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채 장관 부친, 만주에서 뭐했나? | |
정순봉과 정순석은 동일 인물일까? | |
그런데 항렬자 순(淳)이 사용되었음에도 한글 '봉'과 한자 '奉'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보아 ‘대한민국 인사록’의 오자로 추정되며 이분이 앞서 적시한 정순석 즉 정동채 장관의 부친으로 추측이 된다. 왜냐면 하동정씨 종친회에서는 정장관의 함자가 정순석이라고 하였기 때문이고, 정장관실에 전화문의 한 바도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인사록 상(나이를 1949년 현재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1949년 자료를 1952년에 발간한 것으로 보아야 할 듯 하다)정장관의 부친은 1919년경 생으로 松汀中學校를 卒業했고, 解放後 全羅南道 警察廳 警務課 巡査部長을 거쳐 光陽警察署 總務課長 公安課長과 長城警察署 公安課長 等을 歷任하였으며 1949년 現在 長城警察署搜査課長였던 셈이다. 그 후 앞서 적시한대로 경감으로 전남 곡성 경찰서에서 제14대 경찰서장으로 1952년 3월6일부터1953년 1월13일까지 제14대 경찰서장을 역임한 것이 된다.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실의 이모 정책보좌관은 "정장관의 부친이 해방 전에 일본 중앙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강제징집을 피해 만주에 도피하여 있다가 해방이후 귀국하여 미군정청에서 실시하는 경찰간부시험에 경사로 합격하여 경찰생활을 시작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였으며 "훌륭한 경찰로 추앙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모든 정황을 살펴보아 ‘대한민국 인사록’ 상의 정순봉(鄭淳泰)은 정장관의 부친 정순석이 틀림없다는 추론이 성립된다. 다만 이모 정책보좌관의 말과 ‘대한민국 인사록’ 상의 학력 松汀中學校 卒業이 다를 뿐이다. “일본 중앙대 법학부 졸업을 굳이 松汀中學校 卒業이라고 표기한 이유가 있었을까?”와 “이름이 다르게 표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까?”가 의문이다. 퇴직경찰관과 현직경찰관 및 전의경으로 구성되어 회원 상호간에 협동정신을 앙양하여 조국의 평화통일과 자유수호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인 '대한민국 재향 경우회 ' 광주시지부에 정장관의 부친에 대하여 문의한 결과 이모 사무처장은 "해방 전의 경력은 알 수 없다"며 '존경받는 경찰관 이었다"고 한다. 정장관의 부친 정순석이 곡성 경찰서에서 제14대 경찰서장으로 1952년 3월6일부터1953년 1월13일까지 제14대 경찰서장을 역임한 이후(이때의 시기는 6.25이후의 시기이다) 곡성경찰서는 1953년 5월1일부로 신기남의원의 부친인 신상묵이 활동하였다는 서남지구 전투사령부에 편입된 것으로 곡성경찰서 연혁에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신기남의원의 부친 신상묵과 정장관의 부친 정순석과도 잘 아는 사이로 추정이 된다. 친일 진상규명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일제치하에서의 적극적이던 소극적이던 친일, 부일행위 일 것이다. 정동채 장관은 이제 네티즌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항에 대해 답해야 한다. 첫째, 앞서 적시한 ‘대한민국 인사록’ 상의 학력과 이름을 다르게 표기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둘째, 해방 전 만주에 있었다면 “당시 20-25살의 젊은이로서 무슨 일을 하였는지?”를 소상하게 답하여 주시길 부탁드린다 | |
2004/09/24 [05:43] ⓒ브레이크뉴스 |
첫댓글 정동채도 지난번에 서영석이 부인을 교수임용에 압력을 행사했냐 안했냐고 말도 많았는데 시간에 또 묻히는군요.그때 그 사건에 불을 지피셨던 정교수님께는 어떠한 불합리한 일은 안벌어졌는지 걱정되는군요.
아 또 잡혀네 ㅎㅎㅎ
호호호 ............. 제발비나이다
브레이크뉴스 한을 품고 있군요,,,흐흐흐
완전 열린 친일 잡탕입니다.. 과연 친일을 조사하고 역사세우기를 할자격이 있습니까.. 한심한....
지똥 지가밟아 미끄러져 자빠질놈들.............쯧쯧
경사났네~