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핵심 교리인 연기론은 제1 원인을 배격한다. 어떤 결과가 발생하려면 백가지 천가지 만가지...원인들이 함께 해야만 된다. 그러므로 하나의 근본에서 만물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은 미혹의 극치이다...
가령 된장찌게에게 근본이 있는가? 된장이 근본인가? 그럼 된장의 근본은 무엇인가? 된장찌게를 만든 마누라가 근본인가? 물 파 마늘 고춧가루 불...따위가 근본인가? 아니다. 된장찌게에는 헤아릴수 없이 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된장찌게를 이루고 있는 된장 물 파 마늘 고춧가루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된장찌게에는 된장찌게라는 실체가 없다. 된장찌게는 공(空)인 것이다. 이 점은 된장찌게를 만들고 먹는 사람에게 있어서도똑같이 적용된다. 된장찌게를 만들고 먹는 사람도 인연화합으로 공이다.
이렇게 모든 존재(법)은 인연이 인연을 만들어 생긴다. 인연으로 발생한 발생한 법들이 서로 인연이 되어 다시 인연을 발생시키기를 끊임이 없이 한다. 이를 화엄경에서는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라고 한다. 중중 무진 연기에서 보면 공이 공을 발생시키는 것으로본질적으로 세상은 공계(空界)이다. 공계의 측면에서는 제1원인자는 없고 따라서 우주의 근본 자리, 하나님, 본래면목, 자기의 뿌리, 참나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마음 공부에 있어서도 한 생각나기 자리, 생각의 근본, 번뇌의 뿌리 등을 찾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이런 것들은 공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성립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려는 것은 일어난 마음이 인연성이며 공성이지 어떤 특별한 성품이 아니다.
무든 법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는 연기법의 대명제에서는 나를 이루는 주체도 없고 뿌리도 없다. 수미산처럼 일어나는 번뇌들에게도 주체가 없고 뿌리가 없다. 겉으로 일고 꺼지는 수 많은 법들과 마음, 그리고 번뇌들이 실상에 있어서는 공이고 공이므로환과 같고 꿈과 같아서, 있는 듯 하나 진실이 아니며 없는 듯하나 목전에 뚜렷하니 아주없음이 아니다. 연기와 공의 세계는 유와 무를 벗어난 중도이고 중도가 곧 만법의 실상으로 허망과 진실의 두 변을 떠나 생기고 사라진다.
그러나 이 생기고 사람짐 역시 중생의 분별상일뿐 실제에 있어서는 생기고 사라짐이 없다. 생기고 사라지는 법 자체에 주체가 없고 근본이 없고 자아가 없어 제모습과 제성품이 없는데 어찌 생겨남이 있겠는가?
마음을 관하여 마음이 공한 줄 알면 일체법공한 줄 동시에 알게 되면 집착과 번뇌와 삼독이 정체가 탄로 난 도둑처럼 스스로 사라진다 하였다. 불자라면 모름지기 늘 연기를 사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