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바탕 웃음을 부르는 소설가 * 성석제
성석제 소설하면 '황만근' 정도만 알다가 글을 써서 먹고살던 사람이란 걸 생각하니 이 정도는 '생산'해야 밥먹었겠다 싶다. 목록을 정리하다보니 책을 채 읽기도 전에 옛날부터 알던 사람같아진다. 기분이 좋아졌다 ㅅ.ㅅ - 김산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고, 1994년 짧은 소설 모음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97년 단편 '유랑'으로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2000년 <홀림>으로 동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1년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이효석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내 고운 벗님'으로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성석제 소설집 참말로 좋은날 / 2006년 창작과비평사 펴냄
소설가 성석제의 신작 중단편집. 최근 이 년 가까운 기간 동안 쓴 일곱 편의 소설을 묶었다. 능청스러운 입담과 재치가 여전한 가운데, 작가 특유의 유장하고 활달하던 문체가 몰라보게 변했다. 그가 한없이 짧은 문장으로 그려낸 세상과 사람과 생활 이야기들에는 기쁨, 통쾌함, 흥겨움, 슬픔, 연민, 비애가 얽혀 있다.
고욤나무 열매를 보고 무미(無味)에 가까운 순두부를 먹으며 젊은 날을 기억하는 서로 다른 두 친구는 추억보다는 슬픔과 허탈함에 젖는다('고욤'). 어색한 술자리에 동석하게 된 인간들은 서로에게 발톱을 세우고 으르렁댄다('악어는 말했다').
여동생의 재산을 두고 동생과 경쟁을 벌이는 가장(家長)은 휴대전화 때문에 아들과 살육전을 벌이다 집을 모조리 태워먹고('아무것도 아니었다'), 인현왕후 폐비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선비는 왕 앞에서 피와 살이 낭자하게 흩어질 때까지 잔인하고 집요하게 고문당해 목숨을 잃는다('집필자는 나오라').
평론가 황호덕은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에서 예의 '숭고한 희극'이 사라지는 것에 주목한다. '숭고와 골계, 도시와 지역, 표준어와 사투리, 양반과 시민의 경계에서 작업해온 작가'가, 이제 그러한 '분할을 한꺼번에 뛰어넘는 그 어떤 절단면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것.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다. 그대로 있다는 기분이 든다. 생활과 방편이 바뀌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얼굴은 그대로다. 나아지는지 나빠지는지 알 수 없다. 빠른 건 언제나 같다. 내가 바뀐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바뀌는 게 당연한가. 그럴지도 모른다. 고마운 건 언제나 같다. 소설을 쓰게 해주는 존재들, 실재하는 또 실재하지 않는. - <참말로 좋은날> 작가후기 - 2006년
성석제 산문집 소풍 / 2006년 창작과비평사 펴냄
흥겨운 입담과 날렵한 필치를 자랑하는 소설가 성석제의 산문집. 지난 십여년간 여러 지면에 음식을 주제로 연재했던 글들을 묶었다. 푸짐하게 한상 차려진 성석제의 맛깔스런 산문에, 만화가 김경호의 삽화가 곁들여져 있다.
성석제에 따르면, 음식이란 '추억의 예술이자 오감이 총동원되는 총체예술'이다. 음식을 만든 사람, 만드는 과정, 먹는 장소, 먹는 동안 일어난 일, 함께 먹은 일행 등에 대한 느낌이 합쳐져 하나의 기억을 이룬다. 그 기억은 곧 음식을 먹은 사람의 개인사이자 그가 속한 사회의 풍속사의 일부다.
어느 겨울밤 시골 이웃끼리 제삿밥을 나누던 풍경('눈 내린 들판 환한 달빛처럼'), 찬밥에 신김치만 있으면 그만인 갱죽의 아련한 맛('서럽고 아련한 외로움'), 학창시절과 군대를 거쳐 지금까지 이른 라면에 얽힌 내력('소년시절의 맛') 등 갖가지 '맛' 속에 녹아 있는 사람과 세상의 온갖 이야기들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본문은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는 너비아니부터 묵밥까지 한끼 식사로 적당한 음식, 2부는 냉면과 라면 같은 국수류, 3부는 김치나 홍시, 석화젓 등의 곁다리 음식, 4부는 국화차, 소주 등의 마실거리에 관한 이야기다. 인도의 커리, 중국의 사천랄계, 베트남의 쌀국수, 미국의 바닷가재 등 오늘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본새를 체험하고 소화하는 글들도 여럿이다.
