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세계사] 영국여왕잔혹사(1) – 제인 앤 메리 상(上)

[쩔고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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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세계사] 영국여왕잔혹사(1) – 제인 앤 메리 상(上)

2012년 9월 18일 3:29 pm | 딴지 작성 | 7개 의견 | 수정 | 삭제

2012. 9. 18. 화요일
너클볼러

1554년 2월 12일

런던탑.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런던을 지키기 위해 축조한 곳, 영국귀족간의 권력쟁탈전이던 장미 전쟁 때 시체를 쌓아 둔 것으로 악명 높았던 곳. 헨리 6세가 이승과 작별을 고한 바로 그곳,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가 참수당했던 곳, 반역자의 문을 넘어간 수많은 죄수들이 처형당한 타워그린이 있는 곳. 그곳에 레이디 제인 그레이(레이디Lady 귀족가문의 여성에게 붙여지는 칭호임)가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에드워드 6세가 정식으로 임명한 후계자, 즉 잉글랜드의 여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수를 앞둔 반역자에 불과했다. 처형대에 머리를 올려놓은 제인 그레이는 나지막이 성경을 읊조렸다. 하지만 제인 그레이의 성경 구절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 이후 왕위를 계승한 이가 법정에서 죄인으로 지목되거나 그 죄로 인하여 사형당한 적도 없다. 제인 그레이가 마지막이었다. 그녀의 나이 만 16세. 죽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2012년 런던 올림픽

2012년 제30회 하계올림픽은 7월 27일부터 8월 12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 런던은 근대 올림픽 사상 최초로 세 번이나 개최가 도시가 되었다. 파리와 최종 개최지를 놓고 경쟁을 벌였고, '투표 에러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세 번의 개최라는 '최초'라는 수식어는 결국 런던의 차지가 되었다.(아테네 역시 세 번 개최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1906년은 올림픽 10주년 기념대회임으로 제외된다)

개회식과 폐회식의 총감독을 맡은 데니 보일(1)감독은 머릿속으로 역사가이자 비평가인 토머스 칼라일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말을 끊임없이 되뇌였을지 모른다.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60년을 기념하여 집무실을 최초로 공개하는 영상에서는 007 제임스 본드를 등장시켰고,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에서 콜드 플레이에 이르기까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브릿 팝, 롹을 대표하는 스타들을 총 출동시켰다. 토머스 칼라일이 강조하고 싶었던 '문화 제국'을 각인 시키기 위한 거대한 쇼케이스나 다름없어 보였다. TV를 지켜보던 이들의 눈엔 잠시 개,폐회식이 아닌 이 슈퍼콘서트로 보였을 것이다.

날 보기는 쉽지 않다구.

하지만 슈퍼콘서트 만큼이나 주목 받은 것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축구 대표팀이었다. 우리에게 큰 기쁨을 선사한 축구 종주국의 대표팀. 그것도 대표팀 앞에 '단일팀'이라는 수식어가 떡 하니 붙은 대표팀. 폴 매카트니의 등장만큼 영국 국가를 부르지 않은 웨일즈 출신의 긱스가 더욱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말이 단일팀이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가 빠진 반쪽 짜리 단일팀이었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단일팀을 구성했으나 메달을 따지 못했고, 1960년 이후 FIFA에서 4개의 축구협회(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독립적으로 인정함으로서 모두 개별팀으로 출전해왔다. 그 유명한 책의 제목처럼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것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붙으면 프랑스를 응원한다'는 말은 날선 농담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축구판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유럽의 섬나라, 국호 앞에 무려 '그레이트'를 붙이는 이 섬나라 역시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다.

섬

수 천년 전, 대륙이 요동 치면서 두 덩어리가 떨어져 나왔다. 바로 '그레이트 브리튼'과 '아일랜드'다. 그레이트 브리튼은 세 나라로 나뉘게 되는데 바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다. 1536년 잉글랜드와 웨일즈가 합병하고, 1707년 스코틀랜드가 포함되면서 그레이트 브리튼 연합왕국이 수립되었다. 뒤이어 1800년 이웃 섬인 아일랜드가 합병되었으나 1949년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완전 독립하였다. 이렇게 보면 네 나라가 서로 오손도손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며 함께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헌데 왠걸…

