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달교수의 역사칼럼(64)
권중달(중앙대 명예교수, 삼화고전연구소 소장)
察往考來
지난 일을 살펴서 올 일을 고찰한다.
요즈음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는 문제를 가지고 정부와 의료계가 대립하고 있다. 정부는 향후 일어날 일을 생각해 보면 의사가 부족하여 10년 뒤에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될 수 있으니 의과대학 학생정원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의료계에서는 의사 수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이 힘들어 기피 하는 외과나 소아과 혹은 지방에 근무하는 의사에 대한 지원정책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말로 10년 뒤에 의사 수가 모자라서 큰 문제가 생길 것인가? 아니면 현행대로 두어야 10년 뒤에도 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 미래에 벌어질 일을 추측하면서 각기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이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연전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s)’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에서는 미국이 1775년에서 2007년까지 200여 년 동안 미국이 참전한 8번의 전쟁을 시작할 때의 생각과 끝나고 난 뒤의 결과를 비교한 책이었다. 끝낸 다음의 결과는 처음 시작할 때의 생각과 달랐다는 것이다.
미국은 미영전쟁, 미-멕시코전쟁, 미-스페인전쟁, 1차대전, 2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 시작하면서 목표도 있었고 예상하는 결과도 있었다. 그러나 끝나고 보면 많은 사람이 예상한 것과는 달리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전쟁을 시작할 때 머리 좋은 많은 사람들이 계획하며 좋은 결과를 예상하였겠지만 빗나갔으니 역시 미래를 정확하게 맞히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미래에 벌어질 일을 간 날짜까지 맞추기는 어렵지만 변화의 경향성(傾向性)을 짐작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예전에도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자 하였던 것은 오늘날과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래서 하늘에서 벌어진 천체 현상은 하늘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고 이를 잘 분석하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듯하다.
1203년 금(金)나라에서는 평소와 다른 천문현상이 나타났다. ‘9월 갑진일(9일)에 신시(申時)와 유시(酉時) 사이에 하늘이 온통 크게 붉은색이 되었고, 이 모습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될 즈음까지도 그러하였다.’ 이처럼 특별한 상황이 나타나자 금(金)의 재상은 신안(信安) 출신의 두시승(杜時昇)이라는 사람이 박학(博學)하며 천문을 잘 안다고 하면서 금의 황제인 장종(章宗)에게 천거하면서 그는 크게 진용(進用)할만 하다고 하였다.
이때 두시승은 친한 사람에게 이 천문현상을 해석하여 말하였다. ‘내가 보건대 정북 쪽에 붉은 기운이 있는데 마치 피와 같으니 천하는 크게 혼란을 맞게 되었다. 혼란하게 되면 남북이 마땅히 합쳐져서 하나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영고성쇠(榮枯盛衰)와 가득 찼다가 비워지는 것이 순환(循環)하여 그 실마리가 없으니 지나간 일을 잘 살펴서 다가올 일을 생각해야 하지만 누가 이것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러한 해석이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30여 년이 지난 다음에 금왕조는 몽고의 징키스칸에게 멸망한다. 뿐만 아니라 다시 45년이 더 지난 다음에는 남송조차 몽고에게 멸망하고, 유아시아 대륙은 모스코바, 이란 이라크에서 중앙아시아를 지나 극동의 고려까지 모두 몽고의 지배에 들어가는 대통일제국의 시대가 되었다.
정말로 1203년의 천문현상이 이러한 것을 예고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또 두시승이 이러한 상황까지 알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두시승은 분명하게 세상은 영고성쇠로 변하여 크게 변하는 세상이 올 것이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없다는 경향성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누가 이것을 하겠는가?’라고 한 것이 아닐까? 그는 바로 닥칠 환난을 피하여 조용히 황하를 건너서 남쪽으로 내려가서 조용히 숭산(嵩山)과 낙산(洛山) 속으로 들어가 은거(隱居)하였다. 속세에서 벗어나려고 한 셈이다.
혹자는 어려움이 닥칠지 알았다면 왜 직접 뛰어들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비겁하게 도망했느냐 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당시의 기록을 보면 ‘풍속(風俗)이 사치해졌고 기강의 크게 파괴되었다.’라고 되어 있으니 두시승은 아마 사회가 이렇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천문현상이 일어나기 전에도 이미 금왕조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망할 것을 짐작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앞의 천문현상이 나타나자 이를 계기로 혼란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 아닐까? 그는 모든 왕조가 기울어지는 상황은 사회에 사치한 풍조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사치한 풍조만 건전하게 돌릴 수만 있다면 금왕조의 기울어짐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설혹 두시승이 장종에게 가서 사치한 풍속을 고쳐야 하니 황궁의 황후부터 검소하게 생활하라고 하였다면 그것이 실행할 수 있었겠는가? 사치란 망해 보기 전에 고치기 어렵다는 인간의 속성(屬性)을 파악한 그는 역사의 대변전의 소용돌이가 있기 전에는 고쳐지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두시승이 숭산으로 들어간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다.
다시 의학과 정원 문제로 돌아가 보자. 요즈음 의사 가운데 인간의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고 돈벌이에 눈을 뜬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돈 좀 있다면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 유행이라는 것이다. 많은 돈을 내고 성형하고자 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고, 그래서 의사는 그쪽으로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우리 사화의 사치와 쾌락주의를 고치지 않고 정원을 늘려도 안 늘려도 마찬가지 일 터이다. 이는 그대로 두면 망하기 전에는 고쳐지지 않을 병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가 인간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하도록 가르쳤다. 그들은 가르친 대로 잘 배운 사람들이다. 경제 우선주의 교육은 돈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인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문학, 역사, 철학 같은 인문학이 외면 받게 하였다. 의사, 변호사 같은 돈 잘 버는 직업군을 길러내는 대학의 교과과정에 인문학이 끼어 들어가지 못하였다. 경영, 공학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기는 정신세계를 가르치는 종교계도 예외는 아닌 듯하니, 어디 가서 돈보다 인간의 생명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을 배우거나 생각할 시간이 있겠는가?
의과대학 정원문제는 이대로는 해결 될 길이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어느 분야에서든 인문학에 대한 소양이 없으면 도태되는 정책이 만들어 진다면 나라를 구할 수 있고 의과대학 정원문제도 저절로 해결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할 사람이 있을까? 길이 있어도 가지 않으니 다시 한 번 두시승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첫댓글 역사의 앞에서 정론을 펴는 권교수님의 외침이 실현되기를 고대하고 앙망합니다. 참으로 우리 역사의 앞날, 인류의 장래가 염려됩니다. 좋은 역사 평론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의대학생정원문제에 모든 국민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또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국민의 보건을 위하여 수립한 정책이지만
그정책이 전공의의 입장에서 볼 때는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듯 합니다.
정부측과 의료진측의 견해에서 나타난 차이점은 철저히 검토하여
가장 합리적으로 수정안을 창안해야 할 것이므로 향후 그 귀추를 지켜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하는 것은
전공의측에서 주장하는 목적이 진정한 국민건강의 증진과 국가발전을 위한 것이며,
나아가 "히포클르테스선서"와 같은 인술의 정신을 발휘하기 위한 것임이
널리 밝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의료계의 형언할 수 없는 혜택을 받아 왔고 또한 받고 있는 처지에서
존경과 감사의 뜻을 올리며 의료계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권중달교수님의 문제제기에 감사하며 댓글에 대신합니다. (청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