이 책에 든 글들은 대체로 음식에 관한 것이지만 음식만 이야기하려 한 것은 아니다. 음식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되는 사람과 세상에 관해 썼다. 소풍 가서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고(食) 샘물을 마시는(飮)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낌(感)이 움직이는(動)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소풍이라면 음식이야기 역시 소풍이며, 무릇 이야기란 또한 우리 삶의 소풍과 같은 것이다. 알게모르게 언제나 소풍을 갈 수 있게 준비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린다. 함께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삶에 감사한다. - 작가후기
성석제 소설집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노래 / 2005년 창비 펴냄
개성적인 언어와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특유의 문학세계를 펼쳐온 작가 성석제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됐다. 2002년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이후 3년만이다.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내 고운 벗님' 외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작가는 이번 책에서 "웃음의 모든 차원을 자유자재로 열어놓는 말의 부림"으로 우리 주변에 있음직한 인물들의 각양각색 삶의 모습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소설 표면에 드러나는 유쾌한 재미와 해학, 풍자 이면에는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통찰이 번뜩이며, 인간을 향한 건강하고 따뜻한 시선 역시 놓치지 않는다.
성석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이야기들 "마치 무협지의 고수들처럼" 자유자재로 풀어놓는다. 그의 능숙하고 거침없는 말솜씨가 여전히 빛나는 단편집이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내고 난 뒤 2, 3년의 세월 동안 잘 놀았다는 느낌인데 어느새 새로 창작집을 내게 되었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중단편 소설들은 잘 논 시간의 소산인 셈이다. 그런데 교정을 보기 위해 다시 읽어보다 보니 정말 제대로 잘 놀았는지 더럭 의심스러워졌다.
가령 산에 가서 논다 할 때 아래쪽 풍광 좋고 물 좋은 계곡에서 마시고 노래하며 노는 것도 있고 산 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노닐 수도 있고 사력을 다해 정상을 정복하는 것도 있으며, 정상에 미치지 못하고 지쳐떨어지며 노는 방법도 있다. 각자 취향에 맞게 놀면 될 일이다. 나는 정상보다는 정상 바로 바로 아래쪽 구할쯤 되는 곳을 목표로 마음과 몸에 알맞고 흡족할 때까지 가는 쪽인데 문제는 여기에 들어 있는 소설들이 백퍼센트 내 몸과 마음에 알맞고 흡족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랴, 여기에도 '구할의 원칙'이 있는 것을. 그리하여 내가 소설을 쓰면서도 어떤 구할의 수긍할 수밖에 없는 구할의 묘한 구할(정상×0.9×...×0.9)로 연속되는 어떤 궤적을 따라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구할의 행진 끝에 마지막 결과가 처음 출발할 당시의 모습을 잃을 정도로 순도가 낮아진다면 그 길은 끝날 것이다. 이것이 인생인가? 그런 걸까? - 성석제
성석제 장편소설 아름다운 날들 / 2004년 강 펴냄
<궁전의 새>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것을 대폭 수정, 가필하여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이제 막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 들어간 '장원두'라는 소년이 주인공. 동쪽으로는 '곤장을 치려고 벗겨놓은 엉덩이같이 생긴' 동곡, 서쪽으로는 '그냥 마을 사람들이 동곡하고 장단을 맞추기 위해' 이름 붙인 서곡에 둘러싸인 궁벽한 시골 마을에서, 원두는 할아버지가 기르라고 맡긴 염소 두 마리를 돌보며 지낸다.
어느날 이 마을에 모자母子가 찾아 든다. 스무 살 남짓한 그 아들은 '기타 리'라는 떠돌이 기타 연주자. 그는 원두에게 바깥 세계와 성장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주는 존재다. '기타 리'의 솜씨에 반한 원두는 가진 것 없는 그를 읍민노래자랑대회에 출전시켜주려고 할아버지 곳간 창고의 나락을 훔쳐내다 들켜 결국 그를 다시 도회로 나가버리게 만든다. 남은 것은 원두와 그가 기르던 염소가 낳은 새끼염소 40마리뿐이다.
2부 '궁전의 새'에서는 원두보다 나이 많은 바보 '진용이'가 주인공이다. 초가지붕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도시락에 보리밥을 섞어가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벌을 받던 시절, 어디에나 한 명은 있었음직한 그런 바보 소년이다. 진용이는 늘 따돌림당하고 멸시받지만 생의 악착스런 의미와 진정한 가치를 이 외진 마을에 깨우쳐주는 인물이다.