유비가 대륙을 얻고자 삼고초려를 통해 성공시킨 제갈량의 영입은 트레이드가 아닌 전력손실 없는 완전이적이었다. 게다가 돈도 없이 순전 노력만으로 얻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 빌리빈도, 제와피의 박사장도 범접할 수 없는 완벽한 영입이었다. 제갈량은 유비의 야망을 짐작하고 있었으나 대륙의 통일은 불가능 하다 진언했다 조조의 위나라, 손권의 오나라의 너무나 강력해 괜히 설레발 쳤다가는 조땔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갈량은 조조의 위나라, 손권의 오나라, 그리고 익주를 중심으로 한 유비의 촉한이 서로 적절히 견제, 균형을 솥단지의 삼발이처럼 이뤄야 한다는 '천하삼분지계'를 제안했다. 솥단지 삼발이의 다리 하나가 떨어져 나가믄 쏱단지가 꼬꾸라지듯, 위나라와 오나라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갈 경우 촉한이 점령당하는 건 시간문제, 해서 둘간의 적절한 견제와, 견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촉한이 일종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믄서 세를 키워나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니 삼국통일이 아니라 삼국지三國志 '삼국의 뜻'인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사정이 좀 달랐다. 그레이트 브리튼이라는 섬나라의 세 나라가 균형을 맞추기엔 잉글랜드가 너무 컸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를 정복해 다스린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1세가 스코틀랜드가 로버트 1세를 중심으로 독립하자 재정복의 깃발을 들고 진군하다 병에 걸려 죽어가며 남긴 유언은 '내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아니 '내 유골을 완전히 정복한 스코틀랜드에 묻어라'는 것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월레스(영화 브레이브하트의 멜 깁슨분)를 찢어 죽인 지 2년 뒤의 일이다. 스코틀랜드뿐만 아니라 웨일즈, 아일랜드의 역사는 곧 잉글랜드의 침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잉글랜드 넘들 다 뒈져라

이렇게 섬에서 네 나라가 지지고 볶아온 역사가 바로 지금의 영국이다. 거대한 영국에게 뺏기고 되찾고를 반복한 역사인 것이다. 웨일즈는 다소 소극적이었으나 스코틀랜드는 극렬하게 저항했다. 아일랜드와는 최근까지도 불안한 관계를 지속했다. 그래도 그러고들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이나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강력한 해상세력으로 부상한 튜더 왕조시대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튜더 왕조. (1485~1603)

조나단 리스마이스가 헨리 8세역을 맡은 '튜더스'는 바로 튜더 왕조를 다룬 미쿡드라마 되겠다. 장미전쟁을 수습한 헨리 7세(헨리 튜더)로부터 시작되어 엘리자베스 1세의 서거와 함께 종식된(1485~1603) 튜더 왕조는 영국의 역사에서 절대왕정으로 불리우는 기간이었던 만큼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역사적으로 가장 꼴릿한 시기라 할 수 있다.

1999년 영국하면 떠오르는 것에 대한 설문이 있었는데, 그 중 TOP 5는 '런던' 'BBC' '비틀즈'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왕실'이었다. 튜더 왕조 기간 적어도 TOP 5 중 두 가지는 확인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와 엘리자베스 1세로 대변되는 왕실이 바로 그것이다. 한가지만 더 꼽는다면 1516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발간이 정도 되겠다. 때는 바야흐로 백년전쟁이 끝난 뒤 혼란에 빠져 귀족들이 권력 찬탈을 위해 사병을 이끌고 다이다이를 하기 시작하던 1455년이다.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벌인 100년간(정확하게는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의 전쟁을 백년전쟁이라 부른다. 두 왕조가 플랑드르와 기옌(2)을 중심으로 서로 싸우고, 쉬고를 백 년간 되풀이 했다. 100년간 전쟁을 벌였으니 사회는 피폐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냥 곤두박질 친 것만도 아니다. 상원와 하원을 중심으로 한 의회정치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교육 발달, 종교개혁이 태동하기도 했다.

