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200*78매
꿈꾸는 벽
안 휘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없었음에도, 아침부터 납덩이처럼 내려앉은 구름이 왠지 첫눈을 뿌려줄 것 같은 예감을 던져주고 있다. 창밖으로 흐르는 냉습(冷濕)한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그 바람이 이따금씩 땅에 떨어트리는 플라타너스 잎 때문인지 자꾸만 몸이 굳고 망연해진다.
‘인간의 꿈을 기껏 두 평 반짜리 좁은 공간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던 어떤 선배 약사의 말은 어쩌면 조제실 좁은 공간으로 움츠러든 자신의 꿈에 대한 변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맞은 편 아파트 단지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병원 처방전도 없이 직접 두통과 콧물을 호소할 것이고, 구멍가게에서 껌을 사듯 종합감기약과 함께 쌍화탕을 주문하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 온장고 속에 가득 채워둔 100밀리 리터짜리 유리병들이 그들의 손에 부지런히 옮겨질 것이다. 겨울은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창 밖에서 플라타너스 잎이 또 하나 떨어진다.
-나에겐 당신을 사랑으로 포박할 영원한 음모가 있음.
편지지 위에 그렇게 또박또박 적어놓고, 나는 백 번이 넘도록 썼던 ‘사랑’이라는 낱말이 품고 있는 비장한 의미를 생각했다. 그것은 머나먼 등정(登頂)을 앞장서 온 일종의 깃발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게 있어서 인생은, 체념이라는 이름의 산을 넘고 절망이라는 이름의 벽을 부수지 않고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상황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무모한 용기를 앞세워 방향을 먼저 정해온 억설 속에서, 나는 늘 넘지 않을 수 없는 산을 맞닥트렸다. 그것은 번번이 나의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와 그 기능을 달리한다는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나의 치기어린 날마다의 기도는 제발 한 밤만 자고 나면 내 다리가 씻은 듯이 낫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잠을 자고 깨어나도 나의 두 다리는 변함없는 숙명적 불균형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내게 엄청난 무게의 번뇌를 쌓아왔고, 나로 하여금 단지 더 많은 것을 견디게 하는 수준에서 그 고통을 그치게 하지 않았다. 더 높은 산을 찾아 넘도록 끈질기게 나를 유혹했으며, 더 깊숙한 집념의 숲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달희(達姬).
아직도 나는 그녀가 내 집념의 표적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내 생애를 다만 한 순간이라도 강렬하게 비추던 불빛이었다는 것 말고도, 결국 그녀가 내 또 하나의 체념이 되리라는 예감 안에서, 그녀는 나의 운명적인 표적이 되어버렸다.
달희와의 만남이 끊어진지 8개월이 다 되어간다. 물론, 나와 그녀의 관계를 통속적으로 말하는 그런 ‘연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그녀가 내게 마음을 온전히 주고 있다고 믿어야 할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다.
그녀와 나는 이따금 씩 만나왔었다. 아니,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만남 그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녀에게 보낸 수 없이 많은 편지일 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 나는 어쩌면 당신을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음 - 그렇게 용기를 다해 쓴 편지를 보낸 이후, 마치 칼로 자르듯이 돌연 그녀의 태도가 변했다. 만나자는 제의를 거절했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무렵부터 나는 편지 쓰는 일에 더욱 매달렸다. 그녀가 나를 피하는 이유를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결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닐 터이고, 결코 어려운 추리문제도 아니다. 아마도, 이미 충분히 예고되어 있던 짐작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누군가가 약국 출입문을 밀고 들어온다. 머리에 노란 플라스틱 나비 핀을 꽂은 여자아이다.
어떻게 왔니?
낮에만 출근하는 직원인 박 여사가 아이를 향해 물었다. 아이는 말없이 주춤거리며 굳이 박 여사를 피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손에는 종이쪽지가 들려 있다.
-17세 된 ♀입니다. 예정일이 9일이나 지났는데 소식이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통경제와 함께, 아이가 가져 온 종이쪽지 뒷면에 ‘약이 안 들으면 빨리 산부인과 병원으로’라고 적어서 들려주면서, 동생인 듯한 아이에게 쪽지를 들려서 보낼 발상을 한 열 일곱 살짜리 처녀아이의 얼굴을 잠시 상상해 본다.
