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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가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해는 1994년이다. 이후 20년 이상이 지났지만 아직 쌍둥이군단의 세 번째 우승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우승 가능성이 언급되는 경우 조차 많지 않다. 겨우 포스트시즌 진출을 꿈꾸는 것이 2000년대에 들어선 LG의 현실이다.
1994년 LG의 우승에는 이광환 감독이 도입한 '스타시스템'이 큰 영향을 미쳤다. 스타시스템은 5명의 선발 투수와 마무리, 셋업맨, 롱릴리프 등 보직을 철저히 분업화한 투수 운용법이다. 선발 등판해 완투한 투수가 이튿날 다시 마운드에 서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던 당시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이광환 감독이 도입한 '스타시스템'을 앞세워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1994년 LG 트윈스
해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던 이광환 감독의 개인적인 노력과 열정을 중심으로 이뤄낸 혁신이지만, 구단의 지원과 뒷받침 없이 결실을 이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투수 분업화 뿐만이 아니라, 획일적이고 강압적이던 훈련에 자율을 부여한 것도 LG가 한국 프로야구에 몰고 온 큰 변화 중 하나였다.
1994년 LG의 V2는 구단이 갖춰야 할 시스템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90년대 LG가 새로운 시스템을 정착시켜 한국 프로야구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면, 2000년대 이후 LG는 방향성을 잃은 구단 운영으로 긴 암흑기를 겪었다. 다행히 현재 LG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틀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시행착오를 거듭한 LG의 변화 시도
발전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어떤 조직에나 해당하는 말이다. 잘나가는 조직이나 위기를 마주한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LG도 그동안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새로운 고과 산정 방식으로 연봉 증감 폭이 현저히 커진 '신연봉제'의 도입이 대표적이다. 2012년 말에는 프런트를 대폭 교체하기도 했다.
코칭스태프 구성에서도 종종 새로운 시도가 나타난다. 2011년에는 득점력을 높이기 위한 팀배팅코치, 지난해에는 2군 투수 지도의 창구를 단일화하기 위해 투수총괄코치라는 새로운 보직을 만들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투수 유망주 육성의 별동대라 할 수 있는 피칭아카데미를 신설했고, 수석코치 대신 벤치코치라는 명칭을 사용 중이다.
롯데 자이언츠의 라이언 사도스키 스카우트 코치를 모델로 삼은 것이지만, 선수로 영입했던 잭 한나한에게 외국인 스카우트 역할을 맡긴 것도 새로운 시도였다. 사도스키와 달리 한나한은 선수로 뛰었던 다음 시즌부터 곧장 스카우트로 변신한 케이스다.
문제는 변화가 긍정적 효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데 있다. 신연봉제는 논란만을 낳았고, 2012년 말 구단의 대규모 인사는 프런트의 전문성 부족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팀배팅코치, 투수총괄코치 역시 뚜렷한 성과 없이 현재는 사라진 상태다. 한나한이 야심차게 영입한 코프랜드도 현재까지는 성공보다 실패에 가깝다.
◆ 신인, 육성, 용병 … 잘 짜여진 시스템이 필요한 3가지
잘 짜여진 시스템이 필요한 3가지 부문으로 '신인'과 '육성', '외국인 선수'를 꼽을 수 있다. 좋은 재목을 선별하고, 선별한 재목이 적재적소에 배치될 수 있도록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메울 고급 자재를 수입하는 것. 결국은 우승을 위해 필요한 3가지다.
그동안 LG는 좋은 신인들을 선발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육성에는 실패했다. '탈 LG 효과'가 이를 증명한다. LG가 지명한 좋은 자질을 갖춘 유망주들이 LG를 떠나 다른 팀에서 꽃을 피우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인 선수 역시 성공 케이스가 많지 않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좋은 신인을 많이 영입했던 것도 연고지 서울의 아마추어 저변 덕분이었지, LG의 신인 선발 시스템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현재 LG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변화의 시도 역시 계속된다. 그동안 해왔던 방식을 고수해봐야 제자리걸음에 그칠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있다. 실패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발전 방향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실패를 감추고 미화시키는데 급급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
LG의 구단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기록만으로 신인을 선발하는 시대는 지났다. 보이지 않는 능력에도 주목해 팀에 꼭 필요한 맞춤 인재를 뽑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스템을 잘 만들어놓아야 장기적인 구단 운영 방향에 맞춰 좋은 신인들을 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육성과 외국인 선수 영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중요한 것이 그동안 LG의 취약점이었던 육성 시스템의 확립이다. 이를 위해 LG는 이천에 최신식 훈련장, 챔피언스파크를 마련해 유망주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이상훈 피칭아카데미 원장. LG의 투수 유망주들을 집중 조련하고 있다.
높은 지명 순위의 유망주를 곧장 실전에 투입하기보다 몸도 마음도 프로 무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있는 것이 최근 LG의 변화 중 하나다. 2014년 1차지명을 받은 좌완 강속구 투수 임지섭이 신인 시절부터 큰 기대 속에 1군에서 뛰며 이도저도 아닌 성적을 남긴 것이 최근 육성에 있어 대표적인 시행착오다. 임지섭은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상무에 입대했다.
2016년 신인드래프트 1차지명 선수 김대현, 2차 1순위 지명을 받은 유재유는 현재 이상훈 피칭아카데미 원장의 전담 지도를 받고 있다. 김대현은 5월 중순부터 퓨처스리그 경기에 선발로 등판하기 시작했다. 유재유는 최근 대학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첫 실전을 치렀다.
두 선수 모두 그동안 실전보다는 근력 보강, 부상 치료 등 프로 선수로서 필요한 몸을 만드는데 시간을 할애해왔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김대현, 유재유가 올 시즌 1군 마운드에 서는 장면은 보기 어려울 전망. LG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육성하고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 "벤치마킹 부끄러워해서는 안돼"
과거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LG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구단 운영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NC 다이노스, 넥센 히어로즈 등 동생 구단들에게서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 LG 구단 내부에서 "다른 구단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 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9번째 구단으로 출범한 NC는 1군 합류 두 시즌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강팀으로 자리를 잡았다. 찰리, 테임즈, 해커, 스튜어트 등 성공적인 외국인 선수 영입이 NC의 1군 안착에 큰 역할을 해냈다. NC는 외국인 영입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로야구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넥센도 끊임없이 좋은 선수들을 육성해내며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올 시즌에도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간 가운데 새얼굴들의 활약을 앞세워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넥센 역시 한 시즌에 두세 명의 핵심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해내는 시스템이 자리를 잡은 상태다.
1990년 창단과 동시에 경험한 첫 우승부터 1994년 두 번째 우승까지는 4년이 걸렸다. 그러나 두 번째 우승 후 22년이 흐르는 동안 LG는 여전히 V2에 머무르고 있다. 리빌딩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올 시즌 역시 LG는 우승 전력과는 거리가 멀다.
리빌딩도 결국엔 시스템의 문제다. 사실 올 시즌 특히 부각되고 있을 뿐, LG는 꽤 오래 전부터 리빌딩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수 년째 같은 얘기가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리빌딩에 필요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역 시절 1994년 우승을 지켜본 LG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모 인사에게 "LG가 몇 년 안에 우승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승보다 시스템을 얼마나 빨리 구축하느냐가 중요하다. 시스템만 만들어지면 우승은 따라오게 돼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LG V3의 열쇠가 될 수 있는 우문현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