성석제 소설 재미나는 인생 / 2004년 강 펴냄
특유의 입담으로 사랑을 받아 온 성석제의 <재미나는 인생>의 개정판. 길어야 원고지 10장을 넘지 않는 짧은 글들은 우리 인생의 희비극적 단면을 촌철살인의 언어로 폭로한다. 그 폭로가 동반하는 참을 수 없는 웃음 뒤에서 인생사의 지긋한 슬픔과 문득 만나게도 된다.
시적인 함축과 산문의 개방성, 고문(古文)의 유장한 호흡과 현대문의 발랄한 리듬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문장. 범속한 일상의 표면에서 생의 비밀을 들춰내는 섬세한 관찰력, 날렵한 비유, 의뭉스런 유머, 빠르고 정확한 달변의 화술은 성석제 소설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1997년에 초판에 나온 <재미나는 인생>은 성석제 초기작에 속하지만 바로 그만큼 언어의 활력과 이야기의 즐거움은 싱싱하고 짜릿하다. 7년 만에 나오는 이번 개정판을 초판에서 8편을 덜어내고 19편을 새로 추가했다. 소설이 엄숙한 계몽의 형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즐김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처음부터 소설의 형식이라거나 생김새에 관해 가타부타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소설이 관용의 폭이 아주 넓은 장르라는 것,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그 안에서 어슬렁거릴 수 있었다는 것은 말해두고 싶다. 다시 생각해보면 문학이, 인생이 모두 그렇다. 무엇이든 내가 새로 시작하려 하면 그 무엇은 드넓은 품을 벌려 나를 받아들여주었다. <재미난 인생>의 초판은 관용의 산물이었다.
이 개정판에는 <재미나는 인생> 이후 출간된 <쏘가리>의 '이야기'를 보태고 지나치게 소설적 관용에 의존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은(물론 지금의 판단으로) 빼거나 줄였다. 언젠가는 나갔던 것들이 다시 들어올 수도 있겠고 또 지금 있는 것들 중에서도 나갈 게 있을지도 모른다. 또 내가 잘 모르거나 빠뜨린 그 무엇이 들어오고 싶어한다면 들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에 확고한 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소설 밖에서 확고한 걸 찾으라면 삼라만상과 그 얼과 틀은 항상 바뀐다는 것이다. - 성석제
성석제 산문집 즐겁게 춤을 추다가 / 2004년 강 펴냄
그가 이번엔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독자를 찾아온다. '성석제가 말하는 성석제, 그리고 세상'이라는 부제처럼, 작가 자신에 대해, 지난 시간과 오늘의 세상에 대해 풀어놓는 재담 한 마당이다.
책은 6부로 구성된다. 1부의 제목은 '억(憶)'. 여름날 새벽 할머니 손을 잡고 갔던 낙동강변으로의 소풍, 아버지가 준 '채권 가방'에 얽힌 부끄러운 기억, 몰래 먹은 막걸리의 추억이 어린 길이네 점방... 작가가 풀어놓는 추억담은 아름답고 또 슬프다. 성석제는 말한다. "추억이 나에게 문장을 빌려주었다"고.
자전거, 레밍턴 전동타자기, 작가가 사랑했던 책과 음반에 대해 이야기하는 2부 '애(愛)'와 작가 특유의 해학과 촌철살인을 실감할 수 있는 꽁트 여러 편이 실린 3부 '엽(葉)'. 4부 '견(見)'에는 작가가 보아온 세상만사 이야기가 실려있으며, 5부 '유(流)'에서는 오늘의 자신을 빚어낸 유랑의 내력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6부 '인(人)'는 성석제가 만나고 배웠던 사람들, 그러나 지금은 이곳에 없는 세 사람-이문구, 성원근, 김소진-에 대한 존경과 상심의 기록이다. 작가는 이렇게 썼다. "사람은 가고 복숭아는 피었다 지고 또 글은 열매와 마른 씨앗처럼 남는다. 나도 남아 있다. 아, 슬프구나."