굳이 스스로를 기만할 의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자들은, 특히 그만한 또래의 처녀들은 어리석은 실수를 하고, 그 뒤처리를 하는데도 얼마만큼은 어리석은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오늘날 어느 누구도, 그러한 어리석음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비록 그 아이가 바로,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 어느 한 구석에서 홀로 고민하고 있을 누이라 할지라도...... .
오늘은 좀 일찍 문을 닫고 퇴근해야 할 것이다. 도운(道雲)형을 만나기로 약속한 것이 오늘 저녁으로 되어 있다.
헤어진 지 3년. 긴 시간을 넘어 온 연락이라 반가워야 했으나, 그럴 수만은 없었다. 도운 형이 새삼스럽게 나를 찾는 이유를 나는 충분히 짐작한다.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 커다란 암벽이 내 앞을 서서히 막아서고 있다. 물론 나는 그 산을 넘고 싶어 한다. 산을 넘는 일이 대개의 다른 사람에게는 취미일 것이지만, 내게 있어서 그것은 생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또 하나의 몸부림에 불과하다.
언젠가 나는 혼자서 정말 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산책로에 불과할 근교의 작은 산이었음에도, 나에게는 에베레스트보다도 더 높은 엄청난 크기의 산이었다.
그날 나는 정말로 악착같이 산을 올랐다. 한 쪽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올라가는 나의 힘겨운 산행을 스쳐가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무모한 짓을 한다며 혀를 끌끌 차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땀을 뻘뻘 흘리는 내 모습을 그냥 지나치기가 뭐했던지 한참을 지켜 서서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저씨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의식하치 않고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정상을 밟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산에 대하여 참으로 많은 것을 알았다.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리면서 정적을 깬다. 수화기 저편에 하루에도 몇 번 씩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에미다. 별일 없는 게냐?
같은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형네 집에 사는 어머니는 나를 천리 먼 바다 위에 둔 것처럼 안타까워한다. 내가 어디에 있건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아프고도 아픈 옹이로 박혀 언제나 고통스러운 존재다.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나는 언제까지나 한 쪽 다리를 심하게 절름거리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나는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올 적마다 울고 있는 모습을 연상한다. 누군가 웃음은 인지상정의 꽃이요 울음은 그 열매라고 했던 걸 기억하지만, 내게 있어서 눈물은 어떤 경우이건 열매일 수가 없다.
나는 눈물의 근원이었으니, 꽃이어야 했다. 그러나 한 번도 꽃답지 못했던 나의 유년시절은 어머니가 흘린 수많은 눈물의 늪일 따름이었다. 갓 회갑을 넘기자마자 어머니의 허리가 꼬부라지기 시작하여 줄곧 거동의 불편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로 인하여 흘린 그 많은 눈물 때문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2%의 소금, 약간의 단백질, 살균작용을 하는 라이소자임, 알칼리성, 하루에 흘리는 양은 평균 0.7g 정도. 내게 있어서 어머니의 사랑이란 눈물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어머니의 눈물 속에 소금과 라이소자임 따위의 농도가 어떠하였건, 내가 평생을 흘려도 다 못 갚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눈물을 어머니는 흘렸다. 내게 어머니의 눈물은 한 포기의 꽃을 피우는데 필요한 수분의 역할만큼,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요긴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눈물은 언제나 서글픈 경험으로 남아있다.
세 살 적이었다고 하는데, 뚜렷한 기억이 남아있지는 않다. 며칠 밤을 펄펄 끓는 불덩어리가 되어있던 나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나를 그 불구덩이에서 무사히 건져내기 위해 어른들은 발버둥 쳤고, 나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대신 양쪽 다리를 못 쓰는 장애아이로 변해 버렸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어느 누구 하나 희망의 눈빛을 보내주지 않을 때도 어머니는 당신의 늦둥이 둘째아들의 다리가 정상으로 되돌아오리라는 신념을 굳게 지켰다. 아니 그것은 막연한 신념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내려는 무서운 신앙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나를 안고서 전국 어디건 용하다는 곳은 다 찾아다녔고, 눈물 묻은 회초리를 들어 운동을 시켰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런 정성은 기어이, 그래도 약간은 기능이 살아있던 오른 쪽 다리 하나를, 온몸을 감당할 만큼 튼튼하게 살려냈다. 그 덕분으로 비록 손으로 무릎을 짚어야 하는 형편이기는 하지만, 나는 보조 장비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단순히 ‘걷는 법’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내가 생각해도 무서울 만큼 끈질긴 오기. 세상 그 어떤 일이건 하려고 들면 안 될 게 없다는 믿음을 내게 심어준 것이 어머니의 가장 큰 유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
내가 학교에서 거리가 먼 형의 집에서 살던 1년을 뒤로하고, 대학교 2학년 초에 교문 바로 앞에다 하숙집을 정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불편한 내 다리 때문이었다.
