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Worker 2014년 9월호에 게재될 원고
내 삶을 변화시킨 책
이용교/ 광주대학교 교수, 복지평론가
필자는 기관이나 가정을 방문하다 보면 주인장의 책장에 눈길이 간다. 책장이나 책꽂이에 있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이 지향하는 삶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책상 가까이에 두고 읽은 책이나 최근 구입한 새 책들을 보면 그 사람이 요즘 어떤 것에 관심을 두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책이 많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갖고 있다면 다방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처세술이나 돈을 잘 버는 방법에 관한 책만 주로 갖고 있다면 깊게 사귈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의 머리와 가슴 속을 들여다보기는 어렵지만, 어떤 책을 즐겨 읽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키운다”는 옛말은 만고의 진리이다. 따라서 옛 사람들은 단계에 맞는 책을 읽도록 권유하였다. 아동은 천자문으로 글을 깨친 후에 소학, 명심보감 등을 통해 사람됨을 배우고, 대학, 논어, 맹자, 사기로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며, 시경, 서경, 주역 등으로 자연을 노래하고 우주의 질서를 파악했다.
“행복한 세상을 열어가는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행동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는 책을 끊임없이 읽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사는 인간이 직면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기에 사회복지학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가치를 습득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가 되는 과정에 기초를 배우지만,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사람들이 직면한 복지문제는 매우 다양하기에 시대 흐름에 맞는 새로운 공부를 해야 한다.
“배워서 남 주는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대한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필자는 “일 년에 책 백 권은 읽어야 한다”는 신조로 살고 있다. 목표량을 다 채우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살려고 한다. 대학입시를 앞둔 시절에도 삼중당, 배영사, 삼성문화재단 등이 만든 문고로 다 채우려고 노력한 추억이 새롭다. 용돈도 부족한 시절이었기에 헌책방을 뒤지다시피 순례했다. 정말 읽고 싶은 책을 싼값에 사면 횡재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 시절에 필자의 머리를 흔든 책은 이어령 선생의 <흙속에 저 바람 속에>이었다. 이 책은 청년 이어령이 신문에 기고한 글을 엮은 것으로 발간 1년만에 30만부가 팔린 초베스트셀러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인의 삶과 문화에 대해 깊고 넓은 생각을 하였고, 이후 이어령 선생이 쓴 많은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
대학시절에 가슴을 뜨겁게 했던 책은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었다. 1970년 11월 13일 스스로 자신의 몸을 불살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스물두 살 전태일의 삶은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필자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당시 근로청소년과 야학을 하였기에 석탑출판사에서 나온 <노동법 해설>을 비롯하여, 근로자의 벗, 어느 돌멩이의 외침, 노동의 역사 등 관련 책들을 섭렵했다. 사회복지학이 다루는 사안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 저임금, 차별 등 구조적인 문제와 이로 인한 부적응, 문제행동 등의 해결이기에 이러한 책이 길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역량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할 것이다. 책을 고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는 인터넷 서점에서 제목 검색을 하고 목록 중에서 판매량순위를 참고한다. 같은 종류의 책이면 사람들이 많이 산 책을 좀 더 살펴본다. 인터넷으로 목차, 머리말과 본문의 내용일부까지 볼 수 있기에 편리하다. 검증된 저자가 쓴 책은 인터넷으로 구입하고 그렇지 않는 책은 큰 서점에 가서 내용을 꼼꼼히 살펴본 후에 구입한다.
책을 읽는 방법은 꼭 보아야 할 책은 정독하고 필요하면 반복해서 읽으며, 업무에 참고할 책은 해당 부분을 중심으로 읽는다. 새로 구입해서 반드시 읽기로 작정한 책은 먼저 머리말을 읽고, 목차를 본 후에 편집후기가 있으면 그것부터 읽고 본문을 본다. 책을 읽다가 중요한 부분은 현광펜으로 표기하고, 오자나 탈자가 눈에 띄면 교정하며, 읽은 후에 출판사나 필자에게 ‘교정 내용’을 이메일로 알려주기도 한다. 교정까지 보면서 책을 읽으면 내용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고, 이메일을 받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으면 기분도 좋아진다.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는 좋은 책을 읽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사회복지사의 입장에서 좋은 글을 많이 쓰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책을 기획해서 복지운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필자는 세상만사를 사회복지사의 눈으로 보고 ‘복지평론’을 쓴다. 복지평론을 쓰면서 최초로 ‘복지평론가’란 직업을 제안하였다. 매주 한 편씩 1년간 쓴 복지평론을 엮어서 <복지는 생활이다>라는 책을 발간하고, 이후 쓴 복지평론을 모아서 <디지털 복지시대>를 출판했다. 똑같은 사회현상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사회복지사는 글쓰기를 생활화 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교에 가장 많은 학과가 사회복지학과인데도 서점에 가면 사회복지학 책은 ‘사회학’ 서가에 꽂힌 경우가 많다. 수많은 ‘사회복지학’ 책 중에서 대학교재나 수험서를 제외하면 시민이 읽을 만한 복지학 책이 별로 없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복지 관련 단체와 기관은 행복한 세상을 열어갈 수 있는 좋은 책을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출판해야 한다. 필자는 최근 100여년간 사회복지를 개척한 복지계 어른들의 이야기를 엮어서 <한국 사회복지를 개척한 인물>을 출판하였다. 사회복지역사 시간에 구빈법, 토인비홀, 헐하우스, 리치몬드 등을 중심으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일제하에 나병환자의 치료와 재활을 위해 150명의 나환자가 광주에서 총독부까지 행진한 ‘구라행진’도 가르쳐야 한다. 이 책은 구라행진을 주도한 최흥종 선생, 서서평 선교사와 그 동역자들이 이 땅에서 사회복지를 개척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광주사회복지사협회는 광주광역시의 복지를 집대성하여 <광주의 사회복지>를 발간하였다. 광주의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으로 보수교육 교재로도 활용된다. 다른 시/도 사회복지사협회도 지역의 복지역사를 정리하고, 복지현장을 집대성한 책을 발간하면 참 좋겠다. 아울러, 광주사회복지사협회는 광주광역시의 지원을 받은 ‘사회복지사 등을 위한 인권교육’의 교재로 <인권과 복지>를 발간하였다. 인권에 기반한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북돋는 책이다. 사회복지시설과 단체는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 그 내용을 잘 정리하고 시민이 알기 쉽게 편집하면 좋은 책을 발간할 수 있다. 이제 사회복지사가 중심이 되어 모든 시민이 복지를 고루 누리는 ‘보편복지의 시대’를 열고 대한민국을 ‘복지국가’로 발전시키자.
이용교 lyg2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