70년대여, 80년대여, 나의 30대여. 즐겁게 춤을 추고 있기를, 그곳에서 영원히. 언젠가는 알게 되기를, 꿈결같이 시절과 사람이 오가는 동안 삶은 갱신됨을, 삶에는 구각도 신체도 없음을, 나의 인생아. - 성석제
성석제 장편소설 인간의힘 / 2003년 문학과지성사 펴냄
기발한 상상력과 통쾌한 웃음, 예리한 풍자와 날렵한 입담으로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란 찬사를 받는 성석제. 그가 이번엔 조선시대로 훌쩍 건너가 '한국판 돈키호테'라 할 선비 채동구의 가출사건을 신나게 풀어놨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동인문학상을 받은 이후 첫 번째로 발표한 장편인 이 소설에선, 단편보다 한층 묵직한 힘-'인간의 힘'이 느껴진다.
임진왜란의 혼란 속에서 시골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병자호란을 전후한 시기에 목숨을 걸고 네 번의 가출을 감행한 채동구. 그는 결국 이룬 것 하나 없이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 속에는 이름 없는 민중의 일원으로서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해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다. 성석제 문학에 있어 일종의 전환점으로 생각해도 좋을 그런 작품이다.
소설 안팎의 두 인물이 일관하여 지키려 한 가치, 나는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를 '인간의 힘'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의 소중함이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 이 책을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아무런 말[言]도 없이, 누가 빌려준 말[馬]도 없이 걷고 있을 이들에게 바친다. - 성석제
성석제 소설집 조동전 약전 / 2003년 강 펴냄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성석제의 소설집. 97년에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란 제목으로 나왔던 책을 새롭게 펴낸 개정판이다. 4년의 절판 기간 동안에도 꾸준한 문의가 들어왔을 정도로, 성석제 매니아 사이에서 높이 평가받는 작품집이다.
"똥깐의 본명은 동관이며 성은 조이다. 그럴싸한 자호(字號)가 있을 리 없고 이름난 조상도, 남긴 후손도 없다"로 시작되는 표제작 '조동관 약전'은 제목 그대로 조동관이라는 사람의 일생을 간략히 정리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동관은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이나 영웅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시골 소읍의 깡패일 뿐이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온갖 개망나니짓에다 마구잡이 행패와 드잡이질로 깡패의 명성을 쌓아온 똥깐이라는 인물의 짧은 일생을 포복절도할 이야기 솜씨로 풀어놓는다. 예를 들면, 도망간 마누라를 잡으러 나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역전 파출소 유리창을 모조리 작살낸 똥깐이 재판을 받고 최종적으로 가게 된 곳이 '소년범을 수용하는 교도소'였다는 식으로.
이번 소설집에는 그밖에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유랑'을 비롯해 '경두', '이인실', '통속', '고수' 등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유머와 기지가 넘치는 성석제 특유의 입담을 만나볼 수 있다.
원래 이 책은 내가 소설가로 길에 나선 이래 두번째로 묶은 창작집이었다. 제목은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출간은 1997년 6월이다. 무슨 연유인지 작가의 말, 후기, 서문 같은 췌사가 없다. 다시 펴내는 참에 책 속의 소설들을 되새겨 읽어보고 새삼 없어도 될 말을 보태게 되었다.
소설은 김장철에 장바닥에 버려지는 배추의 맨 바깥쪽 잎처럼 시퍼렇다. 뻗세고 시끄럽기도 하다. 하긴 그다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니 어른의 입맛에 맞도록 제대로 묵었을 리 없으리라.
소설을 읽는 동안 상대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회전이 걸린 공을 받아넘겨야 하는 아마추어 탁구선수의 편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때 그 선수가 나였던가. 어떻든 이 공은 받아넘겨야 한다. 어찌어찌 받아넘긴다 해도 상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수비 일변도의 선수와 나는 한편이다. 나와 내 그림자의 복식 경기? 아니면 몇 년 전의 나와 그 연장자인 지금 나의 듀엣? 그럴지도 모른다.
내 편이 아무리 약하다 해도 나는 그를 포기할 수 없다. 애처롭고 안쓰럽다. 나는 그를 껴안으며 나를 안심시킨다. 그런데 사납게 공을 넘겨오는 저 상대는 누구인가. 혼자인가, 여럿인가. 옛날식으로 그저 金城鐵壁인가, 더 옛날식으로 지나간 나의 미래인가, 그대들.