백년전쟁이 끝나고 왕의 권력이 살짝 발기부전상태에 들어간 틈을 타 요크 공작인 리처드가 왕 헨리 6세의 보호자를 자청하며 왕위를 위협하자 귀족가문들간의 왕권찬탈을 위한 써바이벌 베틀이 시작된다. 바로 장미전쟁(3)이다. 1461년 전투에서 패한 헨리 6세가 스코틀랜드로 튀자 요크가의 에드워드 4세가 즉위한다. 10년 뒤 분을 참지 못해 다시 깃발을 들고 진격을 나팔을 분 헨리 6세는 승리는 커녕 나팔을 불며 고대로 '런던탑'행 직행열차에 오르게 된다. 에드워드 4세가 죽고 12살의 어린 에드워드 5세가 왕위에 오르나 삼촌인 리처드 3세에 의해 헨리 6세가 먼저 타고 간 '런던탑'행 직행열차에 오르게 된다. 어린 조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내버린 리처드 3세는 셰익스피어가 '몸도 마음도 모조리 나쁜 넘'으로 표현한 바로 그다.

리처드 3세는 어린 조카들은 보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렇게 조카의 피를 통해 왕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장미전쟁은 계속되고 있었고, 어린 조카를 보냈다는 사실은 '분쟁의 빌미' 그 자체였다. 리처드 3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튜더 가의 헨리 튜더였다. 리처드 3세에게 반란을 일으킨 신하들과 조인하여 잉글랜드를 공격. 그 유명한 보스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재끼고 헨리 튜더가 왕위에 오르면서 30년간 소소하게 진행되었던 장미전쟁도 끝나고 만다. 절대 왕정, 바로 튜더 왕조의 시작이다.

메리 1세의 등장

헨리 7세(헨리 튜더)가 즉위한 1485년, 왕족 사이에서 유행하던 당시 트렌드는 뭐니뭐니해도 자녀들의 문어발식 웨딩을 통한 세력 확장이었다. 윗동네 아라곤(에스파냐)의 페르난도 2세가 그러했고, 잉글랜드의 헨리 7세가 그러했다. 헨리 7세는 장남 아서를 페르난도 2세의 딸 캐서린에게, 아서가 일찍 죽자 며느리 캐서린을 다시 둘째 아들은 헨리 8세에게, 큰딸 마거릿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4세에게, 작은 딸 메리는 훗날 왕위에 오른 헨리 8세가 무려 34살이나 많은 영감탱이였던 프랑스의 루이 12세에게 보냈다. 이러한 무한확장형 웨딩을 통해 헨리 7세는 섬나라의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대국의 기틀을 다지고 싶어했다.

하지만 큰아들 아서의 비명횡사로 운 좋게 왕위에 오른 헨리 8세는 현명한 통치자라기보다는 난봉꾼에 가까웠다. 통치는 뒷전이고 사냥과 춤을 즐긴 이 다혈질의 사내가 38년간 집권하는 동안 공식적으로 180명이 처형당했고(비공식적으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6명의 부인 중 세 명이 처형당했으며,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 역시 헨리 8세의 이혼에 협조하지 않자 눈 밖에 나 검찰소환 후 '런던탑' 직통열차에 올랐다. 오죽하면 헨리 8세의 청혼을 받았던 밀라노 공작의 미망인 크리스티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멘트를 남겼다.

'머리가 두 개 있지 않은 한 헨리 8세와는 결혼할 수 없다.'

짜잔~~ 헨리 8세의 위용

토머스 모어의 반대는 당시 왕의 이혼이 가톨릭 교회법상 불법이었던 만큼 당연한 것이었다. 헨리 8세가 그토록 이혼을 하고 싶었던 왕비는 다름아닌 형의 아내였던 캐서린이었다. 이혼사유는 아들을 낳지 못한 다는 거. 헨리 8세가 프랑스 출신 시녀 앤 불린에게 푹 빠졌다는 두 가지였다. 열 두 살에 결혼한 캐서린은 아서가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뜨는 바람에 신혼이 없었다며 자신은 처녀라고 헨리 8세와의 결혼식에서 밝혔다. 헨리 8세와의 결혼생활 동안 6명의 아이들을 낳았지만 딸아이 하나만 살아남고 모두 죽었다(죽은 아이들 중엔 아들도 하나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헨리 8세가 들이민 성경구절은 다름아닌 레위기 20장 21절이었다.

제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추한 짓이다. 그것은 제 형제의 부끄러운 곳을 벗긴 것이므로 그는 후손을 보지 못하리라.

