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 유로 2024경기가 한 창이다. 오늘 새벽에 잠을 깨 포르투갈과 체코 경리를 TV로 직관했다. 보다가 잠이 들었다가 다시 승부를 확인하려고 TV를 켜니 아직도 경기 중이다. 결국 2:1로 포르투갈이 이겼다. 조별 리그를 통해 16강이 결정되고 8강을 거쳐 준결승과 결승전으로 이어지는 순서다. 결국 결승전까지 간 두 팀 중 어느 한 팀이 최종 우승을 할 것이다. 우린 이런 경기방식에 너무 익숙하다.
뉴기니 원주민 가후쿠-가마족의 축구경기는 한 쪽이 골을 넣으면 다른 쪽이 골을 넣어 무승부가 될 때까지 몇 날 며칠이고 경기를 한다. 프랑스 문화인류학자 레비 스르토스(Claude Levi Strauss, 1908~2009)가 그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소개하는 얘기다.
승부를 가리는 데 익숙한 유럽의 시각에서는 원주민의 축구 문화는 미개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무승부를 가릴 바에는 뭐 때문에 경기를 하는가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기니의 두 민족 간의 축구경기를 유럽인의 시각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축구는 일종의 화합을 위한 의식(儀式)이다.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195)의 '증여론'에 의하면 주고-받기 의식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원시 문명에도 유럽의 시각으로 보이지 않는 그 나름의 합리적 질서가 있다는 걸 현장에서 직관했다. 합리적 질서를 ‘구조’란 개념으로 이해해도 좋다.
레비 스트로스는 모든 문명은 그 나름의 합리적- 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원시 사고를 야만적 사고로 규정하는 데 익숙하다. ‘원시적’이란 개념은 인간의 손이 덜 간 것이다. 문명의 옷을 아직 덜 입은 상태가 원시 상태다. 그러니 원시는 야생이다. 야생과 문명은 길항적이지 않다. 오히려 상보적이다. 아무리 문명적 사회라 하더라도 신화와 주술적인 야생이 함축되어 있고, 야생의 사고에도 어느 정도의 합리적 사고가 함축되어 있다.
문명은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편리함을 담보해주는 대신 문명 이전의 야생적 풍요를 볼모로 잡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자연’ 혹은 ‘자연인’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이 문명 이전의 야생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오디세우스와 그 일행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간다. 일행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탈리아 시칠리섬에 우연히 도착한다. 그 섬의 에트나 화산 동굴에 외눈박이키클롭스 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인육을 먹는다. 오디세우스는 이 섬에서 부하 몇을 인육으로 희생하고 족장 폴리페모스의 외눈을 찌르고 경우 섬을 빠져나온다.
오디세우스가 이 섬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아침이면 동굴을 막아 두었던 큰 바위를 밀고 양 떼를 몰고 나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남은 부하들을 양의 배에 묶어 동굴 문이 열리자 양들과 함께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그들의 문화를 알고 있었기에 살아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생활양식이 있다. 그들은 평범한 양치기들이었다. 단 한 가지 인육을 먹는 게 오디세우스에게는 미개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문명인 그리스인의 시각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화다. 만약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 앞에서 트로이를 멸망시키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오만만이라도 안 떨었다면 과연 부하를 잡아먹었을까? 그 섬의 고유한 문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리스인의 용맹함만 자랑했기 때문에 폴리페모스는 화가나 부하를 잡아먹은 게 아닐까? 폴리페모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오디세우스 일행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10년이 걸린 건 포세이돈이 그들을 고향으로 쉽게 돌아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의 시각으로 키클롭스 족의 문화를 성급하게 재단한 대가를 혹독히 치를 수밖에 없었다. 다문화적 감수성이 필요한 이유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
🙏🙏🙏
-()-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