그저 봄볕이 좋다. 초봄의 고갱이여, 더욱 여리고 싱싱하구나. - 성석제
성석제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 2003년 강 펴냄
'이 시대의 이야기꾼' 성석제가 96년 발표되었던 <새가 되었네>를 제목을 바꿔 새롭게 펴냈다. 표제작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는 작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첫 소설. 새로운 감각과 리듬감이 살아 넘치는 어법으로 생의 단면을 포착함으로써 단번에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지은이는 차를 타고 가다 다리 난간을 들이받고 추락하는 한 건달의 마지막 순간 4.5초를 슬로비디오를 돌리듯 담아냈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농담, 신화적 어법의 혼재는 소설의 울림을 한껏 다성적으로 만든다.
그 밖에도 여섯편의 소설이 더 실려 있다. '새가 되었네'는 조그만 컴퓨터 부품업체를 운영하던 30대 후반의 한 사내가 부도를 내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 죽음을 준비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잘 갈린 칼처럼 날카롭게 묘사된다. 청소년기 남학생들이 우정의 이름으로 치러내는 성적 자각을 아름답게 그린 '첫사랑'이나 꿩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른 봄'도 흥미롭다.
일종의 성장 소설인 '스승들'은 작가 스스로 자신의 첫 소설이라 밝히는 중편. 이제는 중견 작가가 된 성석제의 '새내기' 시절을 돌이켜보는 푸근한 재미가 있다.
이따금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언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느냐. 그럴 때마다 내게는 '첫번째 소설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대답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데 실제로 그렇게 대답해본 적은 없다. 공식적으로는 1994년 여름? 그게 소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소설'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이건 남이 소설이라고 생각할 글이라고 느낀 적이 있었다. 마치 주민등록번호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숫자이지만 남들이 거기에서 공식적인 생년월일을 읽어내는 것처럼. - 작가후기
성석제 소설집 호랑이를 봤다 / 2003년 작가정신 펴냄
특유의 해학과 풍자, 능청스런 과장과 익살로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하며 주목받고 있는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도 예의 그 날렵한 입담과 재담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춤판 노름판 술판 등에서 벌어지는 온갖 인간사의 희극과 비극, 다양한 인간의 속성들을 거침없는 문체와 결코 가볍지 않은 유머로 경쾌하게 풀어놓았다.
심심하고 평범하며 한심한 가짜투성이와 부딪치고 맞닥뜨리는 삶의 행로이지만 어느 구석에, 그래, 네 인생이 바로 '그것'이라는, 나아가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존재의 오의(奧義), 삶의 비의(秘義)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는 않을까.
가까이 가게 되면 입을 쩌어억 벌리며 어흥, 소리치는 건 아닌지. 돌고 돌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을 만날 것이다. 그 순간이 호랑이처럼 나를 잡아먹는다 하더라도 좋다. 그런 생각이 이 소설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 작가후기
성석제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2002년 창비 펴냄
소설을 읽다 날밤 새던 대학시절 습관을 성석제 소설이 30년 만에 되찾아준다. 물론 재미있어서지만, 더 나아가, 이를테면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끝보다 중간이 더 궁금하다. 성석제는 이야기에 달통해 있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이야기의 비극'에, 그리고 비극을 천년 묵은 웃음의 나이로 포괄하면서 '이야기의 전망과 희망'을 모색하는 달통에, 달통해 있다. - 김정환 (시인)
내가 친 그물이 성글어 보인다. 성긴 그물이여, 나라도 엮어볼 테냐, 잡으려느냐. 이 책을 당신, 천지의 붉은 물고기처럼 유유한 존재께 바치노니, 나는 당신들과 다르고도 상관없어 보이는 모든 것, 나무와 돌, 하늘, 바람, 아카시아꽃에서 언제나 당신들을 느낀답니다. - 작가후기
성석제 장편소설 순정 / 2000년 문학동네 펴냄
특유의 입담으로 읽는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 온 성석제가 신작 <순정>을 펴냈다. 이번 작품 역시 그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어 혹, 그의 소설을 기다려온 사람이라면 흡족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는 '이치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이 주인공은 도둑질이 직업이다. 하지만 주인공 '이치도'는 그저그런 평범한 도둑이 아니다. "한 사람의 생명처럼 이 세상에 유일무이하면서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것은 훔치면 안 된다"는 것을 철학이자 세계관, 그리고 유일한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도둑이다. 그야말로 도둑 중의 도둑인 것이다.