부동산 아저씨를 따라 찾아 들어간 하숙집의 키 작고 통통하게 생긴 주인아주머니는 사람 좋은 표정으로 나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아주머니가 정해주는 대로 ㄷ자 모양의 집 안쪽 다닥다닥 붙은 방들 중 하나에 보따리를 내려놓았을 때, 그 방에는 이미 책상과 함께 옷가지와 이불 등 다른 사람의 짐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2인 1실. 독방을 쓸 형편이 아니었던 내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방에 있는 도운이 학생은 우리 집에서 하숙한 지 벌써 이태나 됐지. 경영학과 4학년이고.....순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주인아주머니의 브리핑은 간단했으나, 약간은 긴장해있던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미지의 룸메이트 ‘도운’이라는 이름의 선배는 그 날 밤늦게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동안 그랬는지는 몰라도, 룸메이트 없이 자기 혼자 쓰던 방에 멀뚱한 표정으로 먼저 들어와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온화했다. 앞장서서 들어온 주인아주머니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꽤 서먹했을 것이다.
약학과 2학년 학생이래요. 잘들 지내시구려.
얼굴이 희고 사람 좋게 생긴 도운 형은 아주머니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웃으면서 손부터 내밀었다.
김도운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세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우물우물 멋 적은 표정으로 이를 히죽 드러내면서 엉거주춤 그렇게 나는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도운 형은 따뜻한 첫인상만큼이나 사람이 좋았다. 우선 이해심이 많았고, 룸메이트인 나를 헤아리는 마음도 깊었다. 내가 지체부자유자라는 점을 배려하는 지나친 친절에는 슬며시 짜증이 날 때도 있었으나, 대개의 호의는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나는 차츰 도운 형에게서 편안한 마음을 느끼기 시작했고, 도운 형 역시 진심으로 나를 아우로 여겨주는 눈치였다.
*
그 해 가을, 대학축제가 시작되었다. 캠퍼스의 축제는 내게 기쁨이나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그것은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파트너를 구한다고 몰려다니고, 프로그램을 살피며 마냥 재미를 찾아다닐 계획을 세우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나는 하숙집에서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축제를 그냥 무시하기로 나 자신과 합의하고, 말없이 방에 틀어박혀 앉아 책을 읽었다.
선배이면서 하숙집 룸메이트인 도운 형 역시 나를 팽개쳐 두고 혼자 바깥에서 시시덕거리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축제가 이틀 째 계속된 그 날 그 야릇한 밤이 깊어서 자정이 가까워올 무렵, 도운 형은 소주와 오징어를 사들고 들어왔다. 우리는 마주 앉아서 조용히 술잔을 비웠다.
그 밤 우리의 침묵은 길었다. 얼마 후 눈물을 글썽거린 것은 내가 아닌 도운 형이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말없이 한동안 처연한 심정이 되었다. 아니, 정작 말은 없었어도, 도운 형은 눈빛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값싼 동정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축제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처지의 나와 숙식을 함께 하는 사려 깊은 한 인간이 겪어야 할 피할 수 없는 마음고생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방을 나간 도운 형은 점심나절이 약간 지났을 무렵 하숙집으로 전화를 걸어 나를 찾았다.
야, 너 지금 천지다방으로 나와.
왜요?
좌우지간 빨리 나와, 알았지?
도운 형은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딸깍 끊어버렸다. 나는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대문을 나섰다. 천지다방은 학교 정문 바로 앞에 있는 가까운 찻집이었다.
다방에서 도운 형은 뜻밖으로 단발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내린 어떤 여학생과 함께 있었다.
응, 어서 와. .... . 서로 인사하지. 이쪽은 약학과 2학년 이경래, 나와 하숙방을 함께 쓰는 룸메이트고, 이쪽은 간호학과 신입생 김달희, 내 사촌 여동생이야.