헨리 8세의 귓누녕은 이미 자신의 듣고 싶은 것만 취사해 들을 수 있도록 최적화 되어있었다. 주변사람들이 아무리 신명기 25장 5절을 읊어도 귀가 아닌 콧구녕으로 듣기 일수였다.

여러 형제가 함께 살다가 그 중의 하나가 아들 없이 죽은 경우에는…. 시동생이 그 처를 아내로 맞아 시동생으로서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자신의 대를 이를 아들을 갖고 싶었던 헨리 8세는 결국 캐서린과의 이혼에 성공, 앤 불린과 재혼했으나 아들을 얻지 못했다. 첫 번째 아내 캐서린이 낳은 6명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이 바로 아버지를 닮은 왕이 된 메리 1세다.

헨리 7세의 둘째 딸도 메리. 헨리 8세의 첫째 딸도 메리, 훗날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참수당하는 스코틀랜드의 여왕 역시 메리다. 우리 동네가 여기도 '철수', 저기도 '철수'이듯 말이다. 편의를 위해 첫 번째 메리를 '메리 튜더' 두 번째 메리를 '메리 1세'라 하자. 세 번째 메리는 다음 편에 다룰테니 우리 헷갈리지 마는 거다.

제인 그레이

헨리 7세의 둘째 딸, 그러니까 헨리 8세에 의해 늙은이 루이 12세에게 시집 보내어진 메리 튜더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헨리 8세는 아버지 헨리 7세의 섬이라는 지리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그레이트한 대륙을 만들어 싶어했던 원대한 야망에 뜻을 같이 했다. 헨리 8세는 어여쁜 동생 메리 튜더를 외교전술의 와일드카드로 프랑스와의 냉각기(4)를 풀기 위해 쓰고자 했다. 그러나 메리 튜더는 사랑은 국경을 넘을 수도 있지만 34살의 나이차는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메리 튜더는 영국과 프랑스의 혼인 조약에 '루이 12세가 죽으면 다음 결혼은 내 맘대로' 라는 비밀 옵션을 헨리 8세를 설득해 삽입한 뒤에 프랑스로 향했고, 루이 12세는 비밀 옵션을 알기라도 했다는 듯 결혼 후 몇 개월 뒤 사망한다. 메리 튜더가 요청에 의해 삽입된 옵션은 곧바로 실행된다.

와일드 카드 '메리 튜더'

헨리 8세는 돌싱 메리 튜더를 다시 외교를 위한 와일드 카드로 사용하고 싶었으나, 메리 튜더는 이미 서퍼 공작 찰스 브랜든과 연애를 시작하고 있었다. 왕의 윤허 없이 왕의 동생과 결혼할 수 없었으나, 메리 튜더와 찰스는 비밀 결혼을 올리는 강수를 둔다. 불 같은 성격의 헨리 8세는 꼭지가 돌았으나 그들의 결혼을 끝내 수락하고 말았다. 수락의 이유는 동생의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헨리 8세 자신의 이혼문제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한때 국정의 목표보다 이혼이 중요하기도 했으니깐.

지 맘껏 살다 갈 날을 받아놓은 헨리 8세는 유언장에 왕의 계승 순위를 명시해 놓았는데, 1순위가 바로 셋째 부인 사이에서 힘들게 얻은 아들 에드워드, 2순위가 첫 번째 아내 캐서린 사이에서 얻은 메리 1세, 3순위가 바로 두 번째 아내 앤 불린 사이에서 얻은 엘리자베스였다. 하지만 힘들게 얻은 왕위계승자 아들 에드워드는 튜더 왕조의 이전 왕이었던 아버지 헨리 8세와도, 할아버지 헨리 7세와도 다르게 정신도 육체도 모두 부실했다.

10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에드워드 6세가 되었고, 어린 탓에 외숙인 서머싯 공작 에드워드 시무어가 대리 통치했지만 에드워드 시무어는 머지않아 폭동진압 실패와 측근비리로 참수되고(에드워드 6세는 에드워드 시무어를 싫어해 참수되도록 그냥 놔두었다), 참수에 가담한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가 에드워드 시무어의 공백을 틈타 왕을 넘어서는 세력을 키운다. 에드워드 6세가 너무나 병약해 언제 어찌 될지 모를 상황을 알고 있던 존 더들리의 슴가엔 '최측근'은 넘어서는 권력의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니 자신의 며느리인 제인 그레이는 왕족의 피가 섞여있는 나름 왕족의 혈통이었다. 존 더들리는 며느리를 에드워드의 후계자로 삼기 위한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다.

