연) 如履薄氷(여리박빙)
전전긍긍 두려워하여 조심하기를, 마치 깊은 연못에 임(臨)한 것 같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履) 것 같이 하라”
죽림서원에서 배향하는 정치 참여학자 이이(李珥),성혼(成渾), 김장생·조광조(趙光祖)·송시열(宋時烈)에게도 해당하는 경구인 듯하다
1665년(현종 6) 죽림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죽림서원(竹林書院)은 1860년에 중수하였다가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부친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을 대원군의 치적으로 인식하셨기에 사색당쟁을 부정적으로만 배웠던 나도 동감하였었다.
사액(賜額): 임금이 권세가들의 사당, 서원, 누문의 이름을 친필로 쓰면 그것을 목판에 새겨서(편액扁額)을 주는 것을 사액(賜額)이라고 한다.
죽림서원(竹林書院)
1626년(인조 4)에 지방유림의 공의(결의)로 이이(李珥)·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황산사(黃山祠)를 세우다.
1665년(현종)에 죽림(竹林)서원으로 승격되고 이후 조광조(趙光祖), 이황(李珥),송시열(宋時烈)을 추가하여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파괴되어 유허지(遺墟地)에 제단을 마련, 향사를 계속하여오다가 1910년 국권상실과 함께 중단되었다.
1946년 지방유림이 옛 제단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산삼거리 금강정에서 본 전경: 좌편 제일감리교회. 우편 조흥마을 아파트
황산대교에서 뒤돌아 본 둑방길과 자전거길
15:33. 이제는 익산시(益山市) 망성면 (望城面) 화산리(華山里) '소펄길'에서 본 황산대교 방향: 우편 멀리 옥녀봉
소펄(한자표기 小伐)
펄: 1. 밀물 때는 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물 밖으로 드러나는 모래 점토질의 평탄한 땅. 펄 갯벌, 모래 갯벌.
2. 갯가의 개흙. 3. ‘벌’의 거센말. 결국 '소펄'은 작은 갯벌의 우리말(방언)인 듯
15:57. 라파엘호 진입로; 나바위 성당 방향
조선 현종 11년(1845년)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곳으로 추정된다.
16:11. 익산시(益山市) 망성면 (望城面) 화산리(華山里)마을(나바위성당) 방향; 잘 정비된 관개수로와 비닐하우스단지
화산리 나바위 성당 방향: 2013년 9월 1일 인도행 라이트님이 같은 방향을 보았다는 것도 신기하지 않은가.
화산리 천주교 나바위 성당(빌려온 사진)
초대주임 베르모넬(장약슬,요셉) 신부 중심으로 1906년 시공하여 1907년 완공하였다.
설계는 명동성당 포아넬 신부가 도왔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이다.
1916~1917년까지 흙벽을 벽돌조로 바꾸고 고딕식 벽돌조 종각을 증축하였다.
한옥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나바위 성당건물은 특히 회랑이 있어서 한국적인 미를 맛볼수 있는 곳이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이었지만 현재 '나바위 성당'으로 개명하였다.
익산시 망상면 화산리 습지(대펄?) 산책로
익산시 용담면 구산리; 돌아본 습지. 어쩌면 이런 곳은 대펄이라고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소펄2길
16:36. 감대건신부 일행이 진입로
한국 천주교 첫 번째 사제 김대건 신부가 신학 공부를 마치고 1845년 중국에서 서품을 받고 귀국할 때 상륙한 곳이 이 근처였다고.
자전거길 출입금지: 도보여행자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기회에 마을길을 걸어보기로 하다.
익산시(益山市)용안면(龍安面) 용두리(龍頭里)마을 용안로 - 용북로로 걷기로 하다
16:57. 뒤돌아 본 용안면 창리(昌里)마을 풀무더기(?)
용안면 용두리 송곡마을: 많은 비닐 하우스와 물이 가득한 논이 지나가는 나그네 눈에는 넉넉해 보이는 데.
17;12. 용두리 송곡리 마을에서 농로인 간선(幹線)길을 걷다
농로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간선길이라고 하였을 것 같다
발달한 관개수로. 풍부한 물. 농사하면 물이 최고인줄 아는 나그네는 괜히 마음이 편해지고 넉넉해 진다
간선길: 거미줄 같은 수로와 오랜 가믐에도 농수로를 힘차게 흘러가는 물소리도 기분좋게 들린다,
17:23. 전북 익산군 용안면 법성리 : 법성침례교회. 경유 여부를 두고 고민하다가 지나치다.
용안면 관개수로. 녹쓴 농기계(농기구). 제법 크게 보여서 비쌀 것 같은데. 왜 버려지듯 방치되었는지.