나는 여전히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머쓱 말없이 인사를 하며 그녀의 맞은 편 도운 형 옆에 천천히 앉았고, 달희는 볼을 붉히며 목례를 했다. 오밀조밀 예쁜 얼굴은 아니었으나, 무척 깨끗하고 착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우선 차부터 시키자.
도운 형은 심부름하는 아가씨를 손짓으로 불러 차를 주문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도운 형의 얼굴에 약간의 긴장이 스쳤다.
미리 얘기를 해줬어야 하는 건데, 경래한테는 미안해. 다름이 아니고, 오늘 저녁 쌍쌍파티에 동행할 파트너가 필요할 것 같아서 내 동생을 불렀어. 동생은 이미 동의를 했으니까 경래 너만 싫지 않으면 돼. 그리고 내 동생 아주 착한 아이라서 괜찮을 거다. 어때?
도운 형은 웃음기가 엷게 밴 얼굴로 나의 표정을 살폈다. 나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하나...그 때 아마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앞에 놓고 적지 않게 당황했던 것 같다. 달희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긴장감을 풀지 못하는 나와는 달리, 달희는 아주 편안하게 그 날 축제의 쌍쌍파티를 함께 했다. 나는 파트너가 된 내가 그녀에게 수치스러운 마음을 일으키면 어떡하나 몹시도 신경이 쓰였다. 일단 자리에 앉은 다음에야 나의 외양이 정상인들과 달라 보일 턱이 없으므로 문제될 일은 없을 거였다. 하지만, 일어나서 하게 되어있는 게임 같은 것을 할 때는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가슴사이에 풍선을 넣고 터트리는 게임이 시작되었을 때, 달희는 오히려 주뼛거리는 나를 잡아 당겨 일으켜 세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런 그녀가 너무나 고맙고 좋았다.
신체적인 결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나 같은 지체부자유자와 하루쯤 놀아주는 일이 별 것 아닐지 모르지만, 내게 그 날의 추억은 너무나 소중했다. 학생들이 보통 갖게 되는 캠퍼스 축제에 관한 환상과 기대, 그리고 그 축제의 뒷골목에서 자괴감에 묻혀서 ‘독서나 하겠다’고 들어앉은 내게 보여준 도운 형의 배려는 그냥 간단하게 고마운 일 그 이상이었다.
*
여덟 시 이십 분.
도운 형과 만나기로 한 커피숍은 꽤 붐볐다. 도운 형은 먼저 나와 있었다. 많이 변한 얼굴은 아니었으나, 제법 샐러리맨 티가 몸에 밴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끼리의 수인사와 궁금했던 몇 가지 질문이 오간 다음, 우리는 곧바로 근처의 조그만 카페로 갔다. 양주 한 병과 진 안주, 얼음통과 크리스털 우유 병, 술잔과 물 컵들이 앞에 놓였다.
달희가 단지 동정심에 의해서 너를 교제해왔다는 것이 죄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 애는 너를 친구 이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을 한 모양이야.
찻집에서 화제를 빙빙 돌리며 참아왔던 얘기를, 도운 형은 카페에서 그렇게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양주잔을 기울였다.
그랬을 것이다. 달희는 결국 나를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친지들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선택에 참섭(參涉)했을 것이다. 왜 멀쩡한 처녀가 하필이면 지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과 인연을 맺을 것이냐, 대학 나오고 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건강한 처녀라면 얼마든지 일류 신랑감을 찾을 수 있을 터인데, 무엇 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할 것이냐 하고 말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를 맨 처음 달희와 만나게 해주었던 바로 그 도운 형이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이번에는 그녀에게 더 이상 집착하지 말도록 하기 위해서 나를 불러낸 셈이었다. 내게는 그 아이러니컬한 현실이 더욱 씁쓸했다.
도운 형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내 눈빛에는 그의 생각을 차갑게 잘라내고 싶은 날카로운 결의가 감춰져 있었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동정 받아야 할 처지가 되어 있다는 피동의 판단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내적 갈등과 투쟁은 늘 있어왔다. 그것은 하루 이틀이 아닌 길고 긴 세월 동안 내 안에 이미 치열하게 혼재했다.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백 번 천 번, 아니 만 번쯤 거듭하고서도 막상 내 앞에 동정의 눈빛이 쏟아지면 나는 번번이 분노의 형태로 동요하곤 했었다.
