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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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오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박기동 시 /안성현 작곡 /안치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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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사 박기동(85세, 시드니 거주)
목포 항도 중학교에 재직시, 20대의 누이가 폐결핵으로 숨진 후 이 시를 썼다(1947).
여기에 같이 재직하던 안성현 교사가 곡을 붙였는데, 그가 월북하면서 박시인은 기관의 감시 대
상이 되었으며, 결국은 교사 자리를 내놓고 오래도록 어렵게 살았다.
93 년에 호주로 이민 가, 홀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50 여년 만에 2 절을 쓰고 감격하여 많이 울었다고 하며, 시집 한권 내는 것이 소원이라고...
2, 작곡 안성현(월북, 별세)
박기동씨와 같은 학교에 재직하면서 <엄마야, 누나야>를 작곡한 유능한 교사였다.
박시인의 누이가 죽었을 무렵 마침 뛰어난 문학 소녀였던 제자도 폐결핵으로 사망하였기에, 박교
사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었다.
그러나 안성현은 6.25 전쟁 때 무용가 최승희의 권유로 월북했으며, 북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3. 금지곡으로
<부용산>은 호남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특히 빨치산들이 가사를 고쳐 많이 불렀다고 한다.
그리하여 금지곡이 되었다가, 1997년 이동원, 안치환 등이 부르면서 일반에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전남 벌교의 부용산에는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첫댓글 좋은자료 감사 드립니다
삶의 치열함을 한가시키며 향수어리고 구슬픈 노래, 잘 들었어요.
부끄러운 역사의 길목에서 목놓아 부르다 가신 영혼의 넔 앞에 합장을 올립니다. 좋은 자료에 감사합니다,
제목을 부용산으로 꼭 바꿔 주시기 바랍니다.
이념에 휘둘리어 그저 그 틈에서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생을 맡긴 빨치산들의
영혼을 되새기고파 일명으로 불리던 빨치산을 붙여보았습니다
꼭 원제인 '부용산'으로 바로 고쳐 부르시기 바랍니다.
하제 지기님 지적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원제"는 중요한 자료이자. 원뜻을 전달 하는데 그 목적이 크다 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