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골집의 전주인은 배수관리가 전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신앙처럼 믿는 분이었다. 3년전 집을 인수인계시에도 집의 배수로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말씀을 거듭 반복하셨다. 아마도 예전에 뭔가 물난리 트라우마가 있지 않았나 생각들 정도였다.ㅋ
그래서인지 집은 비교적 배수로가 잘 깔려있고, 장마에도 다행히 배수가 잘 되는 편이다. 그래도 요즘같은 긴 장마에 산사태, 물난리 뉴스를 접하다 보면 며칠만에 시골집에 와서는 습관처럼 제일 먼저 집의 배수로들을 한바퀴 둘러보며 이상유무를 점검하게 된다.
시골집에는 8개 정도의 배수로가 있는데, 집뒤편 국유림과의 경계 및 진입로의 국유림과의 측면 경계 부분 2개 배수로는 평소에는 말라 있고 낙엽과 잡초로 덮혀있는, 마른 노출 또랑이다. 최근 비가 워낙 많이 내려서인지 또랑 끝부분에 물이 나와 큰 배수관으로 흐르는 모습이 우연히 눈에 띄였다.
혹시나 해서 삽을 들고 끝에서 부터 또랑을 쭉 파 보았더니 물이 콸콸 제법 흐른다. 땅속에 뭔가 막힌 물길이 있었던가 보다. 조금씩 물길을 따라 파다보니 30여m가 넘게 팠다. 물길은 좌우로 꺾였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땅속에서 흐르고 막혀 있었던 게다. 최근 주변이 질퍽거린 이유를 알게 됬다.
집입로 부분도 똑같이 삽으로 한땀한땀 파가며 30m 넘게 배수로를 만들었다. 배수로가 막혔다보니 물은 진입로 도로 위로 흘러 넘쳤었다. 두시간의 삽질에 팔은 저렸지만, 물이 잘 흐르는 것을 보니 뭔가 막혔던 것이 뻥뚤리는 느낌도 들었다. 겉으로는 마른 또랑이 실제는 막힌 또랑이었던 것이었다.
전원생활에서는 배수관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요즘 산사태, 물난리로 나라가 시끄럽다. 작은 시골집 배수관리도 이리 중요한데, 나라의 치수 문제야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라의 치수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평소 세밀하고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한 중대사일 것이다.
태양광 단지, 주택단지 난개발로 산을 마구 깎아 물길을 흐트러 뜨리고 대충 흙으로 덮으면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땅속에서는 물길이 막혀 물이 쌓이다 어느 순간 터져 버리거나 땅속 빈공간이 무너지는 거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자연의 순리를 거스리는, 모든 것들은 결국에는 바로 잡아지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