나는 담담히 말하기로 했다. 아니, 나는 분명 차분히 말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필경 나의 음성 속에는 핏빛이라고 해야 마땅할 어떤 설움의 그림자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었을 것이다.
결국, 제가 절름발이이기 때문이군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볼 뿐 말이 없던 도운 형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가령, 제 육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조건이 달희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하는 핵심적 사유라면, 그 같은 사유는 제게 영원히 개선할 방도가 없는 절망적인 조건 아니겠습니까? 이제 저는 어떤 경우에도 다시 정상인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도운 형은 여전히 나의 말을 되받지 않았다. 다만 침을 한 번 꿀꺽 삼켰을 따름이었고,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서 훌쩍 마시고는 냉수로 입을 가셨다.
다시 말하면, 제가 불구라는 사실은 앞으로 이와 꼭 같은 또 다른 경우를 당하더라도 변화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결국, 이쯤에서 제가 물러난다면, 다음에 제가 받아야 할 고통은 더 크면 컸지 이보다 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목이 말랐다. 나는 양주병을 기울여 잔을 가득 채우고는 단숨에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뜨거운 불덩이 하나가 목젖을 타고 흘러 내려가 위장 안에서 폭발했다. 얼음물이 담긴 유리컵을 들어 위장 속으로 소화기를 분사하듯 물을 흘려 넣었다. 위장 속에 붙은 불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평소에는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마시지 않는 나였다.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달희를 너에게 소개한 것도, 달희가 너를 만나온 것도 그저 값싼 동정에 불과했었다고 네가 치부하고 매도한다 해도 지금 내가 할 말은 없다. 어쨌든 지금에 와서 달희의 선택을 존중해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어쩌겠나.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말하면, 달희는 너를 사랑하지 않고 있고, 어떤 언약을 한 것도 아니고...... .
절벽을 기어오르던 암벽 등반가가 마지막 한 손을 잘못 잡아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그 암벽 등반가가 마지막으로 뻗은 손이 잘못 되었다고 해서 그의 등반을 무모하다고 힐난할 것인가.
나는 술을 거푸 마셨다. 일그러진 도운 형의 얼굴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 도운 형이 맡을 수밖에 없는 배역이 그러하므로, 그 역시 결코 편안한 심사로 내 앞에 오지는 못했으리라.
취기로 인해 가물거리는 의식의 틈을 비집고 도운 형의 마지막 말이 가물가물 들려오고 있었다.
미안하다, 경래야. 그러나 이것만은 네가 알아주길 바란다. 만약에 달희가 너를 선택했다면, 너를 사랑한다고 나섰다면, 나는 분명히 너희들 편이 되었을 거다........ .
*
약국 문을 열기가 무섭게 밀려들던 환자들은 열한시나 되어서야 조금 뜸해졌다. 박 여사와 내가 허둥거려도 대기하는 환자들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조바심과 불만과 짜증이 그득하다. 조제 처방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사람들은 참 조급하고 참을성이 없다. 그게 한국사람 만의 현상이라고들 하는데, 글쎄다. 나는 아직 외국 사람들을 여럿 겪어본 경험이 없다. 아마도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또다시 처방전을 들고 찾아오는 환자가 부쩍 늘어날 것이다.
사람의 일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정(情)이라고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정은 참 무섭다. 소리 없이 쌓여 가는 정이 세월을 거듭하면서 만들어내는 구속. 그것은 인간의 행동반경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변수이며, 인간의 자유를 옥죄는 가장 강력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운명에 금을 긋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간밤에 내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다. 도운 형이 나를 데려다 주고 갔을 거라고 그저 짐작할 뿐이다.
진! 따! 진! 따! ...... 길을 걷고 있는 내 뒤에서 함께 외치는 아이들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왼 쪽 발을 떼어놓으면 어김없이 뒤에서 ‘진!’하는 소리가 들렸고, 오른 쪽 발을 떼어놓으면 ‘따!’하는 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아이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희부연 안개만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다시 앞을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영락없이, ‘진! 따! .....’하는 고함 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보았다. 희부연 안개..... . 그 속에 낯익은 얼굴 하나가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떠올라 있었다. 도운 형이었다. 도운 형의 잔인한 미소가 내 가슴으로 날아와 칼질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도운 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서서히 얼굴이 바뀌었다. 달희. 달희의 얼굴이었다. 그녀가 비시시 웃고 있었다. 웃겨! 짜식! 감히 ‘진 따’인 주제에 나를 사랑한다고? 웃겨! 달희의 얼굴에는 조롱의 빛이 그득했다. ....... .