제인 그레이는 메리와 찰스 사이의 네 딸 중 장녀인 프랜시스와 남편인 헨리 그레이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딸 중 장녀다. 제인 그레이는 예쁜데다가 총명하기까지 한 엄친딸이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는지 제인 그레이가 창가에 앉자 그리스어로 된 플라토 Plato를 읽은 모습은 여러 그림으로도 그려졌고, 그 그림들은 하나같이 제인 그레이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미인은 박명이라고 했던가. 이 명석하고 아름다운 엄친딸 제인 그레이의 팔자는 참으로 기구했다. 그것도 본인의 선택이 아닌 어미의 욕심으로 말이다.

이거슨 설정샷?

프랜시스. 그러니까. 헨리 7세의 외손녀인 그녀는 자신의 딸 제인 그레이를 왕비로 만들고 싶었다. 굳이 족보를 따져보자면 헨리 7세의 친손자인 에드워드 6세와 외증손녀인 제인 그레이가 혼인하는 개족보의 완성인 것이었지만 때는 개족보가 상관없는 시대였다. 허나 에드워드 6세와의 혼인을 주선하려고 했던 접선책 토머스 시무어(5)가 맞선을 주선하기는 커녕 에드워드 6세를 납치하려 했다가 목이 날아가고야 말았다. 제인 그레이의 어미인 프랜시스 역시 에드워드 6세가 오늘 내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프랜시스는 재빠르게 다음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카드는 다름아닌 나름의 세력을 구축한 존 더들리 아들인 길드포드 더들리와의 혼인이었다. 제인 그레이는 반대했으나, 어미의 욕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할머니 메리 튜더처럼 비밀옵션을 넣을 만큼 약지도 못했다. 그렇게 혼인은 성사되었다.

9일의 여왕

에드워드 6세가 6년 동안 집권하던 시기. 때는 가톨릭과 신교가 공존하며 종교 개혁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에드워드 시무어를 에드워드 6세에게 떼어내는데 성공한 존 더들리는 그 자신이 신교도였음으로 가톨릭을 신봉하는 메리 1세가 에드워드 6세에 이어 왕위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게다가 에드워드 6세 역시 이복누이인 메리 1세를 좋아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니 존 더들리와 사돈인 프린새스간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태그팀'이 자연스럽게 결성되었다. 에드워드 6세는 제인 그레이에게 왕위를 넘긴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떴고, 제인 그레이는 왕위에 오른다.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존 더들리는 유서의 효력이 없더라도 며느리를 왕위에 오르게 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인 그레이가 왕위에 오르자 메리 1세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잽싸게 지방의 한 성으로 튄다.

존 더들리는 어거지로 왕위에 오른 며느리 제인 그레이에게 왕위를 자신의 아들인 길드포드에게 넘기라 제안했으나 제인 그레이는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했다. 존 더들리는 시부모를 우습게 아는 제인 그레이의 태도에 몹시 못마땅했으나 메리 1세를 완전히 보내버린 후,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했다. 민심이 서서히 듣보 여왕(대다수의 사람들은 제인 그레이의 존재를 몰랐다)이 아닌 순수혈통인 메리 1세에게 돌아서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심은 급격히 돌아섰고, 거저 민심을 등에 업은 메리 1세가 런던에 입성해 손쉽게 왕위에 오른다. 제인 그레이가 왕위에 오른 지 딱 9일만의 일이다.