17:40. 1차로 풀을 베어 알을 낳듯이 원통형 덩어리로 만들어 내 놓는다
그러면 뒤따라가면서 포장하는 차; 원통형 풀더미를 들어올려 전후 좌우로 돌려 포장하여 내려 놓는다
간선길과 석동리마을 삼거리에서 금강변의 용안생태공원을 향하여 우회전하다. 강풍이 불기 시작한다.
은천(銀川): 금강 둑 안쪽에서 금강과 나란히 흘러 금강으로 유입된다. 폭도 넓고 수량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지독한 가믐이 계속되고 있으나 이 인근 마을 모내기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저절로 안심이 된다
18:15. 용안생태습지공원; 오후 내내 부는 강풍에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그 기세가 풍력발전소 역할을 할 것 같았다
용인습지생태공원;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난포리(蘭浦里) 글자형 조형물
국토 물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 및 관리하고 홍수 피해를 줄인다는 목적으로 실시한 국토종합개발 사업인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2010년 3월 30일부터 2012년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사업비 187억 8300만원이 들었다
익산시가 인수하여 친수·친환경 생태공원을 표방하여 30여 개의 작은 연못을 조성하여 수련을 심고, 국내 최대 55만평 규모의 억새 단지 조성하고,
2.500여 평에 수선화, 붓꽃, 벌개미취, 꽃무릇 등의 초화류를 심고, 2020년에는 글자형 조형물을 조성하여 포토스팟을 설치했다.
축구장과 족구장이 각 1개, 38면의 주차장. 잔디광장 2개소. 습지 6개소, 우드덱을 조성하여 누구나 산책하며 둘러 볼 수 있게 하였다.
여름에는 연꽃,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억새, 겨울에는 철새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4.8km에 조성된 바람개비 길, 해질 녘 노을과 물억새군락이 만들어 내는 조화도 절경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장소와 안내문을 자주 보게 보어서 인지 금강 사업이 잘한 것이라는 생각을 더하게 된다
익산시 용안면 난포리(蘭浦里); 바람개비센터. 자전거 인증센터
갈대가 많은 포구라는 의미의 난포리(蘭浦里)는 과거에는 배가 자주 드나들었던 포구였다고 한다
18: 40. 강변로 난포교에서 산북천이 금강으로 합류하러 가는 방향 성당포(聖堂浦)
조선 시대 곡물창고인 성당창(聖堂倉)이 있는 포구라는 의미의 성당포 사거리에 도착하니 해도 지고 다리도 아파오다.
성당침례교회에 숙소가 있을까 하여 찾아 가는데 삼거리 맞은편 강변로에서 오던 봉고가 수퍼 앞에 정차한다.
50대로 보는 조수석의 누이가 내려서 주인 여자와 대화를 한다. 다가가서 강경행 버스 정류장과 이 시각에 버스가 있는지 물었다.
여기를 경유하는 버스는 이미 끊겼으나 용안면에는 있을 거라고 한다. 방향감각을 잃은 때라 내가 도보여행 중인 것을 말하고 가는 방향을 물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운전하는 누이가 친구 데려다 주는 길에 용안까지 데려다 주겠단다. 감사하기 그지 없다.
이 시간에 버스를 타러 되돌아가는 게 가장 맥 빠지는 일이다. 운전하는 누이가 나의 금강일주여행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도 여행을 좋아한다며 아에 강경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50대인 줄 알았는데 70이며 아들이 30대 란다. 20대에 오토바이와 대형면허를 받고 일했다는 슈퍼우먼이다.
강경역 앞에서 내리며 진심으로 행복을 기원해 주고 헤어지다. 전화번호를 받았어야 했는데 빨리 내려 주려고 서두르다 깜박했다.
모텔 여주인장에게 또 왔다고 하니 같은 할인가에 전망이 좋은 3층방을 준다.
19:40. 강경역전에는 값싸고 맛있는 식당이 여럿이다. 엊그제 이용 한 작은 식당 역전건강원으로 들어 가려다가
문득 스타모텔 1층의 해바라기 식당의 백반 맛을 보고 싶어 발길을 돌리다. 괜히 미안안 마음이 들어서 얼른 들어가다.
해바라기 식당은 천원이 비싼 7천원이다,. 맛과 양은 모두 만족이다. 해바라기는 시원한 미역국. 역전건강원은 두부 된장국이 좋았다.
이를 뺄 때 마취가 덜 되어서인지(염증이 심하면 마취가 잘 안된다고 한다) 매우 아팠는데 또 아파온다.
처방 받은 약을 먹었는데도 은근한 통증이 지속 된다. 그래도 이틀만 참으면 여행이 끝난다는 희망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분이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내일 일은 내일의 주인에게 맡긴다는 믿음대로 살면 된다.
아내에게 전화로 오늘의 여정과 좋은 만남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감사를 공유하니 또 감사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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