꿈이구나, 이건 꿈이로구나, 나는 꿈속에서도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억지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침대였다. 습관처럼 벽시계를 보려고 했지만, 취기로 가득 찬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지러웠다. 나는 결국 다시 침대에 고꾸라지듯 엎어졌다. 가물거리는 의식 저 편으로 나를 힘껏 던져 포기해버렸다.
가까스로 눈을 뜬 시간이 아침 일곱 시. 약국 문을 열기 위해서 서둘러야 할 시각이었다. 속이 좀 거북했으나 견딜 만 했고, 대신 뒷머리가 많이 아팠다. 마신 술의 양이 워낙 많아서 그랬겠지만, 숙취가 깊었다.
침대에서 막 일어났을 때, 그녀 생각이 났다. 이렇게 잠에서 깨면 생각이 나고, 비슷한 얼굴의 여자가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떠오르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그립고...... . 이런 것을 두고 정이 들었다고 하는 것인가. 그런 사념 끝에 참 오랜 시간, 내가 달희를 기억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절름거리며 살아야 하는 운명 때문에 차마 함부로 남에게 말하지 못해온 그것, 그것은 분명 사랑일 터인데.....형언할 길 없는 슬픔이 가슴속에서 훅 하고 솟아올라, 아린 눈물을 만들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샤워를 할 즈음, 거북살스러운 기운이 위장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식도를 타고 치솟았다. 하마터면 토할 뻔했는데, 위기를 잘 넘겼다. 못 견디면 토하는 게 차라리 낫기도 하지만, 견딜 만 할 때는 그래도 견뎌내는 게 더 좋은 것이 뒤탈이 난 술 속이다.
집을 막 나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에미다. 어제 밤엔 어디를 갔었던 게냐? 술 마신 거 아니냐? 마시더라도 절대로 무리하지 말거라. 아침은 잘 챙겨먹은 거냐? ....... .
어머니는 지난봄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지냈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다닐 적에 돌아가셨으므로, 밥 빨래라도 해주며 나를 보살피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 지병인 당뇨가 심해져서 형의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허리 꼬부라지고 병까지 든 노인네가 손자 손녀들 보는 재미라도 안고 사는 게 좋겠다싶어서 내가 이제 뭐든지 혼자 다 할 수 있으니 형네로 옮겨가시라고 우겼고, 내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치다시피 한 노인네를 그예 한번이라도 모시고 싶어 하는 형이 나서서 어머니를 끌어 당겼다.
잠깐 한가해진 틈에, 약국 문을 밀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머리에 노란 플라스틱 나비 핀을 꽂은 여자아이다. 누구더라? 아, 어제 그 아이. 아이의 손에는 또 종이쪽지가 들려 있었다.
-어제 쪽지 드렸던 17세 된 ♀입니다. 사실은 제가 두 달 전에 남자친구랑 무슨 일이 있었어요. 병원에 가지 않고 해결할 방법은 없나요? 엄마 아빠가 아시면 큰 일 나는데..... . 도와주세요.
나는 잠시 난감해졌다. 약을 주어서 해결할 일도 아니고..... . 열일곱 살의 여자아이가 어쩌다가 임신이 된 모양이었다. 어린 가슴에 저 나름대로 얼마나 고민이 클까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처방전 정리에 여념이 없는 박 여사를 불러 쪽지를 보여주었다.
지금 좀 한가한 시간이니까, 이 아이를 따라가셔서 누군지 한 번 만나보시지요. 해결책을 잘 좀 일러주고 인도해주시면 좋겠군요. 틀림없이 우리 약국에 드나드는 아이일 텐데... .
박 여사는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했고,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바로 생각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영문 몰라 하는 어린아이를 다독이면서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는 앞장서서 맞은 편 아파트 단지로 박 여사를 안내하여 깡충거리며 가고 있었다.