블러디 메리 Bloody Mary 메리 1세

아버지 헨리 7세를 빼 닮은 메리 1세가 자신의 왕위에 올려준 민심을 향해 보여준 것은 바로 '맛 좀 봐라'식의 '광녀드립'이었다. 곧바로 제인 그레이의 남편 길드포드와, 시아버지 존 더들리에게 컴백 기념으로 이승과의 하직을 선물했으며, 아버지 헨리 7세가 그러했듯 가톨릭 신봉자로서 자신을 재끼려했던 신교도 세력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메리 1세는 16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 잘못 만난 탓에 험한 꼴을 본 제인 그레이 만큼은 불쌍하게 여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인 그레이의 아버지를 포함한 신교도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메리 1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메리 1세가 제인 그레이에게 마지막으로 건 낸 요구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목숨만은 살려준다는 것이었으나 처음부터 신교도였던 제인 그레이는 최후의 오퍼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제인 그레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폭풍과 같은 부모 원망을 쏟아내지 않았겠는가. 살수도 있었으나 아버지가 참가한 반란으로 인해 죽게 되었고, 이 사단을 낸 어미는 메리 1세가 런던에 입성하자마자 저만 살겠다고 튀었으니 말이다. 살수도 있었으나 유일한 방법은 메리 1세에게 완전 복종하는 길, 하지만 자신과 같은 신교도들의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그리 살 수는 없겠다 했을 수도, 부모 잘못 만난 탓에 9일만에 여왕에서 죄인으로의 롤러코스틱한 기구함을 맛보고 살짝 미쳐 그랬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커다랗고 날선 도끼는 결국 16세의 명석하고 아름다운 제인 그레이의 깨끗하고 하얀 목에 떨어졌다. 오래 전 어린 제인 그레이는 잠시 캐서린 파아(헨리 8세의 마지막 부인)의 집에 살았던 적이 있다. 그 집엔 왕위 3순위였던 엘리자베스도 함께 있었다. 그 둘 모두 캐서린 파아의 사랑을 받으며 신교도로 컸다. 제인 그레이가 신교도로 목이 떨어지던 그 시기, 엘리자베스는 메리 1세에게 폭풍충성을 맹세하는 방법으로, 가톨릭의 신교에 대한 유혈탄압에 대해서 아무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 방법으로 살아남고 있었다.

그렇게 블러디 메리(Bloody Mary, 피의 메리)라 불리운 메리 1세가 46세의 나이로 암에 걸려 죽을 때까지 살아남은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그토록 미워했던(6) 메리 1세로부터 왕위를 넘겨받는다. 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1세가 제인 그레이를 보냈던 것처럼 29년 뒤 한 명의 여왕을 참수하는데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었던 그 이름 바로 메리 스튜어트다. 튜더 왕조의 하일라이트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추신.)

유력 대선 주자가 엘리자베스 1세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듯 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편에서 맞는지 틀리는지 함 확인해보도록 하자.

(1)쉘로우 그레이브, 트레인 스포팅등,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의 영화를 연출한 영국 출신 영화 감독.

(2) 유럽최대의 모직물 공업지대인 플랑드르와 유럽최대의 포도주 생산지인 기옌은 모두 영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3) 요크가가 백장미를 상징으로, 그에 대항했던 랭커스터가가 붉은 장미를 사용하였다고 하여 훗날 장미전쟁 Wars of the roses이라 이름 붙게 된다.

(4)16세기 초, 이탈리아를 넘보던 프랑스가 이탈리아 침공하자 교황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에스파냐와 신성로마제국과 신성동맹 체결. 이 동맹에 헨리 8세로 숟가락 올려 프랑스 공격. 이때 프랑스와 동맹관계였던 스코틀랜드의 제임스가 영국 침입. 결국 제임스가 전장에서 이승과 작별하고 영국의 승리. 그러나 프랑스와의 관계는 어색해지게 된다.

(5) 토머스 시무어가 누구인가. 헨리 8세의 마지막 부인 캐서린 파아가 헨리 8세의 사후 만나 결혼의 두번 째 남편이었다. 캐서린 파아가 전 부인들의 자식들을 아꼈던 탓에 엘리자베스를 집에서 들였는데, 남편 토머스 시모어와 엘리자베스의 사이에서 음음한 분위기를 눈치채고는 토머스 시모어 와는 이혼, 엘리자베스는 쫓아내고야 말았다. 토머스 시모어는 결국 이혼도 당하고 참수도 당했다.

(6) 메리 1세의 어미, 헨리 8세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캐서린의 불행은 모두 엘리자베스 1세의 어미 앤 불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앤 불린 덕에 어미가 쫓겨났고, 자신은 한때 엘리자베스의 시녀로 봉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좌충우돌 세계사]의 지난 기사

1 – 세르베투스, 타죽다
2 – 윌리엄 켐러, 로젠버그 부부 전기의자에 앉다(1)
3 – 윌리엄 켐러, 로젠버그 부부 전기의자에 앉다(2)
4 – 참수 혹은 린치
5 – 참수 혹은 린치(2)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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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잔인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포지]

오 재밋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