<순정>은 이 주인공이 태어나서 자라고 환난과 시련을 견디며 드디어 영웅이 되고, 결국 몰락하고 마는 비극적인 영웅담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이 소설에서, 내가 듣고 보고 겪었으며 앓고 갈무리한 현실의 순수한 재현보다는, 순정한 가짜를 선택했다. 내 생각이 틀렸다면,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 소설은 순진한 척하는 나쁜 소설이다. 영리하고 바쁜 도둑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한숨 돌리기를 바란다.
쓰는 동안 여러 사람이 알게 모르게 도와주었다. 특히 J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얼마 전 술 한 동이로 은혜를 조금 갚았는데 당사자는 알았는지. 2000년 11월, 성석제
성석제 소설집 홀림 / 1999년 문학과지성사 펴냄
특유의 해학과 풍자, 능청스런 과장과 익살로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하며 주목받고 있는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도 예의 그 날렵한 입담과 재담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춤판 노름판 술판 등에서 벌어지는 온갖 인간사의 희극과 비극, 다양한 인간의 속성들을 거침없는 문체와 결코 가볍지 않은 유머로 경쾌하게 풀어놓았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소설들은 모두 '인간'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다. 경우에 따라 그런 부제가 들어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드러낼 경우에는 제목에 표시했고, 기다리는 인간, 슬픔을 느끼는 인간, 죽는 인간, 즐거운 인간, 우주와 직통으로 대화하는 인간 등은 숨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십 년인가, 십오 년 전에 나는 어딘가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길, 세속의 다양함을 숭상한다"고 적었는데, 그 생각은 여전하다. - 작가후기
성석제 시집 검은 암소의 천국 / 1997년 민음사 펴냄
성석제의 시들은 거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비인간성에 칼날을 대고 있다. 장면시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서술적인 그의 시들에는 날카로운 풍자와 위트가 잠복해 있어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검은 암소의 천국 - 비가 쏟아지고 물이 불었다. 이웃 마을에서는 집이 떠내려가고 사람도 몇 함께 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잘 익은 살구 빛깔의 흙탕물이 흘러 넘친다. 나무들이 몸을 털고 일어난다. 걱정할 것 없다. 이 마을은 높다. 우리가 물에 잠기면 세상이 모두 잠기겠지. 검은 암소가 걸어나온다. 이제는 물이 되어 버린 마을을 향해 슬며시 울어 보다가 나물을 뜯는다. 한번도 마음놓고 뜯지 못했던, 인색하고 시끄럽던 이웃 마을 사람의 밭 - 성석제 |
첫댓글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와 '나의 결혼원정기'를 보는데 삼십분에 한번 눈물이 난다. 괜찮은 영화나 마음이 담긴 글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종교를 믿는 마음 역시 그렇게 선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닐까? 처음처럼~ 한잔 ^^;
삼십분마다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마돈나에서 보여준 오동구역의 류덕환 연기에는 놀랐지요. 동막골에서 막말을 C부리던 날렵한 인민군 병사 택기는 어데로 가고 이처럼 순진하고 통통하면서도 그 몸으로도 섹시하게 댄스를 출 수 있는 트랜스젠더가 되었는지?
허걱!! 열네권이나 되네요... 읽은건 두권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은뎅 --;; 언제 다 읽냐구욧!! ㅋㅋ 다 사지는 못하겠고 도서관카드 만들어야겠어요...
봤다고 봤는데도 못 본 책들도 보이네요...전 ,,아름다운 날들(=궁전의 새)이 읽은것 중에 최고로 재밌었던것 같아요.자료 감사합니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글로 보는 재미는 성석제라 ... 2006년 업무를 마치며 2007년 설계합니다. 아내와 같이 헬스장 등록을 하고, 일요일 아침 남한산성 빠지지 않게 ㅅ.ㅅ 날 따실 때 성내천길도 부지런히 걷고 ㅅ.ㅅ 움직일 수 있을때 더 움직이는 새해 되게 ~ 다들 건강하세요 ~
도서관에서 2권 빌렸습니다....년말년시....바쁘지만.....열독하겠습니다....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받은 복 두배세배로 뻥튀겨서 모두 함께 나눴으면 하네요... ...
안녕들 하셨죠. 정말 오랫만에 글 남기게 되네요. 읽어본 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밖에 없네요. 오늘 서점에 가서 참말로 좋은 날을 사서 읽고 있습니다. 12일까지는 몇 권이나 더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번개에 참석하겠습니다.
구례 님 ㅅㅅ 참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네요 ㅅ.ㅅ 건강하시지요~ 12일날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