잠시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결혼을 위해 임신부터 하고 보는 소위 ‘속도위반’작전. 그런 공상이 설핏 스친 것은 달희가 나와의 만남을 기피하기 시작한 바로 그 다음이었다. 만약에 내가 달희와 함께 사랑에 빠져 속도위반 작전을 쓸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하지만, 나는 곧 그런 상상을 도리질 쳤다. 내 안에 잠재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상식과 맞서고 싶어 하는 일종의 오기가 그런 생각을 가로막았다. 모두가 아닌 듯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사지 육신 멀쩡한 사람이 나 같은 지체부자유자를 사랑하면 안 된다는 가치관, 아니 지체부자유자가 정상인을 사랑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상식이 있다.
그것이 남의 일이면 몰라도, 나 자신이나 내 가족의 일이라면 누구든 그 상식의 굴레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상식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 싫었다. 내가 만약,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달희를 잡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목적만을 추구하는 비겁한 수단을 동원하는 무가치한 일이 되고 말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그랬었다.
아무렇거나, 이제는 모든 게 다 부질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아주 예상을 못했던 바도 아니었다. 도운 형이 내게 다녀갔고, 달희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도 분명하게 확인된 셈이다. 더 이상의 미련은 추태일 것이다.
힘들겠지만, 나는 이제 절벽 꼭대기에 핀 한 송이 꽃을 꺾기 위해 암벽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딘 무모한 등반가처럼 덧없이 추락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능한 초라하지 않게 추락하여, 어쨌든 살아가야 할 이 인생길에서 외로움에 지쳐 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절망하면서, 어떻게 잘 살아낼 것이냐, 그것만이 나의 화두여야 한다. 나는 뼈 속 깊이 파고드는 고통을 밀어내며 어떤 결의의 산을 절뚝거리며 돌아 내려오고 있었다.
달희에게 보낼 마지막 편지를 썼다.
-이제 나무를 떠나십시오. 이제 더 이상 새를 붙잡지 않으렵니다. 나무는 결코 새를 원망하지도 않으렵니다. 한번 날아간 새를 그리워할 자유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무는 행복합니다.
*
-경래 오빠. 그 동안 오빠를 힘들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떠나고 싶었어요. 부모형제 모두가 반대하는 길을 선택하는 일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 하지만, 이제야 저는 깨달았어요. 오빠를 만나면서 지나온 세월, 그 긴 세월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오빠에게 익숙해져 있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지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늦지 않았다면, 그 사이에 경래 오빠의 마음 문이 아주 닫혀버리지 않아서 다시 가지에 앉혀만 주신다면, 이제 새는 나뭇가지에 다시 앉아 떠나지 않고 싶어요. 오늘 도운 오빠를 만나서 이런 제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도운 오빠는 제 편이 되어주시겠다고 약속했어요. 용서를 기다립니다.
어쩌다가 임신을 하게 된 열일곱 살짜리 처녀애의 뒤처리를 위해서 움직인 박 여사의 역할은 정말로 슬기로웠다. 처녀애를 설득한지 꽤 여러 날 만에 아무도 모르게 아이를 데려다가 산부인과에서 낙태를 시키고, 다시는 그렇게 어리석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타이르고 하는 모습이 흡사 친딸이나 동생을 보살펴주는 듯 좋은 모습이었다.
그런 저런 일을 화제 삼으며 지내던 어느 날, 한 나절 환자가 약간 뜸해진 사이에 배달된 등기우편 속에는 뜻밖으로 달희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녀가 내게 보낸 첫 편지였다.
나는 달희의 또박 한 글씨를 몇 차례나 읽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편지를 찢었다. 아무리 다시 맞추어도 글자 한 자도 제대로 읽어지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 갈기갈기 찢었다. 그런 다음 나는 조각난 편지를 한꺼번에 공중으로 힘껏 던져 올렸다. 찢어진 편지지 조각들은 눈처럼 허공을 날아서 약국 안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져 내렸다.
그런 내 모습을 놀란 얼굴로 뜨악하니 지켜보고 서 있는 박 여사의 뒤 편 그 너머, 여닫이 유리문 바깥 저 쪽에 어느 새 잎을 거의 다 잃어버린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텅 빈 가슴을 휑하니 드러내고 차가운 미소를 허공에 흩뿌리고 있었다. 가슴이 시렸다. 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